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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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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8/28(수) 16:47
■ 평신도 지도력부재 (상)
목회자 의존구조 심각
한국교회가 지금의 거대한 성장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담임목회자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교회구조가 한몫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목회자의 권위가 강하고, 담임목회자의 능력에 따라 교회성장이 좌지우지 되는게 한국교회 현실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평신도들의 지도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약했던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교회 성장의 비결은 담임목회자 1인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다수의 잠자고 있는 평신도들의 숨은 지도력을 개발하는데 있다고 많은 교회성장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평신도지도력 개발’이라는 말이 유행된건 최근 몇 년 사이다. 평신도지도자개발 세미나나 전문 기관이 생기고, 평신도 지도력개발을 위한 교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것은 평신도지도자의 양성문제가 얼마만큼 한국교회 성장에 중요한가를 대변해 준다. 이는 그만큼 한국사회와 교회의 상황이 급변화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데, 변화된 가치관과 수많은 교인들을 목회자 몇명이 모두 커버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또 무엇보다도 평신도지도력 양성이 필요한 이유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기 보다는 제자들을 교육하고 양성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정신을 확산한 실천에 비추어 볼수 있다. 더불어 목회자중심의 한국교회 운영은 빠른 성장에는 기여한 부분이 많지만,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교회운영과 다수의 의견을 수렴한 민주적인 교회운영, 참 그리스도의 제자양육에는 소홀하게 했던 요인이다.
그 이유로는 담임목회자에게 너무 의존적인 한국교회 구조상에 문제가 있다. 담임목회자를 제왕처럼 받드는 구조는 목회자에 대한 단순한 존경심에서 벗어나 우상화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으며, 이는 평신도들이 교회밖,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교회안에서만 봉사 잘하고, 예배 잘드리는 신자들만 양성해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밖 사회와 가정, 직장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하는데, 오히려 언론에 부도덕과 각종 비리에 연루된 크리스천들의 모습만이 자주 비춰지는 것은 평신도 교육의 소홀함을 대변해 준다.
평신도지도력의 한 장이라 할 수 있는 당회 역시 일부 남성평신도들에게 집중되어 있고, 여성이나 청년들의 참여는 아직까지 어려운 관문이다. 또 당회원이 되기 위한 지도력 검증의 방법도 오래된 교인, 재력이 있는 교인등 너무 비전문적이다. 교회안 뿐만 아니라, 세상속에서 존경받고 의미있는 삶을 사는 이들보다는 교회에 얼굴 자주비치는 일부 정치적인 평신도가 교회안에도 존재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몇몇교회에서 장로임기제나 신임을 묻는 선거방식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한국교회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평신도 스스로도 이미 기존체제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또 담임목회자 스스로도 영향력을 갖춘 평신도지도자를 꺼려한다. 목회자의 권위와 영향력보다 앞서는 평신도를 좋아할일이 없기 때문이다. 한 교회에서는 목회자와 교회운영문제에 있어서 문제점을 지적한 장로를 내치기까지 했으며, 각종 선교단체에서 훈련받고 그 프로그램을 교회내에서 시도하려는 안수집사에게 시기상조라며 뜻을 굽히게 했다.
평신도참여율 저조
반대로 교회운영에 평신도자도자들의 참여를 바라는 목회자들도 점점 증가추세다. 여름수련회 기획이나 찬양인도, 교회행정, 청년부 지도방안에 이르기까지 리더십을 갖춘 평신도 지도자들을 원하고 있다. 자신의 목회동역자로서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전문지식과 영적파워, 리더십을 갖춘 교회내에 평신도지도자들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을 할 때마다 늘 인력부족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그래서 교회내에 제자훈련프로그램과 여러 가지 훈련교육을 마련해 놓고 평신도들의 참여를 기다린다. 그러나 참여율은 그리 높지 않아 항상 애를 태운다는 것이다.
좀더 많은 평신도들이 훈련됐으면 하는 바램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에 정작 평신도들의 참여가 없으니, 일할 의욕이 상실한다는 것이다. 한 교회 청년부 지도목사는 상하반기로 나눠 제자훈련 코스를 전교인을 대상으로 개방해놨지만, 정작 참여해야할 남성교인, 장로, 청년등의 참여율이 높지 않아 실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서도 한국교회가 평신도지도력을 시급히 개발해 내지 않으면, 21세기 한국교회성장과 존립에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 한다. 일단 평신도지도자를 많이 양성해 내면, 목회자들이 편하다. 목회자 본연의 설교준비나 각자 맡은 분야의 전문성을 더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훈련이나 양육, 봉사, 기획등을 평신도지도자들에게 맡기면 된다. 또 평신도지도자들이 또다른 평신도들을 양육해 내어 영적, 정신적인 삶을 나눌수 있는 수평적 안정감과 교제가 풍성히 일어나 교회는 더 내실있게 성장할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한 평신도지도력은 교회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밖 각 삶의 터전에서 더욱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상의 터전은 목회자가 가서 터치할 수 있는 영향력이 약하다. 그러나 훈련받은 평신도지도자의 역할은 직장과 가정, 학교에서 큰 빛을 발하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하다.
