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 출처 : |
|---|
◎ 이름:김기원 목사 (deulsori@chollian.net)
◎ 홈페이지:http://www.deulsoritimes.co.kr
[1028]“말씀의 변질을 막아야”
21세기는 소돔 고모라의 때와 노아의 때와 같은 시대의 도래이다. 물론 윤리적(도덕), 종교적인 타락의 차원에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인간의 지혜가 도전하는 바벨 문화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의 도래이다. 가치관의 변화와 속도문화 디지털정보문화속에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 시간 21세기에 대한 대안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멀미를 하는 어지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말씀의 변질화를 막아야 할 것이다.
변화는 추구하되 변질을 막아야 되는 것이다. 변화는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이라면 변질은 나쁜 쪽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말씀 중에는 기록된 말씀 성경 나타나신 말씀 예수그리스도 해석되는 말씀 설교 체험되는 말씀 성찬이다.
설교의 변질화를 막아야 된다는 것은 설교가 점점 아부화되고 기계화된다는 것이다. 켄더베리 대주교 도날드 코간 박사는 현대 목사들에게 설교에 대해 말하기를 “설교는 염소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양들을 먹이는 것이라”고 했다.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는 21세기 목회는 정보목회, 가정중심목회, 네트워커목회, 감동목회, 평신도목회, 교육목회, 소그룹목회, 리더쉽목회, 전문화목회, 디아코니아목회, 문화목회, 갱신목회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시간 목회방법론 이전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말씀의 변질화, 설교의 아부화를 막아야 된다는 것이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교회가 무능해지고 침체될 때는 언제든지 설교가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빠짐없이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설교가 점점 아부화 되어가고 있고 염소들에게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예수님이 수가성 여인의 내면속에 감추고 있는 수치스러운 전과를 덮어두고 지나가시지 아니하시고 계속 아픈 부분, 상처난 부분, 감추고 있는 부분을 짖궂은 사람처럼 건드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만 무엇이 설교인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교에 대해서는 정성구 목사의 저서 설교학(칼빈주의), 석원태 목사의 구속사적인 설교나 위어스비의 역동적 설교(고영민 김기원 옮김)를 참고 하셨으면 한다. 참된 설교는 사람이 많이 모이고, 적게 모이고가 표준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 시대에도 제자들만 남았던 때도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위어스비의 역동적 설교 중에는 설교는 성경을 설교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설교하고, 변화를 목적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설교한다고 말했다.
현대설교의 흐름 중에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회개의 메시지”가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이다. 구약선지자들의 메시지는 모두 회개촉구였으며 세례요한의 메시지가 회개와 천국이었다. 예수님의 메시지도 물론이고, 베드로, 바울, 스데반, 요한 모두 회개를 촉구하고 천국을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메시지가 기준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강단에서 외치던 회개의 메시지는 아부하는 설교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에 참된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회개를 동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형 교회 목사의 설교가 표준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아니한데 아주 위험한 태도라고 하는 것이 필자의 잘못된 견해인지도 모르겠다.
설교를 중요시 하는 것은 설교가 잘못되면 신앙의 질도, 봉사도, 충성도, 헌금도 모든 신앙생활이 잘못 되어지기 때문이다. 이사야 시대나 예레미야 시대에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아닌 자기의 말씀, 왕께 아부하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전한다면 하나님께 사기치고, 청중들에게 사기치는 행위인 것이다. 성경강해나 설교가 아닐 때는 문제가 달라지고 다양한 목소리가 있겠지만 일단 성경강해나 설교일때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보존하는 성경 본문이 아니라 성경이 하고 싶은 말을 쉽게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소아시아 7교회에 똑같이 빠지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귀 있는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면, 즉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서 전달한다면 그것이 참 설교인 것이다. 물론 전달하는 방법 문제는 차선의 문제이다. 21세기에도 교회강단마다, 사역자들의 입으로 하나님의 의도만 그대로 전달된다면 아무리 마지막 때가 오고 개인주의, 물질주의, 도덕파괴, 종교적 무능현상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므로 교회는 굳건히 세워져 가며 변치 않고 믿음을 지키는 남은 자들의 수가 이 땅과 시대를 변화시킬 것이다.
