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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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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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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http://www.seoprise.com
2004/2/5(목)
21세기 초 한반도 혁명 보고서
[Episode 1: 혁명 전야]
그냥 현재를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지금 상황을 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 표현인가? 몇 개 축을 기술적으로 분석하면 당연하게 원하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답이 간단하지 않더군요. 논란의 여지가 많겠지만, 지금 상황에 가장 가까울 단어는 개혁 (Reformation) 보다는 차라리 ‘혁명(Revolution)’의 정의에 부합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상해보면 더욱 그런 느낌을 치워버리기 어렵습니다. 조금 위험하지요? 그래도 생각하는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군요.
과연 지금 상황이 있는 것을 개선하고, 새롭게 제도와 규정을 바꾸어 보자는 작업인가. 뭔가 길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잡설 시리즈에서 노무현 시대의 현상은 패러다임의 변화로 해석해야 한다고 줄 곧 주장했었습니다. 그냥 주어진 틀에서 뭔가 개선하고 바꾸는 정도의 작업이 아니라 판 자체가 바뀌고 있는 거대 공정(工程)이라고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달성 수단이 개혁일 것 이라고 별 의심 없이 이야기해 왔습니다. 벌써부터 모순을 이야기한 셈이지요. (제가 좀 모자랍니다 ^^)
그러나 점점 막연했던 기운이 선명해지고 있고, 기대했던 개선보다는 팽팽하고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전선이 뚜렷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역시 개혁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확실히 개혁은 아닙니다. 제목이 뭔지는 몰라도 어떤 종류의 혁명이 맞습니다. 제 느낌이 맞다면 김대중씨 집권부터 점화되었고, 이제 터져가고 있는 진행 중 사건입니다. 그 변화량이 시간적으로 엄청나게 압축되어 있었는데도, 공간적으로 한반도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파괴력으로 광대하게 퍼져가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현상을 폭발이라고 하지요. 막연하지만 김대중 전대통령의 평양 방문부터 라고 그 기점을 추정해 보면, 이 폭발적인 변화는 겨우 3년차에 접어드는 셈입니다. 역사적으로 보통 이런 급격한 변화를 우리는 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너무도 많은 것이 바뀌고 있고, 6.29때도 살아 남았던 5.16 혁명 정권이 새로운 혁명에 의해 드디어 무너지는 와중인데도 저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혁명이 무엇일까요? 정의를 어찌 내리든 저는 역사의 명령(命)이 바뀐다(革)는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명령인가 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 명령을 내렸는가, 즉 누가 주인이었냐 라는 관점이지요. 표면에 나서있는 대리인, 브로커 따위가 아니라 당대의 철학과 가치, 그리고 힘을 공급했던 실질적인 권력이 무엇이었느냐를 기준으로 사건의 전후를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것이 신권이든, 군권이든, 부르주아든 프롤레타리아든 혹은 경영 기술자, 지식인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정치권력을 잡은 자들끼리의 노선 투쟁은 승자가 누가 되었든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정권교체라고 부릅니다. 중국의 왕조시절에는 성(姓)이 바뀌어야 정권교체가 되는 줄 알았고, 그래서 그들 말로 이를 혁명이라고 했지만 사실 정치 시스템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우리역사에서도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일제와 해방이라는 뒤집어지는 사건이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의 영예로운 의지로 만들어간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혁명 비스름한 것은 4.19였지만 그저 숭고한 정신만 살아남았던 반쪽짜리였습니다.
5.16은 혁명이 맞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없었던 시스템이 세워졌고, 새로운 정신이 만들어졌고, 그들이 제안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합작하여 통합된 시스템의 영도아래 지금도 한반도의 남쪽 ‘공간’과 전 세대에 걸쳐 의식을 절절하게 쩔여놓을 정도로 모든 ‘시간’을 지배해 온 혁명입니다. 선악 판단을 떠나서 말이죠. 그런데 박정희씨 저 세상 보내고 나서 새로운 세상이 왔나요?
바로 1212가 왔습니다. 누가 뭐래도 5.16의 덜 떨어진 다운 그레이드 버전이자 죽은 박정희가 주도한 친위 쿠데타가 맞습니다. 같은 시스템에서 똑 같은 넘들이 똑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니 정권교체라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공화당에서 민정당으로 바뀐 간판아래 모인 똑 같은 인간들, 이윽고 민정당에서 민자당으로, 신한국당으로 한나라당으로 하염없이 간판이 바뀌었지만 바뀐 것은 간판이었습니다. 그 정신과 그 시스템과 그 지배원리는 한번도 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김대중 정권에서조차 그들의 지배력을 깨뜨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직 우리시대는 5.16 Age가 맞습니다.
