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을 보세요?
아내는 결혼할 때 몸무게가 46kg 이었는데
출산 이후부터 계속 빠지더니 지금은
작은 딸보다 더 작게 나갑니다.
그렇게 약한 몸 덕분에 졸도한 적도 있고 또 몇 번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그녀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저에게 할 말이 있다하면서 말하길,
요즘 자신의 몸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병원에 갔었는데
의사는 그녀를 진찰한 후에 부정적인 진단을 내립니다.
너무도 불친절하게 말하는 그에게 신뢰가 가지 않아서
다른 병원에 또 갔었는데 그 곳에서도 몸의
'기'가 너무 고갈되어 지금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평소에도 질 그릇 같은 그녀 때문에
가슴 조아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막상 이런 소리를 의사에게 직접 들으니 낙심이 되면서
알 수 없는 짙은 마음이 제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상심된 마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와
아무 생각 없이 어느 신문을 보았는데 그 곳에는
마침 롱펠로우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19세기 최고의 시인인 롱펠로우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첫 번째 아내는 평생동안 병을 앓다가 죽었고
또 두 번째 아내는 집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화상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조금 전
몸이 약한 아내 때문에 마음속으로 짜증을 내고있었는데
그러한 제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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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롱펠로우가 그런 환경 가운데에서도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시를 지을 수가 있었을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치 다윗이 자기보다 몇 배 더 큰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그는 골리앗을 바라보지 않고
골리앗 뒤에 계신 그 분만을 바라보았듯이,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는 슬픔을
바라보지 않고 정원에 심기어진 사과나무에 핀 꽃을
바라보았기에 그런 아름다운 시를 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같은 상황에서도 어디를 바라보느냐
또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감사가 나올 수도 있고
탄식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인데...
저는 약한 아내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는지 한숨만 나왔던 것입니다.
작년 여름 휴가 때
어느 휴게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제 4시밖에 안되었는데 왜 이렇게 날이 어두운 거요?'
'아니? 당신 지금 선그라스 쓰고 있잖아요'
'응? 아직 선그라스 안 벗었단 말이요?'
저처럼 그렇게 밝은 대낮에도
검은 선그라스를 쓰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어둡게만 보고 늘 피해의식 속에서 고독을 씹으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라 너무도 벅찬 곳이라 생각하여
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오래 전에 본 「비욘드 사일런스」라는
영화에서도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어느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잘 교훈 해 주고 있었습니다.
주인공 라라는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부모를 세상과 연결시키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라라의 아버지는 부자 집 아들이었는데
자신의 장애 때문에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낮추고
우울하고 슬픈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고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곧 그의 딸도 아빠를 닮아
부정적이며 우울하고 홀로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결국 평소에 이런 성품 때문에
중요한 음악학교 시험을 볼 때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도 라라의 고모는
오히려 슬픈 것을 더 싫어하고 기쁘고 밝은 일만
생각하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도 라라 처럼
어릴 때부터 혼자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미리 경험해서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본인도 모르게 단조 적인 음악과 함께
감성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타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슬픈 일을 많이 경험했다고
해서 꼭 슬픈 것을 좋아하고, 기쁜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농아 인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뇌성마비임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더 밝은 사람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외적인 조건이 저 보다 몇 배 좋았지만
저보다 더 슬퍼하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물론 더 많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 인생이 왜 이리도 고달플까...'
이제 생각해보니 우리가 피곤한 인생을 사는 것은
생이 고달파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남의 눈을 의식하여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살기 때문에
그리고 늘 어두운 쪽만을 바라보며 살기 때문에
같은 환경 속에서도
우울하고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처칠처럼, 'Never give up!'이라는
말을 못해도 어느 가사처럼 이렇게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2003년 11월 16일 추수감사절에 강릉에서 피러한이 드립니다
[경포호수]피러한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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