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 출처 : |
|---|
들소리신문 2003.1.29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는 창조 때의 가정과, 타락이후의 교회다. 모든 기관이 가정 같고 교회 같을 때 가장 바람직한 기관이 될 것이다. 교회는 가정 같고 가정은 교회 같을 때 이상적인 형태일 것이다.
하나님과 성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요, 주님과 성도의 관계는 머리와 지체 또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될 때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의 두 기둥은 존경과 사랑이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 속에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예배와 찬송으로 넘쳐나고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의 속죄의 은총과 삶의 치유와 축복으로 넘쳐나야 한다. 이 존경과 사랑이 성도간의 교제가 되고 그 힘이 세상을 향해 헌신하게 된다.
농경사회의 교회는 비교적 이런 가정 같은 교회의 역할을 어느 정도 충족시켰다고 본다. 왜냐하면 농경사회 자체가 미국과 같은 이민사회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지역중심의 가족공동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땅을 기반으로 했던 농촌사회가 무너지고 도시중심의 생산과 소비 사회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노동능력이 없는 노약자와 부녀자는 농촌에 남고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은 도시로 몰리는, 가정과 씨족 공동체 사회의 붕괴현상이 일어나면서 소위 핵가족시대가 열리게 된다. 산업사회의 특성이 대량생산과 표준화와 경쟁체제이기 때문에 진화론적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에 따라 교회도 대형화되고 조직과 능률을 중요시하며 무한경쟁시대의 승자의 모습으로 체육관식 대형교회(Mega-church)가 생기게 되었고 교회성장이라는 또 하나의 우상화의 덫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산업화의 과정이 1960년대의 군사혁명을 기점으로 가히 혁명적 방법으로, 혁명적 속도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농촌이 급격히 무너지고 도시의 급속한 팽창으로 인해 도시의 소외계층이 교회로 몰리면서 교회가 급성장하게 된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과 경제제일주의의 자본주의 물결과 한국인의 사상적 원형인 무당사상이 교회를 기복화 세속화시키면서 산업사회의 재벌식 독과점 대형교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총이다. 이는 식민사관적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주역의 자리에 서는 계기가 되는 선교사적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하다.
대형교회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체육관식 교회에서는 교회공동체의 필수적인 요소인 예배(Kerygma), 교제(Koinonia), 헌신과 봉사(Diaconia)와 교육(Didache)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가정 같은 공동체일 때이다. 대형교회가 가진 장점도 많다. 선교, 교육, 사회적 역할 등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대량생산과 표준화와 경쟁의 사회인 산업사회가 지나가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신호로 하여 세계화 시대, 정보화시대, 지구촌의 시대가 온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특징은 다품종소량생산의 시대요 전문화와 고품질의 시대요 상호협력의 시대다. 교회도 변해야 한다. 전문화되고 고품질의 다양한 소그룹 가족 공동체적 교회로 변해야 한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선교에서나 교육에서나 사회적 역할에서 그 힘이 미약하다. 그래서 다양한 전문교회가 하나의 팀목회 형태로 각각 독립성을 가지고 연합하는 다중교회(Multi-church)가 필요하다고 본다. 기존의 대형교회가 제왕식의 수직적 교회라면 다중교회는 모교회(mother church)와 주일학교전문교회, 청소년 전문교회식의 다양한 소그룹 전문교회(Extra-church)로 구성된 지방자치제식의 연방제의 수평적 조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멀티처치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나누어서 조직된다. 모이는 교회는 메가처치처럼 주일예배, 교육, 성례전, 선교 등을 주관하고 전문목회자인 담임목사가 맡되 당회장의 권한이라기 보다 조정자의 역할을 하는 회중교회의 감독(overseer)의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흩어지는 교회는 가정교회와 일터교회로 구분하여 신앙윤리, 사회적 봉사, 성도간의 교제, 전도와 선교 등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지방자치제식의 소규모 전문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평신도 전문직 목회자가 맡으면 될 것이다. 메가처치가 설교와 조직과 교육중심의 교회였다면 멀티처치는 참여와 봉사와 교제와 헌신 중심의 교회가 될 것이다.