이제 사태가 명확하게 보입니다. 속 쓰리게도 최소한 그 위대한 5.16의 혁명 정신은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한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지금도 말이죠..
영악하게도 그들은 시스템을 개선하고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생태계 자체를 견고한 네트워크로 만들어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신에게 논리와 의식과 방어력을 제공해온 조중동, 생존 파이프라인인 돈줄을 제공해온 재벌 네트워크, 자신과 비슷한 자들만 선택하도록 설계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운전하는 관료집단, 그들에게 도전하는 규칙을 사전에 포맷하는 의회권력, 심지어 분단과 갈등에서 계산된 분노를 제공해온 북한까지 모두 5.16 시스템의 핵심 코드(Kernel)이자 운영체계라고 봐야 할 겁니다. 게다가 핵심 코드라고 할 경제가 성공적으로 동작하는 통에 한 세대가 넘는 기간동안 국민의 반 이상을 설득하는데 성공합니다.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국민이 알아서 움직여 갑니다.
정말 완벽한 체계입니다. 그 성공 경험이 너무 짜릿한 시스템이라서 아무도 손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고쳐서 개선하려고 하지요. 개혁은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개혁으로 인한 System Failure는 그들이 아니라 개혁이라는 바이러스를 포맷하게 되어있습니다. 윈도는 다시 뜨고, 그 밥에 그 나물, 그 식중독과 소화불량은 여전히 하드웨어와 네트워크 자체를 오염시킬 것 입니다.
제가 오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증거는 넘치도록 많지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을 장식용으로 달고 다니는지 도무지 믿지를 않습니다. 그들이 대를 이어 펼쳐놓은 천라지망(天羅地網)에 갇혀 애꿎은 전라도 사람이나 잡아 패고, 철 지난 빨갱이 사냥으로 깬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어도 이 땅의 ‘상식’들은 절대로 분노하지 않습니다. 같이 달려들어 즐겁게 패고 있지요. 차갑게 식은 어제가 아니라 따끈한 오늘 이야기 입니다. 친일부역에 자발적으로 우리 공동체를 모욕하고 죽음의 삯을 받고 팔아 넘긴 자들이 스스로가 민족 대화합을 외치고 있어도 옆집 개소리보다 더 불쾌하게 듣지 않습니다. 60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 대명천지에 일어나는 일들 입니다. 국민들 양심불량의 문제일까요? 그렇지요? 정말 문제가 그렇게 간단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역시 아직은 5.16 시대입니다.
그래서 작금의 민주당의 붕어대가리라고 밖에는 판단이 안 되는 행태에는 안타까움을 넘어 그 역사인식에 분노를 느낍니다. 그 어리석음에 연민을 느낍니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 최소한 정상은 아닌 상태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자폐성 치매이거나 중증 건망증이거나 조류독감에 걸려 죽는 새소리를 내고있거나 말이죠.
어쨌든 그들이 지배하는 한반도 네트워크, 그 끈적한 그물에 걸려 허우적이는 사람이 ‘아직도’ 일반 국민의 반이고, 높이 올라갈 수록 90%가 넘어 갈 겁니다. 저 자신도 자라면서 그 시스템에 길들여지고, 국민교육헌장에서 바른 생활까지 잘 짜여진 정신 교육을 받았습니다. 10년도 넘게 너무도 잘 받아서 불혹의 나이가 될 때까지 푸욱 쩔어 있었습니다. 별 의심 없이 살았고 세상만사야 어찌 돌아가든 허용된 범위 안에서 노는 것이 훨씬 편했었습니다. 반항해봐야 고달프고, 사실 진실이 더욱 거짓 같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 떠드는 놈은 간첩이거나 대남공작에 포섭된 수상한 사람이니 빨리 신고해야 착한 국민이 될 것 같았습니다. 진실이 유언비어고, 사실을 이야기하는 매체가 악성삐라와 구별이 안 가던 시절을 보냈답니다. 우리의 정신은 그렇게 만들어져 왔습니다. 우리의 몸은 그렇게 길들여져 왔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장담하지만, 40대 이상 우리 국민 대부분이 저와 비슷하게 변화 요구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을 겁니다. 더구나 실제로 법과 규칙을 굳세게 지키며 모범적(정상적)으로 살아온 ‘상식적’인 사람일수록, 이 시스템에 대한 충성도는 정비례하여 견고해집니다. 그들이 일구어온 대부분이 상식이고, 평범한 생활이고, 옳은 습관이고, 바른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부서지도록 열심히 일하고, 하지 말라는 일을 절대로 안 했던 착한 사람 들 입니다. 딸 아들 다칠까 봐 그들의 행진을 막아 왔던 사람들입니다. 5.16은 바로 그 사람들과 생사를 같이하도록 정교하게 기생하면서 성장한 시스템입니다. 죄악의 원천인 자신들은 피하고 빠져도 이 땅의 상식적인 사람이 나서서 온몸으로 개혁을 거부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얄궂고도 슬프게도 개혁세력이라고 스스로 완장을 찬 사람들이 그들을 ‘수구세력’ 이라고 싸잡아 부르고 있지요. 그들을 어떻게 치렵니까?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상식이 도전 받고 있다고 정말로 느낍니다. 