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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어두움이 발하는 빛

수도관상피정 최대형............... 조회 수 3012 추천 수 0 2003.06.24 00: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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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출처/주간 기독교 제1506호

간밤에 초등학교 축구 선수 여덟 명이 기숙사에서 난 불로 단 15분만에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잠이 들었다. 울지도 못하고 반은 실신한 채로 헛소리만 하는 어머니, 땅에 털썩 주저앉아서 땅바닥을 치며 손톱으로 긁는 애절한 어미,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며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기만 하는 미친 모성이 나의 새벽잠을 깨웠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어제 일인데…. 또 연일 이라크 전장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이들의 고통, 널려 있는 주검, 삶의 근거가 날아간 건물 잔해에서 울음마저 그쳐버린 허망한 표정들! 이 절망과 어두움, 신부재(神不在)와 허망감은 21세기에 대한 우리들의 대망(待望)이었던가! 각종 신형 무기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능을 뽐낸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 그토록 공들여서 쌓았던 기술문명의 이기(利器)의 결과다.

그들은 절규한다. 신(神)은 어디에 있는가? 세기의 어두운 밤은 깊어만 가는데, 아침은 언제 오려는가?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숫군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사 21:11~12).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희망의 아침을 기다리지만, 절망의 어두움이 이내 올 것을 선지자는 또한 예언하고 있다.

히브리 사상에서 빛은 영광(doxa)이라 한다. 온 천하 만물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며,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목적이 있다. 정교회 신비신학에서는 피조된 빛과 피조되지 않은 빛을 구분한다. 그리스도는 피조되지 않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성령의 깨달음도 피조되지 않은 빛이다. 피조된 빛은 영원한 빛을 상징하며, 이 빛이야말로 하나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에너지(에네르기아;energia)라고 한다. 이 에네르기아를 은혜(grace)라고 한다. 개신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은혜를 방언, 신유, 예언, 또는 세상에서 성공, 출세 등 현시(顯示)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 절망, 고통, 신의 부재(不在), 허무, 지옥 등을 상징하는 어두움을 죄의 결과와 신의 저주로 생각한다. 그러나 어두운 날이 닥치면 당황하고 혼란을 겪거나, 아니면 신앙을 버리기도 한다. 이것이 난세를 겪는 우리들과 교회가 당면한 문제다.

어두움이란 빛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비에서는 “어두움의 빛”을 말한다. 그야말로 역설이다. 여기서 어두움이란 인간의 절망과 고통과 죽음과 허무를 말하며, 이러한 삶을 어두운 밤의 여정이라 한다. 어두운 밤의 여정은 성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생활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대표적이다. 인간이 만든 빛이란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금으로 만든 우상이다. 그들은 이 우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운명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현대 종교인들은 이러한 우상들을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로 믿고 의지한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을 하나님으로 섬긴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이 우상을 부수지 않고는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 어두운 밤의 여정은 하나님의 빛이 빛나게 하는 우상 파괴의 노정(路程)이며, 또 다른 하나님의 축복이다.

우리 인생 여정은 부서지기 쉬운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다리 위를 걸어가고 있다. 이 기둥들은 우리의 삶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받치고 있다. 즉, 우리들은 피조 세상 안에서, 피조 세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안다.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들과 친구들과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체험한다. 직장과 교회에 봉사하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이 사회의 질서와 가치관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교훈과 위로와 인도하심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성성(聖性)을 알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기둥들이 무너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시 말해서 어두운 밤이 온다. 일생 함께했던 부부가 사별(死別)하게 된다. 아침에 웃고 나갔던 아이가 검게 탄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평생 함께하겠다던 부부는 원수가 되어 법정에 선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버린 아이들은 고아원에 입양된다. 청춘을 바쳤던 직장에서 파직 당한 가장(家長)은 평화롭게 잠든 처자식의 머리맡에서 한숨 짓는다. 시름시름 앓던 감기로 찾은 병원에서 말기 암을 선고 받는다. 교회 공동체는 사소한 일로 인하여 분열되고, 오는 주일에는 어느 교회에 가서 영혼의 위로와 안식을 구할까 하며 전전긍긍하다가, 이제는 주일이 오는 것조차 두렵다. 정신 없이 살다가 어느 날 쇼윈도에 노인으로 비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의욕과 기운은 아직 청춘인데… 할 일과 갈 곳이 없어서 쓸쓸히 공원 벤치를 찾는다.

나의 먼 친척 누이가 있다. 남편은 외항선원으로서 3, 4년만에 한 달 정도 집에 머무는 것이 고작이었다. 수십 년 결혼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같이 살았던 기간은 불과 수년밖에 안 된다. 정년이 되어 육지생활을 하자, 누이는 매우 좋아했다. 그 동안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새 각시처럼 방을 꾸미며 오순도순 두 해 정도 그렇게 살았다. 어느 날 감기인 줄 알았던 남편은 의사로부터 말기 폐암 진단을 받고 이내 죽었다. 남편을 떠나보내면서 누이는 “나는 어떻게 살라고!”하며 밤낮 없이 통곡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누이는 성당에도 나가지 않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금새 수척해지면서 예뻤던 얼굴은 증오와 분노로 가득했다. 한번은 “성당에 나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넌지시 권했더니, 이내 정색하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남편과 함께 살려고 참고 살았는데, 억울해도 너무 억울하다! 정말 하느님이 있다면 그럴 수는 없어”라고 했다. 그 후 간간이 들리는 소식은 거의 폐인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앞으로 닥칠 어두운 밤을 예견하면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했다. 여기서 솔직한 주님의 인성을 볼 수 있다. 될 수 있으면 어두움(잔)을 피하기 바랐으나, 이내 아버지의 뜻에 맡기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42). 주님의 어두운 밤의 정점은 제6시에서 9시까지였다(마 27:45~46). 아버지마저 외면하시는 절대무(絶對無)의 어두움 속에서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셨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갈라졌다. 절대무(absolute nothing)를 통해 신비의 아버지와 합일을 이루셨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의 영광은 없다. 사즉생(死卽生)―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요 12:24). 십자가는 어두움의 빛을 실증한 신비의 사건이다.

어두움은 신비와의 합일을 향한 정화(淨化)의 과정이다. 선물을 하나님으로 보았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회심(回心)의 때다. 그 동안 부둥켜 안고 살았던 우상파괴의 과정이다. 새 피조물로 태어나는 맹아(萌芽)의 계절이다. 완전의 길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이제 어두운 밤을 걷는 자에게는 할 일이 없다. 내어 맡김밖엔 없다. 이는 주님의 “아버지의 원대로”라고 드리는 기도이며, 마리아의 “주의 계집 종이오니…”(눅 1:38)라는 전적 위탁(委託)이다. 어두움을 벗어나려는 어떤 인간적 행동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잠잠하여 어두움이 발하는 빛을 보라. 이것이 어두운 밤을 걷는 영성인의 모습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최대형/ 은성출판사 대표 hermits@choll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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