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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詩로 하루를 여는 사람

北山편지채희동 채희동............... 조회 수 3444 추천 수 0 2003.03.21 10:29:13
.........
출처 :  
성서는 거룩한 시집

▲ 한 편의 시로 하루를 연다면 하루 하루의 삶이 맑고 깨끗해지겠지요.

마음
                                                            
아침저녁
방을 닦습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이며
흙 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 붓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 자리
언제나 비어 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자리입니다.

          - 곽재구

시인의 눈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고, 일상에 묻혀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곳의 소식을 전해 줍니다.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구름은 무슨 생각하며 저 하늘을 흐르고 있는지, 흙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이 왜 씨앗에 가 있는지, 시장 골목에 아낙들은 왜 그리 시끄러운지를.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시인은 귀를 기울이노라면, 그 곳에서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천상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저 내면의 소리를 듣기도 하여 그 순결한 언어와 숨결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어쩌면 시인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저 세상의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하늘의 소식을 듣고 와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 분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너희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시인은 이 세상이 탐욕에 물들고 사람의 마음이 병들면, 자신의 몸도 함께 병들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면서 하늘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요. 시인은 한 줄의 시를 얻기 위해 온밤을 지새우며, 온몸을 태우며, 자기의 영혼을 팔기도 하며, 자기 일상의 삶을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그 자신들 스스로 겪으면서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를 들으려 했던 것처럼, 어쩌면 시인은 그렇게 이 세상에서 시인의 삶과 몸과 영혼까지도 내던져 버리면서까지 한 줄의 시를 얻어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삼 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맨발과 거의 발가벗은 몸으로 지냈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에스겔은 390일 동안은 왼편으로만 누워 자고 40일 동안은 오른편으로 누워 자는 괴팍스러운 행동을 했습니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괴팍한 행동은 바로 하늘의 소리를 듣기 위한 시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 66권은 시 아닌 것이 없고, 성서를 기록한 기자들은 모두가 시인이 아닌 이들이 없습니다. 그들은 한 줄의 성서를 기록할 때마다 자신의 몸과 영혼을 태워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기록했으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끝없는 기도와 명상과 참회와 새로운 체험과 새로운 느낌을 동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 66권은 모두가 시적 언어와 시적 상징과 시적 상상력으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 시인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시인들을 통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시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보면 어느덧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밭에 소리 없이 쌓입니다. 그러나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눈에 보이는 것에 매달리고 좇아가는 이들에게 시인의 외침과 그 소리는 공허하게 들릴 뿐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 꿈 많던 소녀 소년 시절에 모두가 시인 아닌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집 한 권씩 가슴에 품고 읽고 외우고, 아니 내가 시인이 되어 한 줄의 시를 얻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적이 많았습니다.

그 때 우리의 영혼은 맑았습니다. 그래서 시를 사랑할 수 있었고, 시를 사랑한 우리들은 세상도 사랑했고,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라면서 세상이 주는 향락에 길들여지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면서 어느덧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시인의 마음은 사라지고, 시도 멀어져 우리는 시의 고향을 잃고 살아갑니다. 혼탁한 시대일수록 시인은 많지만, 시를 읽고 시를 사랑하고 시인의 마음을 동경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시대가 병들고, 영혼이 썩어갈수록 시인의 피를 토하는 외침과 절규는 하늘을 찌르고 땅에 박히지만, 그러나 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적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민족은 영혼이 맑은 민족입니다. 시인의 마음을 품으며 사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이 시인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 사람들이 시를 노래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겠지요.

한편의 詩로 하루를 여는 사람, 김영동 목사님

  그러기에 우리가 한편의 詩로 하루의 아침을 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분주한 일상의 일로 아침을 열기도 하고, 간밤까지 끌어안고 씨름했던 많은 근심과 걱정거리로 아침을 여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문을 열어 하루를 시작하듯, 한 편의 시로 하루를 연다면 하루 하루의 삶이 맑고 깨끗해지겠지요.

저는 일상의 삶을 한 편의 시로 닦으며 살아가는 분을 알고 있습니다. 김영동 목사님, 그 분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듯 시를 읽고 그 시로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며, 그 시를 품고 자신의 일상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도 끊임 없이 시 읽기를 계속하는 것이지요. 그분에게 있어서 시는 결코 일상의 삶과 분리되지 않으며, 시가 허공에 매달려 있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그 분 자신의 삶 속에서 시가 살아있는 것이지요.