한 회사의 오너인 사람이 크리스천으로서 영적인 지도력을 갖췄다면, 그 직장은 그 기업계와 경제계에서 큰 영향력을 미칠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계나, 공직사회, 의료계, 법조계, 문화예술계등 다양한 분야에서 훈련받은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반증해 준다.
연합운동 확산에 필수
평신도 지도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연합기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연합운동이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한국교회 전체의 운동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의 경우는 아예 ‘연합운동은 평신도운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연합운동이 ‘운동’의 의미보다는 ‘기구’를 중심으로 한 ‘자리’의 의미를 둘러싸고 흘러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연합기관 자체가 어떤 운동체라기 보다는 하나의 기구로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운동의 내용보다는 기관장등 자리가 더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이 오늘 한국 연합기관의 실정이다.
자리가 관심을 끌다 보니 자연히 목사 등 성직자를 중심으로 자리 배분 문제가 논의된다. 설사 목사가 아닌 장로가 기관장이나 실무자가 된다 하더라도, 인물보다는 정치적인 역량에 의해 자리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보니 자연히 연합기관이 당연히 보여 줘야할 특성에 따른 운동적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는 결국 연합기관의 전반적인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같은 현실은 외국과 비교해 볼 때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를 비롯한 외국의 연합기관은, 평신도를 의결기구에 일정비율 이상 반드시 참여시키게 돼 있다. 예를 들어 8인으로 구성된 의장단의 한사람으로 참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강문규씨(전 한국 YMCA 연맹 사무총장)의 경우는 평신도 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WCC의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의 경우, 157명에 이르는 위원 중 평신도가 절반에 가까운 70명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이삼열박사 역시 평신도로서 중앙위원이자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개혁교회연맹(WARC)나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역시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또한 평신도를 참여시키되 여성과 청년을 일정 비율 이상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돼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경우는 해외 연합기구의 총회에서조차 국내의 버릇을 답습, 각 위원이나 대표를 파송하면서 평신도와 여성, 청년의 비율을 지키지 않아 빈축을 사는 경우가 많다.
실무진의 경우는 아예 목사나 평신도의 구분이 없다. 철저하게 공채를 원칙으로 하는 이들 해외 연합기구는, 요구되는 사항을 분명하게 제시한 뒤 이 조건에 부합되는 인물을 선임한다. CCA의 총무로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안재웅박사도 목사가 아닌 평신도이다.
그는 CCA에서 도시농어촌선교(URM) 총무와 부총무등을 역임하고 지난해 총무로 선출됐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처럼 명망을 날리는 그도 국내에서는 지난 1997년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경선에 나섰다가 당시 김상근목사에게 고배를 마셨다.
WCC 강문규의장과 함께 평신도로서 우리나라 연합운동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는 오재식씨(현 월드비전 회장)를 들 수 있다. 세계기독학생회총연맹(WSCF) 아시아 태평양지역 총무를 지내는 등 해외에서 활동하던 그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장으로 국내 연합운동에 복귀한다. 그리고 지난 1987년 2월, 그가 소속돼 있던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그를 부총무로 승진시키자는 안건을 교회협 실행위원회에 제출한다.
이는 차기 교회협 총무를 기장이 맡을 차례라는 전제 아래 오재식씨를 그 자리에 앉히겠다는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안건은 부결됐고, 평신도가 교회협 총무가 될 가능성은 이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오재식씨는 WCC 정의·평화·창조질서의 보전(JPIC) 담당 국장으로 부임, 다시 ‘해외생활’을 시작했다.
안재웅총무와 오재식회장의 사례는, 우리 나라의 연합기관이 평신도 지도력을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연합운동의 전문가들을 해외로만 돌게 만든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연합기관장 진출난항
우리나라 연합운동에 있어서 평신도 지도력이 없어지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안재웅·오재식 두 사람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평신도 지도력이 연합운동 책임자로 진출하는 길이 번번이 막혀 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교회협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다른 연합기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책임자가 아닌 실무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실무진에 평신도 지도력이 상당부분 진출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실무 간사급에서나마 일하는 평신도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교회협의 경우, 부장급 이상 실무자는 모두 목사이며, 평신도는 여성 및 신학·국제위원회 담당 간사와 통일 및 정보통신담당간사, 그리고 홍보담당 간사 정도이다.(비서와 경리 등 행정직은 제외) 한기총 역시 서무나 행정 등을 제외한 프로그램 담당 간사 중 평신도는 사무총장 정연택장로 한사람 뿐이다.
