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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자연의 시간, 인간의 시간

생명환경자연 윤구병............... 조회 수 3285 추천 수 0 2003.10.04 12: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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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자연의 시간, 인간의 시간-윤 구병

미래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개를 흔드는 분도 많습니다. 인류가 현재 보이고 있는 삶의 모습에 비추어, 그리고 지향성에 비추어 인류의 현대문명이 빨리 망한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이렇게 이런 방향으로 지속되어 생명력을 천천히 메마르게 하는 상황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짓지 않고 살아 가장 사람
다운 분들 입에서 이런 절망스러운 말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이오덕 선생님이나 권정생 선생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한때 저는 기독교의 선지자들, 중세의 예언자들, 풍수도참설을 퍼뜨리고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 인류를 구원할 위대한 영적 스승을 길러내려고 애쓴 근현대의 신지학자들이 하는 재난의 예언을 시각영상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지고, 지층이 갈라져 땅속에서 불기등이 솟고, 홍수와 태풍이 지구를 휩쓸고, 전염병이 창궐하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가슴을 찌르고, 형제들이 편을 갈라 서로 죽이고, 도시의 고층 건물들이 불붙은 성냥곽처럼 화염속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곳곳에 세워진 원자로가 폭발하고, 댐이 무너지고, 핵탄두를 실은 중장거리 미사일이 까마귀 떼처럼 하늘을 날고‥‥

그런 날이 오지 않으면 여전히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사람이 날짜를 정해 서력 2000년이 오기 전에 인류가 멸망한다고 예언을 했다는데, 새로운 '밀레니엄'이 와도 지구를 하나로 연결해서 초단위로 최신 정보가 오가는 전산망에 이상이 없고 이른바 Y2K 위기가 현실화하지 않고 무난히 넘어가는 것을 보고 그런 예언을 한 선지자들, 예언자들의 환상을 두뇌회포에 이상이 있는 데서 생기는 신기루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제가 부치는 밭 근처 개울가에 서있는 몇백년이 된지 모를 당산나무에 큰절 삼배를 올리고, 저수지를 끼고 있는 소나무 숲길을 지나오면서 그 예언들은 한치의 틀림도 없이 현실화되었고, 지금도 현실화되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 숲길을 걷고 있는 저도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겉으로 보기에 사람 모습을 띠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말을 듣는 순간 저를 정신나간 사람으로 여길 분이 있을 겝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분도 있을 겝니다. "사람이 아니라니? 그러면 우리가 짐승이란 말이냐?" 아닙니다. 짐승이기라도 하다면 그나마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을 겁니다. 짐승도 아닙니다. 적어도 짐승은 자연속에서, 생명의 시간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미 짐승이기도 그만두었습니다.

철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철없는 어린애가 어찌 스스로 제앞가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현재 인류의 대부분은 철없이 살고 있고, 철없는 세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문명화'한 도시에서 생명의 시간, 다시 말해 '철'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도시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24절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고요. 따라서 도시에서는 오래 살면 살수록 철이 들고 철이 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철이 없어집니다. 철없는 사람은 제앞가림을 못하니까 쓸모가 없어집니다. 도시에서 나이먹은 사람이 나이순으로 토태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도시에서 살아남는 힘은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의 축적에서 오는 '철남', '철듦'에서 생겨나는게 아니라 두뇌의 빠른 회전, 보이지 않는 생명의 시간을 눈에 보이는 공간형태로 바꾸어내는 공간화의 능력에 달려 있있니다.

