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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기도원을「수도원」으로 바꾸자

수도관상피정 김양환............... 조회 수 3322 추천 수 0 2003.04.18 07: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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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1.[지성유일] 사상 (IQ 와 EQ)문제

1) 95년 이전 100년을 IQ왕국시대라고 한다.(한국에서도 96년 12월을 전후해서 각종 신문에 IQ왕국이이라는 용어가 종종 등장하고 있었다)
① 1996. 12. 3 중앙일보에 IQ왕국이 흔들린다는 기사가 있었다. [ IQ왕국]이란 [지성 유일사상]을 신신봉한다. - 이 말은 인간의 발전, 성공 그리고 행복의 열쇠는 오직 IQ개발에 있다는 학설이다.
신< IQ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
② 이 IQ왕국의 산물이 인류대학병 이다. - 일류대학을 나오야 인생의 성공과 행복이 보장되는 것으으로 믿고 있다. (또 100년간 IQ높은 사람이 출세하는 시대였음을 경험하고 있다.)
③ 또 IQ왕국사상에서는, IQ(지성)개발이 EQ를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즉, 지성이 개발되면 자동적으으로 감성도 개발된다는 착각이다.

2) EQ(감성지수)새 학설 등장
으1995년 IQ왕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등장한 새로운 EQ학설이 나타났다. 이것이 Daniel 으으으Golemen 박사가 편집한 감성지능(EQ)이라는 책이다.
핵핵심주장은 IQ(지능)가 인간의 발전, 성공, 그리고 행복에 미치는 기여도는 20%에 불과하고, 으으80%는 EQ적 요소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새로운 혁명적 학설이다. (두권으로 된 으으이 책이 미국에서 첫달(한달)에 50만부가 팔렸다)
클클린턴 대통령이 도울 후보에게 압승한 원인은 클린턴의 감성지수가 도울 보다 월등하게 높았기 으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도자는 감성지수가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3) 문제가 되는 것은 - 우리에게 IQ왕국사상(지성유일사상)이 한국 기독교운동에 그대로 적용되고 으있다는 것이다. 교회활동 Program의 거의 전부가 종교적 지성계발에 치중하고 있다는것이다. 으신학교나 교회 프로그램에는 감성(가슴)과 영성(마음)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그래으서 가슴과 마음의 종교화(전인종교화)이 기회가 박탈되고 있는 것이다.

4) 성경에 있는 EQ사상
이몇 천년 전에 지성(입술)보다 감성(마음)이 우월하고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 함. - 이 성경은 EQ이학설 개발을 가능케 했다. 즉, 이런 성경(고전적 진리)가 있었기에 IQ와 EQ에 대한 연구를 계속이케 했다.
이마15:8(사29:13) -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겔33:31 -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 욕을 좇음이라"
이렘12:2 -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라"
이이상의 성경은 입술(IQ)의 종교와 마음(EQ적)의 종교가 존재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그 당시에는 이지성적 기능과 감성적 기능이 별개 기능이라는 점을 학문적(심리학)으로 모르고 있을 때 인데도 이입술(지성적)과 마음(감성적)의 기능을 구분했다는 것은 선각자적인 예지가 있었다. 엄청난 역이사적 뜻이 있다. *
이[마음의 종교]란 주님의 마음을 소유하고 느끼는 삶의 종교다. 이것은 주님이 사상과 감정을 소이유하고 체험한다는 뜻이다. 체험한다는 것은 내 삶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 반대이로 [입술의 종교]는 머리(지성)로 이해하고 기억만 하면 완성되기 때문에 가슴과 마음으로 느끼이고 체험하며 내 삶의 한 부분이 되게 하는 노력과 수고를 생략할 수 있이기에 간편하고 편리하이이다. 그래서 입술의 종교를 선호하게 된다. 한국 기독교는 입술의 종교나? 마음의 종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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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학의 미비점(문제점)  

2. 기도학의 미비점(문제점)

- 기독교 전통의 기도학은 세 가지가 있다. 구송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이주로 구송기도에 전념한다.

1) 구송기도 - 구송기도에는 청원, 감사, 회계와 속죄, 중보기도 등이 있다. 이것은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다. 주로 소리의 기도다.

