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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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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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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njoy.co.kr/rnews/pastorate-1.asp?cnewsDay=20030129&cnewsID=3▲ⓒ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채희동의 <영성마당>...죽음과 같은 욕망을 넘는 길
오늘의 나무
여름의 나무는 여름만큼 자란다.
겨울의 나무는 겨울만큼 자라고
오늘의 나무는 오늘만큼 자란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만큼 흔들리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만큼 젖는다.
주면 주는 만큼 받고
꺾으면 꺾는 만큼 꺾인다.
나무에게는 주먹도 총도 없다.
그러므로 나무는 전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무는 패망하지도 않는다.
정복하지도 않는다.
너를 상처받게 하는 것은
너의 보이지 않는 거짓말인 꿈이다.
- '가슴 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홍영철)
사람만큼 어리석은 동물이 또 있을까
흔히 사람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정말 사람이 위대한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사람만큼 어리석은 동물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사람이 위대하다는 것은 욕심이 많아서일 것이다. 더 편하게 살 욕심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더 많이 먹을 욕심으로 유전자 공학을 만들고, 더 오래 살 욕심으로 복제인간을 만들고, 더 넓은 땅을 차지할 욕심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더 큰 교회를 지을 욕심으로 성서를 왜곡하고, 더 많은 돈을 벌 욕심으로 상식에 벗어난 짓을 하고….
하느님이 주신 있는 그대로의 지구, 있는 그대로의 사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할 생각은 하지 않고 끊임없는 욕망의 싹을 틔워 과학기술, 종교기술, 산업기술을 발전시켜, 소위 기술문명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가지고 사람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기술문명을 발전하기 전에 평화, 평등, 사랑과 정의를 노래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알맞게 주신 양식을 알맞게 나누어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너무 부족하다고 여기고 더 많은 것을 얻고 편리하게 살기 위해 놀랍고도 가공할만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자고 말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냐,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냐. 이 지구상에서 사람만큼 어리석은 동물은 없다. 사람만큼 저능아인 생명체는 없다.
다만 우리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대로의 모습, 사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것이 종교요, 그것이 인류가 걸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나무처럼 살 순 없을까
나무로 이루어진 숲은 아름답다. 싱그럽다. 숲길을 걷다가 나무를 묵상해 보면, 하느님께서 나무를 만드신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무는 욕심이 없다. 늘 언제나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나무는 자기 전 존재를 온전히 그 분, 자기를 창조하신 분께 맡긴다. 인위적으로 자기 모습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욕심을 앞세워 남의 것을 취하지도 않고,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돌연변이를 만들지도 않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언제나 그 분이 주신 삶을 살아간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만큼 흔들리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만큼 젖는다.
나무는 비가 오면 비를 더 많이 맞으려고 혹은 더 적게 맞으려고 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오는 만큼 맞고, 바람이 부는 만큼 흔들린다. 그래서 오늘의 나무는 오늘만큼 자라고, 여름 나무는 여름만큼 자라고, 겨울 나무는 겨울만큼 자란다. 아, 이 얼마나 위대한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만큼 젖을 수 있는 것,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만큼 흔들릴 수 있는 것. 오늘만큼만 자랄 수 있는 것. 이 얼마나 본질에 가 있는 모습인가.
그러나 사람은 너무나 어리석어서 아이는 아이만큼 자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어른으로 만들어 버리고, 어른은 어른만큼 말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철부지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 왜 아이는 아이만큼 자라고 어른은 어른만큼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주면 주는 만큼 받고
꺾으면 꺾는 만큼 꺾인다.
오늘 시인은 나무가 왜 위대한지를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일깨워준다. 나무가 위대한 것은 나무는 주면 주는 만큼 받고 꺾으면 꺾는 만큼 꺾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주면 더 많이 달라고 하고, 꺾으면 안 꺾이려고 한다. 더 많이 받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쓰고 공갈 협박을 한다. 꺾이지 않으려고 힘을 기르고 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일으킨다.
우리는 왜 아는 만큼 행하고, 가진 것만큼 만족하며, 믿는 만큼 믿고, 보이는 만큼 볼 수 없는 걸까. 더 많이 말해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하며, 더 잘 보고 더 잘 믿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아는 척해야 하고, 더 잘 믿는 척해야 하며, 더 잘 보이는 척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 사람이, 우리 사회가, 우리 종교가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나무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미 이루었다
하느님이 주신 것만큼 받고 만족하며 사는 나무는 평화다. 꺾으면 꺾는 만큼 꺾이는 나무는 사랑이다. 그래서 한 그루의 나무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었다. 한 그루의 나무는 어떤 집착도, 정복도, 싸움이나 미움도, 전쟁도 없다. 다만 오늘의 나무는 오늘만큼 자랄 뿐이다.
나무에게는 주먹도 총도 없다.
그러므로 나무는 전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무는 패망하지도 않는다.
정복하지도 않는다.
태초 때부터 나무는 전쟁이 없다. 그래서 패망도 없고 정복도 하지 않는다. 나무야말로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한 것이다. 아, 부끄러워라.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한 그루의 나무를 싹둑 베어버리는 사람들이여. 오고가는 길에 심심풀이로 나무 가지를 뚝 꺾어버리는 사람들이여. 그래도 나무는 베어버리는 만큼 베어지고, 꺾이는 만큼 꺾기는 오늘의 예수시여, 나무 성자시여.
나무만큼 살지 못하는 사람들
오늘 사람이 사는 시대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고, 복제인간을 만들고, 고구마 줄기에서 고추가 달리게 하고, 슈퍼 황소를 만든다. 오늘의 사람은 사람만큼 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나라는 매일 정복하고 죽음이 있고 패망을 한다. 그 이유를 시인은 '보이지 않는 거짓말인 꿈'이라고 했다.
너를 상처받게 하는 것은
너의 보이지 않는 거짓말인 꿈이다.
'보이지 않는 거짓말인 꿈', 그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사람되게 하지 못하는 것, 사람만큼 살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은 우리의 욕망! 죽음과도 같은 욕망이다. 온갖 더러움과 음흉함과 질퍽한 꿈, 이 욕망이 사람 안에서 독사처럼 도사리고 있는 한 종교도, 구원도, 해방도, 한낮 더러운 오물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 안에 감추어진 '거짓말인 꿈', 종교를 종교 되게 하지 못하고, 자기 신앙만큼 신앙하지 못하게 한다. 자기 존재를 온전히 그 분께 동화시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무 한 그루, 오늘의 나무만큼 자라는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사람만큼 살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채희동 (2003-01-30 오후 3: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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