먹물 들어간 미친 놈들이 떠드는 소리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아프게 재단 하는 그대들의 말씀 하나하나에서 극렬한 모욕감을 느끼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개혁은 떠들면 떠들수록 가장 상식적인 사람들을 소외시키게 되고, 그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항체를 생산하고 자신을 무장시킵니다. 국민은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빼놓고 다 개혁해야 한다고 믿지요. 그래서 개혁은 100% 실패합니다. 철없는 그대 개혁세력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한나라 네트워크를 다양한 단면으로 잘라본 실체입니다. 짧게는 45년, 길게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는 100년 왕조의 견고한 지배 네트워크로 보입니다. 건강한 노드(Node)가 오염된 링크(Link)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 사악한 지배 허브(hub)에 연결되어 서로 도와야 살아 남는 일체가 되어서 한반도를 덮어버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2004년 현재의 상황은 뭔가 냄새가 다릅니다. 5.16이 진짜로 무너질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경쟁 네트워크가 등장했고, 정치적인 세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네트워크는 완전하게 작동 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혁명의 요건을 갖춘 최초의 세력입니다. 대선에서 그 위력을 보았기 때문에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떨고있습니다. 타협의 여지도 없고,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됩니다.
이 새로운 네트워크의 무서움은 곧바로 5.16 시스템의 연료를 말려버리기도 했지만 그 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진정한 무서움은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정치를 서비스로 인식하면서 스스로 깨어났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네트워크가 한일은 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클라이언트에서 호스트로 나가는 짜릿한 외도 경험을 제공한 것 뿐입니다. 이 작은 한 걸음이 결국 한나라 네트워크의 노드이기를 거부하고 링크를 끊어버리는 효과로 나타나면서 엄청난 사단이 벌어진 것입니다. 무려 국민의 반수 가까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조중동이 진짜로 긴장하고 있습니다. 영악한 그들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전처럼 차기를 막연하게 기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이미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 사태가 의미하는 신호를 개혁세력보다 확실히 먼저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적이지만 조선일보의 책사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존경을 보냅니다. 참으로 탄복할만한 대가리요…
왜 그토록 오버질 한다는 욕을 들어먹으면서 악쓰고 광분하고 있었을까. 왜 그토록 예민했을까. 과연 단순한 적개심 하나로 대통령을 무력화 시키고자 했을까. 과연, 그들은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과연! 대선이후 파죽으로 무너졌어야 할 네트워크가 강력하게 복구되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전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두개의 네트워크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혁명 전쟁이 임박했습니다.
음.. 원래는 두 이질적인 네트워크간 모의 전쟁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이만큼은 더 써야 할 것 같아서 여기서 끊을 랍니다. 글 가는대로 쓰다가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다음에 쓰지요. 뭐…
국민들이 많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야 기본이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많이 어렵습니다. 많이 아프게 느껴지더군요. 돈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처지에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상대적인 깨끗함을 이야기 하기엔 참으로 꺼려지고, 변호하기 어렵습니다.
측근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사돈의 경우는 정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사기는 아니었다고 해도, 그 펀딩 방법과 시점과 행위자체는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엄벌에 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가 국민앞에 나와 재발방지 및 상세한 친인척 관리대책을 내 놓아야 합니다. 대통령의 비호를 암묵적으로 사용한 아주 나쁜 죄질이기 때문입니다.
