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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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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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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http://www.seoprise.com
2003/10/8(수)
서프라이즈의 가치와 노무현의 정체성
노무현 대 노무현, 그리고 서프라이즈 이후는 과연?
윤목사 : 노무현 대 노무현, 그리고 서프라이즈 이후는 과연?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한 사람들은 둘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됩니다. "노무현은 우리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우리는 노무현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분법이 상당히 무리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쓸모가 있다고 봅니다. "노무현은 우리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는 노무현은 개혁편, 노무현은 호남편, 노무현은 영남편, 노무현은 진보편, 노무현은 노동자와 농민편, 노무현은 젊은 사람들편, 등등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선 이후 지금까지 하나씩 둘씩 이 진영에 속했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반노 혹은 비노로 돌아섰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후보 시절부터 이런 과정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노무현이 결코 자신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을 확인한 후에 미련 없이 그를 내팽개쳤습니다. 김근태와 김민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무현은 그들의 사고 범위 내에 포섭되어지지 않는, 우리편인지 아닌지 판단이 불가능한 "불안"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극적인 경우는 역시 대선 전야의 정몽준씨였겠지요.
지역 정서나 혹은 각종 집단 이기주의, 개별 정치인들의 이기적, 혹은 정치철학적 판단 등등은 차치하고라도, 노무현은 "개혁 진영"에 속하거나 혹은 그 "편"도 아니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1차 파병이나 방폐장, 민주당 분열 등을 거치면서 노무현은 끊임없이 소박하게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을 실망시켜 왔습니다. "노무현은 우리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이제 거의 다 떠나고 몇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마지막 남은 분들이 과연 얼마나 더 갈까 궁금합니다.
지금까지도 노무현을 지지하고 정서적으로 곁이 있어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노무현편"이라고 생각해서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입니다. 노무현이 아무리 "뻘짓"을 해도 우리는 그를 믿는다, 실수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리고 어쨌거나 노무현이 대통령 잘했다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나라가 어렵게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무현은 우리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는 "노빠," "홍위병" 등등의 칭호를 받기도 합니다. 서프라이즈의 중핵이 바로 이 그룹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서프라이즈식 사고의 중심에는 일종의 "메시아 사상"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정치적 후진성을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그리고 유일한 대안은 노무현이라는 것입니다. 노무현이 실패한다면 대한민국에는 일종의 파국이 닥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기 앞에서 노무현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견고히 세울 것입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내년 총선에서 신당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메시아 사상의 한 축은 "패권주의"입니다. 노무현과 노무현을 따르는 사람들은 난세를 지혜와 용기로 절묘하게 헤쳐나가는 "패자"의 집단입니다. 물론 완력이나 부정한 힘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의로운 권력,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권력을 꿈꾸는 것입니다. 여러 필진들의 글을 재미있게 읽다 보면 문득 소름이 끼칠 정도로 패권적 언어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 이것은 "약자의 콤플렉스"일 수도 있습니다. 워낙 대통령이 거대한 한나라당과 수구 언론들에게 몰리다 보니까 그런 식이 되었을 수도 있고, 정치문제를 재미있게 게임식으로 풀어가도 보니까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곳에 감돌고 있는 패권적 사고는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패권적 사고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이기는 것 자체가 개혁이다"는 것과, "이겨야만 개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두 번째 그룹, 즉 "우리는 노무현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노무현은 "우리"가 따라가기 어려운 곳까지 가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의 개혁은 이기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하나씩 둘씩, 쿼바디스("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탄식조의 질문이 물결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따라간 사람들은 "이제는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되었습니까?" 라고 그를 쳐다 볼 것입니다.