도시에서 자연의 시간, 생명의 시간이 어떻게 공간화 하는지는 이른바 고속촬영, 저속촬영이라는 영상기법에서 아주 잘 드러납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죽자사자 있는 힘을 다하여 달리는 얼룩말도 고속촬영을 하여 느리게 기계를 돌리면 10분에 달리는 것을 한시간 두시간 걸려 느릿느릿 뛰어가는 것으로 바꾸어낼 수 있습니다. 또 몇날 며칠을 걸려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수선화를 저속 촬영하여 고속으로 돌리면 몇초 만에 망울을 터뜨려 활짝 피는 모습으로 둔갑시킬 수 있습니다. 이때 얼룩말이 실제로 달리는 시간, 수선화가 꽃을 피우는 시간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인위적으로 단축되거나 연장된 공간화된 시간, 가짜 시간, 생명의 시간을 대신한 기계의 시간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도시의 집집마다, 사무실과 공장마다, 사람의 손목마다 매달려 있는 시계가 측정하는 시간은 진짜 시간이 아닙니다. 거기서 측정되는 시간은 생명의 시간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동질적인 시간, 공간화된 시간, 도시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조작된 인공의 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간단한 실례로 우리시대 문명인들의 눈에는 물질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시간도 날마다 같지 않습니다. 하물며 생명계를 구성하고 있는 갖가지 생명체의 시간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 시간은 종에 따라, 개체에 따라, 또 지역이나 기후에 따라, 성장단계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이 생명의 시간은 신조차 측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시간은 늘 현재로서, 과거의 꼬리표도 미래의 더듬이도 없는 바로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신의 자기계시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어떤 생명체도 생명의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면 살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벨탑을 쌓던 시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멸망의 연대기를 끊임없이 써오면서도 인류는 철없이도 살 수 있다는 철부지 꿈을 기회만 있으면 현실화하려는 가당찮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바벨탑은 서울에서 런던까지, 스웨덴에서 앵커리지까지 이 지구상 어디에서나 새로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력을 소모시켜 죽어버린 물질로 고정시키는 이 비극이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벌어지고 있고, 부추겨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철들지 않은 생명체가 살아남을 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벌은 생명체의 몸에 각인되어 생명체를 살아남게 하는 자연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따로 철드는 과정이 필요없습니다. 자연의 시간은 많은 생명체의 생체구조 안에 유전정보, 또는 본능의 형태로 각인되어 몸에서 몸으로 물려주고 물려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유전정보나 본능의 힘으로만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개미나 벌같이 떼지어 사는 점에서는 같지만 생명의 시간, 자연의 시간을 내면화하는 경로가 다르다는 점에서 개미나 벌 같은 군집생활과 인간의 사회생활은 갈라집니다. 다른 많은 생명체에서 자연의 시간, 철은 태어나면서부터 내면화되어 있지만, 사람은 한철한철 접어들면서 철이 들고, 한해 두해 철을 나면서 철이 납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지혜의 함수는, 축적과 내면화를 거친 자연의 시간, 곧 철입니다.