벤처를 경영해본 입장에서 분노마저 느낍니다. 액면가로 펀딩하기 조차 어려운 이 시절에 그 사돈이 어떤 사업모델,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발행주식이 어느 정도 물량인지 모르지만 그 정도의 자금이 들어오려면 최소 액면가의 몇 10배는 받았을 겁니다. 그만한 수익성을 보았다는 이야기겠지요. 그 함의가 무섭습니다. 심리적 사기에 가깝습니다. 만약 사기가 아니라면 정말 대통령을 팔아서 사업을 일으키겠다고 했을 테니 역시 배임을 유도하는 사업모델에 가깝습니다. 엄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변명의 여지는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빨리! 민정수석을 경질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희생양이 아니라, 알아서 나가도 처벌 받아 마땅할 직무유기에 가깝습니다. 하루하루 피 말리면서 은행권과 벤처캐피탈을 쫒아다니는 선량한 기업가들 눈에 피눈물이 고이게 하는 행위를 어찌 용서 받을 수 있을까…
에이.. 이래저래 꿀꿀한 밤입니다.
[Episode 2 : 망전(網戰),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책략]
거대 네트워크간 혁명 전쟁이 임박해있습니다. 아니 교전 중이라고 봐야 맞을 겁니다. Top down으로 온 나라를 내리 덮었던 한나라 네트워크와 Bottom up으로 그들의 지배 구조를 걷으면서 올라가는 국민 네트워크의 격돌입니다. 화려한 과거와 전통의 영속을 꿈꾸는 정파(正派)와 불확실하지만 진보하는 미래와 쉼 없는 변화를 꿈꾸는 사파(邪派)의 대결입니다. 두 개의 네트워크는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 다르고, 시간을 다스리는 주기가 다릅니다. 힘이 무게와 가속도로 만들어진다면(F=ma), 전자(前者)는 무게를 키우고 공간을 메우고 집중하는 전략에서 힘을 얻고, 후자(後者)는 가속도를 높이고 공간을 늘리는 전략에서 그 힘을 얻습니다. 권력도 힘인데 그 힘의 원리라고 별 다르겠습니까?
저는 이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상 최초의 네트워크 형태의 새로운 전쟁이자, 본격적인 정규전이라고 보고있습니다. 막강한 효율과 집중력을 특징으로 하는 피라미드 조직과 게릴라전 자체를 정규전의 형태로 채용한 네트워크 조직의 비(非) 군사적 격돌이라고 보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 군사적이라고 해도 평화적인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서로의 운명이 달려있는 치열함으로 따지면 전쟁보다 훨씬 위력적으로 낡은 시스템을 흔들고 적합하지 않은 선수들을 격리시키게 될 겁니다. 과거의 혁명은 그 반대자를 살육하거나 사형으로 격리하지만, 새로운 혁명은 코어 시스템에의 접속을 차단하는 젊잖은 형태가 될 것이라고 하면 옳은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정치적 결과는 같습니다.
전쟁 자체도 형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는 물리적 공간에서 총칼 물리력으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모두가 피하고 싶은 죄악이라고 다들 학습이 된 상태입니다. 비기기는 고사하고 승전 이후에도 잘 된다는 보장이 없는 무식한 파괴전이라서 요즘은 전쟁을 벌이는 쪽에서도 손익 채산이 맞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 높아진 민도 환경에서는 그 시도조차 비웃기는 이미 촌스러운 과거의 패션이 되어버렸지요. 그래서 정치경제학의 합리성은 대부분의 전쟁과 혁명들을 돈과 위험이 적은 논리적 시공으로 그 전장을 이동시켜왔습니다. 졸지에 혁명도 장기판 말처럼 상징과 아이콘을 가지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대리 전쟁을 벌이는 셈인데, 그래도 크게 이긴 자가 국가 자원을 오로지할 수 있는 규칙을 장악하는 권리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여간 치열하지 않지요.
그래서 전쟁과 게임은 실제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스포츠와 정치가 같은 점은 정말 게임에 목숨을 걸 정도로 진지하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스포츠가 사소한 승부에 목숨까지 걸지만 정치게임은 각자 대표하는 가치의 실현에 목숨을 건다는 차이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21세기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전쟁은 그 규모가 가장 거대하고, 의미가 사뭇 위대하다고까지 보여지는 바가 있습니다. 즉, 과거의 혁명과는 완전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투쟁이자, 성공한다면 21세기 정치 패러다임의 기술적 원형을 보여주는 명예혁명이 아닐까 하는 정도까지 생각합니다. 21세기를 지배할 새로운 정치학은 앞으로 일어날 한국의 정치패턴을 연구해야 하거나, 한국어를 원전으로 인용되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이 조중동이 보증하고, 자타가 공인한다고 주장하는 정치후진국이자 파멸적으로 오염된 부패 쓰레기통이라는 부끄러운 나라에서 말이죠. 피고름을 짜내는 현장에서 불결하다고 수술을 막아야 한다고 악다구니하는 이 도통 빌어먹을 사이비 주술사들도 그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멀티미디어 버전으로 말이죠.