2) 묵상과 관상기도 - 침묵속에서 하나님의 소리와 뜻 그리고 생각을 듣는 기도요,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가는 기도다(성격에 계시된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감)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다. 대화란 하나님의 임재를 전제하고 하나님의 감정과 내 감정의 교환을 가능케 한다는 뜻이다.

3) 묵상과 관상기도는 내 생각이나 내 뜻을 구체적으로 인식 정리해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생각과 이뜻을 찾아 맞추는 내면적 노력이다.
이그런데 개신교회의 기도운동은 하나님의 생각이나 뜻, 그리고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섭리를 이망각하거나 무시하고, 인간자신의 생각과 뜻을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경우가 허다하다.

* 참 기도는 하나님의 의도나 생각을 수정해서 내 뜻이 완성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과 생각을 이수정정리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내면적 개혁을 뜻한다. 그래서, 묵상기도(관상)는 하나님의 이구체적인 생각과 뜻을 찾아내서 내 생각과 뜻을 수정하고 개혁하게 해 준다. (하나님은 내 마음이으로 찾아오신다.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고전3:16-17, 6:19, 고후6:16, 엡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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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법<접근법>의 문제점  
3. 성경연구법<접근법>의 문제점

한국교회 성경연구는 열정적이요 결사적이다. 또 중요시한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되어 있다. 깊은 반성을 촉구한다.
전통적인 성경연구법에는 제11, 제2, 제3 연구법이 있다.
제1 연구법은 지성적 접근법이고, 제2 연구법은 감성적 접근법이며, 제3 연구법은 영성적 접근법이다. 그런데 개신교 신학교에서는 (교회에서도) 제2, 제3 연구법은 저버리고 제1 연구법인 지성적 접근법만 고집한다.
종교개혁자들이 Catholic의 모든 나쁜점을 철저하게 내버린 것은 대단히 자랑스러운 행동이었으나, 전통적으로 우수한 좋은 부분까지 철저하게 내 버렸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그 중하나가 성경묵상법이다. 성경묵상은 제2<감성적 접근>와 제3<영성적접근>연구법을 포함한다.

그러면 성경묵상법은 무었인가?
1) 성경을 몸으로 읽게 한다. 성경을 눈(머리)으로만 읽지 않고, 가슴과 마음으로 읽는 습관을 가지이게 한다. 그래서 제2, 제3 연구법을 가능케 한다.

2) 성경 묵상법은 옥토의 마음발 개발에 역점을 둔다. 왜 그런가? 영성적 사건(열매)는 옥토에서만 이발생하기 때문이다.
-성경+마음+성령=영성적 사건(열매) - 이 공식에 주목하라.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모든 영성적 사건(신앙적 열매)은 전부 이평범한 공식에 의한 작품이다. 이 공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이다. 성경과 성령의 존재와 활동은 영원 불변이나 인간의 [마음]은 [변화무상]하다. 그리고 또 마음이 [옥토]가 되는 것이 필수 조건이다.

3) 성경묵상은 하나님의 임재인식을 가능케 하고, 하나님의 감정과 내 감정의 교환을 가능케 함으이로 하나님과의 참 대화를 가능케 한다.

4) 성경묵상은 객관적인 진리(성경)가 주관적인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하나님의 육성)이 되게 이한다. (현재적 하나님의 소리)

5) 성경묵상은 성경으로 기도하는 일종의 기도운동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일회적이고 유일한 계시이다. 성경 외에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완벽하게 계시된 내용은 이 세상에 존재치 않는다. 그러기이에 성경으로, 기도를 통해 성경 속의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찾아내는 내면적 탐험(묵상기도)이 이필요하다. 또한, 글자 배후에는 많은 마음의 소리가 있다. (한 예로, 엄마가 어린 딸에게 "학교 잘 이갔다 오라"고 할 때 그 속에서 많은 마음의 소리가 있다. 이 말속에는 차 조심하라, 선생님 말씀 이잘 들어라, 공부시간에 장남치지 마라, 친구와 다투지 마라, 나쁜 말 하지 마라, 낯선 사람 조심 이하라, 엄마 사랑 잊지 마라 등 수십가지가 있다.) 성경에 있는 말씀도 동일하게 그 배후에 숨어있이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가 한 단어에 수십가지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성경묵상기도를 통해 찾이아내는 것이다. (성경묵상에서 성경과 마음의 만남이 필요하다. 이 만남의 증거는 마음에 감동이 이발생한다. 이 감동은 동시적으로 성령의 협조가 이루어 지고 영성적 사건화가 이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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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체험적 신앙의 문제점  
4. 체험적 신앙의 문제점

