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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와 전통문화

한국교회허와실 기독교신문............... 조회 수 3933 추천 수 0 2003.10.08 10: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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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2003/9/7(일) 21:57

■ 기독교와 전통문화  

고난주간이 된 ‘명절’
한국교회와 기독교역사에 있어서 전통문화는 왠지 안맞는 옷처럼 어색하게 느껴진다. 문화라는게 흐르는 강물처럼 오랜시간 그 민족의 생활에 체화된 것인데, 우리민족은 오랜동안 전통문화를 배척해왔다. 그러니 한국교회와 기독교안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대접은 오죽하겠는가?

외국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들어온 한국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전통문화는 ‘미신’과 ‘우상숭배’라는 미명하에 외면과 배척을 당해왔던 것이 현실이다. 혹자는 우리의 전통문화 경시가 선교사에 의해 외면당하게 됐다고도 하지만, 대부분 많은 이들은 일제 식민지치하를 겪으며 우리민족말살 정책에 의해 언어와 노래, 문화 전반이 왜곡되고 천시됐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안에서 전통문화라 칭하는 제사나 장례, 전통악기사용이나 의복, 언어등이 미신이라는 이유로 아직도 ‘사용불가’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특히 추석이나 명절이 다가오면 더욱 민감해 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간단한 가정예배순서지만 배포할뿐, 특별한 대책마련이 부족한게 현실이다.

믿음생활하는 신앙인들에게 ‘고난주간’은 바로 ‘명절’이라고 고백하는것도 이 때문이다. 제사라는 큰 벽이 신앙들에게 참석여부부터, 절을 해야할 것인가 말것인가, 제사상 차리는 것을 도울것인가, 말것인가, 제사음식을 먹을것인가 말것인가등 믿지 않는 가족들과 부딛치는 장애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례문화에 있어서도 역시 전통의식과 기독교적 의례의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일견 전통문화가 복잡하고, 허례의식이 없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속에는 민족정신이 깃들여 있는 부분도 있고, 문화적 가치보존에도 큰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일견 이 모든 것을 신앙의 이름으로 부정하고 외면하기 바쁘다. 한국교회 예배문화 안에서도 전통문화의 계승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찬송가에 우리말과 음을 넣어 만든 국악찬송이나 국악예배로 드린다거나, 예배순서에 전통예배순서를 삽입한다거나 성찬을 막걸리와 우리 전통 그릇을 사용한다거나, 우리 전통옷을 입고 성가대가 찬양을 한다거나, 교회건축을 전통 한국식 건축으로 하는등 안사용해서 그렇지 얼마든지 우리 전통문화를 한국교회와 예배안에 도입할수 있는 여유가 많다.

그러나 예배도중 교회안에서 꾕과리와 북을 사용하는 것도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해서는 안될 아주 큰사건’이었다. 문제는 이런 사건들을 자주 일으키는 일들이 많아져야 한다.

자주 접하고 한국기독교식으로 수정보완해야 더 친숙해지고 익숙해져 자주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통문화가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아직까지 ‘어색하다’는데 있다.

문화가 오랜시간을 걸쳐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친숙해져야 하는데, 일제 식민지 30여년동안 단절된 전통문화가 외국식 예배모형과 문화에 젖은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는 낯설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통문화개발·보급절실

해결의 실마리는 쉽고 친숙한 전통문화 개발과 보급이 한국교회와 기독교안에서 많이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성실서당’을 운영하며 한자해석과 배움의 길을 트고 있는 한 목회자의 모습도 좋은 예라 할 것이다.

그 옛날 복음이 들어올 당시 많은 이들이 한자로 한국기독교와 복음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것들이 많은데, 이런 것은 한자를 모르고서는 해석도 불가능하고 알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한국교회와 기독교에 있어서 전통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장애는 미신과 우상숭배라는 개념의 이해와 전통문화에 대한 경시풍조에서 비롯된다고 볼수 있다. 우리 것은 왠지 촌스럽고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문화 자체가 신기한 요즘 세대보다도 전통문화를 경험해본 선배 세대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한국교회 목회자와 각 신학대학 교수들은 ‘전통문화의 신학화’하는 작업을 활발히 진행해야 할 것이다. 한국기독교가 신학을 중시하는 만큼, 전통문화와 신학의 관계를 가장 먼저 정립해 주는 노력이 절실하다.

신학적으로 전통문화가 미신과 우상숭배로만 왜곡되지 말고, 우리가 계승해야할 전통문화가 무엇이고, 또 수정해서 이해해야할 전통문화가 무엇인지를 재검토해서 신학적으로 정리해줘야 한다.

특히 제사와 장례문화에 있어서 믿는 가족과 믿지않는 가족간의 마찰은 심각하다. 전통문화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경시태도는 전도와 선교의 커다란 장애요소가 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특별한 묘안이 없어, 신앙인 개인의 지혜로운 처사로 넘겨주길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태도는 제사를 수용하는 가톨릭과 종종 비교되면서 믿지 않는 이들에겐 기독교 폄하의 항목으로 종종 입방아에 오르기도 한다. 가톨릭은 제사를 수용해 전도에 큰 효과를 보는데, 기독교는 자기 조상도 몰라본다며 교회에 손가락질 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 않으나, 제사와 장례문제에 있어서 신앙인들의 신중하고도 성숙한 대처에 대한 교육이 교회안에서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사’는 뜨거운 감자?

