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 출처 : |
|---|
들소리신문 2003.2.29
토착화 신학(Contextual Theology)이란 교회의 전통(Church Tradition)과 교회가 속해있는 문화사이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신학은 인간의 의식 밖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의식 속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교회의 전통이 무시될 때 토착화 신학은 문화의 하녀가 된다. 다시 말해서 신앙의 토착화는 문화를 통해 교회를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통해 문화를 기독교 중재적 문화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복음과 문화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단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Paul Tillich).
첫째 단계는 인간의 원형질적인 하나님 중심세계다(Potential Theonomy). 이는 인류의 시작 단계요, 에덴의 단계인 것이다.
둘째 단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 스스로 존재하려는 원죄적 단계(Autonomy)이다. 결국 문화는 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인간의 창의력과 인간의 자유(하나님으로부터)의 산물이다.
셋째 단계는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이요 이는 문화의 출발이지만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하고자 하는 영적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말씀이 삶의 원칙이 되어 죄적 자유(문화)를 구속하는 상태(Heteronomy)에 이르게 된다.
네 번째 단계는 세상 속에 만들어진 교회(Heteronomy)와 죄의 산물인 문화(Autonomy)가 상충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문화와 교회의 상충을 하나님 중심사회(Theonomy), 즉 교회와 문화가 서로 상응 관계를 만드는 단계를 신학의 토착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바울이 당시의 노예문화를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종된 자유인으로 수용한 것처럼 한국 기독교도 한국적 전통문화를 기독교적 복음중재적 문화로 토착화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때이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가 자산이요 힘이요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본질이 된다는 뜻이다. 지구촌 시대의 국경이나 국가는 큰 의미가 없다. 문화가 민족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국교회는 한국의 전통 문화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 한국적 전통문화를 어떻게 기독교적 문화로 승화시킬 것인가를 등한시한다면 88올림픽을 계기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무당문화가 전통이란 이름으로 한국인의 의식과 사회를 황폐화시킬 것이다. 작금의 로또 복권 열풍이나 타락한 성문화, 경마장, 카지노의 한탕주의, 막가파 식의 떼강도, 부정부패의 뇌물 문화가 한국인의 사상적 원형인 무당문화의 산물임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의 성결은 개인적인 성결과 사회적 성결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알고 문화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무당 문화의 속성은 첫째 보수적이다. 자기는 변하지 않고 다른 종교나 사상을 받아들여 무당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유교, 불교, 도교가 무당문화속에 용해되어 유불선 사상을 만든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제 유불선의 제단에 기독교를 하나 더 놓으려하고 있다. 이 마귀의 궤계를 깨뜨려야 한다.
둘째 현세중심사상이다. 한국인의 언어 중에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지만 유독 내일이란 말은 한문에서 온 것만 보더라도 내세보다는 현세중심문화다. 이것이 한국의 모든 종교를 기복화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기독교의 세속화와 기복화의 경향도 이 현세중심사상의 결과이다.
셋째로 의타성이다. 무당사상의 맹목적 의타성이 한국인의 운명론, 숙명적인 체념, 요행문화, 기적의 문화, 신비주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최신 컴퓨터 가동을 앞두고 돼지머리고사를 지내는 것이 그런 예라 하겠다.
넷째, 오락성이다. 세계 어떤 샤머니즘에도 없는 한국적 무당문화의 특성은 음악과 춤의 해학적 오락성이다. 이는 한국인의 풍류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은사집회, 예언제단, 신유집회, 열린예배 등에 이런 신바람의 냄새가 짙게 풍기고 있다. 물론 새벽예배, 철야예배, 산상기도회 등의 한국적 기독교문화로 토착화된 아름다운 기독교 문화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을 이미지 화하고 관광상품화하기 위해서 무당문화의 발굴과 육성에 정부가 앞장서는 이 고차원적 사탄의 술책을 깨어버리자. 한국적 기독교 문화를 창출할 책임을 교회가 회피할 때 유불선의 제단에 기독교가 초라하게 자리를 구걸하는 비극이 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신차리자. 한국의 교회가 더 이상 진화론적 정글의 법칙 안에서 교회성장이라는 우상의 덧을 뒤집어쓰고 서로 경쟁하는 대신 21세기를 높은 윤리와 도덕의 기독교 복음중재적 문화의 시대로 만들어 내도록 지혜와 힘을 모두자.