삶은 체험이다. - 이것은 심리학자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서 체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 그러기에 종교적인 삶에서도 종교적인 삶에서도 종교적인 체험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종교적 체험에 대해서 식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 왜 그런가? - 체험적 신앙이 남용,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체험적 신앙에는 두 가지로 구분한다. 개인적 체험과 성경적 체험이다. (전통적인 신학적 체험)

1) 개인적인 체험 :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적 체험과 신학적 체험을 구분하지 못함에서 이발생한다. 개인적 체험의 문제성은 두가지가 있다.

① 개인적 체험은 불완전한 체험이다. 그런고로 신앙운동의 모델이 될 수 없다. - 신앙발전에 유익이한 역할을 한다. - 그러나 모델화는 안된다.

② 개인적 신비 체험은 이방 종교에도 존재한다. 그러기에 진짜, 가짜를 구분하기 힘이 든다 (한국이에서 개인적 체험자들이 이것이 유일한 참 신앙적 체험 이라고 강조하고, 권장[성령체험, 신유, 이방언, 예언등)모델화하는 잘못있다.)

2) 성경적 체험 : 이것은 전통적인 신학적 체험이다. 이것도 두가지로 구분한다.

① 특수 체험이다
- 성경에는 모세, 이사야, 예레미아 그리고 사도 바울 같이 주님의 그림자를 직접 목격하거나 주님이의 음성을 듣는 경우가 있다. - 이런 것을 특수 체험으로 구분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필요성에 의이한 하나님의 특권행사다

② 일반적 체험이다.
- 이것은 필요한 체험이요 요구되는 체험이다. 성경이 권장하는 체험이다. 이것은 누구나 많은 사람이 접근하고 친근감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기독교 신앙운동은 대중화와 보편성이 가능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은 일반적 체험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신앙운동가들이 권장하는 체험은 일반적 체험이 아니고, 모세나 예레미아가 체험한 특수체험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체험적 신앙에 대한 혼란과 식상이다.

a) 중생체험이다.
- 중생에 대한 신학적 필요성은 보급되어있다. 그러나 중생 프로그램은 심령부흥회가 전부다. 신학교 Progrm에도 없다 그 반대로, 모든 교인들(교역자포함)은 중생의 체험이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산과 기도원에 가서 무질서 체험을 시도한다. (중생과 관계 있는 대표적 성경:)

*행 9:1-18 - 바울이 중생체험(사울이 바울이 됨)기사는 대표적 내용이다.
17-18 -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이것을 영적 눈 뜨임 혹은 영적 각성이라고 한다. - 중생은 마음의 눈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혹자는 마음의 껍질이 깨져야 한다는 말로 표시한다. 이 중생 체험은 존재론적 변화를 동반한다. (삶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을 박해하던 사울이 동역자 바울로 변화한다는 뜻이다.

b) 정화 체험이다. - 이것은 중생체험과 유기적 관계가 있다.

*마 5:8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이것은 (마13:1-23)옥토의 이이이이마음 밭을 뜻한다. 그래서 영성수련에서 중요시하는 Program중 하나가 마음밭 개간 프로이이이이그램이다.
*입술의 치유 사건이다. (삶의 기초는 입술과 감정이다.)
사6:5-8, 렘1:6-9 -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소명직전에 입술의 정화치유를 받았다는 내요이다.
- 이것은 하나님 사업과 입술의 개조작업의 필수성을 강조한다. 정화란 언어와 감정의 정화를 뜻합이니다.

