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침묵하는 당신...
샘표식품 회장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아들이 자신의 선생님이
굉장히 비합리적이라고 불평을 할 때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 훈계했습니다.
"배우는 처지에선 불평부터 해서는 안 된다.
혹 네가 억울하더라도 참는 법을 배워라.
살면서 온갖 억울한 일이 많단다.
너는 지금부터 억울한 일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단다.
그래야 네가 사회에서 제대로 살 수 있단다."
힘없는 사람들은 원칙대로 살지만 손해보기 일쑤고
있는 자는 불법을 자행함에도 많은 이득을 보는 세상에서
본인은 재벌이면서도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으라는 그 분의 교훈은
저에게 적잖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요즘 새벽마다 「생명의 삶」욥기서를 묵상하면서
저는 인생을 새롭게 배우는 느낌이 듭니다.
모든 사람들은 입만 열었다하면 욥과
그의 친구들처럼 '자신은 의(義)롭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본인이 직접 말하기가 미안한지
'신(神)은 의롭다...'라고 돌려서 말을 합니다.
이 말이 듣기에는 굉장히 신앙적인 말 같지만,
사실은 그의 이름을 빙자하여 다른 사람을 심판하고 더불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곧 신은 의롭기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짓는 대로 심판하시는데,
욥처럼 황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의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당하는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결국 형통하게 사는 자신은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그 분의 '축복'을 받고 산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욥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 보다 불의(不義)하게 사는 사람들도
형통하게 사는 판에...
자신처럼 의롭게 산 사람이 무슨 이유로
그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느냐하는 고민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묵상하면 할수록 이제 보니
그 욥이 바로 저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욥과 같이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고...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뭐... 한 사람도...
저는 적어도 그 사람에 비해 그래도 나름대로 ...했는데...
제가 그 사람보다 못한 것이...
뭐 이런 식의 넋두리들입니다.
마치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와 비교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는 모짜르트가 자신의 약혼녀를 범하고
방탕한 생활을 거듭하자 그러한 천재성을 부여한 신을
저주하고 그를 증오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고
당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었는데...
당신은 저렇게 오만하고 방탕한 자에게
그런 재능을 주시어 당신의 도구로 쓰신단 말입니까...'
저는 어리석게도 살리에르의 생각과 같았습니다.
그는 모차르트와 비할 때 훨씬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신은
평범한 재능만 주셨는데 모짜르트는 자신과 비할 수 없이 방탕함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주시어 당신의 도구로 쓰임 받고 사람들에게
그런 영광을 받는 것에 대한 불만입니다.
이렇게 욥처럼 자신의 의(義)에 도취된
저에게 「욥기서」는 이런 깨달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는(HIM) 사람들에게 어떤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하셔도,
인간들의 생각처럼 그들의 눈앞에서 심판하지 않으시면서
끝까지...
끝까지 침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적어도 그 분이 작정한 선한 일이
다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침묵하시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정작 그는 우리 자신을 생각해서라도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데...
저같이 자신의 '의'에 도취된 사람들은
신은 오직 자신에게만 특별한 어떤 것을 말해준 것처럼
그에 관하여서는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마치 그의 변호사처럼
모든 것을 다 말해 버립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억울하게
두 번이나 도둑으로 오해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억울하고 황당한 일들을 수 없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역자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가슴에 묻어두는 것들이
자꾸만 자꾸만 늘어만 갑니다.
이렇게 욥과 같이 자신은 남보다 의롭다고 착각하는 저에게
신은 어느 날 조언자를 보내시어 저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그 분은 서울의 유명한 사립대학 총장님의
누님이셨는데 무슨 일 때문에 같이 전철을 타고
가고있을 때 저는 저의 억울한 일에 대해 불평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던 그 분이 저에게
한 마디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서는 저는 종착역까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를 다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할 수 없는 일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우리는 몇 십 년이 걸려도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나 님이여,
이제야 제가 왜 당신이 그렇게 황당하고 억울한 일에도
그리 침묵하셨는지
그 이유를 이제는 조금은 알 듯 합니다.
우리들의 억울함
우리들의 부당함
이 모든 일들은 오직 당신만이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의 할 일은
다만...
그러한 부당함과
억울함을 가슴에 묻으며
당신의 선한 때를 기다리는 일이라는 것을...
2003년 11월 23일 강릉에서 피러한이 드립니다.
^^;이 글에 대한 댓글을 부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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