물론 연합기구들 중에서 평신도가 책임자로 재직하고 있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성서공회의 김호용총무나 기독교사회봉사회의 김종헌총무처럼 실무자를 거쳐서 책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고, 교단간의 협상과 담합 등 ‘정치적인 과정’에 의해 진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에게 평신도로서의 지도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에 있어서 평신도 지도력이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민성식부국장·우은진차장 공동취재 집필
(1666호 2002. 9. 1)
■ 평신도 지도력부재(하)
21세기는 평신도시대
21세기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의 시대가 될 것이라면 너무 큰 환상을 꿈꾸는 것일까? 그러나 평신도의 지도력을 개발하면, 목회자도 편하고 평신도 자신들도 자신이 받은 은사를 교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다. 말그대로 목회자가 쏟아야할 많은 분량의 일을 평신도와 나눠지기에 목회자는 목회 본연의 임무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목회자 중심의 교회운영을 다수의 지도력을 갖춘 평신도들과 함께 함으로써 교회가 보다더 건강해 질 수 있다. 부산의 모교회는 담임목회자와 당회 장로들이 함께 일주일 한번씩 제자훈련을 함으로써, 담임목회자의 목회비전을 장로들과 나누고, 장로들의 영적성숙에도 큰 보탬이 되어 당회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고 한다.
특히 교회운영에 있어서 청년들의 봉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각 교회의 청년에 대한 지도력양성 코스나 제자훈련 등은 미래의 교회일군과 현재의 필요한 일군을 양성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부분이다. 강남의 모교회는 아애 청년들이 없으면, 교회
학교부터 시작해 성가대, 주차관리, 인터넷사역, 문서사역, 사회봉사활동 등이 멈춰버린다.
그만큼 한국교회 안에 청년들이 없으면 각종 살아있는 교회봉사활동은 기대키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것. 그러나 이런 인재들을 그냥 봉사활동에 맨몸으로 뛰어들게 할 수는 없다. 신앙적인 훈련과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 교육을 받은후, 봉사활동에 참여할 때 열배의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젊은 날의 지도력 훈련은 중년기의 남여선교회를 거치며 교회안의 튼튼한 지도력으로 커나가게 된다는 점이다.
고척동의 모교회는 남성교인들의 지도력 개발을 위해 자체적으로 나이별 성경공부 모임이 만들어졌다. 20대,30대, 40대, 50대등 각 기별로 사랑방모임을 만들어 남성교인들이 성경책과 공과교재를 들고 집집마다 모여 기도와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이후 이 교회는 남성교인들이 교회의 각종 행사나 손이 필요로 할때마다 모이게해서 신선하면서도 든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방화동의 한교회는 변두리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사역분야에 평신도들의 교육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인터넷사역이나, 교회문서에 대한 디자인교육, 드라마나 연극공연을 위한 연기훈련, 음향시스템 교육, 비디오나 촬영기술 습득교육등이 그것이다. 이런 분야는 몸과 지식으로 참여하는 봉사와 달리, 전문적인 기술이 요하는 분야라 교회의 재정적인 지원이 없으면 혼자 독학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교회는 이 분야에 일찌기 투자를 아끼지 않아 중형교회이지만, 멀티미디어시설은 강남의 대형교회 수준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평신도 지도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교회내 제도적인 보완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평신도가 의견을 말할 수 있고, 기획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자율권을 주는 것을 말한다.
제기동의 모교회는 여성장로와 청년이 당회원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자칫 소홀하기 쉬운 교회여성과 청년문제에 대해서도 재정적, 정신적 관심을 기울일수 있도록 했다. 개봉동의 모교회 평신도인 김모안수집사는 이번 여름수련회를 남선교회, 청년, 여전도회 등 각부서 장과 총무들이 모여 수련회 계획을 짰다며, 목회자들은 나중에 최종 보고만 받았을뿐 전교인 수련회를 평신도들이 기획하고 집행해 휼륭하게 마쳤다며, 이번 기회를 계기로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힌다.
은사별 배치 필요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의 모든 중요사안을 평신도들에게만 맡겨 놓기를 불안해 한다. 평신도지도자들이 과연 그 말그대로 영적, 정신적 성숙함과 더불어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췄냐는 말이다.
직업도 없는 모교회 장로는 고등부 부감을 맡으면서, 사사건건 교사와 담당 교역자에게 시어머니처럼 간섭을 해댄다. 오랜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청소년문제에 잘 알지도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문학의 밤이나 고등부수련회, 동아리활동, 성가대활동등 고등부의 모든 활동에 대해 교사들과 전도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엉뚱한 사안을 회의시간에 내놓아 담당교역자를 힘들게 한다.
이런 예는 교회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다. 한마디로 교역자가 믿고 의지할만한 평신도 동역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교회도 오래 다닌 평신도라도 성품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거나 교회일에는 문외한일 경우가 많다는 것.
