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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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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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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7/31(수) 16:42
■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현황과 과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을 주도해 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 이미 지난 80년대, 사회의 모든 분야가 독재정권의 억압 아래서 통일문제와 관련된 견해를 거의 내놓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는 정부의 방해를 뚫고 통일문제협의회회를 꾸준히 개진 해왔으며, 여기서 이루어진 논의를 바탕으로 1988년에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88선언)을 발표한다.
한국사회 통일운동 교회가 주도
이같은 한국교회의 노력은 세계 기독교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공식 기독교단체인 조선기독교도연맹(당시)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에 따라 남북한의 교회는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먼저 남북 교류를 시작했다. 지난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처음 만나 역사적이고도 감격적인 공동 성찬식을 거행한 바 있는 남북한 교회의 만남은, 남북한 관계가 여러 가지로 변화한 오늘날 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91년에는 당시 교회협 총무였던 권호경목사가 우리 정부 당국의 허가를 받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 김일성주석을 만난다. 그리고 그 이후 교회협을 비롯한 한국교회 대표단의 방북은 계속 이어져 왔다. 90년대 중반에 들어 북한이 거듭되는 홍수 등으로 심각한 식량난에 빠져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일 먼저 북한 돕기에 나선 것도 한국교회였다.
한국교회는 북한동포후원연합회를 결성, 거교회적으로 북한 지원을 위한 자원을 모으는데 주력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교회에 북한의 급박한 사정을 알리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에 세계의 신앙 형제들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 해외의 기독교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돕는 일에 나서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같은 사례들은 한국 사회의 통일운동을 교회가 주도해 나왔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정부가 대북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교회의 통일운동은 점차 그 입지가 작아지기 시작한다. 정부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변한 만큼, 기독교 이외의 다른 부문들이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길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인 교회가 정책을 좌우하는 정부의 논리와 능력을 뛰어 넘기가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이 시기부터 우리 나라의 통일논의를 정부가 독점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노태우 정권에서부터 시작된 정부의 ‘통일논의 독점을 향한 움직임’은 김영삼 정권에 와서 더욱 노골화되기 시작한다. 이같은 움직임을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북한 지원창구 단일화’를 둘러싼 정부와 민간부문 사이의 논쟁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이후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은 통일과 관련된 논리의 개발이나 정책제시보다는 남북한 교회의 교류와 만남, 그리고 북한 지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통일문제에 대한 시각이 전반적으로 넓어지면서,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보수권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경향이 기독교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통일운동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기 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미쳤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공과에 대한 평가나, 앞을 이루어져야 할 방향을 논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통일논의의 진전’, 좀 더 부정적인 표현으로는 ‘정부 주도의 통일논의’가 우리 사회의 통일논의에 가져다 준 부정적인 영향을 분석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정부정책, 외부적 요인에 ‘흔들’
정부 주도의 통일논의가 갖고 있는 가장 뚜렷한 한계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데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잇따라 나온 ‘악의 축’ 발언이나 ‘테러와의 전쟁’ 등과 같은 정책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한마디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과 맞물려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우리 사회의 통일논의를 독점하고 주도할 수는 있지만, 주변 정세의 흐름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른바 ‘햇볕정책’이라는 대북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려 해도, 미국을 비롯한 주변 상황의 변화나 최근의 ‘서해 교전’ 사태 같은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야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보수권으로부터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이는 서해 교전사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논란을 짚어 보면 분명하게 나타나는 사실이다.