노무현 개혁의 핵심은 제가 이해하기에는 헌법 정신이 지향하는 대로 대통령를 비롯한 각종 헌법 기관 및 권력 기관들의 자리를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이것의 실제적인 내용은 분권과 견제입니다. 미국말로 대통령은 프레지던트(President) 입니다. 어원상으로 말하면 이 단어는 사회를 본다는 뜻의 preside에서 나왔습니다. 회의나 결사체에서 의사를 수렴하는 역할을 하는 의장을 가리켜 프레지던트라고 부릅니다. 학급 반장도 프레지던트, 대학 총장도 프레지던트이고, 주식회사의 이사회 의장도 프레지던트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 말로 대통령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민주 헌법의 용어가 되기에 어려운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엉뚱하지만 대통령의 직함을 아예 바꾸어 버리면 좋겠습니다. 좋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탈이기는 한데, 하여간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 이것이 노무현이 하려는 첫 번째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권을 해야 하고, 상호 견제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첫 번째, 그리고 어쩌면 하나밖에 없는 전략은 대통령이 그냥 대통령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총리가 국무위원 해임 건의를 하면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검찰은 독립되어야 합니다. 국회와 정당, 언론은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송두율은 원칙대로 처리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대통령이 국가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적으로 주도하는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행정부의 수반으로 그런 역할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권력 관계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노무현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어떻게 신당이 승리할 것인가, 혹은 자기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유리하게 정국이 개편될 것인가, 그런 것을 거의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프라이즈에서는 초조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각종 전략과 예상이 난무하지만 노무현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걱정할 수 있는 방법도 현실상 없어졌습니다. 여기에 이곳을 모인 지지자들의 메시아 대망과 노무현간의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신당은 노무현 현상이 정치권에 던진 충격파로 생겨난 하나의 부산물입니다. 서영석 대표의 예상대로 한나라당이 분열한다면 그것도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과거 여당은 대통령의 "몸"이었지만, 신당은 혼자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이며, 노무현 현상의 파장이 차차 가라않으면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무엇보다 노무현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신당에는 그만큼 열광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제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지만, 하여간 노무현식 개혁은 노무현 혼자 하는 것입니다. 그가 내년 총선 이후에 탄핵되어 하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사실은 이미 그렇게 되었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하나 혹은 두어가지 면에서 그런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이 거기에 하나 혹은 몇 가지를 추가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노무현이 실패하면 파시즘이 올 수도 있다는 일부의 우려는 오히려 수구 세력을 지원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은 실패할 수 없는 개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파시즘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쁜 사람들은 언제 어디나 있습니다. 교통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깡패는 아무 데서든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잔소리는 국민을 마마보이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노무현 이후의 시대 정신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노무현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개혁은 이미 완성된 것이며, 아직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 곧 완료될 것입니다. 어쩌면 피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멀쩡한 사람이 암제거 수술을 받은 것처럼 평소보다 더 고통스럽게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노무현은 자신의 개혁을 완료하기 위해서 우리들 대부분이 끝까지 따라갈 수 없는 곳까지, 예를 들면 이라크 파병과 총선 참패, 그리고 개혁 세력의 와해에 이르기까지 혼자 갈 것입니다. 이런 것이 지금가지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쓰임새"였습니다. 한국 현대사라는 열차는 그 선로를 까느라 수고한 일꾼들을 예외 없이 치고 달려 왔습니다. 노무현 역시 그가 운전하는 열차에 자신이 깔릴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그와 운명을 같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이 소모되고 모든 사람들이 실망하겠지만, 아무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를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이제 "노무현 이후"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네티즌 정치의 제 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는 필자는 아마도 요한3장3절님이 거의 유일한 듯합니다만, 이런 지향점을 가진다면 현재 분열되어 있는 개혁 세력이 다시 결집할 수 있는 계기도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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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류 : 서프라이즈의 가치와 노무현의 정체성
우리는 서프라이즈에서 열심히 놀고있습니다. 물 속의 고기가 물의 고마움을 잊고 살 듯이 이 곳의 고마움을 잠시 잊기도 하는 듯하여 이 곳의 가치를 한 번 읊어볼까 합니다.
