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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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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2/21(금) 15:37
■ 신학생 교육전도사의 현실(상)
신학생은 심부름꾼(?)
학부 신학생들의 개교회 봉사가 신학교육의 실습을 벗어나 ‘심부름꾼’, ‘사환’의 취급을 받고 있어 원성을 사고 있다.
목회자 및 평신도지도자들은 학부 신학생들을 ‘예비 성직자’로 취급하고, 신학교육의 현장실습으로 보기보다 ‘학비를 지원해 주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취급, 신학생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부 신학생들은 개교회에서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교사 및 ‘교육전도사’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은 신학교육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미래의 목회소명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교회의 정식 전도사는 아니지만, 교인들로부터는 ‘전도사’로 불리고 있으며, 그러한 명칭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정식 사례비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신학대학교에서 배우는 신학 수업의 현장 실습으로, 교육의 연장으로 삼고, 자신의 소명의식을 개교회에서 계발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학비의 전부 또는 일부분을 보조받는다.
문제는 이들의 지위와 걸맞는 최소한의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목상의 전도사라 할지라도, 교사 및 전도사의 역할을 하는 한 이들에 대한 대우와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불만을 터뜨린다.
다만 이것이 표면화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신분이 학생이고, 이를 표출할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신학대학교 내에서 같은 처지의 신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부당한 처우를 한탄하고, 담임목회자 및 평신도지도자를 도마에 올려 비난하는 것에서 위로를 삼고 분을 삭인다.
학부신학생들이 터뜨리는 최대의 불만은 개교회에서 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심부름꾼’, 또는 ‘막일꾼’으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일반 교사들과는 달리 선배 목회자로부터 막말을 듣는 것이 예사고, 사소한 개인 심부름을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고 전하고 있다.
심지어는 교회의 장로, 집사들의 부당한 지시를 받기도 하고, 이들의 사적 심부름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경험하고 있다는 불만을 터뜨린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목회자 또는 부교역자들로부터 심한 욕설이 섞인 꾸지람을 듣고 인간적 모욕감을 느낀 후 자신의 목회적 전망을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는 이러한 부당한 처사로 인해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교회를 나오지 않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심하게는 폭력도 난무한다는 말을 전하는 신학생도 눈에 띄고 있다.
개교회의 봉사사역이 신학교육의 연장이라는 당위적 선언을 넘어선지는 오래전이다. 아르바이트의 개념으로 전락시키게 하는 것은 단지 신학생들의 의식에만 문제의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시스템에 기인하는 것이 더 근본적이라는 지적이 강하다.
교역자들이 학부 신학생들을 대하는 의식이 목회적 소명의식을 키우는 예비목회자로 보기 보다 손쉽게 부릴 수 있는 ‘후배’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고, 막일을 시키고 심부름도 시킬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과 교역자들은 신학생들을 대우해주고, 이들이 바른 목회적 훈련과 경험을 쌓도록 지도하고 있지만, 일부가 여전히 잘못된 목회적 훈련관을 갖고 잇는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내가 이만큼 고생했으니 너희도 고생해라’는 인식에 따라 꿈과 비전을 가진 어린 신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목회자의 인식전환 절실
신학생들은 현장실습으로 나가는 교회현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신학생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지, 사역이 아니라 고통이 되고 있는 현 주소의 문제를 제기한다.
신학생들은 대부분 현장실습의 대가로 등록금을 지원 받고 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의치 못한 학생들이 자신의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자신이 자란 교회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목회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대학교를 다니면서 교육전도사로 많은 사역을 하고 있다.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는 것이 겉모습은 좋아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학생들이 교회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교회는 신학생에게 도에 넘치는 임무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소 교회에서는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 뿐만 아니라 교회의 전반적인 일들을 감당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의 모든 잡일을 도맡아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학대학교에 재학중인 모 학생은 중형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 했던 경험들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교회가 작아 모든 일을 감당하게 되어 많은 부담을 느끼고 육체적으로도 매우 피곤했다. 학업이 먼저가 아니라 교회스케줄에 따라 나의 모든 것이 움직였다. 내가 학생인지 아니면 풀타임 전도사인지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고 자신의 어려웠던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신학생들이 한 전문분야의 실습생이 아니라 단지 교회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또 교회는 신학생이 슈퍼맨이길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한분야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잘하길 기대하고 있다. 음악, 교육, 리더십, 전도 등을 고루 갖춘 학생이길 바란다.