동양과 서양의 죽음관에는 분명히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결국 기독교의 전래과정에 있어서부터 문화적 충돌과 갈등을 불러일으켜 왔다. 기독교의 전래과정에 있어 제사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조상숭배를 사회편재와 지배규범으로 받아들였던 조선사회는 우상숭배의 금지라는 면에서 제사문제를 둘러싸고 ‘기독교 수용불가론’이 일어나 사회 전반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봉건적 사회질서가 붕괴되면서 봉건적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사회적 욕구는 전통적 가치체계에 대한 도전을 수반하였고, 이는 기독교의 수용이라는 종교적 신봉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의 조선사회가 기독교라는 외래사상과의 갈등과정에서 가장 첨예화되고 비판되었던 부분도 바로 이 ‘제사’의 문제였다.

한 예로, 1920년 9월1일자 동아일보는 ‘조상숭배를 금지하는 것은 예수의 참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서양 사람을 좇아 하는 것으로 결국은 조선의 전통을 무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조상을 기리는 마음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종교적 신념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고, 이는 이후 기독신보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계와의 첨예한 논쟁으로 이어지며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가져온 바 있다.

그렇다면 이후 한 세기를 보낸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이후 100여년 이라는 시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 문제는 그럴듯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사회 도처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이면서 동시에 전통적인 유교적 세계관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국가, 여기에 전 국민의 25%이상이 기독교인인 한국의 종교상황은 그야말로 수많은 종교적 문화충돌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명절 차례상을 놓고 서로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가족 간의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다반사이며, 종합병원의 장례식장은 그야말로 다양한 종교들의 장례의식의 전시장이 되고 있다.

조상의 기일은 기념하는 방식도 종교에 따라 각양각색이며 제사에서 절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하물며 대학가의 축제현장에서도 고사상에 절을 하는 대학가 풍속에 대해 한 편에서는 기독교 동아리나 신학도들의 주도로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진풍경도 종종 볼 수 있다.

‘죽음’에 관한 문화적 이해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의 정진홍교수는 ‘기독교와 제사’라는 제하의 논문을 통해 이러한 갈등의 근본원인을 ‘근원적인 유형의 차이, 곧 종교의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신 지향적인 종교성을 갖는 기독교 안에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속한 제사문화가 자리 잡을 공간이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제사를 ‘돌아간 조상과의 만남’으로 인식한다.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모든 공동체는 현세를 산 사람만이 아닌 산 자와 죽은 자가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성서적 근거에는 이러한 세계관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삶과 죽음을 단절된 이원론적 구조로 이해하는 문화와 이를 하나로 묶어 바라보는 세계관 사이의 갈등을 어느 한 측의 세계관의 잣대로 평가하고 옳고 그름을 규정짓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즉, 제사행위를 놓고 문화적 차이의 이해 없이 기독교적 세계관의 잣대만을 가지고 단순히 ‘마귀와의 교제’ 또는 ‘우상숭배’로 규정해 상대방의 사고 전환을 강요하는 것은 갈등의 해소에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신대학교 김경제교수 또한 한국에서의 기독교가 전통문화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현상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이로 인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신명나는 축제를 즐기지 못하며 가족전체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가정에는 더욱더 문화적 갈등이 증폭되어 가족의 화목을 깨트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김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갈등의 근본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지적되는데, 첫째는 복음의 전래시기에 개화기를 맞고 있던 한국사회가 체계적인 비판과 논의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전통문화를 구습의 온상 내지는 비과학적 잔재로 이해하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개화운동에 참여하는 진보적 사상이라고 여긴 속단, 둘째로는 동양문화의 이해가 전무한 선교사들이 전통 한국문화유산 일체를 우상적인 이교문화로 규정하고 이를 배타적으로 배격한 것이 그것이다.

제사의 문제와 관련해 김교수는 전통적 문화예법을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성묘나 문상에 있어 경건한 기도로서 조의를 표하는 예법이 기독교적이라고 알려져 왔으므로 굳이 전통예법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겠으나, 최소한 상가댁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절하는 방식으로 조의를 표하는 경우일지라도 이를 전통적 문화예법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해야지 ‘우상 앞에 절하는’ 죄의 행위로 매도하지 않는 자유로운 관용의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독교문화가 우리네 삶 속에 자연스러운 가치관으로 녹아들기 위해서는 문화적 차이를 ‘배격해야할 대상’이 아닌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공경하고 더불어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의 미풍양속을 계승하는 한편, 기독교의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문화양식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시급하다.

더이상 양보할 수 없는 이념의 대립을 신앙의 고수인양 소모적 대립과 반목으로 이끌어 가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정작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절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이기보다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위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문화, 이제 배격하고 외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독교문화와 조화를 이루어 나갈 벗임을 명심하고 이에 대한 연구가 실천돼야 할 때이다.

/우은진차장·이경석기자 공동취재 집필
(1712호, 2003.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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