이 곳의 앙코는 뭐라해도 노무현에 있습니다. 노무현을 인연으로 하여 만난 사람들이요, 노무현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말씀이지요. 따라서 노무현의 정체성을 읊음으로써 이 곳의 정체성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리라 봅니다.
노무현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로서의 그"가 핵심입니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보았을 때 참 우둔한 모습을 띄고 있지요. 늦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愚衆정치의 함정과 혼란이 따른다는 것이지요. 민주주의를 따로 놓고 보았을 때 분명 틀린 말은 아니지요. 참으로 민주주의는 느립니다. 이 소리 저 소리 다 들어야하지, 이 놈 이익 저 놈 이익 다 고려해야지, 그러니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참으로 민주주의는 어리석습니다. 그 구성원의 어리석음만큼 어리석습니다. 구성원 중 가장 현명한 이의 판단에 따라 의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평균치의 수준에 따라 의사가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무엇이 이 것을 대체할 수 있습니까? 플라톤식으로 철인정치를 할까요? 분명히 가장 현명한 이는 어느 곳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그것을 판단하고 신탁 내릴 수 있겠습니까? 운 좋게 한 때 세종대왕이나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이가 우리의 리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의 지속성은 보장될 수 없지요. 인간이 걸어온 역사가 명백히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요. 현명한 독재의 환상은 포기되어진지 오래 이고 재삼 논의의 필요성도 없건만 죽은 박정희, 철권의 전두환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보면 어이가 없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가지는 느림과 우둔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해결의 열쇠는 구성원 각 자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계몽하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고 가르치며 다 함께 열렬히 참여하여 구성원 전체의 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 일의 핵심은 소통에 있습니다. 잘나든 못나든 서로의 의사를 열심히 전달하고, 다양한 가치비교를 통해 백가쟁명의 혼란을 뚫고, 현명한 선택이 구성원 다수의 의견으로 표출되도록 해야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구성원 모두가 건전한 소통의 방식과 옳은 가치를 선택하는 안목을 체득하도록 해야겠지요.
대체로 이러한 접근 방식이 노무현이 의도하는 바이고, 서프라이지안들이 바라는 바이겠지요.
그를 반영하듯이 이 곳의 소통은 대단히 원활합니다. 소생의 짧은 넷 경험으로는 이 곳만큼 소통에 열려있는 곳은 드물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곳으로부터는 동종교배니, 자위행위니, 노무현 파쇼니 하는 비판도 받기는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 자세의 건전성이 유지될 때 다름에 대해 이 곳 만큼 열려있는 곳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프라이즈라는 소통의 전범"은 이 것으로 그치는 것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지요 우리는 이 곳에서 노무현을 열심히 사수하기도 하지만, 건전한 소통의 방식을 차츰차츰 개발하고 체득하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배우며 가르치며 소통의 대가들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완숙한 넷소통의 달인들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각자 개성에 따라 또 다른 넷 세계를 개척하고 영향을 주겠지요.
소생은 개인적으로 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나 이리저리 부딪쳐 본 바로는 우리 문학동네의 썩음도 만만치 않은 것이더군요. 문학이 존재의 창으로서의 역할과 존재에 이름과 의미를 부여하는 사명을 가지고 우리와 자라나는 후세들이 그를 통해 삶을 배우고 새롭게 태어난다 할 때 그 부패는 언론의 썩음만큼이나 치명적인 것일 겁니다.
뿌리깊은 학벌·파벌주의, 출판사·언론계의 시녀노릇을 하는 비평계, 그에 따라 정체되고 반복되는 퇴행적 문학논리. 안타깝고 어이없는 마음 그지없지요.