우리 정부는 서해 교전사태를 북한의 ‘도발행위’라고 간주하면서도, 이 사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의도적인 것인가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 열린 임시국회에서 정세현 통일부장관은 이 문제와 관련된 야당 의원들의 집요한 질문공세를 받고, “교전 직후 열린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논의된 내용을 상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단언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며, 북한당국이 이번 사건에 책임있는 자세로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서해 교전사태로 인해 햇볕정책의 기조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권을 비롯한 보수층, 특히 대부분의 언론들은, ‘퍼주기식 북한 지원의 중단’은 물론, 더 나아가 ‘금강산 관광의 중단’에 이르기까지 햇볕정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의 경우는 아예 ‘북한에 무슨 약점을 잡혔느냐’는 비아냥조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기독교계의 통일운동이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는 사실상 자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독교가 그동안의 통일운동을 통해 나름대로 세워 놓았던 원칙과 신앙적 양심에 충실하게 정부의 정책을 비롯한 사회의 통일논의를 감시하고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88선언’을 통해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 민중우선, 인도주의’라는 다섯 가지의 통일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통일논의의 주도권이 교회로부터 정부 당국으로 넘어간 이후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이 원칙들을 실천에 옮기기 보다는, 대북지원을 빌미로 한 남북한 교회의 만남과 교류에 더 집착하는 듯한 과거의 모습을 계속 답습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세워진 원칙들을 견지하면서, 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통일논의를 열어 가야 할 책임이 한국교회에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심각하게 변화해 왔다. 지난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급격하게 화해무드를 타는가 싶던 남북한 관계는 부시 행정부의 등장과 뒤이은 ‘악의 축’ 발언, 그리고 9.11 뉴욕 테러사건 이후 북한 역시 ‘테러집단’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미국의 대북 강경노선으로 인해 ‘평화 공존’을 전제로 하는 남북한의 협력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당국자간의 회담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 등도 한동안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최근 2년간 거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이전의 정권들에 비해 진보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해 온 현 정부가 안팎의 요인들로 인해 정책 기조를 제대로 유지해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교회는 과거의 행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약 2년동안 몇차례의 방북과 한두차례의 통일정책협의회를 개최한 것, 그리고 연례 행사인 평화통일 공동기도주간을 위한 기도문에 합의하고 기도주간을 지킨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현주소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정부의 통일논의가 교회의 그것을 앞질러 가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기독교 통일운동권의 무력감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했다는 것, 둘째는 기독교 통일운동을 주도하던 인사들이 현 정권과 상대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에 정권 출범 이후 대북정책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백도웅총무 취임 이후 통일운동과 관련된 사업들이 교회협 내부에서 상대적으로 뒷전에 물러났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이제 ‘생명살리기’에 나서야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기독교계의 통일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남북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의식이 최근 몇 년사이 급격하게 균열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보수세력이 득세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은, 남북한의 화해보다는 과거의 냉전적 사고에 기반을 둔 남북 대결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확산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계의 보수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서해 교전사태와 관련해서 이를 북한의 도발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한 대책마련과 필요할 경우 응징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을 발표한 것은, 기독계 역시 이같은 현상의 예외지대가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다시한번 전쟁 분위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신학적 논리를 개발해 확산시키는 일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에도 무력의 사용이나 전쟁은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으며,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민족의 생명을 살리고 더 나아가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길임을 교인등에게 인식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하나는, 비록 서해 교전이라는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이미 형성된 강경한 대북의식의 근원이 우리 사회 내부라기 보다는 미국 등 외부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끼리 풀어 가야 할 민족통일의 문제를 외부의 편견과 판단에 의존해 풀어 나가려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이같은 잘못된 의식의 출발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한반도 내부의 문제를 우리 민족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활동을 미국교회협의회 등 해외 교회와 에큐메니칼 기구들과 연대해서 펼쳐 나갈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계의 통일운동과 통일논의가 반드시 전제해야 할 사실은, 통일의 과정이 단순히 정치적인 통합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남북한의 민중과 피조세계 전체의 생명을 지키고 보장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통일논의의 과정에서 민중과 피조물의 삶이 가장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로 부각돼야 하며, 생명을 거부하는 어떤 형태의 통일논의나 과정도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세워 놓을 필요가 있다. 이같은 사실을 전제한다면, 통일논의는 신앙을 비롯해서 경제와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딜 수 밖에 없다. 왜 무력이나 폭력을 거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아무리 상왕이 어렵게 흘러가도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왜 반드시 계속돼야 하는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성식부국장
(1663호 2002. 8. 4)
■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현황과 과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을 주도해 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 이미 지난 80년대, 사회의 모든 분야가 독재정권의 억압 아래서 통일문제와 관련된 견해를 거의 내놓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는 정부의 방해를 뚫고 통일문제협의회회를 꾸준히 개진 해왔으며, 여기서 이루어진 논의를 바탕으로 1988년에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88선언)을 발표한다.
