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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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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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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의 아름다움 - 고기교회 안홍택 목사

"이 건 처녀치마예요.”
보랏빛 꽃을 가리키며 안홍택(50·고기교회) 목사가 말했다. 수줍은 듯 고개 숙인 모습과 그 고운 결이 단연 돋보이는 꽃이었다. 안 목사는 “지금이 5월이니 한창 필 시기죠”하며 시선을 돌리더니 “이건 산작약… 야, 붓꽃도 많이 피었네”하며 짧은 탄성을 내지른다. 난을 재배하는 목사이니 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을 법도 하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식물원을 따라 오르는 길가에 피어난 꽃의 이름을 조목조목 짚어주며 설명하는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다를까. 안 목사는 “우리 나라 들꽃에 대한 관심이 참 많아요. 우리 교회에도 50여 종이나 심겨 있죠”하고 덧붙인다.
취재가 있던 날은 안 목사가 꾸리고 있는 ‘고운 아이들’에서 야외학습을 나온 날이었다. 이렇게 좋은 봄날 답답한 실내에서 하는 취재보다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며 얘기 나누는 것이 훨씬 좋겠다 싶어 동행 취재하겠다며 따라나섰던 참이었는데, 마침 최근 개방한 그 식물원은 안 목사를 알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토종 붕어가 뛰노는 연못, 곳곳에서 봉오리를 틔운 아름다운 들꽃들, 생태적 환경이 잘 조성된 그 곳을 거닐며 안 목사는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아이들과 농촌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이야기들을.
난 농사꾼
그는 “놀러 왔다, 덜컥 발목잡혔다”하며 “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웃는다. 딱 13년 전의 일이다. 잠시 바람이나 쐴까하고 수지 근처 교회에 들렀고 그게 연이 되어 지금껏 고기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됐다. 물론 오래 전부터 농촌교회 목회를 맘속으로 조근조근 준비해 왔었고 기왕이면 좀 더 소외되고 상처받은 곳에서 생명 있는 목회를 하겠다 다짐해 왔던 그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처음 시작한 일은 ‘난(蘭) 재배’였다. 먼저 있던 목회자가 난 농사를 시작했지만 흐지부지 끝났던 그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었다. 교회의 몇몇 가정과 의기 투합하고 백여 평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거기에 묘를 분양 받아 심고 본격적으로 재배에 들어갔다. 그러나 난을 키우는 일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3년을 길러야 출하할 수 있는 긴 시간이 투자되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난의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고 계속해서 오르는 기름값, 자재값 등도 부담이었다. 기름값, 자재값이 오르면 난의 가격도 올라야 하는데 난의 출하값이 10년 전 그대로라니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법하다. 그래도 안 목사는 이제 숨통 좀 틔울 수 있는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젠 꽤 안정기에 들어선 셈이에요. 처음 비닐하우스 짓고 농사 시작할 때 빚이 많았는데, 그거 다 갚고 내후년쯤부터는 이익이 창출될 수 있는 시점이 됐어요. 10년만의 일이죠. 참 긴 시간이었어요.”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 빚도 다 갚고 드디어 이익 창출의 시점이 됐다니, 어쨌든 난은 안 목사에게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안 목사는 그 효자 덕을 볼 생각이 별로 없단다. 처음부터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래서 교인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일이면 된다 생각했던 것이기에. 처음 난 농사를 시작하던 10년 전 교인들과 약속했었다. “난 농사로 돈을 벌게 되면 그거 모두 선교에 쓰자고, 우리보다 더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쓰자고.”
이제 그 약속을 지키는 날이 눈앞에 와 있다며 웃음 지었다.
정말 결이 고운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 멀리서 사내 아이 하나가 걸어오더니 “목사님, 왜 여기 계세요? 안 올라가요?”한다. 아이들 일행이 올라간 지는 이미 꽤 지난 시간인데 다소 뒤쳐졌던 모양이다. 안 목사는 아이가 가까이 걸어올 때까지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다 가까이 오자 “응, 목사님은 여기 선생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나중에 갈 거야. 얼른 올라가라”하고 말한다. 웃음을 흘리며 뒤돌아 서는 아이를 보며 안 목사가 바로 말을 이었다.
“저 아이,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처음 만났을 때는 말이 두세 단어로밖에 표현이 안 됐어요. ‘선생님, 나, 밥’, 이렇게요. 자기 표현력이 없었던 거예요. 고운 아이들 모임에 나오면서 많이 건강해졌어요. 다른 아이들도 많이 좋아졌죠.”