c) 영성적 체험 (참 성령체험, - 하나님체험)
* 조명의 단계가 있다. - 이것은 직감, 영감, 마음의 깨우침을 통해 하나님의 숨은 비밀을 인식하이이고, 깨우치고, 체험케 된다 (마음의 소리 식별력에 의존)
* 영적체험의 기본은 하나님 임재 인식 체험이다. 창2:7 하나님의 기운=생명의 원천요소 인식, 체이험이다. <욥27:_x0033__x002c_ 32:_x0038__x002c_ _xd558__xb098__xb2d8_ _xae30__xc6b4_ _xc6b4__xc6a9_>롬8:9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영에 있나니, 그리스도이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즉, 하나님의 내주성 인식(체험) - 하나님체험 현존이체험 등은 임재인식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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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종교와 감성문제  
5. 예수님의 종교와 감성문제

예수님의 사상과 교훈에서 감성문제는 절대적이고 필수적이다. 이것을 떠나서 예수님의 종교를 이해할 수 없다. 엄청나게 중요하다. 한국 교회는 감정(감성적 요소)에 대해 깊이 연구할 수 있는 때가 오기 전에 감정적 신상에 먼저 식상했다. - 그래서 더욱 무관심해졌다.

1) 예수님의 산상보훈 8복 강의에서 ①심령이 가난한자. ②애통하는자. ③온유한자. ④의에 주린다. ⑤긍휼히 여기는 자. ⑥마음이 청결한 자. ⑦화평케 하는 자 ⑧핍박을 견디는 자 - 등은 전부다. 감성적 용어다. (감정의 색깔에 관한 내용이다. )이것은 주님의 감정이요 천국적인 감정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 일차적이요 기본적인 사상교육에서 이상적인 감정색깔을 제시한다. 당신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천국적인 감정색깔을 소유해야 된다는 것이다. 감정색깔은 인식이 아니고 느끼고, 소유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내 생명의 한 부분이다.

2)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갈 5:22-23)를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9가지 열매를 제시한다. 이 성령의 9가지 열매도 감성적 색깔이다. 즉, 성령의 은사가 있다는것은 감성적 색깔을 통해서 식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3) 또 하나님 소유 여부도 감정 색깔을 통해서 식별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체험이나 하나님이 그와 이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는?

요일4:12 "어느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 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안에 거하시고" 이 성경은 하나님의 내주성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의 감정 유무와 직결된다는 주장이다.
또 마5:8 - 하나님 체험(봄)은 청결한 감정에서 만 가능함을 강조한다.
이 성경들은 색깔의 신비성과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처럼 인간의 감성적인 색깔과 예수님의 종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4) 악성감정의 악마성을 가장 강하게 주장한 사람도 예수님 이시다.
이마5:21-26 이 대표적 내용이다. (살인자 강의)에서 - "형제에게 노하는자, 라가(바보)라 하는자, 이미련한 놈이라 하는자는 지옥불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이이라" 주님의 명령이다. 이것은 예배자, 기도자(예물드리는 자)의 기본적 자격을 구분함이다. 너무 이심할 정도로 예수님의 주장(명령)은 분명하다. 이것은 해석의 여지가 없다.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에 대한 이유를 허락치 않는다. 아주 철저하다.
이왜 그렇게까지 철저한가? (이 미움과 분노를 인간의 결함 또는 유한성 탓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이이 강하다. 근본적 착각이다.)
이미움과 분노는 사탄의 대표적 속서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대표적 속성은 사랑이다. 사랑의 이반대가 무었인가? 미움이다. 개신교 신학에서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것이 예수님이의 미움과 분노의 악마성(사탄의 속성)을 가볍게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또, 사도 요한의 주장을 참고해야 한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상식적 진리라는 것)
이미움과 분노가 사탄의 대표적 속성이다. 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 사탄의 모든 작전과 전이술은 미움의 감정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운동은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이렇게 예수님의 종교에서 감정 문제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는 그리이스도교 감성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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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감정관<종교적 감정관>  
6. 기독교 감정관<종교적 감정관>

- 감정에 대한 개념에는 세속적 감정관과 종교적 감정관으로 구분한다.

