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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성전 뜰 앞에 좌판을 벌려 놓은 한국교회

北山편지채희동 채희동............... 조회 수 3311 추천 수 0 2003.03.21 10: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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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회의 시장화, 시장의 성화


내가 처음으로 목회를 시작한 교회는 신림동에 있는 한생명교회이다. 한생명교회가 처음 신대방길에서 신림사거리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가 4년 뒤에 신림4동 시장 입구로 옮겨온 적이 있다. 교회가 도로변에 있을 때에는 차 소리, 전철 소리 때문에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때면 마음 가득 먼지 낀 것처럼 편치 않았다. 그래도 아득히 보이는 관악산 자락이 시끄럽기만 한 도시의 삶을 위로해 주어 견딜만 했다.

  
시장골목에 들어선 교회

도로변 한생명교회에서 그래도 햇수로 4년을 지내왔으니 정이 들대로 들었다. 19평 짜리 자그만 교회 건물 안에서 예배도 드리고, 성경공부도 하고, 단소도 배우고, 잠도 자고, 밥도 해 먹고, 공부도 하고, 이런 저런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도 많았다. 둥근 달을 보며 하나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실까. 잠 못 이루고 눈물짓는 가엾은 나 같은 놈도 가끔은 생각해 주실까? 아니면 큰 교회 문제로 나 같은 새끼 목사는 안중에 없으신 것은 아닐까?
  
무섭게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에 귀 막고, 몸을 웅크리며 두려움에 떨기도 했으며, 추운 겨울 전기 장판에 담요를 두 세 장씩 덮고 잠을 자도 입안에서는 하얀 김이 달빛에 먼지처럼 비춰지는 모습에 괜한 눈물이 고이곤 했다.
  
때론 예배의 처소요, 편안한 안식처요, 때론 나를 가두어 두는 감옥이요, 철망이기도 했던 도로변 교회. 지난 세월 동안 나와 한생명교회 식구들을 돌보아 주었던 교회건물에서 이제 신림4동 시장 입구로 교회 건물을 옮겨왔다. 지상이 아닌 땅 아래 지하실로 말이다.
  
이사와서 지난 몇 개월 동안은 '습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싸워야 했다. 양수기와 통풍기를 24시간 가동을 하고, '물먹는 하마'를 구석구석 배치해도 지난 장마철에는 교회 건물 안에 있던 책들에서 푸른 곰팡이꽃이 피어나고, 벽에 걸린 시계, 책장, 커튼 등이 모두 곰팡이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명한 자태를 뽐내던 '蘭'들이 시들시들 잎을 비틀며 말라 가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햇볕과 관악산 정기를 받고 고운 잎으로 유혹하던 蘭들은 하나같이 칙칙한 지하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蘭들이 옛 모습을 찾아 일렬로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이 그저 대견스러울 뿐이다. 교회 안에서 날뛰던 습기도 잡고, 예쁜 커튼과 한지로 제단과 교회 내부를 장식하고 단장하니 교회가 예쁘고 깨끗해졌다.

지하 교회건물을 나와 시장 어귀에 서면 자동차 소리, 전철 소리 대신에 사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아줌마! 콩나물 좀 주세요."  "좀 더 주세요." "떨이예요." "이 자반은 얼마예요." "무우와 시금치, 그리고 당근 좀 주세요. 우리 애들이 내일 소풍가거든요." "아, 그래요. 그럼 이거 하나 더 드릴게요."

그러나 이런 소리들이 싫지는 않다. 가끔 그 소리들 중에 우리 어머니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우리 아버지, 누나, 그리고 이웃집 아주머니 목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아 좋다. 시장 골목을 거닐며 그들의 손을 잡아 보고 싶고 말도 걸어 보고 싶다. 그래서 시장 골목에 서면 괜히 마음이 어린 아이처럼 설렌다.  


한국교회, 시장화의 길

신림4동 시장은 '골목시장'이라고 한다. 마을 골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 상인들이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약 200미터 정도 거리에 형성된 시장은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커다란 시장이다. 나는 가끔 시장거리를 어슬렁 거닐어 본다. 사실은 교회에 올 때에는 교회 지하실에 있을 것보다 시장 구경을 나가는 시간이 더 많다. 집에서 해 먹을 찬거리를 사기도 하고, 과일이며 빵이며 꽃도 산다.