고운 아이들 모임이 생긴 건 3년 전 일이다. 수지YMCA에서 서울로부터 일회성 후원금이 들어왔는데, 수지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좋은 제의였다. 수지 지역 자체에 경제적으로나 가정환경으로나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위한 어떤 프로그램도 대 찬성이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에도 그 뜻을 살려 모임을 지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설 도서관인 느티나무 도서관 안에 소모임으로 정착하고 시작한 게 어느새 3년이 흐른 것이다.
“소설 <한 아이> 있잖아요. 거기에 여섯 살 난 소녀가 세 살 난 남자아이를 나무에 매달아 불태우는 내용이 나와요. 그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파괴됐으면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모두가 그것보다 더 심한 정서적 장애를 겪고 있어요.”
처음 고운 아이들로 만나게 된 아이들의 상태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알콜 중독인 경우는 평범한 경우였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 부모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거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아온 아이들도 많았다. 심지어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경우도 있었다. 20여 명이 넘는 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해체된 가정 환경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은 해체된 가정처럼 모두 무너져 내린 뒤였다.
그러나 그 아이들 모두, 이제는 많이 건강해졌다. 아이들을 위해 많은 돈을 들인 것도, 특별한 치료 프로그램을 강행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어느 날부터 조금씩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에게 강한 치유가 됐고 그것이 아이들을 변하게 한 것이다.
“사실, 별로 한 게 없어요. 우리에게는 시스템도, 지속적인 모임도 없어요. 다만 아이들이 자유롭게 도서관에 나와서 생활하고 일 주일에 한두 번 아이들과 함께할 뿐이죠. 전 아이들에게 주는 우리의 관심이나 사랑이 부스러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작고 미약한데도 아이들은 건강해지고 있어요. 그 부스러기를 먹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거예요.”
그는 비록 자신의 사랑과 관심을 ‘부스러기일 뿐’이라 했지만, 그 부스러기는 어떤 치유프로그램이나 시스템보다도 더욱 큰 치유의 능력을 가진 부스러기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이름만큼이나 고운, 참말로 결이 고운 아이들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진한”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야외학습 일행에서 빠져 나와 안 목사의 교회로 향했다. 붓꽃이 한창이라는, 갖가지 한국의 들꽃이 피어 있고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고 입이 닳도록 자랑하는 안 목사의 격려를 뒤로하고 찾아간 고기교회는 참말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정원은 아니었지만, 그런 인위적인 손길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가 살아 있는 곳. 그의 자랑이 결코 입치장이 아니었음이 확실했다. 곳곳에 나무며, 꽃이며 교회가 바로 식물원이었다. 게다가 식물마다 안내 설명이 적혀 있는 작은 이름표들에선 섬세함과 관심의 냄새도 났다. 교회 뒤쪽 연못으로 걸어가자 푸드덕 청둥오리도 날았다. 소금쟁이, 이름 모를 작은 벌레들도 있었고, 발갛게 피어난 동백도 아름다움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생태계 역시 잘 보존돼 있어서 환경단체 소속 사람들이 종종 찾아와 그 놀라운 생태 보존력에 감탄하고 돌아간다니 실로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을 터였다.
그래서 요즘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생태공원이다. 보기 드물게 원초적 생태 그대로 잘 보존된 교회 뒷편의 부지를 활용해 생태공원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들꽃들도, 각종 동식물들도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곳. 그래서 한두 가족 정도가 침묵기도를 할 수 있는 기도처도 만들어 그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하나님의 섭리, 영성은 바로 보이지 않는 그 자연 속에, 아주 작은 것 속에 함께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거 아세요? 우리 나라의 들꽃들은 참 작아요. 그런데 그 작은 들꽃들의 아름다움이란… 아주 자세히 보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 들꽃. 그 들꽃들을 관찰하노라면 하나님의 섭리, 그 작은 것이 가진 강렬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니 들꽃뿐 아니라 자연 곳곳에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의 생명력. 그 속에 바로 하나님의 섭리와 깨달음이 있는 거예요.”
작은 들꽃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섭리를 아는 사람. 그래서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도, 자연도 말이다.
고기교회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 고기리 200번지 031)262―5522
느티나무 도서관 031) 262―3494
용인/ 김진아 기자 tokki@cnews.or.kr

"이 건 처녀치마예요.”
