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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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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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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6.4 들소리신문
[1066]“성전주의의 노예들아!”
하나님의 제단에 마지막 제물은 인간 예수, 하나님 자신이신 인자, 그 누가 이렇게 하나님의 경영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사야 53장을 읽었는가?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중략∼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임함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나눔을 입었도다.'
앞 뒤 내용을 곰곰이 살펴보노라면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가슴팍쯤 되는 위치의 존재같이 느껴진다. 정곡을 찔렀다. 핵심이다. 그 많은 신자(학자·교사)들이 구약에 걸려 넘어지는데 그들이 이사야의 도움을 받았다면 구약을 신약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터인데.
구약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바벨론 포로기에서 곧바로 메시아를 만날 수 있다. 바벨론 유수, 그 시대는(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절기이다. 메시아의 잉태기라고나 할까. 다윗은 메시아를 예언했고, 바벨론 포로기를 향한 성전파괴는 그것으로 메시아 잉태를 이루었으며, 500여 년 산고(産苦)를 거쳐서 메시아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의 구주 되셨다.
구약에 걸려 넘어질 자들이 안타까워서, 예수는 `이 성전을 헐라!'고 외치신 것이다. 이 성전을 헐어야 한다. 이 성전을 헐면 예수를 만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대속의 주, 내 생명과의 일치를 위한 그 몸 찢으심. 오늘의 우리는 이 성전을 헐라, 하시며 어찌하든지 그 골고다의 상처를 통해서 우리 인간과 하나를 이루고자 하시는 예수를 만나야 한다.
입으로는 주여, 예수여, 하면서도 구약의 노예가 되어 있는 기독교인들을 많이 본다. 또 하나의 구약의 노예인 유대교, 그리고 또 하나의 구약 종놈인 이슬람까지 아브라함의 세 자식들인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은 하루 속히 요단강을 건너는 결단을 통해서 예수를 만나야 한다.
기독교는 예수 온전히 배우지 못하여 또 하나의 제 자신같은 이슬람을 역사의 무대 위에 불러서 칼춤과 불놀이를 하면서 세계인들을 위험 속으로 부르고 있다. 절반씩 실패한 자식들.
먼저 기독교가 예수를 다시 배우라. 배움이 오지 않거든 이 성전을 헐라, 하시는 말씀의 뜻이 무엇이냐고 예수께 물으라. 그리고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그가 징계를 당함은, 그가 채찍에 맞음은, 이 대목을 더욱 깊이 묵상하라. 그 뜻을 모르겠거든 나의 몸을 찢으라. 부수라, 으깨고 쪼개라. 피 흐르게 하라.
아직도 성전의 제사를 통해서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한계 안에서 증오와 편견을 키우는 자들이여. 그것으로 기독교가 되겠는지를 생각하라. 요단을 건너고 골고다에서 자기 육신 해체를 다 하기 전에는 예수를 만나지 못할 사람들아.(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59
[1066]“성전주의의 노예들아!”
하나님의 제단에 마지막 제물은 인간 예수, 하나님 자신이신 인자, 그 누가 이렇게 하나님의 경영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사야 53장을 읽었는가?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중략∼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임함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나눔을 입었도다.'
앞 뒤 내용을 곰곰이 살펴보노라면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가슴팍쯤 되는 위치의 존재같이 느껴진다. 정곡을 찔렀다. 핵심이다. 그 많은 신자(학자·교사)들이 구약에 걸려 넘어지는데 그들이 이사야의 도움을 받았다면 구약을 신약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터인데.
구약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바벨론 포로기에서 곧바로 메시아를 만날 수 있다. 바벨론 유수, 그 시대는(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절기이다. 메시아의 잉태기라고나 할까. 다윗은 메시아를 예언했고, 바벨론 포로기를 향한 성전파괴는 그것으로 메시아 잉태를 이루었으며, 500여 년 산고(産苦)를 거쳐서 메시아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의 구주 되셨다.
구약에 걸려 넘어질 자들이 안타까워서, 예수는 `이 성전을 헐라!'고 외치신 것이다. 이 성전을 헐어야 한다. 이 성전을 헐면 예수를 만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대속의 주, 내 생명과의 일치를 위한 그 몸 찢으심. 오늘의 우리는 이 성전을 헐라, 하시며 어찌하든지 그 골고다의 상처를 통해서 우리 인간과 하나를 이루고자 하시는 예수를 만나야 한다.
입으로는 주여, 예수여, 하면서도 구약의 노예가 되어 있는 기독교인들을 많이 본다. 또 하나의 구약의 노예인 유대교, 그리고 또 하나의 구약 종놈인 이슬람까지 아브라함의 세 자식들인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은 하루 속히 요단강을 건너는 결단을 통해서 예수를 만나야 한다.
기독교는 예수 온전히 배우지 못하여 또 하나의 제 자신같은 이슬람을 역사의 무대 위에 불러서 칼춤과 불놀이를 하면서 세계인들을 위험 속으로 부르고 있다. 절반씩 실패한 자식들.
먼저 기독교가 예수를 다시 배우라. 배움이 오지 않거든 이 성전을 헐라, 하시는 말씀의 뜻이 무엇이냐고 예수께 물으라. 그리고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그가 징계를 당함은, 그가 채찍에 맞음은, 이 대목을 더욱 깊이 묵상하라. 그 뜻을 모르겠거든 나의 몸을 찢으라. 부수라, 으깨고 쪼개라. 피 흐르게 하라.
아직도 성전의 제사를 통해서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한계 안에서 증오와 편견을 키우는 자들이여. 그것으로 기독교가 되겠는지를 생각하라. 요단을 건너고 골고다에서 자기 육신 해체를 다 하기 전에는 예수를 만나지 못할 사람들아.(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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