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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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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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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석(복음과상황 편집장, 전 IVP 간사)
<인물과 사상>과 <딴지일보>
다소 이견이 있을지 모르지만, 90년대 후반 우리 사회, 특히 지성계의 최대 화두 가운데 하나는 <인물과 사상>의 강준만 교수이다. 잡지 한 권을 혼자서 거의 다 쓴 1인 저널룩(Journal + Book의 합성 신조어)을 계간과 월간으로 꼬박꼬박 내놓는 열심과 정열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실명 비판에 기초해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는 공격적인 글쓰기는 나른한 권태에 빠져 있던 지성인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에 필적할만한 상대로는 "한국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인류의 원초적 본능인 먹고 싸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우끼고 자빠진 각종 사회 비리에 처절한 똥침을 날리는 것을 임무로 삼는 手 패러디의 압권, 싸이버 공간의 뚱딴지 <딴지일보> 정도가 눈에 띄지만, 함량 및 수준에 있어 쨉이 안 된다.
문자 매체와 싸이버 공간을 대표하는 <인물과 사상>과 <딴지일보>는 자칫 위축되어 가기만 하던 글쓰기에 아연 활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둘 다 대중을 즐겁게 하는 재미와 문자 그대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예리함을 겸비하고 있는데, 이들이 기초로 하는 것은 화려한 영상도, 타고난 달변도 아닌, 뛰어난 글솜씨다.
그리고 전방위로 미치는 영향력이다. 이들은 상당한 추종자들을 얻고 있으며, 수많은 아류들을 거느리고 있다. 싸이버 공간의 각종 싸이트들에는 강준만/김어준 식의 도발적인 글쓰기가 일대 유행을 넘어 한 장르로 뿌리를 내리고 있을 정도이다.
한 마디로 글쓰기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이들이 그렇다고 미덕만 지니고 있는 건 아니다. 기존의 글쓰기의 형식과 내용을 파괴한 대가로 가지가지 욕을 얻어 먹고 있으며, 아예 무시하고 상종도 안 하는 근엄무쌍도 철옹성을 이루고 있다.
논문도 아닌 것이, 원전(原典)도 아닌 것이 운운하면서 안면몰수하고 평가절하하는 강심장들도 여전히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준만과 김어준은 90년대 후반,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한 세기말을 보냈으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강준민과 지유철에게서 읽는 글쓰기의 희망
기독교 쪽은 전보다는 다소 기세가 줄긴 했어도 여전히 몇몇 탁월한 외국 글쟁이들의 신세를 지고 있다. 헨리 나우웬과 유진 피터슨 그리고 필립 얀시가 신 삼각편대를 이루면서 존 스토트와 프란시스 쉐퍼, 폴 투르니에와 고든 맥도날드에 길들여진 기독 지성들의 충실한 벗이 되고 있다.
이네들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미덕 가운데 하나는 횡설수설하지 않고, 이렇다 할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 솜씨이다. 주제에 충실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아는 고수들의 책을 글쓰기의 관점에서 멘토링한다면 요령을 체득할 수 있다.
국내 필자들 가운데 이들에 필적할만한 잠재력과 발돋움을 보인 이는 LA에 있는 강준민 목사이다. 주로 두란노에서 나오는 강 목사의 책은 광야에서 읽는 잠언(箴言) 같다. 상당한 내공을 닦아 온 고수의 필법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로라하는 K, J 등 베스트 셀러 작가 겸 다작주의자들이 벌써부터 중고차가 언덕을 오를 때 내는 헛소리들을 내기 시작하는데 비해서, 그의 글에는 흐트러진 옷매무새,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올 안 보인다.
뿌리 깊은 묵상을 통한 영적 성숙을 갈구하는 그의 간결한 단문(短文) 한 줄은 실상 웬만한 필자들의 몇 페이지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이다. 19년째에 들어선 미국생활 중 15년을 광야에서 잊혀진 채로 살면서 기도와 묵상 그리고 독서로 수많은 시간을 보낸 그는 3년 전부터 독자들을 섬기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이런 그에게서 글쓰기의 희망을 본다.
이런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글쟁이는 기윤실의 지유철 국장이다. 그의 글은 <복음과상황>을 편집하면서 알게 됐는데, 지난 4년간 거의 매달 그의 연재글을 실어 온 나는 한번도 그의 글에 실망한 적이 없다. 아니, 그에게 실망한 적이 없다고 해야겠다.