그래서 신학생들은 이에 대해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낀다. 또한 주일날 학생의 출석률이 저조할 때에도 모든 책임을 교육전도사에게 전가하여 주일 아이들 모으기에 진땀을 빼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선교나 전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단지 출서률에 얽매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교육전도사의 위치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원칙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해야 교육전도사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대학교 재학 중인 3,4학년을 교육전도사로 임명한다. 이러한 처사는 호칭의 문제에도 그렇고 선생님보다는 전도사의 직급이 우위에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20세 초반에 전도사의 직함을 받아 사역을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따르는 교인의 수는 많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담임 목회자의 인식 또한 신학생을 동역자로 생각하기 보다 나이 어린 학생이 교회에 와서 봉사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일쑤다.
신학생의 직함은 교육전도사이지만 교회청년이나 선생님으로밖에 인정받지 못하는게 지금 교회의 현실이다. 또한 일부교회에서는 텃세까지 심해 신학생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데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목사들의 시다바리(?)
신학생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함께 직함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교인들의 인식이 바뀌어져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인식이 전환되어 신학생들에게 올바른 목회의 현장을 가르치고 깨달게 하는데 주력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신학생들의 교육전도사 사역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면서 교육전도사로 봉사하고 있는 현장의 신학생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날로 가중되고 있다.
이 같은 불만은 우리가 흔히 교육전도사라고 하면 신학생의 입장에서는 대개 교회학교에서 아동 및 학생들을 교육하는 전도사라고 생각하겠지만, 교회의 입장에서는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받는 준 전도사’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H대학교 신학과에 다니던 P씨는 얼마전 군대에서 제대 후 서울 송파에 있는 한 교회에서 이른바 ‘교육전도사’라는 것을 하게 됐다. P씨는 처음에는 교회학교 아이들과학생부이고 하는 일은 교회의 많은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흥분되기까지 했다고 털어놓고 있다. 그러나 P씨의 이런 기대는 1개월을 못갔다.
P씨는 담임목사의 지방출장으로 새벽예배를 담당하게 됐다. P씨는 경험도 별로 없었지만, 교육전도사로 사역하게 된지 2주만에 교인들 앞에서 설교를 한다는 것이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것들이 학업을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일주일에도 3일 이상씩 새벽예배를 준비하는 것이 신학생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P씨는 새벽예배 준비를 위해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하고, 설교 준비를 위해서도 전날 밤 12시까지는 준비를 해 학업을 하면서 많이 힘들어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P씨는 새벽예배 후 항상 교회 청소를 해야하는 부담까지 있어 그 피로감은 더할나위 없이 계속됐다.
실제로 이런 P씨의 경우처럼 담임목사의 횡포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경우도 있어 일각에서는 교회의 목사가 일하는 방법은 전도사한테 시키면 된다는 웃지못할 이야기 까지 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들의 발생은 교회와 신학생들의 입장차이에서 비롯된다고는 하지만, 우선 교회는 고용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신학생 교육전도사의 인건비는 우선 60만원을 밑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이들에게 “너는 배우는 신학생이니, 내가 하는 것을 잘 배워 훌륭한 목회자가 되라”면서 온갖 개인적인 일까지 시키고 있는 현실이며, 내가 월급을 주고 있으니, 넌 시키는대로 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학생들 중에서도 남학생의 경우, P씨의 경우처럼 대부분이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교육전도사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교육전도사라는 제도가 학점에 많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교역자로서의 도움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 P씨의 지적이다.
남자들의 경우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아르바이트도 교육전도사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것이 P씨의 지적이다. 이렇게 P씨와 주씨의 경우처럼, 교육전도사라는 제도로 인해 피해를 입어 교역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해 목회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문제는 P씨의 경우 외에도 대학원을 다니는 주모씨도 같은 경우를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주씨는 심지어 담임목사의 자녀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등 개인적인 일까지 시켜 불만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주씨는 “난 교역자로서 담임목사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면서 교육전도사제도 자체에 대해 어떤 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교육전도사제도의 장·단점은 있다고 말한다. 우선 재정적인 문제에 대해 교회에서는 비용이 적게드는 인력이기 때문에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입장이며 신학생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라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은 교회의 인력이 저비용을 우선해 질적인 저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정식 교육과정을 모두 거친 정식 전도사가 아닌, 과정중에 있는 학생에게 전도사의 역할을 맡김으로해서 목회자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교육전도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학업에 집중해야할 시기에 교회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는 단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신학생이나 교인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측면에서 다시 검토해 봐야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홍순현차장, 박건상기자, 이현민 기자 공동취재·집필(1687호.2003.2.23)
◎ 2003/3/4(화) 09:37
■ 신학생 교육전도사의 현실(하)
교육전도사 권리와 의무 다해야
신학생들의 교육전도사제도에 대해 일선목회자들은 도대체 학생인지 전도사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들은 목회자들 사이에서 만연되어 있다.