1) 세속적 감정관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라는 상식에 바탕을 두고, 감정은 생명체의 본능적 요소라는 점에 강조점을 둔다. 그러기에 감정표현은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억압이나 구속은 부당하다. 가령 분노가 폭발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부정적인 감정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악성감정의 악마성은 부정한다. 특히 개신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 감정관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란노에서 출판한 「분노」(손 안에 책)에서

(1) 거의 다 (11명 저자) 세속적 감정관을 수용하고 있고,
(2) 악성감정(분노)의 악마성을 인정치 않는다.
(3) 하나님의 분노와 사람의 분노에 대한 엄격한 구분이 없다. <분노는 하나다.>

2) 기독교 감정관

(1) 감정에는 하나님의 감정(선한 감정)과 악마의 감정(악성감정)이 존재한다.
(2) 감정 색깔을 통해서 천국 백성과 지옥 백성을 구분한다.
(3) 분노에는 하나님의 분노, 의로운 분노(의분), 인간적 분노로 구분한다. (분노에는 차원이 다른 이세가지로 구분해야 한다.)

3) 분노에 대한 개념

(1) 하나님의 분노가 있다. 하나님의 분노는 인간적 분노와 본질적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진노와 이심판은 일종의 사랑의 파도다. 하나님에게는 악성감정이 없다. 하나님의 분노는 인간의 분노와 이그 차원이 다르다. 그 원천이 다르다.(사랑에 근거함) 하나님의 분노, 이 분노는 사랑의 진동이요 이사랑의 함성이다. 사랑의 또 다른 언어다.

(2) 인간적 의분. 이것은 원천적으로 선한 분노다. 이것은 정의감이나 선한 감정에 기초한다. 이것이은 악성 감정화 이전까지 선한 분노다. 그러나 인간적 의분도 하나님의 분노와 엄격하게 구분한이다. 또 의분은 악성감정으로 변질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강하다.

(3) 인간적 분노. 이것은 철저히 악한 것이다. 미움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적 분노에는 이두가지로 구분한다.
- 잠재적 분노다 :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탄에게 이용 이전의 분노다. 그러나 악한 것이요 사탄편에 이이이이이이이이속한 감정이다.
- 폭발적 분노다 : 이것은 철저히 사탄에게 이용당한 감정이다.
이이이이이이이이현대 심리학에서도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천이 분노임을 강조한다. Willoams박이이이이이이이이사 부부저<분노가 죽인다.>Dr. Carter등의 분노등이 유명한 책이다.

4) 엡 4:26-27 해석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을 이용해서 분노가 인간의 유한성의 산물임을 입증하려고 하고 또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 하는 성경으로 활용한다. 이 성경은 해석의 문제가 크다.

(잘못된 해석)

a) 범죄성 분노만 문제가 된다.
b) (범죄와 직결되는 분노만 악한 것이다.)하루 정도의 분노는 허락된다.
c) 마귀(사탄)에게 틈을 주는 분노만 나쁘다.

(바른해석)

a) 첫 머리의 분은 잠재적 분노르 뜻하면 이것도 범죄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b) "해가 지도록"은 잠재적 분노도 오래가지지 말라는 뜻이다.
c) 분노는 사탄에 속해 있다.

<결론>목사도 인간이기에 인간적인 한계성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목사는 미움과 분노의 함정에서만은 해방을 받아야 한다. 왜 그런가? 미움과 분노는 사탄의 대표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사탄의 종은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다는 상식에 주목해야 한다. (승리의 삶 위해 두신호 인식할 것 ①마음에 상처가 생길 때 이것은 사탄의 작적개시 신호다. ②내 눈앞에 보기싫다는 느낌이 올 때 이것도 사탄의 작전개시 신호다. 즉각적 대첵을 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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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학습한다.  
7.  감정을 학습한다.

감정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종교계에서까지 「세속적인 감정관」을 수용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기독교적인 고유한 감정관을 가지고 있다 .  이 기독교 감정관은 세속적인(통상적인) 감정관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세속적인 감정관」과 「종교적인 감정관」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성경적)감정관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현대 EQ심리학이 학문적으로 입증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동안 심리학은 상당부분이 「무신론」적이요 반 기독교적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심리학자 중에는 상당수의 무신론자가 존재한다.) 감정에 관한 이론은 성경적 주장에 결과적으로 동의하고 예수님의 주장을 입증해 주는 부분이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는 점에 필자도 감탄하고 있다.