그래서 각 분야의 지도력과 영적인 자질을 갖춘 훈련이 교회 내외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평신도가 지도력을 펼칠 수 있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장치마련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평신도 스스로 리더십을 갖추고 건강한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지도자로 서기위한 노력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루라도 배우지 않으면 뒤쳐져지는 시대에 과거의 모습에 연연해 하며 훈련받고 교육받지 않으면 지금의 시대상황에 맞는 기획력이나 지도력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내 교인들에 대한 은사관리 프로그램이 먼저 정비되어 있어야한다. 교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달란트가 무엇이고, 그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분류해, 교회내 필요한 봉사분야, 즉 적재적소에 배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럴때 그 분야의 일이 생명력을 발할수 있고, 일하는 사람도 보람을 느낄수 있다. 자신과 맞지 않는 분야에서 봉사하기 보다는, 좋아하고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은사로 배치해야 한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훈련받은 평신도가 목회자의 동역자가 되어 뛸 때이다.
연합운동 평신도참여 필수
한국교회의 연합기관도 평신도지도력을 필요로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연합운동 자체가 목회자들만의 운동이 아닐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의 폭넓은 참여가 있을 때 연합운동도 비로소 교회 전체의 운동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아예 ‘연합운동은 평신도운동’이라고 잘라 말할 정도로, 연합운동에 있어서 평신도의 참여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연합운동에 평신도를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참여가 가능한 운동의 논리와 신학, 그리고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목회자보다는 평신도 전문가들의 손에서 더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결국 연합운동에 평신도 전문가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에 있어서 평신도들의 참여는 지극히 미비하기만 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연합운동을 하는 기관, 즉 연합기관의 구조 자체가 평신도들이 참여하기 힘든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합기관에 평신도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은 간사 등 실무자로 일하는 길과 각종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 프로그램 기획 등에 의견을 제시하는 길의 두가지이다. 그러나, 평신도가 실무자로 진출하는 길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해서 위원으로 참여하는 길이 쉬운 것도 아니다. 우선 교단에서 위원으로 파송을 해 줘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연합기관의 각 위원회에서 평신도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경우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평신도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위원 전체가 평신도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불행하게도 이런저런 강연회를 일년에 한두차례 개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평신도와 관련된 각종 정책을 세우거나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평신도를 위해 조직됐다는 위원회가 이정도니, 다른 위원회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 조차 없다.
따라서 연합운동이 평신도들의 지도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무진에 평신도가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각 위원회의 구성에 있어서도 평신도가 일정비율 이상 참여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평신도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소외되고 있는 여성과 청년, 그리고 장애인 등의 대표가 반드시 포함되게 하는 제도적인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다. 현재 연합기관의 실무자 자리는 대부분, 교단을 안배해서 파송을 받는 형식으로 채워진다. 그러다 보니 더욱 평신도들이 실무진으로 진출하기가 어려워졌다. 교단으로서도 ‘책임져야 할’ 성직자들이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총무 선임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논란처럼,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특정 교단의 인사를 실무자로 영입하는 경우도 있어, 능력을 갖춘 평신도가 자리를 차지하기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철저하게 ‘공채’ 원칙을 세워 지키는 것이다.
즉, 한 연합기관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펼쳐 나간다는 방침이 정해졌을 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조건을 제시해 한국교회 전체에 실무자 채용 공고를 내고, 목사나 평신도를 가리지 않고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해외의 연합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일 할수 있는 여건마련도
하지만 여기에도 한두가지 조건은 있다. 우선 연합기관 실무자들에 대한 ‘대우’가 현실화돼야 하고, 또 평신도라 할지라도 오랫동안 실무를 익히고 전문가로 성장할 경우, 그 기관의 책임자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연합기구는 이 두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목사나 평신도를 막론하고 연합기구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운동의 전문가로 자라나는 예가 지극히 드물다. 따라서, 평신도 지도력을 활용하는 방안과 함께, 그 지도력이 다른 걱정 없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방안이 반드시 모색돼야 한다.
이런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평신도 지도력을 길러 내기 위한 인프라가 없다면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연합기구에서 일할 수 있는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각 신학대학에서 연합운동의 이론은 물론, 연합운동 실무와 관련된 교과목을 반
드시 개설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학대학 졸업자들이 꼭 목회의 길로만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연합운동을 위한 평신도 지도력으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신학대학에서는 연합운동의 이론, 즉 ‘에큐메니즘’의 기본적인 내용과 이념만을 교단의 입장에 따라 교육할 뿐, 한국에서 필요한 연합운동의 내용이나, 그것을 위한 실무 지도력 배양 등은 교과과정에 담아 내지 못하고 있다. 연합운동의 평신도 지도력을 길러내기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제도적 보완은 바로 이것이다.