실제로 서울 모교회의 원로목사인 김모목사는 “신학생들의 교육전도사 실습에 참여하고 있는 신학생들이 예전부터 자신들의 입지를 좁게 만든 것이다. 이들은 교회로 올 때 교수들의 소개로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인데, 학생이라는 입장을 이용해 실습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다반사”라고 밝히고 있다.
학생들의 원성들은 모두가 선배 신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게 김목사의 의견이다. 김목사는 목회를 시작한지 20여년이 되어가는데 자신의 직분대로 교육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했던 사람은 지금 자신의 교회 담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교육전도사의 파견으로 교인들이 많은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난 사례도 있다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지난 12년 전 교육전도사로 온 고모씨가 처음 교회를 찾았을 때는 너무나 성실한 모습으로 교회에 많은 시간을 봉사하면서 담임목사인 김목사는 물론이고 교인들로 부터도 목사 이상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고씨는 당시 여자친구와의 문제로 학생들과 상담은 물론 교사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 경우는 예사고, 주일예배에도 참석하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게다가 고씨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 김목사가 경찰서까지 가서 보증을 서고, 풀려난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목사는 고씨의 이런 행동이 젊은 나이에 한번쯤은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한번 호되게 야단을 치고는 다시 고씨를 믿고, 교육전도사를 맡기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금 금요 철야예배를 앞두고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고씨가 술집에서 싸움이 붙어 상대방에게 전치 5주의 상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김목사는 더 이상은 안되겠다면서 고씨 대신 합의를 해주고는 고씨를 학교로 다시 돌려보냈다.
고씨는 교육전도사로 일하면서 당시로서는 많은 월급을 주면서 고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김모사는 고씨외에도 많은 교육전도사를 거쳤지만,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내 교회라는 생각보다는 여기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최근 교회를 개척해 교인 40여명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는 황모목사는 얼마전 자신이 수원의 모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으면서 많은 신학생들을 거쳤다.
황목사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황목사는 특히 “나도 늦은 나이에 목회를 시작해 교육전도사시절에 나이가 36세로 다른 학생들 보다 많은 나이여서 어려운 점도 있었으나, 목회자들의 부당한 처사에는 당당히 맞섰으나, 지금은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작은 모임이나 기도회를 맡기는 것 조차 거부하면서 실습을 주체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황목사는 또 최근 교육전도사를 받아 사역을 하면서 교육전도사의 월급도 자신의 월급과 비슷한 120만원가량을 지급하면서 신학생의 학자금은 물론 어려운 가정 형편도 거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목사는 이 학생에게 자신의 동역자라는 것을 일깨워주면서 교이늘과의 교감도 함께 느끼게 하고 있다.
황목사는 실제로 교육전도사가 오는날 마치 후임모사가 오는 것처럼 마을 잔치를 벌여 지역사람들에게도 소개를해 학생이 스스로 전도를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물론 교육전도사가 건의하는 사업들에 전폭적인 후원을 해 교회도 많은 부흥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황목사는 “교육전도사의 부족한 점은 당연히 있다. 그래야 만이 학생이라는 것을 목회자들은 알아야 하며, 학생들도 자신의 교육받을 권리를 먼저 알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올바른 실습의 장이 열릴 것”이라고 황목사는 꼬집었다.
이렇게 모범적인 사례들도 많이 있었으나 아직도 학생들과 몇몇 목회자들의 생각 차이로 인해 교육전도사제도는 아직도 많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의 불만인 것이 현실이다.
목회자들 생각의 변환 절실
신학생 교육 전도사 역할이 목회자의 심부름꾼에 그치는 현실 속에서 신학생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사역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교회 가기 전의 설렘이나 가슴 속에 부푼 비전들은 현실과 부딪히면서 하나둘씩 사라진다고 힘들었던 순간들을 말하고 있다.
신학교에 재학 중인 Y학생은 지난 학기부터 등록금을 보조해주는 모 교회에 교육전도사로 들어갔다고 한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교육목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시작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열정은 얼마가지 못해 부담과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다.
목사님은 Y학생에게 토요일과 주일에 교육학교 봉사하는 것도 모자라 중등부까지 맡겨 버렸고 심지어 어른 성가대까지 책임을 전가 했다고 한다. 그래도 하나님의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치만 육체적으로 오는 피곤함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Y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나 걸핏하면 목사님은 Y씨에게 수요예배 설교를 갑자기 시키거나 교회청소, 심지어 목사님의 차를 손으로 세차까지 시키는 등 끊임없는 잡일은 Y씨를 지치게 만들었다고 한다.
