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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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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8]성도의 신분상승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이 요한복음 17장 19절, 21절에 있다. 이 부분 뿐 아니라 전체에 흐르는 말씀의 핵심은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내용이다. 기독교 2천년에 교리적 발전이 차단된 부분이 크게 둘 있는데 그 하나가 불살생(비폭력) 부분이요 또 하나가 바로 오늘의 내용에서 지적하는 신자의 신분에 관한 말씀이다. 신자(따르는 자)의 신분이 어디까지 상승하느냐는 것이다. 오늘 제시한 말씀은 어떤가? 그 뜻이 무엇인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저들도(믿는 자들, 은혜를 입은 자들) 우리 안에 있게 해달라지 않으신가.
오늘의 기독교는 물론, 지난 2천여년의 기독교 역사에서도 보면 대다수의 신지들이 예수의 생명 한 가운데로 나아가 그와 함께 명운을 같이 하려는 이들이 희귀했다. 그러나 성경해석은 예수와 우리는 하나이다. 성령으로 태어나신 예수이시고 우리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 믿는 자들과 예수와의 만남은 신분상의 갈등이 없다. 이는 주님이 친히 하나님 아버지께 요청하신 바요, 우리도 성경의 말씀을 따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같이 저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되게 하옵소서'라 하신 은혜의 뜻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또 이 말씀을 붙잡는다. 요한복음 6장의 기록에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 하였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무슨 말이 또 있어서 예수의 단호한 이 말씀에 꼬리를 달 수 있는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신자가 누구인가. 이는 예수의 인격과 생명에 동참하는 자들을 말한다.
예수와 믿는 성도의 상호간격에 대한 존엄한 기준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수의 생명 안에서 자기 발견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신자와 교회, 또는 교파(교단)들이 예수가 그들의 삶과 조직에 관여하시려하면 가로 막던가. 어느 기독교 조직에 예수가 참여하여 간섭하실 수 있던가.
예수께서 교회에 관여(간섭)를 못하신다면 그 교회, 그 조직들은 예수와 상관이 없을 것이다. 신자들아, 또 교회들아! 우리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가 왔다.
일어나라, 예수께 가까이 다가가서 그 생명에 동참하라. 예수와 하나되면 성령과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를 받아주시리니 삼위 하나님 안에서 자녀로서의 권세를 회복하고 누린다면 기독교의 내일은 참으로 달라질 것이다. 성도들아. 지금 내 신분은 무엇인가, 신분상승에 도전해 볼 용기 있는가.
(無然)
출처/1993.6.18 들소리신문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61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이 요한복음 17장 19절, 21절에 있다. 이 부분 뿐 아니라 전체에 흐르는 말씀의 핵심은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내용이다. 기독교 2천년에 교리적 발전이 차단된 부분이 크게 둘 있는데 그 하나가 불살생(비폭력) 부분이요 또 하나가 바로 오늘의 내용에서 지적하는 신자의 신분에 관한 말씀이다. 신자(따르는 자)의 신분이 어디까지 상승하느냐는 것이다. 오늘 제시한 말씀은 어떤가? 그 뜻이 무엇인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저들도(믿는 자들, 은혜를 입은 자들) 우리 안에 있게 해달라지 않으신가.
오늘의 기독교는 물론, 지난 2천여년의 기독교 역사에서도 보면 대다수의 신지들이 예수의 생명 한 가운데로 나아가 그와 함께 명운을 같이 하려는 이들이 희귀했다. 그러나 성경해석은 예수와 우리는 하나이다. 성령으로 태어나신 예수이시고 우리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 믿는 자들과 예수와의 만남은 신분상의 갈등이 없다. 이는 주님이 친히 하나님 아버지께 요청하신 바요, 우리도 성경의 말씀을 따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같이 저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되게 하옵소서'라 하신 은혜의 뜻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또 이 말씀을 붙잡는다. 요한복음 6장의 기록에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 하였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무슨 말이 또 있어서 예수의 단호한 이 말씀에 꼬리를 달 수 있는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신자가 누구인가. 이는 예수의 인격과 생명에 동참하는 자들을 말한다.
예수와 믿는 성도의 상호간격에 대한 존엄한 기준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수의 생명 안에서 자기 발견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신자와 교회, 또는 교파(교단)들이 예수가 그들의 삶과 조직에 관여하시려하면 가로 막던가. 어느 기독교 조직에 예수가 참여하여 간섭하실 수 있던가.
예수께서 교회에 관여(간섭)를 못하신다면 그 교회, 그 조직들은 예수와 상관이 없을 것이다. 신자들아, 또 교회들아! 우리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가 왔다.
일어나라, 예수께 가까이 다가가서 그 생명에 동참하라. 예수와 하나되면 성령과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를 받아주시리니 삼위 하나님 안에서 자녀로서의 권세를 회복하고 누린다면 기독교의 내일은 참으로 달라질 것이다. 성도들아. 지금 내 신분은 무엇인가, 신분상승에 도전해 볼 용기 있는가.
(無然)
출처/1993.6.18 들소리신문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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