제가 보기에는 이 선택이 성공한다면 의회의 원리와 행정의 원리마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할 정도로 아주 새로운 원리들의 등장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정치 시스템을 설계하는 자들이 땀 흘려 대답해야 할 질문이 무섭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 지독하게 빨라진 나라에서 느려터진 배치(Batch=일괄처리)형 일 처리 방식이 가당한 이야기인가. 민간보다 지식, 경험, 리더십에서 모두에서 열등한 국회의원이라는 대리인 제도는 역시 한참 열등한 행정 관료들과 함께 어떤 시스템으로 재편해야 하는가. 또한 이 에이전트들이 국민의 ‘무엇’을 ‘어떻게’ 대표해야 할지도 중요했지만 ‘언제’가 더욱,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해졌다는 환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더구나 On-line 시대를 넘어 모바일 컴퓨팅 시대, 더 나아가 새로운 정치 공간이라고 할 유비쿼터스(Ubiquitous) 환경이 지구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 지고 있는 이 진정한 마법의 대륙에서 국민의 뜻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서비스 체제가 과연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가설을 세워보면 이 시스템의 붕괴는 가부(可否)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시간의 문제라고 까지 보여집니다. 물론 이 시점에 노무현씨를 새로운 시대의 혁명적 표식으로 삼았던 이 땅의 위대한 국민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으면 섭섭하고 불쾌하겠지요.
어쨌든, 민(民)이 어디에 있거나, 혹은 누구와 관계없이 이해가 일치한다면 동지를 순식간에 모을 수 있는 환경에서 그 처리를 누구에게 위탁할 것이며, 언제까지 기다려 줄 수 있을까. 과연 이 물리적 구획으로 나누는 선거구 획정이 민(民)이 실제로 움직이는 논리적인 구획과 이해가 충돌할 경우 어떤 규칙으로 해결할 것인가. 등등 광대한 사이버공간과 물리공간이 정치적으로 통합되어가는 폭발적인 서비스 확대의 와중에서 우리의 정치인들은 ‘상시화’ 된 혁명, 계속 혁명, 혹은 혁신의 일상화라는 생소한 환경에 직면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시스템에서 미래의 정치원리가 되어야 할 비슷한 형태를 찾는다면 아마도 프로구단의 운영 원리가 될 겁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는 개인과 법인이 견딜 만한 인내력의 한계와 행정 서비스의 속도가 열린 공간에서 직접 싸워야 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에 가깝습니다. 서비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영토를 떠나거나 갈아엎게 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은 범 국가적 지식 인프라가 먼저 깔리고, 지식이 그 인프라를 타고 흐르는 국가간 경쟁과 맞물려 결코 정치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제 건방진 해석으로는, 죽은 마르크스가 기분 나쁘겠지만 그의 혁명에 대한 통찰은 아주 일부만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하부구조의 변혁은 체제의 혈관 네트워크(자본)에 의해서가 아니라, 뉴런(Neuron)네트워크(정보)가 더욱 상부구조를 바꾸는 원천에 가깝습니다. 자율신경계가 장악한 혈관을 건드려봐야 시스템이 꼬이기만 하는 할 뿐이지요. 심장과 순환계를 의지로 통제한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지네가 그 많은 다리를 의지로 통제하면서 전진하려면 지쳐서 단 몇 분도 살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건드려야 할 것은 대뇌 신경계와 온몸에 몇 수십 조(兆)단위로 펼쳐져 있는 감각 뉴런(Sensor)과 이 뉴런의 신호를 해석하고 처리하는 연합 뉴런(Processing), 그리고 근육을 타고 행동을 전달하는 운동 뉴런(Action)들이 내 의지로 움직이도록 장악하는 일입니다. 이 모든 신경 노드가 연결되고, 스스로 알아서 처리되고, 그래서 자발적인 행동을 만들어내면 그 시스템은 장악된 겁니다. 내 맘에 가깝게 움직인다는 이야기지요. 정치적 혁명 역시 국민이라는 뉴런을 통해 상황을 감지하고 연결하고 동작하는 일련의 정보 시스템을 움직일 수 없다면 군사적 승리 이외에 혁명이라는 의미자체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자본의 자유는 경제혁명을 몰고 가지만, 정보의 자유는 정치혁명을 몰아갑니다. 이 자본과 정보가 합해지면 권력이라는 우아한 통일을 만들어냅니다. 못 할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고, 그래서 모든 것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 진행중인 대~한민국의 혁명은 이 뉴런 시스템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바꾸는 최초의 전쟁입니다. 2004년 현재 이 시스템의 버전은 제가 5.16 시스템이라고 명명했습니다만, 무식한 군인이 병영관리에 쓰던 것을 대충 설계하여 민간에 적용한 운영체계입니다. 그 원리는 중앙에 거대한 사령부를 두고 사단장, 연대장에서 소대장까지 내려가면서 명령과 통제로 움직이는 버전입니다.
