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오늘의

읽을꺼리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제암리교회,「순교」가 또 죽은 허망한 기념관

선교화제현장 전정희............... 조회 수 7736 추천 수 0 2003.03.12 14:31:50
.........
출처 :  


△ 1969년 일본 크리스천과 지식인들이 일제의 학살을 사죄 의미에서 지워줬던 제암리교회 전경. 위에서 보면 3자와 1자를 나타내는 교회 건물이었다. 2000년 철거되고 말았다.

민족의 성지이자 한국기독교사의 성지

꼭 20년 만에 3.1운동의 성지인 제암리교회(사적 299호)를 찾았다. 그러니까 1983년 대학 3학년 때 학보사의 학생 기자로 있으면서 3.1운동 특집으로 제암리교회 르포를 쓴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제암리교회.



△ 현재의 제암리교회.「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왼쪽이 기념관을 겸한 교회,가운데가 23인의 순교묘지, 오른쪽이 3.1정신교육관이다. 교회는 기념관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다. jeon jeong heeⓒ

1983년 무렵만 해도 제암리는 그야말로 한가한 농촌이었다. 여름 햇살이 서해안으로 넘어가면 그 넓은 들녘은 풍요가 가득한 풍경이 되었다. 제암리교회에서 82번 지방도를 따라 서해 방향으로 가면 맞닿는 곳이 미군 전투기의 훈련장인 이른바 매향리가 나온다. 야트막한 동산을 업고 있는 제암리교회는 어느 곳에서 봐도 쉽게 눈에 띄웠다. 독특한 건물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하얀색 교회 건물이 의미 있는 곳임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인 것 같으면서도 달리보면 현대적 미감이 살아나는 건물이었다. 랜드마크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웅변해 주는 것 같았다.



◁ 1969년 일본인 크리스천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봉헌 예배 모습. 굳이 이 교회를 헐어버린 것은 아무래도 뼈아프다. 이 교회 건물을 살리면서 기념관을 지어야 바람직 했다.


그 교회 건물은 참으로 예수의 고난만큼이나 험난하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제암리교회 교인들은 3월31일과 4월5일에 가까운 발안 장날 장터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자 일제는 4월15일 병력을 동원하여 교인들을 교회에 가두고 불을 질러버렸다. 23명이 불에 타 죽었다. 이것이 너무나도 유명한 제암리교회 만행이다.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너무나 많이 배웠던….

  

◁ 새로 지은 지금의 교회 명칭은 「제암교회
」이다.기념관 2층에 자리하고 있으며 기념관과 별 연관이 없이 운영되고 있다. 현대적 시설을 갖춘 제단 모습. jeon jeong heeⓒ

제암리교회는 1905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에 세워진 교회로 이곳 사람인 안종후가 아펜셀러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자신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인근 주민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1911년에는 교인이 늘어나자 8칸짜리 초가 예배당을 마련하였고 김교철, 동석기 등 인근의 수촌리교회, 남양교회 목회자들이 순회하면서 교회를 돌보았다.

학살 사건 직후 언더우드 선교사가 당시의 영국대사인 커티스와 같이 와서 현장을 보고 미국선교부에 보고를 했다. 일본인들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면서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참혹한 상황이 세계에 알려지게 된 계기였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찍은 사진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왜 일본이 사죄하고 지은 교회 건물을 부셨을까?

이후 한일국교가 정상화되면서 많은 일본의 크리스천과 지식인들이 제암리의 만행을 깊이 반성했다. 일본 크리스천들은 한국 방문시 제암리교회에 들러 머리를 숙여 사죄하고,그 후손들을 위로했다. 크리스천은 민족과 국가,세대를 뛰어 넘어 예수 안에서 하나임을 일본 크리스천들의 제암리교회 방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 교회가 불탄 후 지어진 1938년의 제암리교회 모습. 이제 기독교 유적지를 어떻게든 보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1969년 일본인 오야마 레이지 목사를 비롯한 일본 기독교인들이 800만엔의 성금을 모아 사죄하는 의미에서 제암리교회를 짓도록 했다. 회개하는 자에게 언제든지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참으로 무지한 존재들이다. 20년 후,2003년 2월말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이 세웠던 교회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현대식 건축양식의 번듯한 건물이 세워져 교회와 전시관으로 복합 사용되고 있었다. 아담했던 교회 주변은 관광버스가 수십대가 들어서도 넉넉하게 조성됐고 교회 주변은 성지화됐다.

화성시 등 지자체 및 중앙정부가 2000년 부터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이라는 명칭으로 총 422평의 기념관 겸 교회로 조성해 2002년 3월 기념관을 완공했던 것이다. 물론 연 4만명의 참배객이 드나드는 곳이라 협소했을 테고 교육의 목적상 기념관을 건립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사적으로 지정을 해놓고도 의미있는 건물을 철거했다는 점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양심있는 일본인들이 수십차례 방문하여 자신들의 죄상을 조사하고,본국으로 들아가 그 많은 돈을 모아 봉헌한 교회를 그렇게 허무하게 밀어버릴 수 있는 것인지,그것이 과연 상식적이며 성서적인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눈물로 사죄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노력했던 일본 크리스천과 지식인들이 보면 뭐라 할 것인가?

