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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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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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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예수를 만나야 한다. 또 뛰어 넘어야 한다. 예수에게 걸림돌이 된 그런 수준으로 타종교와 더불어 만난다고 큰소리 치는 기독교 신자들을 보면 저 사람이 뭘 믿고 저렇게 설치는가 싶다.
먼저 예수를 배우라. 바르게 그의 가르침을 받으면 예수와 내가 하나인 단계로 솟구쳐 오를 수 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이게 하소서. 이는 주님의 기도이며 확신하심이다.
그렇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생명의 온전함을 믿는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예수 안에서 많은 사람이 의로써 나타나리라. 이는 믿음의 법칙이다.
많은 기독교 사람들이 타종교와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신부와 목사 그리고 승려가 함께 예배(미사·예불)하자고 서두르는 데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누구에게 무슨 유익을 주는가? 이런 식으로 해서 종교들 간의 우의를 두텁게 하자는 것인가, 종교를 하나로 만든다는 것인가.
아니다. 서로의 모습대로가 좋다. 각기 배운 대로 성불도 하고 성화의 길, 또는 성자의 길을 찾도록 하라. 그게 훨씬 빠른 길이며 상식의 질서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기독교인들, 먼저 예수를 제대로 배우자. 예수가 내 안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가. 내게 있어서 예수가 거북하지 않은가. 예수의 모든 요구에 마음 가볍게 순응할 수 있는가. 또 예수가 나의 요구에 모두 동의하시던가.
잘 살펴야 한다. 신자라고 하면서 예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겁쟁이, 예수 가까이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무지한 그 마음으로 어찌 예수와 마주 서려는가.
또 어떤 신자들은 예수에 대한 이해와 또 그 지식이 안된 경우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예수와 모세를 혼돈하는 그 지식 말이다. 만약 그게 혼돈 되어진다면 낭패다. 예수 제자들 셋(베드로·요한·야고보)이서 예수 따라 변화산에서 겪은 일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이 예수와 함께 한참동안 기도를 하는데 그들 눈앞에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와 함께 하얀 세마포를 입고 나타났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베드로가 말한다. `주여, 여기가 참 좋습니다.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모세, 또 하나는 엘리야, 또 하나 더 지어 주님의 집 삼아 여기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나이다.'
베드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이 진동하며 음성이 들려오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하시지 않은가.
모두들 깜짝 놀랐다. 순간 모세와 엘리야는 그들 눈앞에서 사라지고 예수만 있더라. 이 내용이 무엇을 말함일까? 기독교는 먼저 예수부터 바로 배워야 한다. 기독교가 세계평화에 기여하지 못한 것은 다원주의적 지혜를 배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수를 먼저 배우지 못한 탓인 줄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를 바로 배우면 타종교는 물론 세상과 만물의 이치를 알아서 세상을 모두 이롭게 하는 수준에 오르게 된다. 거기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염려하지 마라. 두려워하지도 마라. 다른 종교들과 사귀는 법이 따로 있지 않음을 예수께 배워 먼저 예수가 되라..(無然)
2003.7.2 들소리 신문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63
먼저 예수를 배우라. 바르게 그의 가르침을 받으면 예수와 내가 하나인 단계로 솟구쳐 오를 수 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이게 하소서. 이는 주님의 기도이며 확신하심이다.
그렇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생명의 온전함을 믿는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예수 안에서 많은 사람이 의로써 나타나리라. 이는 믿음의 법칙이다.
많은 기독교 사람들이 타종교와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신부와 목사 그리고 승려가 함께 예배(미사·예불)하자고 서두르는 데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누구에게 무슨 유익을 주는가? 이런 식으로 해서 종교들 간의 우의를 두텁게 하자는 것인가, 종교를 하나로 만든다는 것인가.
아니다. 서로의 모습대로가 좋다. 각기 배운 대로 성불도 하고 성화의 길, 또는 성자의 길을 찾도록 하라. 그게 훨씬 빠른 길이며 상식의 질서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기독교인들, 먼저 예수를 제대로 배우자. 예수가 내 안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가. 내게 있어서 예수가 거북하지 않은가. 예수의 모든 요구에 마음 가볍게 순응할 수 있는가. 또 예수가 나의 요구에 모두 동의하시던가.
잘 살펴야 한다. 신자라고 하면서 예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겁쟁이, 예수 가까이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무지한 그 마음으로 어찌 예수와 마주 서려는가.
또 어떤 신자들은 예수에 대한 이해와 또 그 지식이 안된 경우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예수와 모세를 혼돈하는 그 지식 말이다. 만약 그게 혼돈 되어진다면 낭패다. 예수 제자들 셋(베드로·요한·야고보)이서 예수 따라 변화산에서 겪은 일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이 예수와 함께 한참동안 기도를 하는데 그들 눈앞에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와 함께 하얀 세마포를 입고 나타났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베드로가 말한다. `주여, 여기가 참 좋습니다.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모세, 또 하나는 엘리야, 또 하나 더 지어 주님의 집 삼아 여기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나이다.'
베드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이 진동하며 음성이 들려오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하시지 않은가.
모두들 깜짝 놀랐다. 순간 모세와 엘리야는 그들 눈앞에서 사라지고 예수만 있더라. 이 내용이 무엇을 말함일까? 기독교는 먼저 예수부터 바로 배워야 한다. 기독교가 세계평화에 기여하지 못한 것은 다원주의적 지혜를 배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수를 먼저 배우지 못한 탓인 줄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를 바로 배우면 타종교는 물론 세상과 만물의 이치를 알아서 세상을 모두 이롭게 하는 수준에 오르게 된다. 거기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염려하지 마라. 두려워하지도 마라. 다른 종교들과 사귀는 법이 따로 있지 않음을 예수께 배워 먼저 예수가 되라..(無然)
2003.7.2 들소리 신문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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