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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나는 미완성의 이콘

수도관상피정 최대형............... 조회 수 1529 추천 수 0 2003.06.09 15: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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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우리가 일생 그려가야 할 예수님의 다양한 모습(이콘).

나는 누구인가?
몇 년 전 나는 머리를 몇 번 삭발한 경험이 있다. 전에는 귀찮아서 피해 다닐 정도였던 광고지 나눠주는 사람들마저도, 삭발한 그 날은 오히려 나를 흘낏 한번 보고서는 건너뛰고 다음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은근히 서운했다. IMF 경제 사태가 지나갈 무렵 오랜만에 헬스클럽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절친했던 회원들은 빡빡이 내 모습을 보고서는 건성으로 인사를 한 뒤 나와 거리를 두고 운동을 했다. 짐작하건데 오랜만에 변한 모습으로 나타난 나를 당시에 흔하던 경제사범으로 여긴 것 같았다. 20여 년이 넘게 한 직장생활을 그만둔 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전에는 나를 소개하기 위해서 명함 한 장이면 간단히 되었던 것을 구차한 변명과 장황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문제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고민거리다. 나는 누구인가? 머리가 “나”인가, 나의 빡빡이 머리인가? 명함이 “나”인가, 명함을 가진 “나”인가? 우리는 지금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전도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로 인해 모두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 명문 대학, 좋은 직장, 명품 선호 심리 등의 이면에는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인생의 두 공식
영성은 인생을 두 개의 인생 공식으로 설명한다. 속도(Velocity)에 수량(Volume)를 곱하면 지침(Exaust)이 그 첫 번째 공식(V1×V2=E)이다. 현대 산업에서 품질관리의 모토는 “더 빨리, 더 좋게, 더 싸게”이다. 이것은 현대 문화의 소음이다. 이 소음은 “하나만 더 가지면 더 행복해질 텐데”, “그걸 가지지 못하면 세상에서 도태돼!”라고 속삭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헛된 일에 분요”(시 39:6)하며 재물을 모은다. 처음에는 사람이 재물을 취하지만, 그 다음 물질이 되레 사람을 취한다. 꿀에 빠진 개미처럼 물질에 집착한 인간은 그로 인해 영혼이 파멸된다. 현대 문명의 소음―영혼의 파멸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 인생은 지칠 뿐이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우선 멈추어야 한다(Stationary). 그리고 주목(Noticing)하면 깨달음(Awareness)이 온다. 이것이 두 번째 인생 공식 (S× N=A)이다. 현대인들에게 멈춤이란 낙오를 의미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 멈춤이란 인간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의 회귀다. 인간 위주의 삶에서 물러남이다. 영어로 물러남(retreat)과 피정(避靜)은 같다. 침묵과 함께 몸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자연에 깊이 들어가는 영성 훈련인 피정은, 성령의 바람을 맞아 돛을 펴는 것이다. 이는 피동적이 아니라 개방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개방적이라 함은 만물 안에, 그리고 우리 존재의 근저에 현존하시는 실재자의 현존을 주목함이다. 그럼으로써 나를 순간순간 깊은 심연의 구렁텅이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주목함으로써, 조성하시고 존재케 하시고 구원하시는 실재자를 알게 된다. 이제 우리는 무명(無明)의 세상에서 깨달음의 밝은 길로 들어서게 되며, 세상 문화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비로소 영혼의 안식과 존재의 근본적인 변화를 선물로 받게 된다.

미완성의 이콘
수십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결혼 초에 직장이 먼 관계로 퇴근이 늦는 나를 기다리면서 아내는 벽걸이 융단을 짰다. 그 그림은 개울이 흐르는 푸른 초장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는 사슴들의 문양이었다고 기억한다. 이 태피스트리(tapestry)는 가로 세로줄에 형형색색의 실을 패턴에 따라 짜면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된다.

영성적 삶을 내면과 밖을 향한 동시적인 여정이라고 했다. 정교회의 영성에서 인간의 삶의 목적은 신화(神化 : theosis)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 한다. 신화란 “신의 성품에 참예”(벧후 1:4)하는 것이며, 인간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인 이콘을 완성해 나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완성 중에 있는 이콘이며,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패턴으로 짜고 있는 미완성의 태피스트리이다. 우리 모두는 나를 지으신 창조주에게 “예”와 “아니요”로, 믿음과 배신으로, 기쁨과 괴로움으로, 자랑스러운 일들과 수치 등의 실로 한 올 한 올 주님의 모습을 짜고 있는 직조자(織造者)다. 주님의 모습은 너무나 많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일생 동안 도저히 끝낼 수 없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리고 있음을 고백하는 편이 더 신실한 자로서의 태도일 것이다.

속사람 기록하기
영성 훈련에서는 일기(diary)와 일지(journal)를 구별한다. 일기는 일상사를 기록하지만, 영성일지는 영적 여정을 기록한다. 일상사를 통해 다양한 상황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시고 구원하시는 바를 깨닫고 그것을 기록한다. 그래서 영성일지는 내면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카메라는 겉모습을 기록하지만, 일지는 속사람을 기록한다. 헨리 나우웬의 말년의 일지 ‘Sabbatical Journey’는 매우 평범하다. 그의 평상적인 삶과 대화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계 11:9)보다는 “세미한 소리”(왕상 19:12)로 말씀하신다.

앤 브로일즈는 <영성일지 기록하기>에서 여섯 가지 일상의 상황에서 영성일지를 기록하기를 권하고 있다. 첫째는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을 기록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음식을 조리하는 가운데, 한겨울 밤 걷어차고 자는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면서, 우리를 먹여주시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된 것을 기록한다. 둘째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오는 깨달음을 기록한다. 세 번째는 영적 지도 프로그램에 따라 상상하고 느낀 바를 기록한다. 네 번째는 꿈으로 일지를 기록한다. 꿈은 바이오 영성(bio―spirituality)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꿈을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초자연적이며 특별한 계시로 여긴다. 하나님은 꿈을 통하여 요셉과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다섯 번째는 독서, 영화, 연극, 금언 등을 읽고 깨닫는 바를 기록한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느낀 바를 기록한다. 조지 폭스는 어떤 화자(話者)의 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충고했다.
영성생활의 여정은 “여기 지금”의 나로부터 시작한다. 영성일지는 그 여정의 기록이며, 동행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릴 목록이다.

최대형/ 은성출판사 대표 hermits@choll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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