그리고 가끔은 시장에서 우리 교회를 바라본다. 시장에서 교회를 한참 동안 바라보노라면, '우리 교회도 이 시장 안에 있는 생선가게, 야채가게, 만두가게, 과일가게와 같이 하나의 가게가 아닌가? 교회가게? 예수가게? 축복가게?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생선가게 쯤에 이르러 갑자기 얼마 전 우리 교회에서 500미터 떨어진 이웃교회 전도사님의 한숨 섞인 넋두리가 생각이 났다.

"나 원 참! 2년 전, 우리 교회가 처음 들어 올 때에 이 골목에는 교회 하나 없더니만, 이제는 교회가 벌써 열 개나 들어섰어요, 열 개나. 이거 그만두든가 어쩌던가 해야지, 원!"

영락없이 우리 교회도 과일가게나, 야채가게, 생선가게와 다를 바 없는 시장의 가게인 모양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 어디에나 교회를 세워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유혹하는 가게! 천당이나 지옥, 축복이나 구원 등 상품을 진열해 놓고 좌판을 벌려 놓은 가게!

시장을 거닐며 우리 교회를 바라본다. 이렇다할 상품 하나 장만해 놓지 못해 아직 간판도 달지 못하고 있는 한생명교회! 어떻게 교회장사를 해야할까 고민만 하는 가엾은 가게! 여기 이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기발한 상품을 개발해 저들을 끌어 모아야 할텐데, 저들을 유혹할만한 화려하고 값비싼 물건들을 장만해 놓고 우리도 큰 교회들처럼 장사 한번 잘 해봐야할텐데, 화려한 전도지를 만들어 시장에 뿌리고, 전철 입구에 뿌리고, 큰 교회 앞에도 뿌려 저들에게 좋은 상품이 여기에 있노라 알려야 할텐데... 아직 붉은 네온의 십자가는커녕 교회 간판 하나 떳떳이 달지 못한 가엾은 우리 교회!
  
4층 건물을 가지고 있는 우리 동네 신림동의 어느 교회는 총동원주일을 맞이하여 인기 연예인 초청의 밤을 열더니, 그 다음 주에는 곧바로 '전도특공대'를 조직하여 시장 이곳 저곳을 누비며 교회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몇 달 뒤에 교인 증가했다고 장로들이 목사님 자동차를 새것으로 바꾸어 주고, 강원도 어느 곳에 땅을 사서 자기들만의 아늑한 기도원을 짓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직 우리는 이곳에 이사 온지 5개월이 지났어도 시장 사람들에게 '저 건물 밑에 교회가 새로 들어 왔습니다. 한번 오시지요."라고 말 한마디 못했다. 얼마 전에 고향에 내려가 고모부님을 뵌 적이 있다. 서울에서 고생하는 조카를 위로하실 모양으로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고모부님께서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얘야! 교회도 길목이 좋아야 한단다. 너무 상심할 필요 없단다.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비전이 있는 것은 교회사업이니까. 조금만 견디면 너도 자기 건물이 있는 큰 교회의 목사가 될 수 있을게다. 힘내거라."


성전 뜰 앞에 좌판을 벌려 놓은 한국교회

시장에서 바라본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장사하는 상점으로 보인다. 예수님 때에도 교회는 시장화 되었다. 성전 뜰 앞에 좌판을 벌려 놓고 비둘기며, 옷이며, 빵이며, 생선이며 내다 놓고 장사를 했다. 교회에서 하는 장사라는 것이 어찌 비둘기 같은 물건뿐이겠는가. 중세에는 천당이나 구원도 돈주고 살 수 있었다. 근대에 들어 와서는 산업혁명의 도움으로 교회는 축복이나 구원을 자본과 일치시켰으며, 자본주의가 주는 성장과 풍요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바꾸어 놓고 교회 앞 시장에 내어놓아 팔았다. 자본주의 세계관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쉽게 교회가 개발한 상품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본과 맞바꾸고, 교회는 그들이 낸 자본으로 지상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주님은 자본주의의 주님이 되었으며, 하나님 말씀은 자본주의의 논리로 설명되어져야 했으며, 그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말씀은 그들에게 불필요한 것이 되어 버렸다. 현대교회는 교인들에게 적당한 위안과 천국을 보장해 주고 그들에게서 받은 헌금으로 건물을 높이고 확장한다. 저들은 이미 교회 뜰뿐만 아니라 십자가가 있는 제단에까지 품질 좋은 상품들을 걸어 놓고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 내어놓은 것은 십자가요, 나눔이요, 버림이요, 비움이요, 겸손이지만, 저들이 내어놓은 상품은 채움이요, 독점이요, 안락이요, 풍요요, 독선이요, 오만이다.
  