   「분노(미움)가 죽인다, 분노는 독약이다. 행복한 삶의 적은 분노(미움)이다 」이것이 EQ심리학의 대표적인 말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미움(분노)의 악마성」을 전적으로 동의 찬성하는 내용이다. 말과 감정은 인간의 삶의 기초다.

인간 지능(IQ)이 학습을 통해서 계발되고 성숙해 지는 것과 같이 언어와 감정도 학습을 통해 발전되고 성숙해 진다.

학습은 신앙적 수련도 포함된다. 학습은 「체험의 반복이다. 지식(IQ)의 세계와 그 내용도 꾸준한 학습을 통한 인식과 체험의 반복으로 내지식이 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언어와 감정도 반복되는 학습을 통해서 내것(내소유)이 될 수 있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들이 사용되고 있는 언어와 감정에는 두 종류가 있어서 둘 중「하나 」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특권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참과 거짓, 악과 선, 행복과 불행이 상존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 배후에는 두 개의 「초월적 존재자」가 있다. 그것이 하나님과 사탄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천국적인 행복한 삶의 배후세력이요, 사탄은 삶을 지옥적인 것이 되게 하는 배후세력이다. 이것은  김모 목사가 주장하는 「귀신론」과는 다르다 필자는 사람이 감기만 걸려도 「귀신의 작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탄의 주임무는 「지옥적 자식」이 되게 함에 있다.




성경에는 하니님의 속성과 사탄의 속성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예수님은 살인죄 강의에서 「미움의 감정」을 살인죄와 동등한 사탄의 작용임을 강조하신다.(마5:21-26) 이곳에서 「미움(분노)의 감정」의 악마성을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말씀하신다.

사도 요한도 동일한 주장을 하신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5)고 강조한다. 미움은 살인이요 지옥적 무기다. 사탄의 지옥운동은 「미움의 감정」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운동이 「사랑」에 기초하고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이 사탄의 운동은 [미움]에 기초하며 미움에서 출발한다. 미움은 사탄의 속성이다. 이 미움의 감정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의 「유한성」이나「불완전성」혹은 「원죄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탄의 작용이다.


EQ 심리학에서 이 세상에서 인간의 삶을 지옥적인 것이 되게 하는 주원인이 「감정지수의 낮음」에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감정지수가 낮다는 것은 감정관리능력이 약하다는 뜻이다. 관리능력이 약하다는 것은 감정들의 구분능력도 약하고, 조절력도 약하고 감정 이입 능력도 약하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심리학의 주 연구 대상은 「분노학」이다. 인간 삶을 불행한 세계로 이끌어 주는 주원인이「분노의 감정」이라고 단정한다. 분노(미움)의 악마성(불행케하는 원인)은 EQ심리학에서도 동의한다.

심리학에서 분노학에 대한 연구와 통계는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분노(미움)의 감정이 인간 역사 속에서 인간들을 「지옥적 삶」으로 이끌고 있는 사건 사설을  통해 분노(미움)의 악마성을 입증한다. 그러나 심리학은 지옥적 삶의 배후에 사탄이 존재함을 인식할 수 없다. 심리학은 초월적 실존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교학의 연구 대상이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필자의 책「성경적 EQ의 신바람 행복 찾기」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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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도원을「수도원」으로 바꾸자

수도원은 초창기 기독교의 전통적인 「기도학의 학습장」이였다. 이것을 「천주교 기도원」으로 인식함은 잘못이다. 역사적으로 수도원 운동의 잘못된 부분 때문에 영성신학적인 아름답고 풍요로운 기도학의 근원지로써의 순수한 「수도원」철학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중세기초 수도원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기도학」의 산실이었다. 이러한 참 기도학의 산실인 중세기초 수도원을 복원해야 한다. 이것은 「기도원」을 「수도원」으로 바꾸는 운동이다. 그래서 「참 기도운동」이 정착해야 우리교회가 살 수 있다.