한국사회 통일운동 교회가 주도
이같은 한국교회의 노력은 세계 기독교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공식 기독교단체인 조선기독교도연맹(당시)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에 따라 남북한의 교회는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먼저 남북 교류를 시작했다. 지난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처음 만나 역사적이고도 감격적인 공동 성찬식을 거행한 바 있는 남북한 교회의 만남은, 남북한 관계가 여러 가지로 변화한 오늘날 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91년에는 당시 교회협 총무였던 권호경목사가 우리 정부 당국의 허가를 받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 김일성주석을 만난다. 그리고 그 이후 교회협을 비롯한 한국교회 대표단의 방북은 계속 이어져 왔다. 90년대 중반에 들어 북한이 거듭되는 홍수 등으로 심각한 식량난에 빠져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일 먼저 북한 돕기에 나선 것도 한국교회였다.
한국교회는 북한동포후원연합회를 결성, 거교회적으로 북한 지원을 위한 자원을 모으는데 주력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교회에 북한의 급박한 사정을 알리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에 세계의 신앙 형제들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 해외의 기독교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돕는 일에 나서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같은 사례들은 한국 사회의 통일운동을 교회가 주도해 나왔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정부가 대북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교회의 통일운동은 점차 그 입지가 작아지기 시작한다. 정부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변한 만큼, 기독교 이외의 다른 부문들이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길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인 교회가 정책을 좌우하는 정부의 논리와 능력을 뛰어 넘기가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이 시기부터 우리 나라의 통일논의를 정부가 독점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노태우 정권에서부터 시작된 정부의 ‘통일논의 독점을 향한 움직임’은 김영삼 정권에 와서 더욱 노골화되기 시작한다. 이같은 움직임을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북한 지원창구 단일화’를 둘러싼 정부와 민간부문 사이의 논쟁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이후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은 통일과 관련된 논리의 개발이나 정책제시보다는 남북한 교회의 교류와 만남, 그리고 북한 지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통일문제에 대한 시각이 전반적으로 넓어지면서,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보수권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경향이 기독교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통일운동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기 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미쳤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공과에 대한 평가나, 앞을 이루어져야 할 방향을 논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통일논의의 진전’, 좀 더 부정적인 표현으로는 ‘정부 주도의 통일논의’가 우리 사회의 통일논의에 가져다 준 부정적인 영향을 분석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정부정책, 외부적 요인에 ‘흔들’
정부 주도의 통일논의가 갖고 있는 가장 뚜렷한 한계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데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잇따라 나온 ‘악의 축’ 발언이나 ‘테러와의 전쟁’ 등과 같은 정책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한마디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과 맞물려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우리 사회의 통일논의를 독점하고 주도할 수는 있지만, 주변 정세의 흐름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른바 ‘햇볕정책’이라는 대북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려 해도, 미국을 비롯한 주변 상황의 변화나 최근의 ‘서해 교전’ 사태 같은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야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보수권으로부터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이는 서해 교전사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논란을 짚어 보면 분명하게 나타나는 사실이다.