그런데 철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생명체인 사람이 철들지 않고도, 철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오만으로 철없는 세상인 도시를 형성하고, 자연의 시간 밖에서 따로 인간의 시간을 만들어내어 이것을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동을 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인류역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의 시간 가운데 크게 두개의 흐름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삶의 길로 우리를 이끌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길로 이끄는 갈림길인데도요 그 하나는 문화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문명의 시간입니다. 무엇이 다르냐고 물을 분들이 있을줄로 압니다. 대답하지요. 인간의 시간 가운데 자연의 시간 안에 있는 것이 문화의 시간이고 자연의 시간 밖에 있는 것이 문명의 시간입니다. 이것을 잘 가리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지요.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서 자연의 시간 안에서 자신의 시간을 따로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이것을 문화라고 부릅니다. 모든 문화는 기술을 매개고리로 삼습니다. 사람은 자연의 시간 속에서만 살아남기 힘듭니다. 머리를 키우고, 그 무거운 머리를 두 뒷발로 지탱하는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두 앞발로 열매를 따고 돌도끼와 돌칼을 만드는 순간, 사람은 온전한 자연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는 기후대에서 살기, 두 발로 땅위를 걷기, 불의 발견, 도구의 사용들이 인간이 지신외 시간을 따로 만들어가는 기본조건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시간과는 다른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문제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연의 사간만이 지배하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순간부터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해마 했습니다. (그 일이 농경과 목축이었다는 사실은 구약성서에도 기록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벨과 카인의 이야기가 그것이지요) 적도 근방의 열대지방에서 철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벌거숭이로 풍족하게 자연(신)의 선물을 즐길 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자기만의 시간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군별이 따로 없는, 따라서 '철이 없는' 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먹이를 구할 수 없는 겨울철까지 사이에 끼어있는 사계절의 구별이 분명한 온대지방으로 흩어져 삶의 길을 찾는 순간부터 사람은 '철 모르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람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태어나자마자 철이 드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철없이 살았던 에덴의 기억이 사람을 철없이 태어나게 만드는지도 모르지요. 어쨌거나 철없이 태어나 철 몰라서, 스스로 제앞가림을 할 수 없는 긴 성장의 과정을 거쳐 철이 나고 철이 들면서 한사람의 몫을 하는 것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사람은 철이 나면서 일머리가 트입너다. 거꾸로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일머리가 트이면서 철이 난다고요 또 철이 들면서 일도 손에 익습니다. 마찬가지로 일이 손에 익으면서 철이 든다고 거꾸로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한철 한철, 한해 한해 철을 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은 일머리가 트이고 일손이 익어잘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시간을 자연과의 관계속에서 내면화하면서 일머리와 일손을 통해 인간의 시간이 열리고, 그 안에서 문화가 꽃을 피우고 열매맺습니다. 손 닿는 곳에 늘 먹이가 있고, 잠자리나 옷 걱정을 하지 않고도 벌거숭이로 아무데서나 딩굴 수 있는 삶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곳에서는 머리 쓸 일도 없고,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 의식주에 필요한 것을 마련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는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따로 분리되지 않았고, 생명의 나무, 지혜의 열매로 상징되는 '철'은 사람의 몸과 의식의 저 밖에 머물러 있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철없던 유년시절에 낙원에서 누리던 행복에 대한 그리움이 철없는 세상, 지상의 낙원을 사람 손으로, 자연이나 신(같은 말이라고 볼 수 있고, 실재로 그렇자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의 도움 없이 빚어보자는 열망을 낳고, 그 열망이 인류역사에서 끊임없이 바벨탑을 쌓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는지 모릅니다. 바로 그렇게 해서 다른 생명체들과 상생관계 속에서 살길을 찾던 문화의 시간에서 벗어나 다른 생명체들을 오직 정복과 약탈의 대상으로만 보는 문명의 시간, 도시인들의 삶의 양식이 나타났는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그 결과는 예외없는 몰락과 죽음입니다. 인류역사에서 어떤 도시문명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생명의 시간에서 일탈하는 순간, 인간의 시간은 끝나고 맙니다.

저는 도처에서 멸망과 죽음의 그림자를 봅니다. 오늘날 인류문명은 도시라는 '철없는' 세상, 현대판 인공의 에덴동산을 빚어내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그 결과로 사람 모습을 띠고 있으나 사람 아닌 사람이 기하급수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철없이, 철모르고, 철나지 않고, 철들지 않고, 생명의 시간과 동떨어진 인공의 시간대에서 움직이는 것은 이미 사람이랄 수 없습니다. 짐승이랄 수도 없습니다. '사람 비슷한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도시에서만 철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문명의 시간이 자연의 시간을 대체하면서 농촌, 어촌, 산촌 같은 기초생산 공동체에서 다른 생명체들과 생명의 시간 속에서 상생의 그물을 뜨고 살던 사람들마저 철없는 도시내기들의 요구에 따라 한겨울에도 토마토나 수박을 길러내고 한여름에도 김장배추를 길러내기 시작하면서 마찬가지로 철모르는 사람, 철없는 사람들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머지않아 사람의 씨앗이라고는 천에 하나, 만에 하나도 남아나
지 않을 게 뻔합니다. 가차없고 참담한 비인간화의 과정이 지금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소리없는 인간말살과 자연파괴는 옛 선지자나 묵시록의 예언이 우리의 상상속에 아로새긴 어떤 형태의 지옥도나 아수라장이나 아비규환도 따르지 못할 만큼 처참합니다.