/장위제일교회 담임
◎ 홈페이지:http://www.deulsoritimes.co.kr
[1028]“말씀의 변질을 막아야”
21세기는 소돔 고모라의 때와 노아의 때와 같은 시대의 도래이다. 물론 윤리적(도덕), 종교적인 타락의 차원에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인간의 지혜가 도전하는 바벨 문화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의 도래이다. 가치관의 변화와 속도문화 디지털정보문화속에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 시간 21세기에 대한 대안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멀미를 하는 어지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말씀의 변질화를 막아야 할 것이다.
변화는 추구하되 변질을 막아야 되는 것이다. 변화는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이라면 변질은 나쁜 쪽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말씀 중에는 기록된 말씀 성경 나타나신 말씀 예수그리스도 해석되는 말씀 설교 체험되는 말씀 성찬이다.
설교의 변질화를 막아야 된다는 것은 설교가 점점 아부화되고 기계화된다는 것이다. 켄더베리 대주교 도날드 코간 박사는 현대 목사들에게 설교에 대해 말하기를 “설교는 염소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양들을 먹이는 것이라”고 했다.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는 21세기 목회는 정보목회, 가정중심목회, 네트워커목회, 감동목회, 평신도목회, 교육목회, 소그룹목회, 리더쉽목회, 전문화목회, 디아코니아목회, 문화목회, 갱신목회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시간 목회방법론 이전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말씀의 변질화, 설교의 아부화를 막아야 된다는 것이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교회가 무능해지고 침체될 때는 언제든지 설교가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빠짐없이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설교가 점점 아부화 되어가고 있고 염소들에게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예수님이 수가성 여인의 내면속에 감추고 있는 수치스러운 전과를 덮어두고 지나가시지 아니하시고 계속 아픈 부분, 상처난 부분, 감추고 있는 부분을 짖궂은 사람처럼 건드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만 무엇이 설교인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교에 대해서는 정성구 목사의 저서 설교학(칼빈주의), 석원태 목사의 구속사적인 설교나 위어스비의 역동적 설교(고영민 김기원 옮김)를 참고 하셨으면 한다. 참된 설교는 사람이 많이 모이고, 적게 모이고가 표준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 시대에도 제자들만 남았던 때도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위어스비의 역동적 설교 중에는 설교는 성경을 설교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설교하고, 변화를 목적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설교한다고 말했다.
현대설교의 흐름 중에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회개의 메시지”가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이다. 구약선지자들의 메시지는 모두 회개촉구였으며 세례요한의 메시지가 회개와 천국이었다. 예수님의 메시지도 물론이고, 베드로, 바울, 스데반, 요한 모두 회개를 촉구하고 천국을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메시지가 기준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강단에서 외치던 회개의 메시지는 아부하는 설교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에 참된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회개를 동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형 교회 목사의 설교가 표준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아니한데 아주 위험한 태도라고 하는 것이 필자의 잘못된 견해인지도 모르겠다.
설교를 중요시 하는 것은 설교가 잘못되면 신앙의 질도, 봉사도, 충성도, 헌금도 모든 신앙생활이 잘못 되어지기 때문이다. 이사야 시대나 예레미야 시대에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아닌 자기의 말씀, 왕께 아부하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전한다면 하나님께 사기치고, 청중들에게 사기치는 행위인 것이다. 성경강해나 설교가 아닐 때는 문제가 달라지고 다양한 목소리가 있겠지만 일단 성경강해나 설교일때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보존하는 성경 본문이 아니라 성경이 하고 싶은 말을 쉽게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소아시아 7교회에 똑같이 빠지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귀 있는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면, 즉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서 전달한다면 그것이 참 설교인 것이다. 물론 전달하는 방법 문제는 차선의 문제이다. 21세기에도 교회강단마다, 사역자들의 입으로 하나님의 의도만 그대로 전달된다면 아무리 마지막 때가 오고 개인주의, 물질주의, 도덕파괴, 종교적 무능현상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므로 교회는 굳건히 세워져 가며 변치 않고 믿음을 지키는 남은 자들의 수가 이 땅과 시대를 변화시킬 것이다.
/장위제일교회 담임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