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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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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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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만사형통인가요?
꼭 집고 넘어가야겠기에 글을 올립니다.
한국교회는 기도에 대해서 너무 무지합니다. 한국교회는 기도에 대해서 도깨비 방망이식의 신화를 믿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기도에 대한 예화가 나오면 으례 조지 뮐러의 5만번 기도 응답에 대한 것을 언급합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하기만 하면 된다. 기도는 만사를 형통케한다. 축복을 쏟아 부어주신다. 그런데 왜 기도를 안하냐? 이런식으로 가르침을 받았고 또 가르쳐 왔습니다.
여기에 아주 심각한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를 조지 뮐러의 기도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뮐러의 기도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뮐러의 하나님만 바라보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그 간절한 상황과 뮐러의 순전한 신앙은 언급은 안하고 5만번의 기도응답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뮐러가 5만번을 받았으니 당신도 그렇게 될수 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이러기에 기도에 대해서 대단한 오해가 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강조하는 기도는 인간적인 노력만을 부각시킨 기도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 그래서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하면서 또 소리소리 질러가면서 애타게 부르짖는 것만을 강조합니다. 즉 우리 인간편에서의 열심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면 다 들어주신다. 이게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빼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골짜는 빼놓고 기도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도 없이 내 뜻만 관철시키려고합니다. 이게 우리 기도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실력이 안되는 놈도 백일 새벽기도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 갈수 있을거라고 믿고 좋은대학 가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입학철이 되면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수험생들을 위한 특별 새벽기도회를 엽니까. 그런데 실력 없는 학생이 백일 새벽기도한다고 좋은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실력 없는 놈이 좋은 대학가기를 바라는 것은 도적놈의 심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대학은 실력있는 사람이 가야합니다. 그게 공평한 겁니다. 그런데 왜 실력도 안되는데 좋은 대학을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까? 한가지 예로 들었지만 사실 우리 주위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극단적인 예를 하나들면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유치한가 하는 것을 알수 있을 겁니다. 제가 지금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느 고등학교를 세운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이 장로님이 고등학교를 세우려고하는데 돈이 없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꼭 돈이 있어야하는데 돈이 생기지를 않습니다. 또 이 사업은 분명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돈을 주시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악에 받쳐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 기도를 안들어 주시면 주요 일간지에다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을 믿지 말라" 이렇게 광고할테니까 알아서 하십시요. 이렇게 엄포를 놨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셔셔 학교를 세울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여기에 아멘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게 "아멘" 할 일입니까? 이게 과연 바른 기도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까?
기도는 그런게 아닙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꺽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뜻을 꺽으셔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기도는 내 뜻을 꺽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나를 변화시키는게 기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변치 말아야 할 분입니다. 변해야 할것은 오직 나 자신입니다.
이런 비유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강가에 작은 배 한척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배는 육지와 연결된 줄에 묶여 있습니다. 이 줄을 잡아 당기면 배가 육지로 다가 갑니다. 그런데 배쪽에서 보면 육지가 배쪽으로 다가오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배가 육지쪽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기도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육지를 내게 다가오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육지쪽으로 가는 겁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뜻을 변화시키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나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하나도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들어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들어주시고 어떤 것은 안들어주시느냐? 이것을 어떻게 분류해 낼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신있게 분류할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다 들어주신다고. 그러면 그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누구나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안타깝게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 기도도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기도했는데 또 누가봐도 그렇다고 인정할 수 있는데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에 대해 오해할 때 우리는 깊이 좌절하게 되고 엄청난 상처를 받습니다.
왜 이렇게 응답 안되는 기도가 많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은 우리 인간이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알수 없는 부분은 알수 없습니다. 그것은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 모두 응답되기 때문에 기도는 신나는 것이고 신비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신비한게 아닙니다. 왜 신비한지 아십니까? 기도의 응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고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은 오묘하신 하나님의 뜻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신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간적인 열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는 만사 형통이다. 축복의 문이다.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건 너무 낮뜨거운 말입니다. 기도를 육신적인 축복의 도구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건 아주 잘못입니다. 베드로가 기도를 안해서 만사형통하지 못해 잡혀 순교했습니까? 바울이 기도를 안해서 잡혀 순교했습니까? 기도하면 도리어 이처럼 육신적인 손해를 볼수도 있습니다. 이게 믿음의 세계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형통케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제발 기도를 도깨비 방망이 처럼 비유하지말고 또 그렇게 가르치지도 맙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가르침 때문에 좌절하고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의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예수기도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기도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것만이 진실된 기도고 기도의 본질입니다. 겸허하게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요. 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처분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겁니다. 그외에 우리는 아무것도 하나님께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게 바른 기도의 자세입니다.
어느 장로님처럼 "만일 안들어주시면 나도 생각이 있습니다. 알아서 하십쇼"이런 엉터리 같은 기도는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 기도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믿는 이런 풍조는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자기 욕심과 자기 야망을 채우려고하는 욕심꾸러기 같은 기도는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오직 예수 닮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이 오직 이것이 되야 합니다.
기도해서 자기 욕심을 채울려고 하지말고,기도해서 자기의 욕심을 꺽어 버리고 자기의 야망을 꺽어 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시키며 진정한 순종의 삶을 살게 해달라는 바른 기도가 한국교회에 넘쳐나야 합니다.