주일날 아이들 한명이 안나올 때마다 목사님은 심하게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한다. 이 뿐 아니라 목사님의 사적인 심부름까지 하면서 개인비서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Y씨는 주말이 기쁘게 예배드리는 날이 아니라 일에 치여 쉬고 싶은 생각만 드는 날이라고 말했다.
목사님의 행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목사님은 교인들 앞에서 이름을 부르며 청년과 똑같은 대우를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설교나 공과 공부한 내용을 녹음해 하나하나 지적하며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한다.
교인들 또한 전도사의 직분을 무시하고 텃세를 부리는 등 설자리가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Y씨은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가슴에 쓰라린 멍만 가득 안고 교회를 나왔다고 한다.
Y씨는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 보면서 “교회현실이 이렇다. 돈으로 사람을 고용했으니 이 사람은 일을 시켜도 된다는 식의 인식이 너무나 많다. 학비를 보조하고 현장의 일을 가르쳐주는 동역자가 아니라 신학생은 교회 경비원과 비서의 역할까지도 감당해야 한다”면서 교육전도사 제도의 비합리성을 지적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목회자는 신학생을 자신의 동역자가 아니라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고용인으로 생각하는 발상이 지배적이다. 신학생 또한 현장 실습이라는 명목아래 교회에서 사역을 하지만 일을 배우기보다는 잡일에 치여서 자신의 학업과 신앙생활마저 망쳐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교육전도사의 문제는 사례비라는 명목이 걸려 있어 많은 학생들이 어려움을 당해도 이런 문제를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학생들은 자신의 등록금을 위해서 이러한 어려움쯤은 감수해야지 하는 인내심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교회가 신학생에게 주는 부담감은 도를 지나쳐서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할 문제가 되버린 것이 현실이다.
신학생의 문제에 있어서 목회자의 인식이 변화해야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목회자가 따뜻한 마음으로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존중한다면 이러한 문제는 더 이상 우리들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당사자간 올바른 위치 해석 필요
교회에서의 학부 신학생들의 위치는 분명 애매하다. 정식 전도사도 아니고, 일반 교사로서 대우하기에도 뭔가 부족한 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3,4학년 학생들에게는 교육전도사로 예우해 주지만, 그 직제도 교회내에서 일반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회에서 정식으로 채용한 ‘교육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학비를 지원받고 교회학교 등지에서 봉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어떠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신학생들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교회 목회자나 선배 교역자들이 후배 신학생을 바라보는 시각과 교회에서 봉사하는 신학생이 느끼는 애로점이 다른 것이다.
목회자의 가족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어준 앞서의 사례를 예로 들어 보더라도 이는 쉽게 대별된다. 다시 말해 신학생은 목회자의 사생활이라 할 수 있는 가족의 졸업식에 불려서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본인이 해야 할 일이냐는 차원에서 불만을 터뜨릴 수 있다.
반면 목회자는 후배이고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는 학부신학생이 자신의 가족 졸업식에 참석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과연 불만을 가질 사안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교회생활의 일부이고, 봉사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신학생을 제대로 훈련시키지 못한 목회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인주의와 독립성이 강한 요즘의 청년들을 과거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도 이러한 세대적 차이를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재 중역을 맡고 있는 목회자들은 과거 학부신학생 시절부터 몸으로 부딪히는 목회생활을 해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선택적 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이었다. 교역자가 절대다수로 부족한 교회 현실에서 교육전도사, 또는 전도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학부 시절부터 도시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신학생들이 부지기수였고, 농촌교회의 부름으로 직접 담임의 역할을 하는 전도사도 많은 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고, 목회적 상황도 변했다. 과거와 달리 목회자를 비롯한 교역자가 과잉공급되는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교회개척도 과거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과거에 비해 학부 신학생들의 역할은 극히 축소됐으며, 그 지위도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학부신학생들의 교회봉사는 일정의 벽에 부딪히고 있으며, 일부는 자괴감을 일부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학부신학생의 교회봉사는 신학공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전도사의 역할이든 교사의 역할이든 교회에서 하고 있는 교회봉사는 훗날 훌륭한 목회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신학생들이 부딪히는 벽도, 모순점과 문제점도, 부당한 처우도 목회적 소양을 쌓는데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 목회자들은 과거 학부신학생 시절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목회적 소양을 키우는 과정은 어떠해야 할지, 훈련을 시키는 목회적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할지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 있다는 말이다.
목회적 훈련은 뒤로한 채 교회의 ‘심부름꾼’으로 전락시키는 모습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는 신학생들의 요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훌륭한 목회자로 훈련되는 목회준비생들이 길러지기 이전에 불만과 적의가 가득찬 후배를 양성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홍순현차장·박건상기자·이현민기자 공동 취재·집필
(1688호.2003.3.2)
■ 신학생 교육전도사의 현실(상)
신학생은 심부름꾼(?)