그는 처음에는 요셉의 생애를 1인칭 화자 기법으로 써 내려간 <요셉의 회상>으로 만만치 않은 글솜씨를 선보인 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그 파피루스를 받은 데오빌로의 시각에서 서신체로 새롭게 써 가면서 독자들을 흡인한 <데오빌로의 로마통신>으로 성경 해석 쪽에도 썩 괜찮은 안목을 입증한 후, 요 몇 달간은 그가 고른 아웃사이더들(DJ.DOC, 김규항, 김정란, 진중권 등)과의 인터뷰 기사를 정리한 <선택과 옹호>로 복상의 지가(紙價)를 꽤 올려 놓았다. 성가대를 지휘하고 오케스트라 편곡을 해서일까? 구석구석 잘 조율된 그의 글은 여간해서는 월간지 마감일을 훌쩍 넘기기 일쑤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독서와 사색 그리고 글쓰기
강준만, 김어준, 강준민, 지유철은 서로 다른 글을 쓴다. 다루는 이슈도, 스타일도 다 다르다. 하지만 이들의 글은 숨어 있지 않고 읽힌다는 점에서, 매니아에 가까운 열광적인 독자들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쉽게 쓰건, 어렵게 쓰건 이들의 글은 읽는 재미가 있다.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하고, 건성으로 써 변죽만 울리는 게 아니라, 정말 치열하게 쓴다.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들은 대개 글을 쓸 요량으로 작가 수업을 한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삶 가운데 독서와 사색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연단해 온 결과로 글이 나오게 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독서와 사색하면 흔히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대로 해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고백하듯, 다른 일보다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는 일이며, 자신의 훈련과 성숙을 위한 책 고르는 일이며, 수많은 각종 정보와 자료의 홍수 속에서 미루지 않고 읽어 가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책 속에 단어와 문장으로 나와 있는 흐릿한 지도를 살피면서 길을 찾아가는 여행은 만만히 보고 덤빌 일이 아니다. 생각하는 일은 또 어떤가. 우선 말을 줄여야 하고, 집중해야 하는데, 현대인에게 침묵에 가까운 사색을 견뎌내기란 괴로운 일 가운데 하나다. 더군다나 한 단어, 한 문장을 떠올리기 위해 끙끙대는 일은 글쓰는 이라면 늘 감수해야 하는 고통스런 통과의례이다.
이쯤 되면, 난 글쓰는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노라면서 두 손을 들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비록 생각하고 읽는 일에 비해 좀더 수고를 요하기는 하지만, 생각의 조각들을 모으고, 단어와 표현을 골라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로 만드는 행위는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스릴 넘치고, 보람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젊은 지성들에게 열린 기회의 문이다.
Copyright©1997 my Jay (Kim, Yong-Joo). All rights didn't reserve. Use any time.
<인물과 사상>과 <딴지일보>
다소 이견이 있을지 모르지만, 90년대 후반 우리 사회, 특히 지성계의 최대 화두 가운데 하나는 <인물과 사상>의 강준만 교수이다. 잡지 한 권을 혼자서 거의 다 쓴 1인 저널룩(Journal + Book의 합성 신조어)을 계간과 월간으로 꼬박꼬박 내놓는 열심과 정열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실명 비판에 기초해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는 공격적인 글쓰기는 나른한 권태에 빠져 있던 지성인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에 필적할만한 상대로는 "한국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인류의 원초적 본능인 먹고 싸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우끼고 자빠진 각종 사회 비리에 처절한 똥침을 날리는 것을 임무로 삼는 手 패러디의 압권, 싸이버 공간의 뚱딴지 <딴지일보> 정도가 눈에 띄지만, 함량 및 수준에 있어 쨉이 안 된다.
문자 매체와 싸이버 공간을 대표하는 <인물과 사상>과 <딴지일보>는 자칫 위축되어 가기만 하던 글쓰기에 아연 활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둘 다 대중을 즐겁게 하는 재미와 문자 그대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예리함을 겸비하고 있는데, 이들이 기초로 하는 것은 화려한 영상도, 타고난 달변도 아닌, 뛰어난 글솜씨다.
그리고 전방위로 미치는 영향력이다. 이들은 상당한 추종자들을 얻고 있으며, 수많은 아류들을 거느리고 있다. 싸이버 공간의 각종 싸이트들에는 강준만/김어준 식의 도발적인 글쓰기가 일대 유행을 넘어 한 장르로 뿌리를 내리고 있을 정도이다.
한 마디로 글쓰기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이들이 그렇다고 미덕만 지니고 있는 건 아니다. 기존의 글쓰기의 형식과 내용을 파괴한 대가로 가지가지 욕을 얻어 먹고 있으며, 아예 무시하고 상종도 안 하는 근엄무쌍도 철옹성을 이루고 있다.