저는 서프라이즈에서 탈출구를 봅니다. 이 곳의 진화과정을 지켜보아 왔기에 "아 이런 방식을 적용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인물을 중심으로 서프라이즈식 소통방식을 도입하고, 기존 문학동네에 썩음을 낱낱이 까발리고, 새로운 문학논리와 가치를 개발하여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삐끼질하는 것이지요. 서프라이즈가 조중동과 줄기차게 대항하여 왔듯이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각 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부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서프라이즈식 소통방식을 훌륭히 체득하고 있습니다. 이를 각 부분에서 파급시켜 나가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솔직하고 열린 자세로 서로를 계몽시켜 나가는 것이지요. 이 효과는 가히 상상을 불허합니다. 느리고 우둔한 민주주의에 엄청난 속도와 예기(銳氣)를 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아직 근대화에 이르지 못했다고 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근대화를 넘어섰는지 모르지만 그 외의 방면에서는 전혀 그렇지를 못합니다. 경제가 경제만으로 외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대로 가다가는 경제도 결국 퇴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근대화를 합리주의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 사회 곳곳이 합리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의사와 행동이 결정되어 진다는 것은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사실이지요. 조직생활을 해 본 분들이시라면 말이 필요 없는 바이겠지요. 그리고 노무현 왕따 현상, 죽은 박정희 불러내기 운동만으로도 그것은 명명백백하지요.
일단은 근대화에 포인트를 맞추어야합니다. 그 전초기지로서 서프라이즈를 지목합니다. 분명히 지금까지의 속도에 조금만 더 힘을 붙이고 세련미를 더한다면 이 곳은 그런 역할을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 근대화의 역사가 우리 손으로 우리의 정성어린 글 하나하나, 클릭 하나하나로 쓰여진다는 것이지요.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며 혼자 미소 지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학창시절 조선시대 역사를 배우며 동인이니, 서인이니, 남인이니, 북인이니 하는 것들을 머리 속에 집어넣기 위해 고생했듯이 우리 후세들은 서프라이즈니 어쩌니 하는 것들을 역사적 사실의 하나로 암기하며 머리 아파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요. 하하, 너무 오버하지 말라고요? 오버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것은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생은 감히 우리는 그런 역량이 있다고 외쳐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성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귀와 가슴과 입은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또한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서프라이지안들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야 합니다. 하루하루 나아지는 0.01%를 위하여.
2003/10/8(수)
서프라이즈의 가치와 노무현의 정체성
노무현 대 노무현, 그리고 서프라이즈 이후는 과연?
윤목사 : 노무현 대 노무현, 그리고 서프라이즈 이후는 과연?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한 사람들은 둘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됩니다. "노무현은 우리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우리는 노무현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분법이 상당히 무리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쓸모가 있다고 봅니다. "노무현은 우리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는 노무현은 개혁편, 노무현은 호남편, 노무현은 영남편, 노무현은 진보편, 노무현은 노동자와 농민편, 노무현은 젊은 사람들편, 등등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선 이후 지금까지 하나씩 둘씩 이 진영에 속했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반노 혹은 비노로 돌아섰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후보 시절부터 이런 과정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노무현이 결코 자신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을 확인한 후에 미련 없이 그를 내팽개쳤습니다. 김근태와 김민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무현은 그들의 사고 범위 내에 포섭되어지지 않는, 우리편인지 아닌지 판단이 불가능한 "불안"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극적인 경우는 역시 대선 전야의 정몽준씨였겠지요.
지역 정서나 혹은 각종 집단 이기주의, 개별 정치인들의 이기적, 혹은 정치철학적 판단 등등은 차치하고라도, 노무현은 "개혁 진영"에 속하거나 혹은 그 "편"도 아니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1차 파병이나 방폐장, 민주당 분열 등을 거치면서 노무현은 끊임없이 소박하게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을 실망시켜 왔습니다. "노무현은 우리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이제 거의 다 떠나고 몇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마지막 남은 분들이 과연 얼마나 더 갈까 궁금합니다.