학부 신학생들의 개교회 봉사가 신학교육의 실습을 벗어나 ‘심부름꾼’, ‘사환’의 취급을 받고 있어 원성을 사고 있다.
목회자 및 평신도지도자들은 학부 신학생들을 ‘예비 성직자’로 취급하고, 신학교육의 현장실습으로 보기보다 ‘학비를 지원해 주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취급, 신학생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부 신학생들은 개교회에서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교사 및 ‘교육전도사’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은 신학교육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미래의 목회소명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교회의 정식 전도사는 아니지만, 교인들로부터는 ‘전도사’로 불리고 있으며, 그러한 명칭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정식 사례비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신학대학교에서 배우는 신학 수업의 현장 실습으로, 교육의 연장으로 삼고, 자신의 소명의식을 개교회에서 계발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학비의 전부 또는 일부분을 보조받는다.
문제는 이들의 지위와 걸맞는 최소한의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목상의 전도사라 할지라도, 교사 및 전도사의 역할을 하는 한 이들에 대한 대우와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불만을 터뜨린다.
다만 이것이 표면화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신분이 학생이고, 이를 표출할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신학대학교 내에서 같은 처지의 신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부당한 처우를 한탄하고, 담임목회자 및 평신도지도자를 도마에 올려 비난하는 것에서 위로를 삼고 분을 삭인다.
학부신학생들이 터뜨리는 최대의 불만은 개교회에서 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심부름꾼’, 또는 ‘막일꾼’으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일반 교사들과는 달리 선배 목회자로부터 막말을 듣는 것이 예사고, 사소한 개인 심부름을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고 전하고 있다.
심지어는 교회의 장로, 집사들의 부당한 지시를 받기도 하고, 이들의 사적 심부름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경험하고 있다는 불만을 터뜨린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목회자 또는 부교역자들로부터 심한 욕설이 섞인 꾸지람을 듣고 인간적 모욕감을 느낀 후 자신의 목회적 전망을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는 이러한 부당한 처사로 인해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교회를 나오지 않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심하게는 폭력도 난무한다는 말을 전하는 신학생도 눈에 띄고 있다.
개교회의 봉사사역이 신학교육의 연장이라는 당위적 선언을 넘어선지는 오래전이다. 아르바이트의 개념으로 전락시키게 하는 것은 단지 신학생들의 의식에만 문제의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시스템에 기인하는 것이 더 근본적이라는 지적이 강하다.
교역자들이 학부 신학생들을 대하는 의식이 목회적 소명의식을 키우는 예비목회자로 보기 보다 손쉽게 부릴 수 있는 ‘후배’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고, 막일을 시키고 심부름도 시킬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과 교역자들은 신학생들을 대우해주고, 이들이 바른 목회적 훈련과 경험을 쌓도록 지도하고 있지만, 일부가 여전히 잘못된 목회적 훈련관을 갖고 잇는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내가 이만큼 고생했으니 너희도 고생해라’는 인식에 따라 꿈과 비전을 가진 어린 신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목회자의 인식전환 절실
신학생들은 현장실습으로 나가는 교회현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신학생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지, 사역이 아니라 고통이 되고 있는 현 주소의 문제를 제기한다.
신학생들은 대부분 현장실습의 대가로 등록금을 지원 받고 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의치 못한 학생들이 자신의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자신이 자란 교회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목회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대학교를 다니면서 교육전도사로 많은 사역을 하고 있다.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는 것이 겉모습은 좋아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학생들이 교회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교회는 신학생에게 도에 넘치는 임무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소 교회에서는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 뿐만 아니라 교회의 전반적인 일들을 감당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의 모든 잡일을 도맡아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학대학교에 재학중인 모 학생은 중형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 했던 경험들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교회가 작아 모든 일을 감당하게 되어 많은 부담을 느끼고 육체적으로도 매우 피곤했다. 학업이 먼저가 아니라 교회스케줄에 따라 나의 모든 것이 움직였다. 내가 학생인지 아니면 풀타임 전도사인지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고 자신의 어려웠던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신학생들이 한 전문분야의 실습생이 아니라 단지 교회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또 교회는 신학생이 슈퍼맨이길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한분야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잘하길 기대하고 있다. 음악, 교육, 리더십, 전도 등을 고루 갖춘 학생이길 바란다.