/민성식부국장.우은진차장 공동취재 집필
(1667호 2002. 9. 8)
■ 평신도 지도력부재 (상)
목회자 의존구조 심각
한국교회가 지금의 거대한 성장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담임목회자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교회구조가 한몫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목회자의 권위가 강하고, 담임목회자의 능력에 따라 교회성장이 좌지우지 되는게 한국교회 현실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평신도들의 지도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약했던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교회 성장의 비결은 담임목회자 1인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다수의 잠자고 있는 평신도들의 숨은 지도력을 개발하는데 있다고 많은 교회성장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평신도지도력 개발’이라는 말이 유행된건 최근 몇 년 사이다. 평신도지도자개발 세미나나 전문 기관이 생기고, 평신도 지도력개발을 위한 교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것은 평신도지도자의 양성문제가 얼마만큼 한국교회 성장에 중요한가를 대변해 준다. 이는 그만큼 한국사회와 교회의 상황이 급변화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데, 변화된 가치관과 수많은 교인들을 목회자 몇명이 모두 커버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또 무엇보다도 평신도지도력 양성이 필요한 이유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기 보다는 제자들을 교육하고 양성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정신을 확산한 실천에 비추어 볼수 있다. 더불어 목회자중심의 한국교회 운영은 빠른 성장에는 기여한 부분이 많지만,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교회운영과 다수의 의견을 수렴한 민주적인 교회운영, 참 그리스도의 제자양육에는 소홀하게 했던 요인이다.
그 이유로는 담임목회자에게 너무 의존적인 한국교회 구조상에 문제가 있다. 담임목회자를 제왕처럼 받드는 구조는 목회자에 대한 단순한 존경심에서 벗어나 우상화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으며, 이는 평신도들이 교회밖,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교회안에서만 봉사 잘하고, 예배 잘드리는 신자들만 양성해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밖 사회와 가정, 직장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하는데, 오히려 언론에 부도덕과 각종 비리에 연루된 크리스천들의 모습만이 자주 비춰지는 것은 평신도 교육의 소홀함을 대변해 준다.
평신도지도력의 한 장이라 할 수 있는 당회 역시 일부 남성평신도들에게 집중되어 있고, 여성이나 청년들의 참여는 아직까지 어려운 관문이다. 또 당회원이 되기 위한 지도력 검증의 방법도 오래된 교인, 재력이 있는 교인등 너무 비전문적이다. 교회안 뿐만 아니라, 세상속에서 존경받고 의미있는 삶을 사는 이들보다는 교회에 얼굴 자주비치는 일부 정치적인 평신도가 교회안에도 존재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몇몇교회에서 장로임기제나 신임을 묻는 선거방식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한국교회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평신도 스스로도 이미 기존체제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또 담임목회자 스스로도 영향력을 갖춘 평신도지도자를 꺼려한다. 목회자의 권위와 영향력보다 앞서는 평신도를 좋아할일이 없기 때문이다. 한 교회에서는 목회자와 교회운영문제에 있어서 문제점을 지적한 장로를 내치기까지 했으며, 각종 선교단체에서 훈련받고 그 프로그램을 교회내에서 시도하려는 안수집사에게 시기상조라며 뜻을 굽히게 했다.
평신도참여율 저조
반대로 교회운영에 평신도자도자들의 참여를 바라는 목회자들도 점점 증가추세다. 여름수련회 기획이나 찬양인도, 교회행정, 청년부 지도방안에 이르기까지 리더십을 갖춘 평신도 지도자들을 원하고 있다. 자신의 목회동역자로서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전문지식과 영적파워, 리더십을 갖춘 교회내에 평신도지도자들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을 할 때마다 늘 인력부족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그래서 교회내에 제자훈련프로그램과 여러 가지 훈련교육을 마련해 놓고 평신도들의 참여를 기다린다. 그러나 참여율은 그리 높지 않아 항상 애를 태운다는 것이다.
좀더 많은 평신도들이 훈련됐으면 하는 바램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에 정작 평신도들의 참여가 없으니, 일할 의욕이 상실한다는 것이다. 한 교회 청년부 지도목사는 상하반기로 나눠 제자훈련 코스를 전교인을 대상으로 개방해놨지만, 정작 참여해야할 남성교인, 장로, 청년등의 참여율이 높지 않아 실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서도 한국교회가 평신도지도력을 시급히 개발해 내지 않으면, 21세기 한국교회성장과 존립에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 한다. 일단 평신도지도자를 많이 양성해 내면, 목회자들이 편하다. 목회자 본연의 설교준비나 각자 맡은 분야의 전문성을 더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훈련이나 양육, 봉사, 기획등을 평신도지도자들에게 맡기면 된다. 또 평신도지도자들이 또다른 평신도들을 양육해 내어 영적, 정신적인 삶을 나눌수 있는 수평적 안정감과 교제가 풍성히 일어나 교회는 더 내실있게 성장할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한 평신도지도력은 교회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밖 각 삶의 터전에서 더욱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상의 터전은 목회자가 가서 터치할 수 있는 영향력이 약하다. 그러나 훈련받은 평신도지도자의 역할은 직장과 가정, 학교에서 큰 빛을 발하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하다.