지금까지도 노무현을 지지하고 정서적으로 곁이 있어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노무현편"이라고 생각해서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입니다. 노무현이 아무리 "뻘짓"을 해도 우리는 그를 믿는다, 실수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리고 어쨌거나 노무현이 대통령 잘했다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나라가 어렵게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무현은 우리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는 "노빠," "홍위병" 등등의 칭호를 받기도 합니다. 서프라이즈의 중핵이 바로 이 그룹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서프라이즈식 사고의 중심에는 일종의 "메시아 사상"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정치적 후진성을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그리고 유일한 대안은 노무현이라는 것입니다. 노무현이 실패한다면 대한민국에는 일종의 파국이 닥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기 앞에서 노무현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견고히 세울 것입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내년 총선에서 신당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메시아 사상의 한 축은 "패권주의"입니다. 노무현과 노무현을 따르는 사람들은 난세를 지혜와 용기로 절묘하게 헤쳐나가는 "패자"의 집단입니다. 물론 완력이나 부정한 힘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의로운 권력,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권력을 꿈꾸는 것입니다. 여러 필진들의 글을 재미있게 읽다 보면 문득 소름이 끼칠 정도로 패권적 언어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 이것은 "약자의 콤플렉스"일 수도 있습니다. 워낙 대통령이 거대한 한나라당과 수구 언론들에게 몰리다 보니까 그런 식이 되었을 수도 있고, 정치문제를 재미있게 게임식으로 풀어가도 보니까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곳에 감돌고 있는 패권적 사고는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패권적 사고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이기는 것 자체가 개혁이다"는 것과, "이겨야만 개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두 번째 그룹, 즉 "우리는 노무현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노무현은 "우리"가 따라가기 어려운 곳까지 가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의 개혁은 이기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하나씩 둘씩, 쿼바디스("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탄식조의 질문이 물결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따라간 사람들은 "이제는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되었습니까?" 라고 그를 쳐다 볼 것입니다.
노무현 개혁의 핵심은 제가 이해하기에는 헌법 정신이 지향하는 대로 대통령를 비롯한 각종 헌법 기관 및 권력 기관들의 자리를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이것의 실제적인 내용은 분권과 견제입니다. 미국말로 대통령은 프레지던트(President) 입니다. 어원상으로 말하면 이 단어는 사회를 본다는 뜻의 preside에서 나왔습니다. 회의나 결사체에서 의사를 수렴하는 역할을 하는 의장을 가리켜 프레지던트라고 부릅니다. 학급 반장도 프레지던트, 대학 총장도 프레지던트이고, 주식회사의 이사회 의장도 프레지던트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 말로 대통령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민주 헌법의 용어가 되기에 어려운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엉뚱하지만 대통령의 직함을 아예 바꾸어 버리면 좋겠습니다. 좋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탈이기는 한데, 하여간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 이것이 노무현이 하려는 첫 번째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권을 해야 하고, 상호 견제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첫 번째, 그리고 어쩌면 하나밖에 없는 전략은 대통령이 그냥 대통령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총리가 국무위원 해임 건의를 하면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검찰은 독립되어야 합니다. 국회와 정당, 언론은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송두율은 원칙대로 처리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대통령이 국가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적으로 주도하는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행정부의 수반으로 그런 역할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권력 관계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노무현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어떻게 신당이 승리할 것인가, 혹은 자기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유리하게 정국이 개편될 것인가, 그런 것을 거의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프라이즈에서는 초조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각종 전략과 예상이 난무하지만 노무현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걱정할 수 있는 방법도 현실상 없어졌습니다. 여기에 이곳을 모인 지지자들의 메시아 대망과 노무현간의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신당은 노무현 현상이 정치권에 던진 충격파로 생겨난 하나의 부산물입니다. 