그래서 신학생들은 이에 대해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낀다. 또한 주일날 학생의 출석률이 저조할 때에도 모든 책임을 교육전도사에게 전가하여 주일 아이들 모으기에 진땀을 빼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선교나 전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단지 출서률에 얽매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교육전도사의 위치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원칙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해야 교육전도사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대학교 재학 중인 3,4학년을 교육전도사로 임명한다. 이러한 처사는 호칭의 문제에도 그렇고 선생님보다는 전도사의 직급이 우위에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20세 초반에 전도사의 직함을 받아 사역을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따르는 교인의 수는 많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담임 목회자의 인식 또한 신학생을 동역자로 생각하기 보다 나이 어린 학생이 교회에 와서 봉사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일쑤다.
신학생의 직함은 교육전도사이지만 교회청년이나 선생님으로밖에 인정받지 못하는게 지금 교회의 현실이다. 또한 일부교회에서는 텃세까지 심해 신학생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데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목사들의 시다바리(?)
신학생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함께 직함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교인들의 인식이 바뀌어져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인식이 전환되어 신학생들에게 올바른 목회의 현장을 가르치고 깨달게 하는데 주력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신학생들의 교육전도사 사역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면서 교육전도사로 봉사하고 있는 현장의 신학생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날로 가중되고 있다.
이 같은 불만은 우리가 흔히 교육전도사라고 하면 신학생의 입장에서는 대개 교회학교에서 아동 및 학생들을 교육하는 전도사라고 생각하겠지만, 교회의 입장에서는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받는 준 전도사’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H대학교 신학과에 다니던 P씨는 얼마전 군대에서 제대 후 서울 송파에 있는 한 교회에서 이른바 ‘교육전도사’라는 것을 하게 됐다. P씨는 처음에는 교회학교 아이들과학생부이고 하는 일은 교회의 많은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흥분되기까지 했다고 털어놓고 있다. 그러나 P씨의 이런 기대는 1개월을 못갔다.
P씨는 담임목사의 지방출장으로 새벽예배를 담당하게 됐다. P씨는 경험도 별로 없었지만, 교육전도사로 사역하게 된지 2주만에 교인들 앞에서 설교를 한다는 것이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것들이 학업을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일주일에도 3일 이상씩 새벽예배를 준비하는 것이 신학생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P씨는 새벽예배 준비를 위해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하고, 설교 준비를 위해서도 전날 밤 12시까지는 준비를 해 학업을 하면서 많이 힘들어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P씨는 새벽예배 후 항상 교회 청소를 해야하는 부담까지 있어 그 피로감은 더할나위 없이 계속됐다.
실제로 이런 P씨의 경우처럼 담임목사의 횡포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경우도 있어 일각에서는 교회의 목사가 일하는 방법은 전도사한테 시키면 된다는 웃지못할 이야기 까지 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들의 발생은 교회와 신학생들의 입장차이에서 비롯된다고는 하지만, 우선 교회는 고용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신학생 교육전도사의 인건비는 우선 60만원을 밑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이들에게 “너는 배우는 신학생이니, 내가 하는 것을 잘 배워 훌륭한 목회자가 되라”면서 온갖 개인적인 일까지 시키고 있는 현실이며, 내가 월급을 주고 있으니, 넌 시키는대로 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학생들 중에서도 남학생의 경우, P씨의 경우처럼 대부분이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교육전도사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교육전도사라는 제도가 학점에 많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교역자로서의 도움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 P씨의 지적이다.
남자들의 경우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아르바이트도 교육전도사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것이 P씨의 지적이다. 이렇게 P씨와 주씨의 경우처럼, 교육전도사라는 제도로 인해 피해를 입어 교역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해 목회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문제는 P씨의 경우 외에도 대학원을 다니는 주모씨도 같은 경우를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주씨는 심지어 담임목사의 자녀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등 개인적인 일까지 시켜 불만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주씨는 “난 교역자로서 담임목사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면서 교육전도사제도 자체에 대해 어떤 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교육전도사제도의 장·단점은 있다고 말한다. 우선 재정적인 문제에 대해 교회에서는 비용이 적게드는 인력이기 때문에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입장이며 신학생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라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은 교회의 인력이 저비용을 우선해 질적인 저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정식 교육과정을 모두 거친 정식 전도사가 아닌, 과정중에 있는 학생에게 전도사의 역할을 맡김으로해서 목회자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교육전도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학업에 집중해야할 시기에 교회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는 단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신학생이나 교인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측면에서 다시 검토해 봐야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홍순현차장, 박건상기자, 이현민 기자 공동취재·집필(1687호.2003.2.23)
◎ 2003/3/4(화) 09:37
■ 신학생 교육전도사의 현실(하)
교육전도사 권리와 의무 다해야
신학생들의 교육전도사제도에 대해 일선목회자들은 도대체 학생인지 전도사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들은 목회자들 사이에서 만연되어 있다.