복음은 변할 수 없다. 그러나 선교의 방법은 변해야 한다. N세대는 온라인상의 생각을 오프라인 상에서 경험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붉은 악마, 촛불시위, 노사모의 물결인 광화문 민주주의다. 이 참여 지향적 N세대를 위해 다중교회(Multi-church)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는 창조 때의 가정과, 타락이후의 교회다. 모든 기관이 가정 같고 교회 같을 때 가장 바람직한 기관이 될 것이다. 교회는 가정 같고 가정은 교회 같을 때 이상적인 형태일 것이다.
하나님과 성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요, 주님과 성도의 관계는 머리와 지체 또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될 때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의 두 기둥은 존경과 사랑이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 속에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예배와 찬송으로 넘쳐나고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의 속죄의 은총과 삶의 치유와 축복으로 넘쳐나야 한다. 이 존경과 사랑이 성도간의 교제가 되고 그 힘이 세상을 향해 헌신하게 된다.
농경사회의 교회는 비교적 이런 가정 같은 교회의 역할을 어느 정도 충족시켰다고 본다. 왜냐하면 농경사회 자체가 미국과 같은 이민사회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지역중심의 가족공동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땅을 기반으로 했던 농촌사회가 무너지고 도시중심의 생산과 소비 사회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노동능력이 없는 노약자와 부녀자는 농촌에 남고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은 도시로 몰리는, 가정과 씨족 공동체 사회의 붕괴현상이 일어나면서 소위 핵가족시대가 열리게 된다. 산업사회의 특성이 대량생산과 표준화와 경쟁체제이기 때문에 진화론적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에 따라 교회도 대형화되고 조직과 능률을 중요시하며 무한경쟁시대의 승자의 모습으로 체육관식 대형교회(Mega-church)가 생기게 되었고 교회성장이라는 또 하나의 우상화의 덫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산업화의 과정이 1960년대의 군사혁명을 기점으로 가히 혁명적 방법으로, 혁명적 속도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농촌이 급격히 무너지고 도시의 급속한 팽창으로 인해 도시의 소외계층이 교회로 몰리면서 교회가 급성장하게 된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과 경제제일주의의 자본주의 물결과 한국인의 사상적 원형인 무당사상이 교회를 기복화 세속화시키면서 산업사회의 재벌식 독과점 대형교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총이다. 이는 식민사관적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주역의 자리에 서는 계기가 되는 선교사적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하다.
대형교회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체육관식 교회에서는 교회공동체의 필수적인 요소인 예배(Kerygma), 교제(Koinonia), 헌신과 봉사(Diaconia)와 교육(Didache)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가정 같은 공동체일 때이다. 대형교회가 가진 장점도 많다. 선교, 교육, 사회적 역할 등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대량생산과 표준화와 경쟁의 사회인 산업사회가 지나가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신호로 하여 세계화 시대, 정보화시대, 지구촌의 시대가 온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특징은 다품종소량생산의 시대요 전문화와 고품질의 시대요 상호협력의 시대다. 교회도 변해야 한다. 전문화되고 고품질의 다양한 소그룹 가족 공동체적 교회로 변해야 한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선교에서나 교육에서나 사회적 역할에서 그 힘이 미약하다. 그래서 다양한 전문교회가 하나의 팀목회 형태로 각각 독립성을 가지고 연합하는 다중교회(Multi-church)가 필요하다고 본다. 기존의 대형교회가 제왕식의 수직적 교회라면 다중교회는 모교회(mother church)와 주일학교전문교회, 청소년 전문교회식의 다양한 소그룹 전문교회(Extra-church)로 구성된 지방자치제식의 연방제의 수평적 조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멀티처치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나누어서 조직된다. 모이는 교회는 메가처치처럼 주일예배, 교육, 성례전, 선교 등을 주관하고 전문목회자인 담임목사가 맡되 당회장의 권한이라기 보다 조정자의 역할을 하는 회중교회의 감독(overseer)의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흩어지는 교회는 가정교회와 일터교회로 구분하여 신앙윤리, 사회적 봉사, 성도간의 교제, 전도와 선교 등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지방자치제식의 소규모 전문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평신도 전문직 목회자가 맡으면 될 것이다. 메가처치가 설교와 조직과 교육중심의 교회였다면 멀티처치는 참여와 봉사와 교제와 헌신 중심의 교회가 될 것이다.
복음은 변할 수 없다. 그러나 선교의 방법은 변해야 한다. N세대는 온라인상의 생각을 오프라인 상에서 경험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붉은 악마, 촛불시위, 노사모의 물결인 광화문 민주주의다. 이 참여 지향적 N세대를 위해 다중교회(Multi-church)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