서영석 대표의 예상대로 한나라당이 분열한다면 그것도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과거 여당은 대통령의 "몸"이었지만, 신당은 혼자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이며, 노무현 현상의 파장이 차차 가라않으면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무엇보다 노무현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신당에는 그만큼 열광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제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지만, 하여간 노무현식 개혁은 노무현 혼자 하는 것입니다. 그가 내년 총선 이후에 탄핵되어 하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사실은 이미 그렇게 되었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하나 혹은 두어가지 면에서 그런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이 거기에 하나 혹은 몇 가지를 추가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노무현이 실패하면 파시즘이 올 수도 있다는 일부의 우려는 오히려 수구 세력을 지원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은 실패할 수 없는 개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파시즘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쁜 사람들은 언제 어디나 있습니다. 교통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깡패는 아무 데서든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잔소리는 국민을 마마보이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노무현 이후의 시대 정신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노무현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개혁은 이미 완성된 것이며, 아직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 곧 완료될 것입니다. 어쩌면 피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멀쩡한 사람이 암제거 수술을 받은 것처럼 평소보다 더 고통스럽게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노무현은 자신의 개혁을 완료하기 위해서 우리들 대부분이 끝까지 따라갈 수 없는 곳까지, 예를 들면 이라크 파병과 총선 참패, 그리고 개혁 세력의 와해에 이르기까지 혼자 갈 것입니다. 이런 것이 지금가지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쓰임새"였습니다. 한국 현대사라는 열차는 그 선로를 까느라 수고한 일꾼들을 예외 없이 치고 달려 왔습니다. 노무현 역시 그가 운전하는 열차에 자신이 깔릴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그와 운명을 같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이 소모되고 모든 사람들이 실망하겠지만, 아무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를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이제 "노무현 이후"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네티즌 정치의 제 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는 필자는 아마도 요한3장3절님이 거의 유일한 듯합니다만, 이런 지향점을 가진다면 현재 분열되어 있는 개혁 세력이 다시 결집할 수 있는 계기도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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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류 : 서프라이즈의 가치와 노무현의 정체성
우리는 서프라이즈에서 열심히 놀고있습니다. 물 속의 고기가 물의 고마움을 잊고 살 듯이 이 곳의 고마움을 잠시 잊기도 하는 듯하여 이 곳의 가치를 한 번 읊어볼까 합니다.
이 곳의 앙코는 뭐라해도 노무현에 있습니다. 노무현을 인연으로 하여 만난 사람들이요, 노무현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말씀이지요. 따라서 노무현의 정체성을 읊음으로써 이 곳의 정체성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리라 봅니다.
노무현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로서의 그"가 핵심입니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보았을 때 참 우둔한 모습을 띄고 있지요. 늦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愚衆정치의 함정과 혼란이 따른다는 것이지요. 민주주의를 따로 놓고 보았을 때 분명 틀린 말은 아니지요. 참으로 민주주의는 느립니다. 이 소리 저 소리 다 들어야하지, 이 놈 이익 저 놈 이익 다 고려해야지, 그러니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참으로 민주주의는 어리석습니다. 그 구성원의 어리석음만큼 어리석습니다. 구성원 중 가장 현명한 이의 판단에 따라 의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평균치의 수준에 따라 의사가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무엇이 이 것을 대체할 수 있습니까? 플라톤식으로 철인정치를 할까요? 분명히 가장 현명한 이는 어느 곳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그것을 판단하고 신탁 내릴 수 있겠습니까? 운 좋게 한 때 세종대왕이나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이가 우리의 리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의 지속성은 보장될 수 없지요. 인간이 걸어온 역사가 명백히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요. 현명한 독재의 환상은 포기되어진지 오래 이고 재삼 논의의 필요성도 없건만 죽은 박정희, 철권의 전두환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보면 어이가 없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가지는 느림과 우둔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해결의 열쇠는 구성원 각 자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계몽하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고 가르치며 다 함께 열렬히 참여하여 구성원 전체의 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 일의 핵심은 소통에 있습니다. 잘나든 못나든 서로의 의사를 열심히 전달하고, 다양한 가치비교를 통해 백가쟁명의 혼란을 뚫고, 현명한 선택이 구성원 다수의 의견으로 표출되도록 해야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구성원 모두가 건전한 소통의 방식과 옳은 가치를 선택하는 안목을 체득하도록 해야겠지요.