현대교회는 이미 시장화 되었다. 현대교회의 장사꾼들은 교인들이 아니라 성직을 한다는 사람들이다. 아직 한국교회 성도들은 선량하며 순수한 신앙의 소유자이지만, 많은 경우 교회 지도자들은 장사꾼이요, 모리배요, 자본가들이다. 기발한 상품을 개발하여 교인들을 이용하여 예수와 구원을 내다 판다.
  
현대교회의 성직자라는 사람들은 수십평의 대형 아파트와 재벌 총수들이 타고 다니는 고급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자본이 주는 쾌감을 만끽한다. 양 없이는 목자도 없다. 목자는 양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목자라는 사람들은 오직 양은 목자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께서 화가 나셨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이 장사꾼들의 모략과 음모와 독점이 가득한 상점으로 전락한 것을 보시고, 주님의 눈에서는 불빛이 뿜어나고 두 주먹에는 분노의 힘이 솟아난다. 주님은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셔서 자신의 몸을 자본주의의 옷으로 갈아 입히고, 말씀을 왜곡시킨 저 장사꾼들을 몰아내기 위해 그들이 벌려 놓은 상품 진열대들을 모두 뒤엎으셨다. 시무언 이용도 목사는 시장화가 된 현대교회와 장사꾼이 된 현대교회 목사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예수는 죽이고 그 옷만 나누는 현대교회야! 예수의 피도 버리고 살도 버리고 그 형식만 의식만 취하고 양양자득하는 현대교회 무리여! 현대교인은 괴이한 예수를 요구하며 현대목사는 괴이한 예수를 전한다. 참 예수가 오시면 꼭 피살될 수밖에 없다. 참 예수는 저희들이 죽여버리고 말았구나. 그리고 저의 요구대로 마귀를 예수와 같이 가장하여 가지고 선전하는구나. 화있을진져 현대교회여! 저희의 요구하는 예수는 육의 예수, 부의 예수, 高의 예수였고, 예수의 예수는 영의 예수, 천의 예수, 貧의 예수, 비의 예수니라. 예수를 요구하느냐.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찾으라 사람의 예수, 너희가 만들어 세운 예수말고! 예수를 갖다가 너희 마음에 맞게 할 것이 아니라, 너를 갖다가 예수에게 맞게 하라. 신앙이나 사랑이란 내용은 하나도 없고 껍데기와 기관과 조직만 남아가지고서는 이것이 예수교회라고 전해서 남의 귀한 심령을 해하고 망치고 죽여 버리는 것이 현대교회가 아닙니까. 벽돌로 담을 쌓고 울긋불긋 장식을 해 놓은 것이 이것이 교회가 이니예요. 이 예배당을 다 불질러 버리고 잿더미 위에서라도 몸과 마음을 바쳐 참된 예배를 드려야 그것이 교회올시다."
  
이 말씀은 오늘 한국교회를 향해 외치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들리는 듯하다.


장바구니에 '예수'를 담고

내가 있어야할 교회, 우리가 섬기고 따라야할 주님을 모셔야할 교회는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인지 모른다. 어쩌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땀 흘려 살아가는 이 시장,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이 시장에 계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한생명교회는 이 건물이 아니라 시장사람들의 소리로 시끌벅적한 이 골목시장인지도 모른다. 교회에 앉아서 시장을 바라보노라면 교회는 이 건물이 아니라 저 시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의 신앙처럼 살아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교회 건물에서 느낄 수 없는 시장 골목의 따스함이 온몸에 스며들고, 사람들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따스한 기운과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 시장 한가운데에서 교회건물 안에서 보지 못했던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따스한 삶, 생명을 중요시하는 영성이 살아 있는 시장은 거룩하다. 나눔, 분배, 신뢰, 여유, 땀, 생명가치 등이 살아 있는 시장은 우리의 신명난 삶의 터전이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이 서로 생명가치로 관계를 맺고, 자연에서 사람으로 다시 사람에서 자연으로 순환하는 생명과정이 쉼 없이 되풀이  되는 시장은 거룩하다. 이 시장에서 하나님의 선량한 백성들은 장바구니에 생명을 담고, 예수를 담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생명을 나눈다. 시장의 성화는 곧 집의 성화를 가져오고, 사람의 성화를 이룬다.

골목시장 200미터
비단길 열렸다

콩나물 파는
할머니 손바닥에도
비단길 깔렸다

생선장수
용칠이 앞치마에는
비단무늬 간질엄 친다

장바구니 그득
너의 땀을 담고
나의 땀을 주마

골목길 아낙들
장바구니에
예수,
한줌씩 담아가는구나.
채희동 (2001-07-11 오전 9: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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