그렇다고 새로 지은 기념관은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품이나 유물이라도 손색 없이 전시했는가? 실망스럽게도 엉성한  패널이나 조잡한 그림,고증이 불분명한 몇 점의 유품,유물이 고작이다. 그렇게 전시할 것조차 없으면서 상징적 교회 건물은 왜 허물어 버렸는지,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오히려 참배객들에게 『일제의 후손인 일본 사람들이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훌륭한 교회 건물을 건립해 주었습니다』라고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산교육이 아니던가?



◁ 1982년 순교자 유해 발굴 당시 발굴된 유골을 매만지며 통곡하는 생존자 전동례 할머니.


정부도 그렇지만 우리 크리스천들도 반성을 해야 한다. 성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새 것이면 순교의 역사도 버려버리는 우를 범했다. 적어도 의미가 충분한 옛 교회 건물은 살려야 했다. 관리가 힘든 목재 건물도 아닌 콘크리트 건조물이었고, 단순한 건축 형태도 아닌 3자와 1자의 의미를 살린 상징적 교회 건물이었다.

한국 기독교의 전래는 순교의 역사다. 23인의 순교자들,죽어간 선교사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예수를 믿는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숨져간 사람들, 일제의 만행에도 우상 숭배를 거부한 선지자들의 피와 눈물로 이어져온 신앙의 역사다.

크리스천들의 짧은 생각, 신앙의 단절을 낳는다

오늘날의 제암리교회는 기독교적 시각으로 보자면 [교회]보다 [일제의 만행]만 드러난다. 예수의 이름,민족의 이름으로 일제에 항거한 한국 기독교의 민족운동 성지이다. 그런데도 그곳을 지방자치단체인 화성시가 운영함에 따라 [신앙의 역사] 부분은 퇴색되어 가고 있다. 기념관의 운영도 엄밀히 말해 기독교 기관이 맡아 참배객과 관람객들에게 신앙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 23인의 순교묘지 쪽에서 본 제암교회.  jeon jeong heeⓒ


제암리교회는 승리의 역사다. 성서가 패배의 역사,실패한 왕조,비윤리적 내용조차 전하는 이유를 꼽씹어야 한다. 결코 모범이 될 수 없는 내용조차 전하는 것은 그렇게 해서는 안됨을 역사를 통해 배우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승리의 역사를,그렇게 손쉽게 허물어 버리는 오늘 우리 크리스천은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인가 고통을 받는는 것은 얼마나 가치있는 일입니까(행 5:41)라는 말씀을 잊은 자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래된 것은 보석이 된다. 신앙은 더욱 그러하다.



▷묘역 비문내용

  
△ 교회 뒷편의 23인의 순교묘지. jeon jeong heeⓒ


묘비의 전면에는 제암리 3.1운동 순국23위의 묘 「提岩里三一運動殉國二十三位之墓」라 썻고, 우측면에는 순국선열(殉國先烈)의 방명단(芳名單)이 있다.
여기에 비문을 소개한다.

  「이곳은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일제군경의 야만적인 살상으로 고귀한 생명을 희생당한 순국선열 23인 위의 영혼이 고이 잠든 합장묘소이다. 일제는 우리 주권을 탈취하고 헌병 경찰을 동원하여 무단통치를 감행하였지만 우리의 광복투쟁은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전개되어 3.1운동으로 일원화되었다. 이때 제암리에서도 교회마당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며 밤에는 지내산 봉우리에 봉화를 올리어 기세를 드높였다. 그러자 일제 군경은 주모인사를 조사하고 4월 15일 오후 제암리에 도착하여 주민들도 함께 교회당내로 강제 집합시킨후 곧바로 모든 문을 밖에서 잠그고 불지른 후 총을 쏘아 살해하는 천인공노할 죄악을 저지르는 한편 33호나 되는 제암리를 불태웠다. 이어 일제 군경은 고주리로 가서 주모인사로 지목된 천도교인 가족등 6인을 결박하여 나무더미에 세워 총살하고 불을 질렀다.
그 유해는 가족에 의하여 장례가 치러졌으나 교회에서 희생된 23위의 유해는 가족도 접근할 수 없어 스코필드 캐나다 선교사가 일제 군경의 질시속에 공동묘지에 장례를 지냈다. 이제 민족혼을 더욱 새롭게 인식하고 민족적 자각을 높이기 위하여 민족수난의 현장도 국민교육의 도장과 민족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1982년 전두환 대통령의 뜻에 따라 문화공보부에서 유해를 찾아 여기에 유택을 마련하였다.
  이제 광복운동에 이바지한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며 민족혼을 후세에 영원히 전하고자 묘비를 세우노니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바친 영혼이시어 고이 잠드소서!」