보랏빛 꽃을 가리키며 안홍택(50·고기교회) 목사가 말했다. 수줍은 듯 고개 숙인 모습과 그 고운 결이 단연 돋보이는 꽃이었다. 안 목사는 “지금이 5월이니 한창 필 시기죠”하며 시선을 돌리더니 “이건 산작약… 야, 붓꽃도 많이 피었네”하며 짧은 탄성을 내지른다. 난을 재배하는 목사이니 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을 법도 하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식물원을 따라 오르는 길가에 피어난 꽃의 이름을 조목조목 짚어주며 설명하는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다를까. 안 목사는 “우리 나라 들꽃에 대한 관심이 참 많아요. 우리 교회에도 50여 종이나 심겨 있죠”하고 덧붙인다.
취재가 있던 날은 안 목사가 꾸리고 있는 ‘고운 아이들’에서 야외학습을 나온 날이었다. 이렇게 좋은 봄날 답답한 실내에서 하는 취재보다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며 얘기 나누는 것이 훨씬 좋겠다 싶어 동행 취재하겠다며 따라나섰던 참이었는데, 마침 최근 개방한 그 식물원은 안 목사를 알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토종 붕어가 뛰노는 연못, 곳곳에서 봉오리를 틔운 아름다운 들꽃들, 생태적 환경이 잘 조성된 그 곳을 거닐며 안 목사는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아이들과 농촌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이야기들을.
난 농사꾼
그는 “놀러 왔다, 덜컥 발목잡혔다”하며 “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웃는다. 딱 13년 전의 일이다. 잠시 바람이나 쐴까하고 수지 근처 교회에 들렀고 그게 연이 되어 지금껏 고기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됐다. 물론 오래 전부터 농촌교회 목회를 맘속으로 조근조근 준비해 왔었고 기왕이면 좀 더 소외되고 상처받은 곳에서 생명 있는 목회를 하겠다 다짐해 왔던 그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처음 시작한 일은 ‘난(蘭) 재배’였다. 먼저 있던 목회자가 난 농사를 시작했지만 흐지부지 끝났던 그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었다. 교회의 몇몇 가정과 의기 투합하고 백여 평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거기에 묘를 분양 받아 심고 본격적으로 재배에 들어갔다. 그러나 난을 키우는 일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3년을 길러야 출하할 수 있는 긴 시간이 투자되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난의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고 계속해서 오르는 기름값, 자재값 등도 부담이었다. 기름값, 자재값이 오르면 난의 가격도 올라야 하는데 난의 출하값이 10년 전 그대로라니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법하다. 그래도 안 목사는 이제 숨통 좀 틔울 수 있는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젠 꽤 안정기에 들어선 셈이에요. 처음 비닐하우스 짓고 농사 시작할 때 빚이 많았는데, 그거 다 갚고 내후년쯤부터는 이익이 창출될 수 있는 시점이 됐어요. 10년만의 일이죠. 참 긴 시간이었어요.”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 빚도 다 갚고 드디어 이익 창출의 시점이 됐다니, 어쨌든 난은 안 목사에게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안 목사는 그 효자 덕을 볼 생각이 별로 없단다. 처음부터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래서 교인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일이면 된다 생각했던 것이기에. 처음 난 농사를 시작하던 10년 전 교인들과 약속했었다. “난 농사로 돈을 벌게 되면 그거 모두 선교에 쓰자고, 우리보다 더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쓰자고.”
이제 그 약속을 지키는 날이 눈앞에 와 있다며 웃음 지었다.
정말 결이 고운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 멀리서 사내 아이 하나가 걸어오더니 “목사님, 왜 여기 계세요? 안 올라가요?”한다. 아이들 일행이 올라간 지는 이미 꽤 지난 시간인데 다소 뒤쳐졌던 모양이다. 안 목사는 아이가 가까이 걸어올 때까지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다 가까이 오자 “응, 목사님은 여기 선생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나중에 갈 거야. 얼른 올라가라”하고 말한다. 웃음을 흘리며 뒤돌아 서는 아이를 보며 안 목사가 바로 말을 이었다.
“저 아이,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처음 만났을 때는 말이 두세 단어로밖에 표현이 안 됐어요. ‘선생님, 나, 밥’, 이렇게요. 자기 표현력이 없었던 거예요. 고운 아이들 모임에 나오면서 많이 건강해졌어요. 다른 아이들도 많이 좋아졌죠.”