[들꽃피는68호]읽을꺼리50
꼭 집고 넘어가야겠기에 글을 올립니다.
한국교회는 기도에 대해서 너무 무지합니다. 한국교회는 기도에 대해서 도깨비 방망이식의 신화를 믿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기도에 대한 예화가 나오면 으례 조지 뮐러의 5만번 기도 응답에 대한 것을 언급합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하기만 하면 된다. 기도는 만사를 형통케한다. 축복을 쏟아 부어주신다. 그런데 왜 기도를 안하냐? 이런식으로 가르침을 받았고 또 가르쳐 왔습니다.
여기에 아주 심각한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를 조지 뮐러의 기도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뮐러의 기도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뮐러의 하나님만 바라보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그 간절한 상황과 뮐러의 순전한 신앙은 언급은 안하고 5만번의 기도응답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뮐러가 5만번을 받았으니 당신도 그렇게 될수 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이러기에 기도에 대해서 대단한 오해가 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강조하는 기도는 인간적인 노력만을 부각시킨 기도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 그래서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하면서 또 소리소리 질러가면서 애타게 부르짖는 것만을 강조합니다. 즉 우리 인간편에서의 열심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면 다 들어주신다. 이게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빼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골짜는 빼놓고 기도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도 없이 내 뜻만 관철시키려고합니다. 이게 우리 기도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실력이 안되는 놈도 백일 새벽기도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 갈수 있을거라고 믿고 좋은대학 가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입학철이 되면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수험생들을 위한 특별 새벽기도회를 엽니까. 그런데 실력 없는 학생이 백일 새벽기도한다고 좋은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실력 없는 놈이 좋은 대학가기를 바라는 것은 도적놈의 심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대학은 실력있는 사람이 가야합니다. 그게 공평한 겁니다. 그런데 왜 실력도 안되는데 좋은 대학을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까? 한가지 예로 들었지만 사실 우리 주위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극단적인 예를 하나들면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유치한가 하는 것을 알수 있을 겁니다. 제가 지금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느 고등학교를 세운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이 장로님이 고등학교를 세우려고하는데 돈이 없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꼭 돈이 있어야하는데 돈이 생기지를 않습니다. 또 이 사업은 분명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돈을 주시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악에 받쳐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 기도를 안들어 주시면 주요 일간지에다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을 믿지 말라" 이렇게 광고할테니까 알아서 하십시요. 이렇게 엄포를 놨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셔셔 학교를 세울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여기에 아멘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게 "아멘" 할 일입니까? 이게 과연 바른 기도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까?
기도는 그런게 아닙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꺽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뜻을 꺽으셔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기도는 내 뜻을 꺽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나를 변화시키는게 기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변치 말아야 할 분입니다. 변해야 할것은 오직 나 자신입니다.
이런 비유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강가에 작은 배 한척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배는 육지와 연결된 줄에 묶여 있습니다. 이 줄을 잡아 당기면 배가 육지로 다가 갑니다. 그런데 배쪽에서 보면 육지가 배쪽으로 다가오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배가 육지쪽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기도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육지를 내게 다가오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육지쪽으로 가는 겁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뜻을 변화시키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나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하나도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들어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들어주시고 어떤 것은 안들어주시느냐? 이것을 어떻게 분류해 낼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신있게 분류할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다 들어주신다고. 그러면 그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누구나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안타깝게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 기도도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기도했는데 또 누가봐도 그렇다고 인정할 수 있는데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에 대해 오해할 때 우리는 깊이 좌절하게 되고 엄청난 상처를 받습니다.
왜 이렇게 응답 안되는 기도가 많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은 우리 인간이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알수 없는 부분은 알수 없습니다. 그것은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 모두 응답되기 때문에 기도는 신나는 것이고 신비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신비한게 아닙니다. 왜 신비한지 아십니까? 기도의 응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고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은 오묘하신 하나님의 뜻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신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간적인 열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는 만사 형통이다. 축복의 문이다.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건 너무 낮뜨거운 말입니다. 기도를 육신적인 축복의 도구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건 아주 잘못입니다. 베드로가 기도를 안해서 만사형통하지 못해 잡혀 순교했습니까? 바울이 기도를 안해서 잡혀 순교했습니까? 기도하면 도리어 이처럼 육신적인 손해를 볼수도 있습니다. 이게 믿음의 세계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형통케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제발 기도를 도깨비 방망이 처럼 비유하지말고 또 그렇게 가르치지도 맙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가르침 때문에 좌절하고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의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예수기도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기도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것만이 진실된 기도고 기도의 본질입니다. 겸허하게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요. 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처분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겁니다. 그외에 우리는 아무것도 하나님께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게 바른 기도의 자세입니다.
어느 장로님처럼 "만일 안들어주시면 나도 생각이 있습니다. 알아서 하십쇼"이런 엉터리 같은 기도는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 기도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믿는 이런 풍조는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자기 욕심과 자기 야망을 채우려고하는 욕심꾸러기 같은 기도는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오직 예수 닮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이 오직 이것이 되야 합니다.
기도해서 자기 욕심을 채울려고 하지말고,기도해서 자기의 욕심을 꺽어 버리고 자기의 야망을 꺽어 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시키며 진정한 순종의 삶을 살게 해달라는 바른 기도가 한국교회에 넘쳐나야 합니다.
[들꽃피는68호]읽을꺼리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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