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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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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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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소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있어서 항아리는 그저 된장을 담그는
항아리일 뿐이지만 어머니의 장독대는 이미 어머니
마음속에서 거룩함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어머니의 聖所
장독대의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닦고 또 닦으신다
간신히 기동하시는 팔순의
어머니가 하얀 행주를
빨고 또 빨아
반짝반짝 닦아놓은
크고 작은 항아리들...
(낮에 항아리를 열어놓으면
눈 밝은 햇님도 와
기웃대고,
어스름 밤이 되면
달림도 와
제 모습 비춰보는걸,
뒷산 솔숲의
청살모 다람쥐도
솔가지에 앉아 긴 꼬리로
하늘을 말아쥐고
염주알 같은 눈알을 또록또록 굴리며
저렇게 내려다보는걸,
장독대에 먼지 잔뜩 끼면
남사스럽제...)
어제 말갛게 닦아놓은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오늘도
닦고 또 닦으신다
지상의 어느 성소인들
저보다 깨끗할까
맑은 물이 뚝뚝 흐르는 행주를 쥔
주름투성이 손을
항아리에 얹고
세례를 베풀듯, 어머니는
어머니의 성소를 닦고 또 닦으신다
- 고진하 -
聖所를 찾는 길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소는 무엇인가. 아니 성소는 있기나 한가. 거룩하신 그 분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마저 성소를 찾아 보기란 쉽지가 않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목말라 하고 있다는 증거다. 메마른 대지, 메마른 꿈, 메마른 인간 관계 속에서 현대인은 목말라 한다. 교회도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한다. 그것은 교회마저도 목말라하기 때문이다. 목마른 내 영혼의 뿌리는 어디인가? 시인은 어머니의 장독대에서 성스러움을 본다.
“어제 말갛게 닦아놓은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오늘도
닦고 또 닦으신다
지상의 어느 성소인들
저보다 깨끗할까”
'성스러움'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거룩함은 만물 속에 이미 깃들여 있다. 그러나 성스러움은 어머니처럼 당신의 마음이 거룩해지고, 당신의 손이 맑아질 때, 그 성스러움은 일어난다. 우리에게 있어서 항아리는 그저 된장을 담그는 항아리일 뿐이지만 어머니의 장독대는 이미 어머니 마음속에서 거룩함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성소가 없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거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의 눈은 지극히 단순한 일상의 몸짓 하나에서도 거룩함의 표징을 읽는다. 물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세계, 그 일상성 속에서 시인은 성화의 길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그 길은 그리스도의 길과도 무관하지 않다.
“맑은 물이 뚝뚝 흐르는 행주를 쥔
주름투성이 손을
항아리에 얹고
세례를 베풀듯, 어머니는
어머니의 성소를 닦고 또 닦으신다.”
그리스도는 마음 문을 열고 당신을 받아 들이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신다. 어머니는 비록 하찮은 항아리에 불과하지만, 그 사물과 마음의 내통을 하며 거룩성을 부어 주신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은총을 내리듯, 어머니가 항아리에게 세례를 베풀듯 우리도 이웃을 향해, 자연을 향해, 온 우주 만물을 향해 마음을 열고 성소로 들어 갈 수는 없을까?
채희동 (2001-07-23 오후 2:43:35)

▲우리에게 있어서 항아리는 그저 된장을 담그는
항아리일 뿐이지만 어머니의 장독대는 이미 어머니
마음속에서 거룩함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어머니의 聖所
장독대의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닦고 또 닦으신다
간신히 기동하시는 팔순의
어머니가 하얀 행주를
빨고 또 빨아
반짝반짝 닦아놓은
크고 작은 항아리들...
(낮에 항아리를 열어놓으면
눈 밝은 햇님도 와
기웃대고,
어스름 밤이 되면
달림도 와
제 모습 비춰보는걸,
뒷산 솔숲의
청살모 다람쥐도
솔가지에 앉아 긴 꼬리로
하늘을 말아쥐고
염주알 같은 눈알을 또록또록 굴리며
저렇게 내려다보는걸,
장독대에 먼지 잔뜩 끼면
남사스럽제...)
어제 말갛게 닦아놓은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오늘도
닦고 또 닦으신다
지상의 어느 성소인들
저보다 깨끗할까
맑은 물이 뚝뚝 흐르는 행주를 쥔
주름투성이 손을
항아리에 얹고
세례를 베풀듯, 어머니는
어머니의 성소를 닦고 또 닦으신다
- 고진하 -
聖所를 찾는 길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소는 무엇인가. 아니 성소는 있기나 한가. 거룩하신 그 분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마저 성소를 찾아 보기란 쉽지가 않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목말라 하고 있다는 증거다. 메마른 대지, 메마른 꿈, 메마른 인간 관계 속에서 현대인은 목말라 한다. 교회도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한다. 그것은 교회마저도 목말라하기 때문이다. 목마른 내 영혼의 뿌리는 어디인가? 시인은 어머니의 장독대에서 성스러움을 본다.
“어제 말갛게 닦아놓은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오늘도
닦고 또 닦으신다
지상의 어느 성소인들
저보다 깨끗할까”
'성스러움'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거룩함은 만물 속에 이미 깃들여 있다. 그러나 성스러움은 어머니처럼 당신의 마음이 거룩해지고, 당신의 손이 맑아질 때, 그 성스러움은 일어난다. 우리에게 있어서 항아리는 그저 된장을 담그는 항아리일 뿐이지만 어머니의 장독대는 이미 어머니 마음속에서 거룩함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성소가 없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거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의 눈은 지극히 단순한 일상의 몸짓 하나에서도 거룩함의 표징을 읽는다. 물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세계, 그 일상성 속에서 시인은 성화의 길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그 길은 그리스도의 길과도 무관하지 않다.
“맑은 물이 뚝뚝 흐르는 행주를 쥔
주름투성이 손을
항아리에 얹고
세례를 베풀듯, 어머니는
어머니의 성소를 닦고 또 닦으신다.”
그리스도는 마음 문을 열고 당신을 받아 들이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신다. 어머니는 비록 하찮은 항아리에 불과하지만, 그 사물과 마음의 내통을 하며 거룩성을 부어 주신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은총을 내리듯, 어머니가 항아리에게 세례를 베풀듯 우리도 이웃을 향해, 자연을 향해, 온 우주 만물을 향해 마음을 열고 성소로 들어 갈 수는 없을까?
채희동 (2001-07-23 오후 2: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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