한 회사의 오너인 사람이 크리스천으로서 영적인 지도력을 갖췄다면, 그 직장은 그 기업계와 경제계에서 큰 영향력을 미칠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계나, 공직사회, 의료계, 법조계, 문화예술계등 다양한 분야에서 훈련받은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반증해 준다.
연합운동 확산에 필수
평신도 지도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연합기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연합운동이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한국교회 전체의 운동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의 경우는 아예 ‘연합운동은 평신도운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연합운동이 ‘운동’의 의미보다는 ‘기구’를 중심으로 한 ‘자리’의 의미를 둘러싸고 흘러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연합기관 자체가 어떤 운동체라기 보다는 하나의 기구로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운동의 내용보다는 기관장등 자리가 더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이 오늘 한국 연합기관의 실정이다.
자리가 관심을 끌다 보니 자연히 목사 등 성직자를 중심으로 자리 배분 문제가 논의된다. 설사 목사가 아닌 장로가 기관장이나 실무자가 된다 하더라도, 인물보다는 정치적인 역량에 의해 자리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보니 자연히 연합기관이 당연히 보여 줘야할 특성에 따른 운동적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는 결국 연합기관의 전반적인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같은 현실은 외국과 비교해 볼 때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를 비롯한 외국의 연합기관은, 평신도를 의결기구에 일정비율 이상 반드시 참여시키게 돼 있다. 예를 들어 8인으로 구성된 의장단의 한사람으로 참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강문규씨(전 한국 YMCA 연맹 사무총장)의 경우는 평신도 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WCC의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의 경우, 157명에 이르는 위원 중 평신도가 절반에 가까운 70명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이삼열박사 역시 평신도로서 중앙위원이자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개혁교회연맹(WARC)나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역시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또한 평신도를 참여시키되 여성과 청년을 일정 비율 이상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돼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경우는 해외 연합기구의 총회에서조차 국내의 버릇을 답습, 각 위원이나 대표를 파송하면서 평신도와 여성, 청년의 비율을 지키지 않아 빈축을 사는 경우가 많다.
실무진의 경우는 아예 목사나 평신도의 구분이 없다. 철저하게 공채를 원칙으로 하는 이들 해외 연합기구는, 요구되는 사항을 분명하게 제시한 뒤 이 조건에 부합되는 인물을 선임한다. CCA의 총무로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안재웅박사도 목사가 아닌 평신도이다.
그는 CCA에서 도시농어촌선교(URM) 총무와 부총무등을 역임하고 지난해 총무로 선출됐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처럼 명망을 날리는 그도 국내에서는 지난 1997년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경선에 나섰다가 당시 김상근목사에게 고배를 마셨다.
WCC 강문규의장과 함께 평신도로서 우리나라 연합운동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는 오재식씨(현 월드비전 회장)를 들 수 있다. 세계기독학생회총연맹(WSCF) 아시아 태평양지역 총무를 지내는 등 해외에서 활동하던 그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장으로 국내 연합운동에 복귀한다. 그리고 지난 1987년 2월, 그가 소속돼 있던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그를 부총무로 승진시키자는 안건을 교회협 실행위원회에 제출한다.
이는 차기 교회협 총무를 기장이 맡을 차례라는 전제 아래 오재식씨를 그 자리에 앉히겠다는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안건은 부결됐고, 평신도가 교회협 총무가 될 가능성은 이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오재식씨는 WCC 정의·평화·창조질서의 보전(JPIC) 담당 국장으로 부임, 다시 ‘해외생활’을 시작했다.
안재웅총무와 오재식회장의 사례는, 우리 나라의 연합기관이 평신도 지도력을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연합운동의 전문가들을 해외로만 돌게 만든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연합기관장 진출난항
우리나라 연합운동에 있어서 평신도 지도력이 없어지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안재웅·오재식 두 사람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평신도 지도력이 연합운동 책임자로 진출하는 길이 번번이 막혀 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교회협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다른 연합기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책임자가 아닌 실무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실무진에 평신도 지도력이 상당부분 진출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실무 간사급에서나마 일하는 평신도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교회협의 경우, 부장급 이상 실무자는 모두 목사이며, 평신도는 여성 및 신학·국제위원회 담당 간사와 통일 및 정보통신담당간사, 그리고 홍보담당 간사 정도이다.(비서와 경리 등 행정직은 제외) 한기총 역시 서무나 행정 등을 제외한 프로그램 담당 간사 중 평신도는 사무총장 정연택장로 한사람 뿐이다.