손수 잔 듯싶은 얇은 베오라기 하나 여윈 몸에 두른 채 안경을 긴 초췌한 모습으로 물레를 돌리고 있는 간디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 사진이 저에게 건네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대낮에도 어둠이 가시지 않는 초가집 오막살이 단칸방에서 간디의 물레와 같은 물레를 돌려 목화솜 꼬치에서 무명실을 잣던 추레한 어머니의 모습을 어린시절 제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살아온 세월이 저를 말귀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철부지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간디의 목소리인 듯도 하고 어머니의 목소리인 듯도 한 목소리가 이제 나이들어 가는귀가 먹어가는 제 귓전을 맴돕니다.

"얘야,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철나지 않은 이 철부지야. 지금 대장간에서 쇠붙이를 벼리는 저 대장장이를 보렴. 지금은 쇠를 달구어 낫과 호미, 망치와 못을 벼리고 있지 않니? 저 일을 저이에게 맡긴 사람은 농사꾼과 목수란다. 낫과 호미, 망치와 못은 땅에서 움돋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 저렇게 사람은 땀흘려 일하면서 자연의 품속에서 문화의 시간을 빚어낸단다. 그리고 저 연장들은 모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쓰인단다. 그러나 조금 더 기다려 보렴. 이제 머지않아 저 대장장이는 같은 쇠로 창과 칼, 방패와 활촉을 벼릴 거야. 누가 그 일을 저이에게 맡기게 될까? 지배자와 장군들이겠지. 그것들은 어디에 쓰일까? 사람을 죽이고 땅을 빼앗는 데 쓰이지 않겠니? 바로 그렇단다. 똑같은 쇠붙이라도 8쪽으로 계속 어떤 쓰임새로 빚어지느냐, 관계맺는 대상이 무엇이고, 누가 무엇을 위해서 벼리도록 만드느냐에 따라서 문화의 시간대에 편입되기도 하고 문명의 시간대에 편입되기도 한단다. 자연의 시간, 생명의 시간 속에서 쓰임새를 찾지 못하고 오직 인간만의 시간 속에서만 쓰임새가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에 칼끝을 겨눌 수밖에 없단다. 그게 바로 물레와 방적기의 차이이기도 하단다."

제가 잘못 들었다면 그것은 제가 가는귀가 먹은 탓이기도 하고, 또 이제 겨우 시골에 산 지 다섯 해밖에 되지 않은 다섯살잽이 철부지인 탓이기도 합니다. 아마 양쪽 다이겠지요.

저한테 인류에게 미래가 있느냐고 물으셨던가요? 예, 있습니다. 아니, 있겠지요, 이 지구상 어느 곳엔가 아직도 물레를 돌리는 사람이, 베틀에 올라 베를 짜거나 한겨울에 허벅지에서 피가 나도록 모시나 삼 실을 부벼 잇는 사람이, 사랑방에서 한겨울에 새끼꼬는 사람이 있는 한, 산에 다니면서 약초를 캐는 사람, 가까운 바다에 띠배를 띄우고 철따라 고기를 잡되, 어린 고기와 알밴 고기는 그물에 들지 않게 애쓰는 '뱃놈'이 있는 한, 아직도 희망이 있겠지요. 그리고 그분들 밑에서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을 익히려는 의지가 있는 젊은이들이 뒤를 잇는 한, 미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조화 속에서 상생의 관계를 수렴하는 매개고리를 이루던 기초생산 공동체의 마을 어른들은 머지않아 세상을 뜨실 겁니다. 그리고 그분들과 더불어 수천, 수만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연장되어오던 인간의 시간도 그분들이 몸으로 익혔던 온갖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들과 함께 땅에 묻힐 것입니다. 어쩌다
운좋게 그 어른들 밑에서 그 도래된 생활양식을 몸에 익히면서 철이 들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 아벨과 카인이 겪었던 그 고통의 세월을 다시 겪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만한 힘이 새로운 인류에게 내재되어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때 농사꾼이었던 윤봉길 의사의 다음과 같은 말에 실낱같
은 희망을 겁니다.

농민은 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이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

- 윤봉길 의사의〈농민독본〉에서
이 글은 녹색평론 51호 2∼10쪽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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