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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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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자아>를 드러내놓는 계절이다. 가을은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과 모양과향기를 마음껏 뽐내어 자아를 실현하는 계절이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채희동의 영성마당, 자기스러움이 하느님의 형상
세상을 온통 녹색으로 덮어놓고 왕성하게 자신을 펼쳐 보였던 여름은 인사도 없이 벌써 서산 너머로 떠나가고, 이제 산은 울긋불긋 가을의 색으로 물들고, 들길은 형형색색의 들꽃들로 아름답게 수놓을 것이다.
가을은 '자아'를 드러내놓는 계절이다. 여름은 단 한 가지 색, 녹색만을 용납했지만, 가을은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과 모양과 향기를 마음껏 뽐내어 자아를 실현하는 계절이다. 가을은 각각의 꽃들이, 각각의 나무들이, 각각의 곤충들이, 각각의 생명들이 남이 가질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과 모양과 향기를 풍기며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멋지게 표현한다. 그래서 가을은 아름답고, 황홀하며, 누구라도 사랑하게 하는 계절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가장 잘 드러난 계절은 가을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생명의 종들이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모양과 색깔과 향기를 가장 잘 들어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느님의 형상'이란 똑같은 하나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색깔, 모양, 향기를 풍기며, 다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그 무엇, 곧 '자기스러움'이 아닐까.
장미 재배소와 같은 우리 가정
가을길을 걷다보면 들길에 흰색, 노란색, 빨간색의 가지각색의 코스모스가 바람에 휘날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덩달아 춤을 추는 모습에 우리 마음도 설렌다. 그런데 자동차가 달리는 큰 도로변에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둘러쳐 있는 장미 재배소가 있다. 그 곳에서 재배되는 장미꽃은 화사할지는 몰라도 향기가 없어 우리 마음을 아름다움 속으로 유혹하지 못한다. 사계절 따스한 바람과 시원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장미 재배소, 장미꽃 이외에는 다른 꽃은 결단코 인정하지 않으며, 향기는 없어도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며 놓고 시장에 좋은 값을 받고 팔려 나가면 될 뿐인 장미 재배소. 가끔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학교와 사회가, 그리고 우리의 교회가 한 가지 색깔과 한 가지 모양과 한 가지 향기만을 풍기는 장미꽃을 재배하는 장미 재배소와 같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느 집에는 아빠꽃만 있어, 아내나 자녀의 꽃은 시들어있거나, 아니면 부모의 생각과 목적에 길들여져 '자기스러움의 꽃'이 피어나지 못하는 가엾은 우리 아이들을 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가정은 아름다운 꽃밭이라기보다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획일적인 아이들로 길러지는 장미 재배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의 가정은 어떤 외부적인 권위로 끌려가고, 단 한 가지의 목적으로 길들여지는 장미 재배소가 아니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과 모양과 향기를 뿜어내며 '자기스러움'을 아름답게 피워내는 꽃밭과 같은 곳이다. 장미 재배소는 장미만 인정하지만, 꽃밭과 같은 가정은 동자꽃, 패랭이꽃, 초롱꽃, 나리꽃, 도라지꽃이 각각 고유한 자기만의 꽃과 향기를 뽐내면서 서로 한데 어울려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들꽃의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학교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장미 재배소와 같은 곳은 학교이다. 학교는 인조된 비닐하우스에 자동 펌프를 가동하여 언제나 시원한 물과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길러지는 장미 재배소와 같은 곳이다. 이 장미 재배소에는 비바람 눈보라를 막아주는 방어벽이 있으며 해충이 날아들면 농약을 뿌려 없애준다. 이 곳에서 장미 나무가 할 일은 오직 화려하고 붉은 꽃잎을 가진 장미꽃만을 피워내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성적, 점수라는 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 성적이 좋은 아이만을 인정하고 그렇지 못한 다른 꽃은 따돌림당하고, 버림받는 학교. 채송화, 민들레, 호박꽃, 할미꽃과 같은 꽃은 가차없이 뿌리뽑히고 오직 화려하고 붉은 꽃을 가진 장미꽃만이 인정받고 대학이나 사회라는 시장에 좋은 값을 받고 팔려 나갈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일류대학을 나온 학생들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는 학생들은 가차없이 버린다. 대학을 나오지 못했거나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한 학생들은 어느 자리에도 차지할 수 없는 사회가 우리 사회이며, 그래서 이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다.
우리 학교와 사회가 획일화되어 가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사회가 꿈과 창조성, 곧 미래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조적 사회란 각 사람의 개성과 재능을 인정하고 그것은 최대한 개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일 것이다. 창조란 모방을 하거나 획일화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 속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성은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찾아 볼 수가 없다.
자기스러움이 하느님의 형상이다
등산을 하다보면,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러 군데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많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기가 걸어온 길이 유일한 길이니 "이 길만이 길이다"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오늘날 교회는 예수를 만나는 길은 오직 한 길뿐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일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통 한국교회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으로 색칠해져 있고, 붉은 색의 오직 한길로 갈 것을 강요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차없이 이단이니, 삼단이니 난리다. 장미꽃처럼 한 가지의 붉은 색으로 뒤덮여 있는 한국교회는 하느님이 주신 창조성도, 영성도, 생명성도 고갈되어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
성도들이 200명이면, 예수를 만나는 길도 200가지다. 성도들은 하느님이 주신 각각의 고유한 색깔과 모양과 향기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만날 수 있다.
하느님의 창조는 같음이 있지 않고 다름에 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실 때 어느 것 하나도 똑같이 만드신 것이 없다. 오히려 같은 것이 있으며 그것을 나누어 다르게 만드셨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을 나누시고, 땅과 바다, 해와 달 등등을 끊임없이 나누고 나누어서 다양한 생명들이 각각의 고유한 빛깔을 갖게 하셨다. 각각의 고유한 빛깔이 모여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창조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창조는 다름이요, 다양성이며, 하느님의 형상은 고유성이요, 자기스러움이다. 이렇게 다양한 생명들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셔서 이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은 마침내 "보시기에 참 좋았다"(창 1:10)고 말씀하셨다.
각각의 생명들이 남이 가지지 않는 자기만의 고유성, 자기스러움을 드러낼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가을의 들꽃이 한 가지 색의 꽃만 있다면 들꽃은 아름답지 않다. 가을의 들길이 아름다운 것은 각양각색의 다양한 색깔과 종류와 모양을 갖고 있는 들꽃이 모여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의 교회는 어떤 하나의 모양이나, 하나의 색깔을 향해 가는 장미 재배소가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모양과 색깔과 향기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둘러쳐진 비닐을 벗기고, 자동 펌프를 중단시키고, 햇빛 차단막을 거두고, 온갖 해로운 살충제 살포를 중지해서 꽃 재배소의 모습을 벗겨내고 자연 그대로의 교회, 들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함께 교회라는 꽃밭을 가꾸되, 하느님이 주신 자연의 바람, 햇볕, 비를 맞으며 마음껏 날개를 펴고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다면 이 교회야말로 에덴동산과 같은 꽃동산이 아닌가.
채희동 / 벧엘교회 목사
채희동 (2002-10-07 오후 6: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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