물론 연합기구들 중에서 평신도가 책임자로 재직하고 있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성서공회의 김호용총무나 기독교사회봉사회의 김종헌총무처럼 실무자를 거쳐서 책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고, 교단간의 협상과 담합 등 ‘정치적인 과정’에 의해 진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에게 평신도로서의 지도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에 있어서 평신도 지도력이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민성식부국장·우은진차장 공동취재 집필
(1666호 2002. 9. 1)
■ 평신도 지도력부재(하)
21세기는 평신도시대
21세기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의 시대가 될 것이라면 너무 큰 환상을 꿈꾸는 것일까? 그러나 평신도의 지도력을 개발하면, 목회자도 편하고 평신도 자신들도 자신이 받은 은사를 교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다. 말그대로 목회자가 쏟아야할 많은 분량의 일을 평신도와 나눠지기에 목회자는 목회 본연의 임무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목회자 중심의 교회운영을 다수의 지도력을 갖춘 평신도들과 함께 함으로써 교회가 보다더 건강해 질 수 있다. 부산의 모교회는 담임목회자와 당회 장로들이 함께 일주일 한번씩 제자훈련을 함으로써, 담임목회자의 목회비전을 장로들과 나누고, 장로들의 영적성숙에도 큰 보탬이 되어 당회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고 한다.
특히 교회운영에 있어서 청년들의 봉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각 교회의 청년에 대한 지도력양성 코스나 제자훈련 등은 미래의 교회일군과 현재의 필요한 일군을 양성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부분이다. 강남의 모교회는 아애 청년들이 없으면, 교회
학교부터 시작해 성가대, 주차관리, 인터넷사역, 문서사역, 사회봉사활동 등이 멈춰버린다.
그만큼 한국교회 안에 청년들이 없으면 각종 살아있는 교회봉사활동은 기대키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것. 그러나 이런 인재들을 그냥 봉사활동에 맨몸으로 뛰어들게 할 수는 없다. 신앙적인 훈련과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 교육을 받은후, 봉사활동에 참여할 때 열배의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젊은 날의 지도력 훈련은 중년기의 남여선교회를 거치며 교회안의 튼튼한 지도력으로 커나가게 된다는 점이다.
고척동의 모교회는 남성교인들의 지도력 개발을 위해 자체적으로 나이별 성경공부 모임이 만들어졌다. 20대,30대, 40대, 50대등 각 기별로 사랑방모임을 만들어 남성교인들이 성경책과 공과교재를 들고 집집마다 모여 기도와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이후 이 교회는 남성교인들이 교회의 각종 행사나 손이 필요로 할때마다 모이게해서 신선하면서도 든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방화동의 한교회는 변두리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사역분야에 평신도들의 교육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인터넷사역이나, 교회문서에 대한 디자인교육, 드라마나 연극공연을 위한 연기훈련, 음향시스템 교육, 비디오나 촬영기술 습득교육등이 그것이다. 이런 분야는 몸과 지식으로 참여하는 봉사와 달리, 전문적인 기술이 요하는 분야라 교회의 재정적인 지원이 없으면 혼자 독학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교회는 이 분야에 일찌기 투자를 아끼지 않아 중형교회이지만, 멀티미디어시설은 강남의 대형교회 수준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평신도 지도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교회내 제도적인 보완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평신도가 의견을 말할 수 있고, 기획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자율권을 주는 것을 말한다.
제기동의 모교회는 여성장로와 청년이 당회원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자칫 소홀하기 쉬운 교회여성과 청년문제에 대해서도 재정적, 정신적 관심을 기울일수 있도록 했다. 개봉동의 모교회 평신도인 김모안수집사는 이번 여름수련회를 남선교회, 청년, 여전도회 등 각부서 장과 총무들이 모여 수련회 계획을 짰다며, 목회자들은 나중에 최종 보고만 받았을뿐 전교인 수련회를 평신도들이 기획하고 집행해 휼륭하게 마쳤다며, 이번 기회를 계기로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힌다.
은사별 배치 필요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의 모든 중요사안을 평신도들에게만 맡겨 놓기를 불안해 한다. 평신도지도자들이 과연 그 말그대로 영적, 정신적 성숙함과 더불어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췄냐는 말이다.
직업도 없는 모교회 장로는 고등부 부감을 맡으면서, 사사건건 교사와 담당 교역자에게 시어머니처럼 간섭을 해댄다. 오랜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청소년문제에 잘 알지도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문학의 밤이나 고등부수련회, 동아리활동, 성가대활동등 고등부의 모든 활동에 대해 교사들과 전도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엉뚱한 사안을 회의시간에 내놓아 담당교역자를 힘들게 한다.
이런 예는 교회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다. 한마디로 교역자가 믿고 의지할만한 평신도 동역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교회도 오래 다닌 평신도라도 성품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거나 교회일에는 문외한일 경우가 많다는 것.