그 분은 매일 한편의 시를 메일로 배달시켜 저의 아침을 깨웁니다. “채 목사, 나 김 목산데, 詩 배달 왔어?” “예? 詩 배달이요?” “그래, 내가 보내준 시로 아침을 맞이하라고.” 처음에는 아침 일찍 배달 온 시를 받느라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덧 그 분이 보내준 시가 배달되는 아침신문보다도, 아이에게 먹일 우유보다도 더 기다려집니다. 신새벽에 그 분이 배달해 준 시 한편은 하루의 처음을 신선하게 해 주고, 간밤에 찌들어버린 내 마음을 정화시켜 주며, 오늘 하루의 양식이 됩니다.

신앙은 자기 마음을 닦는 일입니다
한 편의 시를 읽노라면, 어느덧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에 녹아 내립니다. 그리고 곧 내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시인은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 한편의 시를 쓰니까요. 위에 적은 <마음>이란 시도, 얼마 전에 매일 아침 시를 배달해 주시는 목사님에게서 받은 시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란 방을 닦듯이 아침저녁으로 닦는 일이라고.

아침저녁
방을 닦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아침저녁으로 닦으며 삽니다. 무엇이든지 닦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닦으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은 닦으며 사는 이들보다는 더럽히고 어지럽히는 사람이 더 많아 더러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의 오염, 공기 오염, 먹을거리의 오염, 정치의 오염, 심지어는 종교 오염까지 온통 오염된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닦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 세상이 이렇게 라도 남아 있는 것은 보이지 않게 묵묵히 이 세상을 닦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닦는 일이란 그리 싶지가 않습니다. 집안에서도 닦는 일은 주로 어머니가 하십니다. 더럽히는 식구는 많고 닦는 어머니는 한 분이니, 그 집안이 깨끗할 수가 없겠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오늘도 묵묵히 당신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 하는 일은 닦는 일밖에 없다는 듯, 밤낮으로 닦고 또 닦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어머니의 손으로 가꾸어 가는 것입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이며
흙 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닦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닦아야 합니다. 먼지 묻은 방, 때가 낀 몸, 밥 먹은 그릇, 옷과 신발, 이 모두를 닦아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닦는 일이 어디 눈으로 보이는 곳, 눈으로 보아서 더럽고 때 낀 곳만 닦아내겠습니까? 시인은 말합니다. 방은 매일 닦지 않아도 되지만, 옷을 매일 빨아 입지 않아도 되지만,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 있는데, 그곳은 바로 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이라고. 아침 햇살 떨어지는 곳, 그곳은 어디입니까? 그곳은 하나님의 은총이 떨어지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내리는 곳, 우리의 마음이겠지요. 그래서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밤낮으로 매일 열심히 닦아야 하는 곳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오신 곳, 그 곳을 열심히 닦아내는 일이지요.

그곳에서 나는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 붓습니다

무엇을 닦는 데는 걸레가 있어야 합니다. 걸레는 이 세상의 온갖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쓰고도 불평 하나 하지 않고 닦는 일을 합니다. 밤하늘의 별이 반짝이며 아름다운 것은 별을 닦는 걸레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위해 걸레가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매일 자식을 위해 걸레의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사랑이요, 그것이 신앙이 아닐까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더러운 곳을 닦아주시는 걸레로 오셨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말구유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치료하시고, 마음의 죄를 안고 살아가는 삭개오 같은 이를 품어주신 주님은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기 위해 걸레의 일을 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더럽고 형편없는 우리를 닦는 ‘걸레 예수’(김영동 목사님의 표현처럼)로 사시다가 영원하신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마땅히 ‘걸레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걸레와 같이 자기 자신을 닦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닦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려하지만, 우리가 별이 아니라 별을 닦는 걸레의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누군가의 별이 아니라 그를 위한 걸레가 된다는 것, 그것이 거듭남이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거룩한 일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닦는 행위입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닦아내는 일, 그것이 신앙이요, 가장 거룩한 종교행위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닦을까요. 시인은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로 닦아낸다고 했습니다.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시인이 정제하여 만들어낸 시어(詩語)들이겠지요. 우리는 매일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숨결이신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닦아내야 합니다. 시인의 마음으로 닦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아름답고 영롱하신 그 분이 우리 안에 오실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 자리
언제나 비어 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자리입니다.

마음의 창을 닦고 닦아 내 생각과 욕심이 들어 올 자리가 없는 빈자리이지만, 언제나 주님으로, 말씀으로 꽉 차 있는 빛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우리 마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여러분 안에 있는 그 마음 말입니다.

시인 곽재구는 전남 광주에서 출생하여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시집으로는 <사평리역에서>, <한국의 여인들>,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산> 등이 있으며, 동화로는 <아기 참새 찌꾸>가 있다.
채희동 (2001-03-30 오후 5: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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