1983년 4월 15일 立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현종 짓고 김응현 씀


[제암리 3.1운동 순국 23위 방명단]
안정옥 안종린 안종락 안종환 안종후 안경순 안무순 안진순 안봉순
안유순 안종화 안필순 안명순 안관순 안상용 조경칠 강태성 동부인김씨 홍원식 동부인김씨 홍순진 김정헌 김덕용


▷ 찾아가는 길/ 전화 031-369-1663

  

- 동서울터미널 > 발안에서 하차(조암행 20분간격, 70분소요) > 제암리  
- 사당역/양재역 > 발안 > 제암리
- 안산 > 발안간 30번국도 > 수원-발안간 43번국도의 교차부근에서 남양호로가는 302번지방도로(약1.5Km)
- 서해안고속도로 > 발안 > 톨게이트에서 좌회전 > 제암리(첫마을임)
- 오산 > 제암리(발안행, 15분소요)
- 수원역 > 제암리(조암행, 15분간격)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8 北山편지채희동 주님의 살림은 '빈들살림'이었습니다 채희동 2003-03-21 2780
217 北山편지채희동 내가 우는 까닭은 -- 우는 사람은 아름답다 채희동 2003-03-21 2859
216 北山편지채희동 너희들의 가락과 고백으로 나를 찬양해 다오 채희동 2003-03-21 2783
215 北山편지채희동 교회여, 립스틱을 짙게 바르자 채희동 2003-03-21 2909
214 北山편지채희동 우리 목사님은 서울의 택시 운전사 채희동 2003-03-21 3350
213 北山편지채희동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채희동 2003-03-21 2957
212 北山편지채희동 먼산에 아득히 흐르는 그리움 채희동 2003-03-21 3123
211 北山편지채희동 여름은 푸는 계절입니다 채희동 2003-03-21 2701
210 北山편지채희동 목마른 내 영혼의 뿌리는 어디인가? 채희동 2003-03-21 3204
209 北山편지채희동 성전 뜰 앞에 좌판을 벌려 놓은 한국교회 채희동 2003-03-21 3311
208 北山편지채희동 하늘의 빗장을 푸신 예수 채희동 2003-03-21 3229
207 北山편지채희동 하나님께 냄새가 있다면 채희동 2003-03-21 2874
206 北山편지채희동 하나님도 흔들리셨다 채희동 2003-03-21 2915
205 北山편지채희동 아, 숨막히는 시대! 채희동 2003-03-21 3049
204 北山편지채희동 이 세상에서 목사로 산다는 것은 채희동 2003-03-21 3215
203 北山편지채희동 농부의 마음으로 하는 목회 채희동 2003-03-21 2954
202 北山편지채희동 아기는 하나님의 선물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 채희동 2003-03-21 3490
201 北山편지채희동 나는 너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줄 수가 없다 채희동 2003-03-21 3264
200 北山편지채희동 하늘에서 세상으로 소풍 오신 예수 채희동 2003-03-21 3237
199 北山편지채희동 한편의 詩로 하루를 여는 사람 채희동 2003-03-21 3449
» 선교화제현장 제암리교회,「순교」가 또 죽은 허망한 기념관 전정희 2003-03-12 7736
197 선교화제현장 솔 숲 사이에 들어선 평택 「고잔제일교회」 전정희 2003-03-12 4924
196 목회독서교육 청소년 사역을 위한 재치있는 비결 100가지 열린누리 2003-03-06 3321
195 한국교회허와실 ■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현황과 과제 기독교신문 2003-03-05 3624
194 한국교회허와실 ■ 무분별한 단기선교 활동 기독교신문 2003-03-05 4401
193 한국교회허와실 ■ 기독교 시민운동의 현주소 기독교신문 2003-03-05 3708
192 수필칼럼사설 아빠의 눈물 임복남 2003-02-22 3755
191 정치건강취미 유혹과의 전쟁 프레시안 2003-02-22 4723
190 선교화제현장 편지선교사 해보실래요? 사랑손 2003-02-21 3588
189 인기감동기타 다산 정약용의 12강6목 최용우 2003-02-20 3945
188 정치건강취미 “예전의 미국은 이러지 않았다” 황준호 2003-02-14 3295
187 생명환경자연 쌀, 어찌할 것인가 천규석 2003-02-13 3388
186 생명환경자연 땅의 옹호 김종철 2003-02-13 3203
185 생명환경자연 21세기의 인구, 식량, 농업 후루사와 코유 2003-02-13 3509
184 사회역사경제 "세상 일체가 하나의 관계" 장일순 2003-02-13 3259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150 세종시 보람1길12 호려울마을2단지 201동 1608호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