그래서 각 분야의 지도력과 영적인 자질을 갖춘 훈련이 교회 내외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평신도가 지도력을 펼칠 수 있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장치마련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평신도 스스로 리더십을 갖추고 건강한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지도자로 서기위한 노력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루라도 배우지 않으면 뒤쳐져지는 시대에 과거의 모습에 연연해 하며 훈련받고 교육받지 않으면 지금의 시대상황에 맞는 기획력이나 지도력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내 교인들에 대한 은사관리 프로그램이 먼저 정비되어 있어야한다. 교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달란트가 무엇이고, 그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분류해, 교회내 필요한 봉사분야, 즉 적재적소에 배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럴때 그 분야의 일이 생명력을 발할수 있고, 일하는 사람도 보람을 느낄수 있다. 자신과 맞지 않는 분야에서 봉사하기 보다는, 좋아하고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은사로 배치해야 한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훈련받은 평신도가 목회자의 동역자가 되어 뛸 때이다.
연합운동 평신도참여 필수
한국교회의 연합기관도 평신도지도력을 필요로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연합운동 자체가 목회자들만의 운동이 아닐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의 폭넓은 참여가 있을 때 연합운동도 비로소 교회 전체의 운동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아예 ‘연합운동은 평신도운동’이라고 잘라 말할 정도로, 연합운동에 있어서 평신도의 참여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연합운동에 평신도를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참여가 가능한 운동의 논리와 신학, 그리고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목회자보다는 평신도 전문가들의 손에서 더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결국 연합운동에 평신도 전문가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에 있어서 평신도들의 참여는 지극히 미비하기만 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연합운동을 하는 기관, 즉 연합기관의 구조 자체가 평신도들이 참여하기 힘든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합기관에 평신도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은 간사 등 실무자로 일하는 길과 각종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 프로그램 기획 등에 의견을 제시하는 길의 두가지이다. 그러나, 평신도가 실무자로 진출하는 길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해서 위원으로 참여하는 길이 쉬운 것도 아니다. 우선 교단에서 위원으로 파송을 해 줘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연합기관의 각 위원회에서 평신도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경우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평신도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위원 전체가 평신도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불행하게도 이런저런 강연회를 일년에 한두차례 개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평신도와 관련된 각종 정책을 세우거나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평신도를 위해 조직됐다는 위원회가 이정도니, 다른 위원회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 조차 없다.
따라서 연합운동이 평신도들의 지도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무진에 평신도가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각 위원회의 구성에 있어서도 평신도가 일정비율 이상 참여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평신도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소외되고 있는 여성과 청년, 그리고 장애인 등의 대표가 반드시 포함되게 하는 제도적인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다. 현재 연합기관의 실무자 자리는 대부분, 교단을 안배해서 파송을 받는 형식으로 채워진다. 그러다 보니 더욱 평신도들이 실무진으로 진출하기가 어려워졌다. 교단으로서도 ‘책임져야 할’ 성직자들이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총무 선임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논란처럼,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특정 교단의 인사를 실무자로 영입하는 경우도 있어, 능력을 갖춘 평신도가 자리를 차지하기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철저하게 ‘공채’ 원칙을 세워 지키는 것이다.
즉, 한 연합기관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펼쳐 나간다는 방침이 정해졌을 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조건을 제시해 한국교회 전체에 실무자 채용 공고를 내고, 목사나 평신도를 가리지 않고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해외의 연합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일 할수 있는 여건마련도
하지만 여기에도 한두가지 조건은 있다. 우선 연합기관 실무자들에 대한 ‘대우’가 현실화돼야 하고, 또 평신도라 할지라도 오랫동안 실무를 익히고 전문가로 성장할 경우, 그 기관의 책임자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연합기구는 이 두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목사나 평신도를 막론하고 연합기구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운동의 전문가로 자라나는 예가 지극히 드물다. 따라서, 평신도 지도력을 활용하는 방안과 함께, 그 지도력이 다른 걱정 없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방안이 반드시 모색돼야 한다.
이런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평신도 지도력을 길러 내기 위한 인프라가 없다면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연합기구에서 일할 수 있는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각 신학대학에서 연합운동의 이론은 물론, 연합운동 실무와 관련된 교과목을 반
드시 개설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학대학 졸업자들이 꼭 목회의 길로만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연합운동을 위한 평신도 지도력으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신학대학에서는 연합운동의 이론, 즉 ‘에큐메니즘’의 기본적인 내용과 이념만을 교단의 입장에 따라 교육할 뿐, 한국에서 필요한 연합운동의 내용이나, 그것을 위한 실무 지도력 배양 등은 교과과정에 담아 내지 못하고 있다. 연합운동의 평신도 지도력을 길러내기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제도적 보완은 바로 이것이다.
/민성식부국장.우은진차장 공동취재 집필
(1667호 200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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