고운 아이들 모임이 생긴 건 3년 전 일이다. 수지YMCA에서 서울로부터 일회성 후원금이 들어왔는데, 수지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좋은 제의였다. 수지 지역 자체에 경제적으로나 가정환경으로나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위한 어떤 프로그램도 대 찬성이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에도 그 뜻을 살려 모임을 지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설 도서관인 느티나무 도서관 안에 소모임으로 정착하고 시작한 게 어느새 3년이 흐른 것이다.
“소설 <한 아이> 있잖아요. 거기에 여섯 살 난 소녀가 세 살 난 남자아이를 나무에 매달아 불태우는 내용이 나와요. 그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파괴됐으면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모두가 그것보다 더 심한 정서적 장애를 겪고 있어요.”
처음 고운 아이들로 만나게 된 아이들의 상태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알콜 중독인 경우는 평범한 경우였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 부모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거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아온 아이들도 많았다. 심지어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경우도 있었다. 20여 명이 넘는 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해체된 가정 환경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은 해체된 가정처럼 모두 무너져 내린 뒤였다.
그러나 그 아이들 모두, 이제는 많이 건강해졌다. 아이들을 위해 많은 돈을 들인 것도, 특별한 치료 프로그램을 강행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어느 날부터 조금씩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에게 강한 치유가 됐고 그것이 아이들을 변하게 한 것이다.
“사실, 별로 한 게 없어요. 우리에게는 시스템도, 지속적인 모임도 없어요. 다만 아이들이 자유롭게 도서관에 나와서 생활하고 일 주일에 한두 번 아이들과 함께할 뿐이죠. 전 아이들에게 주는 우리의 관심이나 사랑이 부스러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작고 미약한데도 아이들은 건강해지고 있어요. 그 부스러기를 먹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거예요.”
그는 비록 자신의 사랑과 관심을 ‘부스러기일 뿐’이라 했지만, 그 부스러기는 어떤 치유프로그램이나 시스템보다도 더욱 큰 치유의 능력을 가진 부스러기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이름만큼이나 고운, 참말로 결이 고운 아이들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진한”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야외학습 일행에서 빠져 나와 안 목사의 교회로 향했다. 붓꽃이 한창이라는, 갖가지 한국의 들꽃이 피어 있고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고 입이 닳도록 자랑하는 안 목사의 격려를 뒤로하고 찾아간 고기교회는 참말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정원은 아니었지만, 그런 인위적인 손길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가 살아 있는 곳. 그의 자랑이 결코 입치장이 아니었음이 확실했다. 곳곳에 나무며, 꽃이며 교회가 바로 식물원이었다. 게다가 식물마다 안내 설명이 적혀 있는 작은 이름표들에선 섬세함과 관심의 냄새도 났다. 교회 뒤쪽 연못으로 걸어가자 푸드덕 청둥오리도 날았다. 소금쟁이, 이름 모를 작은 벌레들도 있었고, 발갛게 피어난 동백도 아름다움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생태계 역시 잘 보존돼 있어서 환경단체 소속 사람들이 종종 찾아와 그 놀라운 생태 보존력에 감탄하고 돌아간다니 실로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을 터였다.
그래서 요즘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생태공원이다. 보기 드물게 원초적 생태 그대로 잘 보존된 교회 뒷편의 부지를 활용해 생태공원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들꽃들도, 각종 동식물들도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곳. 그래서 한두 가족 정도가 침묵기도를 할 수 있는 기도처도 만들어 그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하나님의 섭리, 영성은 바로 보이지 않는 그 자연 속에, 아주 작은 것 속에 함께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거 아세요? 우리 나라의 들꽃들은 참 작아요. 그런데 그 작은 들꽃들의 아름다움이란… 아주 자세히 보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 들꽃. 그 들꽃들을 관찰하노라면 하나님의 섭리, 그 작은 것이 가진 강렬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니 들꽃뿐 아니라 자연 곳곳에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의 생명력. 그 속에 바로 하나님의 섭리와 깨달음이 있는 거예요.”
작은 들꽃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섭리를 아는 사람. 그래서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도, 자연도 말이다.
고기교회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 고기리 200번지 031)262―5522
느티나무 도서관 031) 262―3494
용인/ 김진아 기자 tokki@c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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