우리 정부는 서해 교전사태를 북한의 ‘도발행위’라고 간주하면서도, 이 사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의도적인 것인가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 열린 임시국회에서 정세현 통일부장관은 이 문제와 관련된 야당 의원들의 집요한 질문공세를 받고, “교전 직후 열린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논의된 내용을 상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단언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며, 북한당국이 이번 사건에 책임있는 자세로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서해 교전사태로 인해 햇볕정책의 기조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권을 비롯한 보수층, 특히 대부분의 언론들은, ‘퍼주기식 북한 지원의 중단’은 물론, 더 나아가 ‘금강산 관광의 중단’에 이르기까지 햇볕정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의 경우는 아예 ‘북한에 무슨 약점을 잡혔느냐’는 비아냥조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기독교계의 통일운동이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는 사실상 자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독교가 그동안의 통일운동을 통해 나름대로 세워 놓았던 원칙과 신앙적 양심에 충실하게 정부의 정책을 비롯한 사회의 통일논의를 감시하고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88선언’을 통해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 민중우선, 인도주의’라는 다섯 가지의 통일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통일논의의 주도권이 교회로부터 정부 당국으로 넘어간 이후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이 원칙들을 실천에 옮기기 보다는, 대북지원을 빌미로 한 남북한 교회의 만남과 교류에 더 집착하는 듯한 과거의 모습을 계속 답습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세워진 원칙들을 견지하면서, 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통일논의를 열어 가야 할 책임이 한국교회에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심각하게 변화해 왔다. 지난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급격하게 화해무드를 타는가 싶던 남북한 관계는 부시 행정부의 등장과 뒤이은 ‘악의 축’ 발언, 그리고 9.11 뉴욕 테러사건 이후 북한 역시 ‘테러집단’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미국의 대북 강경노선으로 인해 ‘평화 공존’을 전제로 하는 남북한의 협력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당국자간의 회담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 등도 한동안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최근 2년간 거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이전의 정권들에 비해 진보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해 온 현 정부가 안팎의 요인들로 인해 정책 기조를 제대로 유지해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교회는 과거의 행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약 2년동안 몇차례의 방북과 한두차례의 통일정책협의회를 개최한 것, 그리고 연례 행사인 평화통일 공동기도주간을 위한 기도문에 합의하고 기도주간을 지킨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현주소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정부의 통일논의가 교회의 그것을 앞질러 가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기독교 통일운동권의 무력감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했다는 것, 둘째는 기독교 통일운동을 주도하던 인사들이 현 정권과 상대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에 정권 출범 이후 대북정책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백도웅총무 취임 이후 통일운동과 관련된 사업들이 교회협 내부에서 상대적으로 뒷전에 물러났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이제 ‘생명살리기’에 나서야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기독교계의 통일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남북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의식이 최근 몇 년사이 급격하게 균열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보수세력이 득세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은, 남북한의 화해보다는 과거의 냉전적 사고에 기반을 둔 남북 대결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확산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계의 보수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서해 교전사태와 관련해서 이를 북한의 도발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한 대책마련과 필요할 경우 응징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을 발표한 것은, 기독계 역시 이같은 현상의 예외지대가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다시한번 전쟁 분위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신학적 논리를 개발해 확산시키는 일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에도 무력의 사용이나 전쟁은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으며,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민족의 생명을 살리고 더 나아가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길임을 교인등에게 인식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하나는, 비록 서해 교전이라는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이미 형성된 강경한 대북의식의 근원이 우리 사회 내부라기 보다는 미국 등 외부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끼리 풀어 가야 할 민족통일의 문제를 외부의 편견과 판단에 의존해 풀어 나가려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이같은 잘못된 의식의 출발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한반도 내부의 문제를 우리 민족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활동을 미국교회협의회 등 해외 교회와 에큐메니칼 기구들과 연대해서 펼쳐 나갈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계의 통일운동과 통일논의가 반드시 전제해야 할 사실은, 통일의 과정이 단순히 정치적인 통합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남북한의 민중과 피조세계 전체의 생명을 지키고 보장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통일논의의 과정에서 민중과 피조물의 삶이 가장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로 부각돼야 하며, 생명을 거부하는 어떤 형태의 통일논의나 과정도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세워 놓을 필요가 있다. 이같은 사실을 전제한다면, 통일논의는 신앙을 비롯해서 경제와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딜 수 밖에 없다. 왜 무력이나 폭력을 거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아무리 상왕이 어렵게 흘러가도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왜 반드시 계속돼야 하는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성식부국장
(1663호 2002.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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