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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觀想)

수도관상피정 최대형............... 조회 수 3489 추천 수 0 2003.06.24 00: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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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성과의 대화    주간기독교   통권 1513 호  

관상(觀想)


고대에 산 중턱이나 산꼭대기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새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 하늘의 뜻을 점쳤던 샤먼적인 관습이 있었다. 이 곳을 신탁의 장소(templa)라고 하며, 현대어로 사원, 또는 교회(temple)의 어원이 되었다. 이 언어에 함께(con; with)라는 접두어를 붙이면 문자적으로 “성전에 머뭄”(con-templa)이 되며, 이것을 현재화(―tion)하면 관상(contemplation)이 된다. 따라서, 관상이란 “성전에 머물고 있음”,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뭄”이라는 의미다.

성경에 관상이란 단어가 의미로는 있지만 직접 쓰이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관상이 기독교적인가 라는 의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관상의 표면적인 의미는 성전에 머무는 것이다. 누가복음 2장에 예수의 모친 마라아가 열두 살이 되는 아들을 잃어버리고 사흘 동안이나 애타게 헤매다가 회당에 있는 아들을 보고 덜컹 내려앉았던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들을 나무라셨다. 이에 아들 예수는 어머니에게 “왜 나를 그렇게 애타게 찾았어요! 제가 당연히 내 아버지 집에 있을 줄 몰랐어요?”(눅2:49 필자 retelling)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 표면적인 아버지 집(눅2:49)을 통하여 궁극적인 “아버지 집”(요14:2)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14:2).

하나님 현존 체험
작금에 관상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 대부분은 “관상이 잘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잘 되는가?“ 라는 질문이다. 매우 우리 나라 크리스천다운 질문이다. 이에 대해 “관상을 아십니까?”라고 되묻는 것이 나의 대답일 뿐이다. 매우 무성의하게 들리겠지만, 이 질문이 해답이다.
하나님은 우주와 인류의 하나님이시지만, 각 개인과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내면적인 관상은 매우 개인적(personal)이다. 그리고 표면적인 관상생활을 통해서 궁극적인 하나님의 현존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적으로 보면 철도 들지 않았으며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순진한 처녀를 통해서 성육신하셨으며, 갓난 아들을 말 여물통에서 받게 했으며, 보잘것없는 촌 나사렛(요 1:46)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계시(啓示)하신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우리는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서(왕상19:11~12) 하나님과 머물고자, 즉 관상하고자 한다. 연목구어(緣木求魚) 격이다.
관상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남의 것이 아닌―의 일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따분하고 시시콜콜한 일들 ―아이들을 챙겨서 학교에 보내며 밥짓고 설거지하는 일, 찬 한 잔을 놓고 수다떠는 등 ―일일이 여기서 나열할 수도 없는 것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다. 신학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세상의 시간(chronos)에서 절대자의 시간(kairos)을 체험함이다. 이 두 시간이 만나는 접점(接點)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신앙생활이며, 하나님의 현존 체험이며, 세상에서의 천국을 “맛봄”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가르치신 안식에 대한 진정한 의미이다.

신비와의 합일
우리 나라 개신교회에서 “신비”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낸다. 아마 과거에 자칭 신비를 체험했다던 사람들이 교회와 사회에 적지 않은 나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신비의 요소가 빠진 종교는 종교라고 할 수 없으며, 철학이나 학문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신비[奧義]이시다.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신비의 하나님은 언어로 정의하기가 어렵다면서 “삼위 하나님을 논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는 자“라고 했다. 그럼에도, 신비에 대한 태도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다르다.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회 전통의 뿌리인 서방교회는 신비를 분석하고 파헤치고자 한다. 설교에서 예를 들 수 있다. 서방교회 설교는 지식적이며 대단히 논리적이며 증인(히12:1)을 중시한다. 그리고 세상적인 현상, 표준이 될 만한 사람과 그의 삶, 성공이나 부흥 등 축복의 징표가 되는 것을 매체(媒體)로 삼아 신비로 접근한다.
그러나 피조 세상의 것으로 신비를 파헤치고자 할 때 논리적인 오류가 더해만 갔다. 많은 이론과 학파가 생기고, 그로써 교회가 분열되었다. 동방교회의 전통에서는 서방교회와는 달리 논리와 매개체(媒介體)에 대해 “그것은 아니다”라고 부정하면서, “차라리 신비를 신비가 되게 하자”고 한다. 이들은 장황하고 논리적인 설교보다는 성찬예배(liturgy)와 상징을 중시한다.

수덕적 관상
고전적으로 관상과 신비의 상태를 같이 본다. 합일(合一)이라 함은 둘이 아니라, 하나됨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나와의 일치됨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이 둘이 아닌 상태다.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는”(마 6:3) 상태이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인간 편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관상이며 신비다.
서방교회 전통에서는 관상과 신비와 같은 의미다. 초대 교부 오리겐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상실된 하나님의 모습과 형상을 회복, 즉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정화, 조명, 합일이라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했다. 이 길에는 긍정적인 방법과 부정적인 방법이 있다. 긍정적인 방법은 말씀, 성상, 자연, 역사, 인생 등을 놓고 상상하거나 묵상하는 것이며, 부정의 방법은 피조된 모든 매체와 상상이나 심상을 버리고 직접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다. 긍정의 방법에서 대표 되는 방법은 렉시오 디비나, 로욜라의 영신수련, 다양한 묵상 방법이 있다. 부정의 길에는 고전적인 “예수기도”와 다양한 “호흡기도” 등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라면 관상이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이지만, 인간의 계획적이며 의도적인 노력이 첨가된 관상, 아직은 완전한 합일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관상의 문 근처에 인도할 수 있는 묵상, 마음의 기도, 침묵, 예수기도, 렉시오 디비나, 로욜라의 영신 수련, 집중기도 등을 “관상적” 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우리들이 말하는 관상 기도는 정확히 말하자면 “관상적 기도”라고 해야 맞다. 그리고 이러한 영성적인 수단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현실에서 관상을 체험하는 신앙적인 수행(devotional life)을 수덕적인 관상이라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수덕적인 관상을 능동적인 관상이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리적(功利的)인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써 인간의 노력이 하나님의 뜻에 협동한다는 신인협력(神人協力: synergism)을 뜻한다. 이 단어는 합성(synthetic)과 에너지(energy)의 합성어로서 하나와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힘을, 효과를 낳는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특히, 에너지란 일반적인 의미로는 힘을 뜻하지만, 신학적으로 사용될 때 은혜(grace; energia)를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과 하나님이 협동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진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최대형/ 은성출판사 대표 hermits@choll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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