논문도 아닌 것이, 원전(原典)도 아닌 것이 운운하면서 안면몰수하고 평가절하하는 강심장들도 여전히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준만과 김어준은 90년대 후반,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한 세기말을 보냈으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강준민과 지유철에게서 읽는 글쓰기의 희망
기독교 쪽은 전보다는 다소 기세가 줄긴 했어도 여전히 몇몇 탁월한 외국 글쟁이들의 신세를 지고 있다. 헨리 나우웬과 유진 피터슨 그리고 필립 얀시가 신 삼각편대를 이루면서 존 스토트와 프란시스 쉐퍼, 폴 투르니에와 고든 맥도날드에 길들여진 기독 지성들의 충실한 벗이 되고 있다.
이네들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미덕 가운데 하나는 횡설수설하지 않고, 이렇다 할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 솜씨이다. 주제에 충실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아는 고수들의 책을 글쓰기의 관점에서 멘토링한다면 요령을 체득할 수 있다.
국내 필자들 가운데 이들에 필적할만한 잠재력과 발돋움을 보인 이는 LA에 있는 강준민 목사이다. 주로 두란노에서 나오는 강 목사의 책은 광야에서 읽는 잠언(箴言) 같다. 상당한 내공을 닦아 온 고수의 필법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로라하는 K, J 등 베스트 셀러 작가 겸 다작주의자들이 벌써부터 중고차가 언덕을 오를 때 내는 헛소리들을 내기 시작하는데 비해서, 그의 글에는 흐트러진 옷매무새,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올 안 보인다.
뿌리 깊은 묵상을 통한 영적 성숙을 갈구하는 그의 간결한 단문(短文) 한 줄은 실상 웬만한 필자들의 몇 페이지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이다. 19년째에 들어선 미국생활 중 15년을 광야에서 잊혀진 채로 살면서 기도와 묵상 그리고 독서로 수많은 시간을 보낸 그는 3년 전부터 독자들을 섬기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이런 그에게서 글쓰기의 희망을 본다.
이런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글쟁이는 기윤실의 지유철 국장이다. 그의 글은 <복음과상황>을 편집하면서 알게 됐는데, 지난 4년간 거의 매달 그의 연재글을 실어 온 나는 한번도 그의 글에 실망한 적이 없다. 아니, 그에게 실망한 적이 없다고 해야겠다.
그는 처음에는 요셉의 생애를 1인칭 화자 기법으로 써 내려간 <요셉의 회상>으로 만만치 않은 글솜씨를 선보인 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그 파피루스를 받은 데오빌로의 시각에서 서신체로 새롭게 써 가면서 독자들을 흡인한 <데오빌로의 로마통신>으로 성경 해석 쪽에도 썩 괜찮은 안목을 입증한 후, 요 몇 달간은 그가 고른 아웃사이더들(DJ.DOC, 김규항, 김정란, 진중권 등)과의 인터뷰 기사를 정리한 <선택과 옹호>로 복상의 지가(紙價)를 꽤 올려 놓았다. 성가대를 지휘하고 오케스트라 편곡을 해서일까? 구석구석 잘 조율된 그의 글은 여간해서는 월간지 마감일을 훌쩍 넘기기 일쑤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독서와 사색 그리고 글쓰기
강준만, 김어준, 강준민, 지유철은 서로 다른 글을 쓴다. 다루는 이슈도, 스타일도 다 다르다. 하지만 이들의 글은 숨어 있지 않고 읽힌다는 점에서, 매니아에 가까운 열광적인 독자들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쉽게 쓰건, 어렵게 쓰건 이들의 글은 읽는 재미가 있다.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하고, 건성으로 써 변죽만 울리는 게 아니라, 정말 치열하게 쓴다.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들은 대개 글을 쓸 요량으로 작가 수업을 한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삶 가운데 독서와 사색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연단해 온 결과로 글이 나오게 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독서와 사색하면 흔히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대로 해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고백하듯, 다른 일보다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는 일이며, 자신의 훈련과 성숙을 위한 책 고르는 일이며, 수많은 각종 정보와 자료의 홍수 속에서 미루지 않고 읽어 가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책 속에 단어와 문장으로 나와 있는 흐릿한 지도를 살피면서 길을 찾아가는 여행은 만만히 보고 덤빌 일이 아니다. 생각하는 일은 또 어떤가. 우선 말을 줄여야 하고, 집중해야 하는데, 현대인에게 침묵에 가까운 사색을 견뎌내기란 괴로운 일 가운데 하나다. 더군다나 한 단어, 한 문장을 떠올리기 위해 끙끙대는 일은 글쓰는 이라면 늘 감수해야 하는 고통스런 통과의례이다.
이쯤 되면, 난 글쓰는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노라면서 두 손을 들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비록 생각하고 읽는 일에 비해 좀더 수고를 요하기는 하지만, 생각의 조각들을 모으고, 단어와 표현을 골라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로 만드는 행위는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스릴 넘치고, 보람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젊은 지성들에게 열린 기회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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