실제로 서울 모교회의 원로목사인 김모목사는 “신학생들의 교육전도사 실습에 참여하고 있는 신학생들이 예전부터 자신들의 입지를 좁게 만든 것이다. 이들은 교회로 올 때 교수들의 소개로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인데, 학생이라는 입장을 이용해 실습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다반사”라고 밝히고 있다.
학생들의 원성들은 모두가 선배 신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게 김목사의 의견이다. 김목사는 목회를 시작한지 20여년이 되어가는데 자신의 직분대로 교육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했던 사람은 지금 자신의 교회 담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교육전도사의 파견으로 교인들이 많은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난 사례도 있다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지난 12년 전 교육전도사로 온 고모씨가 처음 교회를 찾았을 때는 너무나 성실한 모습으로 교회에 많은 시간을 봉사하면서 담임목사인 김목사는 물론이고 교인들로 부터도 목사 이상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고씨는 당시 여자친구와의 문제로 학생들과 상담은 물론 교사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 경우는 예사고, 주일예배에도 참석하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게다가 고씨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 김목사가 경찰서까지 가서 보증을 서고, 풀려난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목사는 고씨의 이런 행동이 젊은 나이에 한번쯤은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한번 호되게 야단을 치고는 다시 고씨를 믿고, 교육전도사를 맡기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금 금요 철야예배를 앞두고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고씨가 술집에서 싸움이 붙어 상대방에게 전치 5주의 상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김목사는 더 이상은 안되겠다면서 고씨 대신 합의를 해주고는 고씨를 학교로 다시 돌려보냈다.
고씨는 교육전도사로 일하면서 당시로서는 많은 월급을 주면서 고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김모사는 고씨외에도 많은 교육전도사를 거쳤지만,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내 교회라는 생각보다는 여기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최근 교회를 개척해 교인 40여명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는 황모목사는 얼마전 자신이 수원의 모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으면서 많은 신학생들을 거쳤다.
황목사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황목사는 특히 “나도 늦은 나이에 목회를 시작해 교육전도사시절에 나이가 36세로 다른 학생들 보다 많은 나이여서 어려운 점도 있었으나, 목회자들의 부당한 처사에는 당당히 맞섰으나, 지금은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작은 모임이나 기도회를 맡기는 것 조차 거부하면서 실습을 주체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황목사는 또 최근 교육전도사를 받아 사역을 하면서 교육전도사의 월급도 자신의 월급과 비슷한 120만원가량을 지급하면서 신학생의 학자금은 물론 어려운 가정 형편도 거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목사는 이 학생에게 자신의 동역자라는 것을 일깨워주면서 교이늘과의 교감도 함께 느끼게 하고 있다.
황목사는 실제로 교육전도사가 오는날 마치 후임모사가 오는 것처럼 마을 잔치를 벌여 지역사람들에게도 소개를해 학생이 스스로 전도를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물론 교육전도사가 건의하는 사업들에 전폭적인 후원을 해 교회도 많은 부흥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황목사는 “교육전도사의 부족한 점은 당연히 있다. 그래야 만이 학생이라는 것을 목회자들은 알아야 하며, 학생들도 자신의 교육받을 권리를 먼저 알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올바른 실습의 장이 열릴 것”이라고 황목사는 꼬집었다.
이렇게 모범적인 사례들도 많이 있었으나 아직도 학생들과 몇몇 목회자들의 생각 차이로 인해 교육전도사제도는 아직도 많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의 불만인 것이 현실이다.
목회자들 생각의 변환 절실
신학생 교육 전도사 역할이 목회자의 심부름꾼에 그치는 현실 속에서 신학생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사역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교회 가기 전의 설렘이나 가슴 속에 부푼 비전들은 현실과 부딪히면서 하나둘씩 사라진다고 힘들었던 순간들을 말하고 있다.
신학교에 재학 중인 Y학생은 지난 학기부터 등록금을 보조해주는 모 교회에 교육전도사로 들어갔다고 한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교육목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시작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열정은 얼마가지 못해 부담과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다.
목사님은 Y학생에게 토요일과 주일에 교육학교 봉사하는 것도 모자라 중등부까지 맡겨 버렸고 심지어 어른 성가대까지 책임을 전가 했다고 한다. 그래도 하나님의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치만 육체적으로 오는 피곤함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Y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나 걸핏하면 목사님은 Y씨에게 수요예배 설교를 갑자기 시키거나 교회청소, 심지어 목사님의 차를 손으로 세차까지 시키는 등 끊임없는 잡일은 Y씨를 지치게 만들었다고 한다.