우리 개신교에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기도원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도원이 잘 안 된다고 한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기도원]은 순수한 「기도학」의 학습장이요 수련장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기존 기도원이 개신교 「기도학」의 산실이 되고 있는가? 깊은 반성이 요구된다. 개신교 기도원의 인상은 「난치병 치유장」,「불 받은 장소」등 주로 외형적이며 육 적인 과제에 관심이 강했다. 기도학의 본체는 내면적이며 영적인 과제에 몰두 해야하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성」에서 신앙적인 깨우침과 성경적 체험을 유발해야 한다. 병고침이나 뜨거워짐이나 신비한 체험등은 기도의 「부수적 결과」에 속한다. 이것이 기도의 주 목적물(본체)이 아니라는 뜻이다. 참 기도원(수도원)은 기도학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 전통적 기도학에서 개신교 기도학은 상당부분 이탈되어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전통적 기도학은 개신교에서 말하는 기도학의 내용과는 상당부분 다르다. 이점을 숙지해야 한다.

전통적 기독교 기도학은 다음과 같다. 기도에는 세 종류로 구분한다. 이것을 「기도의 3단계」라고도 한다.

1) 그 첫째가 「구송기도」(vocal prayer)다
이것은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바치는 기도다. 그래서 이 기도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일방적인 드림」이 된다. 그러나 구송기도에도 다양한 내용이 있다.   청원(소원)기도   찬양과 감사기도   회계와 고백기도   중보기도 등이 있다. 이것을 「마음의 소리」로 드린다고 해서 「묵상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글로 쓰는 기도도 사람 편에서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구송기도에 속한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기도학은 대부분 구송기도에 속한다. 이 말은 개신교의 기도 운동은 「구송기도」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개신교 기도운동의 「불완전성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2) 두 번째가 「묵상기도」(meditation)다.
묵상기도는 소리 없는 기도라는 뜻이 아니다. 묵상기도는 「침묵의 철학」에 기초한 명상적 기도다. 침묵의 철학에는 5종의 침묵이 존재한다. 다섯 가지 침묵은 다음과 같다.  말의 침묵이다.   표시의 침묵 즉 동작의 침묵이다. 사람은 많은 감정이나 생각을 「표시」을 통해서 전달한다.   내적 침묵 혹은 감정의 침묵이 있다.   욕망의 침묵과   상상력의 침묵은 주로 부정적인 욕망과 상상력의 침묵을 뜻한다. 왜냐하면  선한(신앙적)욕망과 상상력은 적극 활성화해야 되기 때문이다. 묵상기도자는 이 5종의 침묵(사상)에 숙달되어 있어야 참 묵상기도가 가능해 진다. 그래서 학습과 수련의 필요성이 등장하는 것이다. 개신교 교역자(지도자)들이 숙달하기 힘이 드는 부분이 바로 침묵의 체질화이다. 이것이 힘이 든다. 이 침묵의 체질화가 안되면 바람직한 「영성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묵상기도 수련은 침묵의 수련이다. 영성적 기도와 침묵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존 개신교 기도원 운동이 범하고(기독학에) 있는 잘못 중의 하나가 기도원에는 「침묵의 학습」과 수련이 없다는 점이다. 현존 기도원 운동을 통해서는 「침묵의 수련」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제도와 시설」을 개선해야만 가능하다. 현대 사람(평신도)들이 찾아가고 싶은 곳이 수도원적 제도와 시설이다. 그 한 예로 한국 천주교의 수많은 수도원 시설들이 몇 달 전에 신청해야 사용이 가능한 실정에서 예상할 수 잇다.


묵상기도의 특색은 사람 편에서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찾아가서 「듣는 기도」다. 특히 「성경묵상기도」프로그램은 성경의 글자가 「하나님의 육성」이 되게 하는 특색이 있다. 이때 인간의 마음이 정화(청결한 마음)되면 하나님의 말씀(성경)과의 「만남」의 사건이 발생하고 성령의 협조(역사)를 통해 영성적(신앙적)사건화가 이룩된다. 그래서 필자는 두 번째 책 「하나님 체험의 길잡이」제1장에서 「성경+마음+성령=영성적 사건」이라는 공식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역사 속에 나타난 모든 신앙적 사건은 이 공식에 의해서 발생한 사건들이다. 말씀과 성령의 구체화(동력화)는 사람의 정화된 마음과 합작작용을 통해서 역사 속에 등장한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태 5장의 산상보훈 8복강의 내용도(심령의 간난, 온유한 자등) 사람의 마음(감정)이 문제요, 13장 「씨뿌리는 비유」도 마음의 문제를 중요시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개신교 신학교육은 이 「마음 가꾸기」에 소극적이다. 이것은 개선해야 되는 중요한 신학적 과제 중의 하나다.