대체로 이러한 접근 방식이 노무현이 의도하는 바이고, 서프라이지안들이 바라는 바이겠지요.
그를 반영하듯이 이 곳의 소통은 대단히 원활합니다. 소생의 짧은 넷 경험으로는 이 곳만큼 소통에 열려있는 곳은 드물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곳으로부터는 동종교배니, 자위행위니, 노무현 파쇼니 하는 비판도 받기는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 자세의 건전성이 유지될 때 다름에 대해 이 곳 만큼 열려있는 곳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프라이즈라는 소통의 전범"은 이 것으로 그치는 것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지요 우리는 이 곳에서 노무현을 열심히 사수하기도 하지만, 건전한 소통의 방식을 차츰차츰 개발하고 체득하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배우며 가르치며 소통의 대가들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완숙한 넷소통의 달인들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각자 개성에 따라 또 다른 넷 세계를 개척하고 영향을 주겠지요.
소생은 개인적으로 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나 이리저리 부딪쳐 본 바로는 우리 문학동네의 썩음도 만만치 않은 것이더군요. 문학이 존재의 창으로서의 역할과 존재에 이름과 의미를 부여하는 사명을 가지고 우리와 자라나는 후세들이 그를 통해 삶을 배우고 새롭게 태어난다 할 때 그 부패는 언론의 썩음만큼이나 치명적인 것일 겁니다.
뿌리깊은 학벌·파벌주의, 출판사·언론계의 시녀노릇을 하는 비평계, 그에 따라 정체되고 반복되는 퇴행적 문학논리. 안타깝고 어이없는 마음 그지없지요.
저는 서프라이즈에서 탈출구를 봅니다. 이 곳의 진화과정을 지켜보아 왔기에 "아 이런 방식을 적용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인물을 중심으로 서프라이즈식 소통방식을 도입하고, 기존 문학동네에 썩음을 낱낱이 까발리고, 새로운 문학논리와 가치를 개발하여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삐끼질하는 것이지요. 서프라이즈가 조중동과 줄기차게 대항하여 왔듯이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각 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부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서프라이즈식 소통방식을 훌륭히 체득하고 있습니다. 이를 각 부분에서 파급시켜 나가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솔직하고 열린 자세로 서로를 계몽시켜 나가는 것이지요. 이 효과는 가히 상상을 불허합니다. 느리고 우둔한 민주주의에 엄청난 속도와 예기(銳氣)를 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아직 근대화에 이르지 못했다고 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근대화를 넘어섰는지 모르지만 그 외의 방면에서는 전혀 그렇지를 못합니다. 경제가 경제만으로 외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대로 가다가는 경제도 결국 퇴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근대화를 합리주의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 사회 곳곳이 합리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의사와 행동이 결정되어 진다는 것은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사실이지요. 조직생활을 해 본 분들이시라면 말이 필요 없는 바이겠지요. 그리고 노무현 왕따 현상, 죽은 박정희 불러내기 운동만으로도 그것은 명명백백하지요.
일단은 근대화에 포인트를 맞추어야합니다. 그 전초기지로서 서프라이즈를 지목합니다. 분명히 지금까지의 속도에 조금만 더 힘을 붙이고 세련미를 더한다면 이 곳은 그런 역할을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 근대화의 역사가 우리 손으로 우리의 정성어린 글 하나하나, 클릭 하나하나로 쓰여진다는 것이지요.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며 혼자 미소 지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학창시절 조선시대 역사를 배우며 동인이니, 서인이니, 남인이니, 북인이니 하는 것들을 머리 속에 집어넣기 위해 고생했듯이 우리 후세들은 서프라이즈니 어쩌니 하는 것들을 역사적 사실의 하나로 암기하며 머리 아파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요. 하하, 너무 오버하지 말라고요? 오버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것은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생은 감히 우리는 그런 역량이 있다고 외쳐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성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귀와 가슴과 입은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또한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서프라이지안들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야 합니다. 하루하루 나아지는 0.01%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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