주일날 아이들 한명이 안나올 때마다 목사님은 심하게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한다. 이 뿐 아니라 목사님의 사적인 심부름까지 하면서 개인비서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Y씨는 주말이 기쁘게 예배드리는 날이 아니라 일에 치여 쉬고 싶은 생각만 드는 날이라고 말했다.
목사님의 행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목사님은 교인들 앞에서 이름을 부르며 청년과 똑같은 대우를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설교나 공과 공부한 내용을 녹음해 하나하나 지적하며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한다.
교인들 또한 전도사의 직분을 무시하고 텃세를 부리는 등 설자리가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Y씨은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가슴에 쓰라린 멍만 가득 안고 교회를 나왔다고 한다.
Y씨는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 보면서 “교회현실이 이렇다. 돈으로 사람을 고용했으니 이 사람은 일을 시켜도 된다는 식의 인식이 너무나 많다. 학비를 보조하고 현장의 일을 가르쳐주는 동역자가 아니라 신학생은 교회 경비원과 비서의 역할까지도 감당해야 한다”면서 교육전도사 제도의 비합리성을 지적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목회자는 신학생을 자신의 동역자가 아니라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고용인으로 생각하는 발상이 지배적이다. 신학생 또한 현장 실습이라는 명목아래 교회에서 사역을 하지만 일을 배우기보다는 잡일에 치여서 자신의 학업과 신앙생활마저 망쳐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교육전도사의 문제는 사례비라는 명목이 걸려 있어 많은 학생들이 어려움을 당해도 이런 문제를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학생들은 자신의 등록금을 위해서 이러한 어려움쯤은 감수해야지 하는 인내심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교회가 신학생에게 주는 부담감은 도를 지나쳐서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할 문제가 되버린 것이 현실이다.
신학생의 문제에 있어서 목회자의 인식이 변화해야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목회자가 따뜻한 마음으로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존중한다면 이러한 문제는 더 이상 우리들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당사자간 올바른 위치 해석 필요
교회에서의 학부 신학생들의 위치는 분명 애매하다. 정식 전도사도 아니고, 일반 교사로서 대우하기에도 뭔가 부족한 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3,4학년 학생들에게는 교육전도사로 예우해 주지만, 그 직제도 교회내에서 일반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회에서 정식으로 채용한 ‘교육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학비를 지원받고 교회학교 등지에서 봉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어떠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신학생들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교회 목회자나 선배 교역자들이 후배 신학생을 바라보는 시각과 교회에서 봉사하는 신학생이 느끼는 애로점이 다른 것이다.
목회자의 가족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어준 앞서의 사례를 예로 들어 보더라도 이는 쉽게 대별된다. 다시 말해 신학생은 목회자의 사생활이라 할 수 있는 가족의 졸업식에 불려서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본인이 해야 할 일이냐는 차원에서 불만을 터뜨릴 수 있다.
반면 목회자는 후배이고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는 학부신학생이 자신의 가족 졸업식에 참석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과연 불만을 가질 사안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교회생활의 일부이고, 봉사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신학생을 제대로 훈련시키지 못한 목회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인주의와 독립성이 강한 요즘의 청년들을 과거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도 이러한 세대적 차이를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재 중역을 맡고 있는 목회자들은 과거 학부신학생 시절부터 몸으로 부딪히는 목회생활을 해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선택적 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이었다. 교역자가 절대다수로 부족한 교회 현실에서 교육전도사, 또는 전도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학부 시절부터 도시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신학생들이 부지기수였고, 농촌교회의 부름으로 직접 담임의 역할을 하는 전도사도 많은 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고, 목회적 상황도 변했다. 과거와 달리 목회자를 비롯한 교역자가 과잉공급되는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교회개척도 과거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과거에 비해 학부 신학생들의 역할은 극히 축소됐으며, 그 지위도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학부신학생들의 교회봉사는 일정의 벽에 부딪히고 있으며, 일부는 자괴감을 일부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학부신학생의 교회봉사는 신학공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전도사의 역할이든 교사의 역할이든 교회에서 하고 있는 교회봉사는 훗날 훌륭한 목회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신학생들이 부딪히는 벽도, 모순점과 문제점도, 부당한 처우도 목회적 소양을 쌓는데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 목회자들은 과거 학부신학생 시절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목회적 소양을 키우는 과정은 어떠해야 할지, 훈련을 시키는 목회적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할지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 있다는 말이다.
목회적 훈련은 뒤로한 채 교회의 ‘심부름꾼’으로 전락시키는 모습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는 신학생들의 요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훌륭한 목회자로 훈련되는 목회준비생들이 길러지기 이전에 불만과 적의가 가득찬 후배를 양성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홍순현차장·박건상기자·이현민기자 공동 취재·집필
(1688호.20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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