토착화 신학(Contextual Theology)이란 교회의 전통(Church Tradition)과 교회가 속해있는 문화사이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신학은 인간의 의식 밖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의식 속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교회의 전통이 무시될 때 토착화 신학은 문화의 하녀가 된다. 다시 말해서 신앙의 토착화는 문화를 통해 교회를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통해 문화를 기독교 중재적 문화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복음과 문화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단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Paul Tillich).
첫째 단계는 인간의 원형질적인 하나님 중심세계다(Potential Theonomy). 이는 인류의 시작 단계요, 에덴의 단계인 것이다.
둘째 단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 스스로 존재하려는 원죄적 단계(Autonomy)이다. 결국 문화는 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인간의 창의력과 인간의 자유(하나님으로부터)의 산물이다.
셋째 단계는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이요 이는 문화의 출발이지만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하고자 하는 영적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말씀이 삶의 원칙이 되어 죄적 자유(문화)를 구속하는 상태(Heteronomy)에 이르게 된다.
네 번째 단계는 세상 속에 만들어진 교회(Heteronomy)와 죄의 산물인 문화(Autonomy)가 상충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문화와 교회의 상충을 하나님 중심사회(Theonomy), 즉 교회와 문화가 서로 상응 관계를 만드는 단계를 신학의 토착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바울이 당시의 노예문화를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종된 자유인으로 수용한 것처럼 한국 기독교도 한국적 전통문화를 기독교적 복음중재적 문화로 토착화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때이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가 자산이요 힘이요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본질이 된다는 뜻이다. 지구촌 시대의 국경이나 국가는 큰 의미가 없다. 문화가 민족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국교회는 한국의 전통 문화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 한국적 전통문화를 어떻게 기독교적 문화로 승화시킬 것인가를 등한시한다면 88올림픽을 계기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무당문화가 전통이란 이름으로 한국인의 의식과 사회를 황폐화시킬 것이다. 작금의 로또 복권 열풍이나 타락한 성문화, 경마장, 카지노의 한탕주의, 막가파 식의 떼강도, 부정부패의 뇌물 문화가 한국인의 사상적 원형인 무당문화의 산물임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의 성결은 개인적인 성결과 사회적 성결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알고 문화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무당 문화의 속성은 첫째 보수적이다. 자기는 변하지 않고 다른 종교나 사상을 받아들여 무당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유교, 불교, 도교가 무당문화속에 용해되어 유불선 사상을 만든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제 유불선의 제단에 기독교를 하나 더 놓으려하고 있다. 이 마귀의 궤계를 깨뜨려야 한다.
둘째 현세중심사상이다. 한국인의 언어 중에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지만 유독 내일이란 말은 한문에서 온 것만 보더라도 내세보다는 현세중심문화다. 이것이 한국의 모든 종교를 기복화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기독교의 세속화와 기복화의 경향도 이 현세중심사상의 결과이다.
셋째로 의타성이다. 무당사상의 맹목적 의타성이 한국인의 운명론, 숙명적인 체념, 요행문화, 기적의 문화, 신비주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최신 컴퓨터 가동을 앞두고 돼지머리고사를 지내는 것이 그런 예라 하겠다.
넷째, 오락성이다. 세계 어떤 샤머니즘에도 없는 한국적 무당문화의 특성은 음악과 춤의 해학적 오락성이다. 이는 한국인의 풍류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은사집회, 예언제단, 신유집회, 열린예배 등에 이런 신바람의 냄새가 짙게 풍기고 있다. 물론 새벽예배, 철야예배, 산상기도회 등의 한국적 기독교문화로 토착화된 아름다운 기독교 문화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을 이미지 화하고 관광상품화하기 위해서 무당문화의 발굴과 육성에 정부가 앞장서는 이 고차원적 사탄의 술책을 깨어버리자. 한국적 기독교 문화를 창출할 책임을 교회가 회피할 때 유불선의 제단에 기독교가 초라하게 자리를 구걸하는 비극이 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신차리자. 한국의 교회가 더 이상 진화론적 정글의 법칙 안에서 교회성장이라는 우상의 덧을 뒤집어쓰고 서로 경쟁하는 대신 21세기를 높은 윤리와 도덕의 기독교 복음중재적 문화의 시대로 만들어 내도록 지혜와 힘을 모두자.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