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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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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교부 마카리우스는 여섯 달 동안 습지에 가서 모기와 곤충에게 물리면서 자신을 실험했다.
마음’을 다룬 학문이 심리학이다. 체계적인 현대 심리학은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
1848년에 착하고 유순한 광부가 돌을 폭파하려고 뚫어놓은 구멍에 다이너마이트를 쇠막대로 밀어 넣다가 실수하여 폭발하는 바람에, 그 쇠막대가 왼쪽 머리를 가로질러 박혔다.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쇠막대를 제거하는 경우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에 평생 쇠막대를 머리에 꽂고 살았다. 이 사건 후 유순했던 그 사람은 난폭해지는 등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이 현상을 놓고 연구를 한 결과 좌뇌와 우뇌의 기능을 발견하는 등 현대 심리학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의 유골은 아직 하버드대학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다.
기독교 영성에서 인류학은 초대 사막교부들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사막으로 들어간 수도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다. 사막은 전적으로 하나님 의존의 삶을 사는 환경으로 가장 적합하다. 어떤 이들은 육신의 한계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러기 위해서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기도 했으며, 발가벗은 채로 지내기도 했으며, 습지에 가서 모기떼에게 물려보기도 하고, 물과 음식을 끊고 죽을 지경에 이르기도 해 보았다. 그들은 자신을 실험대에 올려놓은 처절한 인류학의 연구가들이었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을 보면 그들은 천사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한편으로는 마귀와도 직접 대화하며 이웃처럼 지냈다. 초대 교부 에바그리우스(Evagrius)는 “생각”(logismoi)을 마귀라고 정의했다. 이 생각이란 아직도 오지 않은 일에 대한 염려를 말하는데, 이것은 마귀가 인간의 마음에 심어 놓은 것이라 한다. 생각은 아직은 죄가 아니지만 죄를 짓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한다. 에바그리우스가 정의한 여덟 가지의 생각을 정념(情念: passions)이라 한다.
1.탐식:사막의 교부들은 황량한 사막에서 식량 부족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다.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공포는 굶주림이다. 마귀는 제일 먼저 ‘떡’으로 예수님을 시험했다. 인적이 드문 황량한 사막이나 절벽 동굴에서 혼자 거처할 때 식량과 먹을 물이 부족하다는 것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였다. 따라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과식한다거나, 필요 이상의 음식을 비축해 두는 것을 탐식이라 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다고 하면서도, 실은 먹거리에 자신의 생명을 의존하는 신앙 태도를 말한다.
2.탐욕: 탐욕이란 장래에 늙거나 병들면 수발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재물을 비축하고 남과 나누어 쓰기를 꺼리는 태도를 말한다. 그 결과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거절하며, 심지어 하나님의 도움도 거절한다. 탐욕의 결과는 하나님, 이웃과의 단절을 야기시키며 자신의 영을 물질에 팔아 그의 노예로 만든다.

◇하버드대학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는 광부 개이지(Gage)의 두개골.
3.음란: 음란이란 성적인 음란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독신을 서원했던 수도자들이 늙고 병들면 자신을 돌볼 자손을 보기 위해 성관계를 갖거나, 수도생활을 버리고 도시로 나가서 가정을 꾸리는 것을 말한다. 음란은 하나님께 의탁하기보다는 자식을 더 의지하게 만든다. 음란은 그 행위 전부터 이미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독신 수도사들뿐만 아니라 현대 목회자에게도 가장 처절한 싸움의 대상이 된다.
4.슬픔: 슬픔이란 수도생활을 위해 포기했던 것 때문에 오는 의기소침이다. 이 슬픔이라는 정념은 과거에 집착하고 회상함으로써 온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애굽 생활과 고기 가마를 회상함이며(출 16:3), 이 슬픔은 장래의 소망을 파괴한다.
5.노여움: 노여움이란 가장 흉포한 격정으로서 자신이 세운 계획이 잘 되지 않거나 숨긴 것이 발각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화는 기도를 방해하며 주의력을 분산시켜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대상에게 상처를 남긴다. 화는 이웃과 하나님께 대한 폭력이다.
6.따분함: 따분함이란 “수도자의 오후의 게으름”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대죄 중 나태(sloth)와는 다른 것이다. 따분함은 acedia라는 단어를 쓰는데, 문자적으로는 no―care, 즉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계획과 뜻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인간 중심의 행위적인 신앙에 관심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금식, 철야, 봉사 등 외면적인 신앙 행위로 인해 무감각하게 되거나, 헛된 것에 집착한 결과 허무를 느끼게 된다. 이 정념은 행위로써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욕망이 배경에 도사리고 있다.
7.허영: 허영이란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듣기 바라는 심리를 말한다. 즉, 기도, 예언, 방언, 가르침, 지식 등이 모두 사람에게 자랑거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 허영심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과 찬송을 자신이 가로채려는 것이며, 결국 주님을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우려 했던 “가롯 유다”를 만든다. 허영의 치료제는 청빈이다.
8.자만:자만은 남보다 자기가 우월하다고 여기는 데서 나온다. 다시 말해서 자신에게는 후하게 점수를 주는 대신, 남을 자신보다 천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자만은 형제를 비판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잣대를 사용하지 않고 재산의 많고 적은 것으로, 사회적 지위나 명예로 남을 평가하려 한다. 자만은 유물주의를 부추기며, 결국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선과 악을 심판하려 든다. 선악과와 바벨탑은 자만이라는 정념의 상징이다. 자만을 치료할 백신은 겸손밖에 없다.
정념과 영성 생활
정념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영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모든 죄의 행태들을 한층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여덟 가지의 범주에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자신의 정념을 성찰하는 목적은 겉으로 드러난 자신의 모습 그 이면에 있는 정직한 자신을 보는 데 있다. 정직한 자신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어울려 있다. 밝은 것은 세상에 내어놓고 자랑하고 싶은 긍정적인 자신이며, 어두운 것은 숨기고 감추고자 하는 부정적인 자신이다. 이 어두운 자신을 심리학자 칼 융은 그림자라며, 이 그림자는 부정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불쌍히 여겨 일생 부둥켜안고 책임지고 살아야 할 ‘나’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에 의지하여 밝은 것으로 변화되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정념을 성령의 도움으로써 ‘거룩한 갈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책임지는 신앙인의 바른 태도이다. 이것이 바로 ‘전인 치유’, 또는 ‘전인 변화’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의 치유 사역은 현대인 우리들에게는 전인 치유이자, 우리가 받을 용서와 변화와 구원의 상징이다.
그래서 사막 교부들에게는 두 가지 기도만 있었다. 하나는 정념으로 괴로워하는 자신을 보며 주님의 자비를 호소하는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Kirie Eleison)와, 또 하나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정념을 딛고 새 모습으로 태어날 것을 확신하며 “주님께 영광!”(Alleluia!)을 드리는 기도다.
최대형/ 은성출판사 대표 hermits@choll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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