3) 세 번째가 「관상기도」(contemplation)다.
이것을 「신비적 묵상기도」혹은 「합일의 기도」라고도 한다. 예수님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마7:7)는 기도의 방법을 제시한다. 구하는 기도가 구송기도요, 찾는 기도가 묵상기도이며,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기도」가 관상기도다. 그래서 관상기도는 찾아가는 정도를 넘어서 하나님 계신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뜻한다. 어떤 영성 신학자는 관상은 「간난 아기가 엄마 품에서 얼마 얼굴을 바라보는 눈빛」이라고 언급했다. 아기의 눈빛 속에는 순수하고 참사랑의 전부가 담겨져 있다. 관상기도와 묵상기도가 다른 점은 묵상은 「사유의 작용」이 가능하지만 관상기도는 「사유의 작용」이 배제된 「하나님의 실존」한 점에 내 존재(인간)전체가 총 집중된 정신통일 상태를 뜻한다. 이때의 내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된다고 해서 「합일의 기도」라고도 한다.
성경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고하신 것이 바로 관상기도의 상태를 뜻한다. 말씀과 성령의 존재성이나 활동성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변함이 없으시다. 그런데 왜 때와 장소에 따라서 활성화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사람의 「마음 상태」탓이다. 마음 밭이 「옥토」가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 사건(열매)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영성수련(기도 운동)은 사람의 마음 밭을「옥토」가 되게 하는 운동이다. 이것이 수도원 운동의 핵심 철학이다. 「기도원을 수도원으로 바꾸자」는 것은 기도원의 「환경, 시설, 제도, 그리고 프로그램」등 전체가 「마음 밭을 옥토」가 되게 하는 영성 수련장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론

기존 기도원을 수도원으로 개조하는 구체적인(실질적인)방법을 몇 개로 간편하게 설명하련다.


1) 첫째는 「대형화에서 탈피하자」는 것이다.
인간의 변화 특히 마음의 변화는 「개인적 프로그램」에 속한다. 교육이나 인식 프로그램은 대형화가 그런대로 가능하다. 사실은 교육도 선진교육은 「소 그룹화」되어가고 있다. 마음 밭 계발은 철저하게 개인적 과제에 속한다. 그러기 때문에 영성수련 인원은 30명 이하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기존 대형 기도원은 이것을 몇 개의 「독립 시설」로 개편 수용토록 하는 것이 좋다. 독립시설이란 숙소와 강의실 등이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2) 두 번째는 「독방시설」이다.
독방은 숙소 겸 학습장과 기도실이 된다. 독방은 개인적인 영성형성과 계발에 필수적이다. 특히 영성신학에서 말하는 영성적 고독(solitude)의 체험은 독방수용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을 형성함에 있어서도 독방이 필요하다. 물론 기도에 익숙해지면 군중 속에서도 「하나님과 나만의 장소」가 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련생에게는 독방 수련이 요청된다.

3) 수도원적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영성신학적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영성신학(spirituality)의 산실은 수도원이다. 그러기에 영성신학은 수도원 신학이다. 중세기초 이전의 수도원 운동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영성수련 운동에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한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영성」의 개념은 혼탁하다. 물론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영성신학의 한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고대 수도원의 대표적인 특색인 「침묵수련」과 「관상기도수련」그리고 「성경묵상수련」의 철학과 정신이 빠지면 영성신학적 영성수련이 아니다. 수도원 철학의 핵심은 「침묵수련, 관상기도수련, 그리고 성경묵상수련」이다. 이 3요소중에서 하나라도 선택하면 「영성수련」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이 3요소와 거리가 먼 하나의 「영적수련」이라고 해서 「영성수련」이란 용어를 사용함은 격에 맞지 않는다.


4)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본원은 기도원 개조작업이 이루어진 곳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강사를 파견할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 자체 집행이 가능할 때까지 프로그램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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