이 시스템의 초기에는 이 작업을 도스나 윈도와 같은 운영체제(OS)가 나라의 모든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인 입출력을 장악하고, 계산을 독점하고, 계산 결과의 유통을 독점합니다. 체제 안의 모든 자원 사용의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내부 네트워크를 장악하지만 시스템이 처리해야 할 정보량이 커지거나 어디 하나가 취약하면 병목에 걸려서 거의 돌아가지 않습니다. 민간은 그나마 좀 낫지만, 정부와 정치구조는 거의 감격시대에다 야인시대 아사리판이라고 보면 맞지요.
이제 이 시스템을 이제는 국민들이 만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하고자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새로운 원리는 느슨한 네트워크에 의한 분산 컴퓨팅임에 틀림없습니다. 병목을 해결하고 자원의 집중을 견제하면서 연결된 노드 하나 하나의 자발적인 참여가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만드는 아주 새로운 원리의 정치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코드체계도 다르고 아래로만 흐르던 통신방식이 이제는 천지사방으로 흐르니 프로토콜 자체가 달라서 이 나라안에 행복한자가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참으로 고통스럽지요. 시스템의 고통이자 이를 해체하는 사람의 고통입니다. 목이 터져라 불러도 듣는 자가 없다는 깜깜함입니다. 시스템을 지키는 자는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해체하려는 자는 너무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장악한 시스템 안에서 국민들의 반란이 밑으로부터 일어나고 있습니다. 드디어 진정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동안 5.16 시스템이 보기에 하찮은 바이러스 형태라서 많이도 포맷 당했지만, 이 허약해 보이는 국민 각자가 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개인화된 매체가 평범한 개인을 느슨하게 연결하더니, 시스템이 독점했던, 막대한 돈을 타고 흐르던 귀한 정보를 무료로 증여하고 무한정 공유하는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윽고 헌신적인 핵심 Hub들이 자발적으로 생겨났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도 그 위대한 정치적 함의를 인식한 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5.16시스템이 이 느슨한 네트워크가 보낸 대리인을 극심하게 흔들기 시작하면서 이 유사 생명체는 급격하게 팽팽해지고 놀랍도록 빠르게 스스로를 진화시키게 됩니다. 몇 개월 지나기도 전에 감각계, 연합계, 운동계의 뉴런이 완성되고, 대뇌라고 해야 할 거대한 병렬처리 연산능력과 막대한 지식 DB마저 확보합니다. 네트워크 자체가 지능을 가지게 되면서 드디어 시스템 자체와 대결할 정도로 성장합니다. 워낙 강한 열정과 에너지가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터져가고 있기 때문에 파죽의 기세로 한반도 네트워크 전체를 출렁이게 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허접 쓰레기 같은 구태 지식인들을 논리로 도륙해가면서, 국민이 위임한 권력 한 자락으로 세상에 사기치고 국민을 훈계했던 낯두꺼운 인간들을 망신시켜가면서, 노드에 연결된 모든 깨인 자들에게 스스로 깨우친 지식을 아낌없이 학습시켜가면서,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을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의 혁명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게 불과 2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앞으로 어찌 진화하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 무서운 힘을 느낀 자와 아둔한 자가 이미 갈리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이 스스로 만들고 있는 이 장엄한 공포를 저들에게 느끼게 하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지요. 다시금 우리의 네트워크가 팽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글이 또 길어졌군요. 1/3도 못 쓴 것 같은데… 주절주절 떠들다 보니 또 민폐를 끼쳤습니다.
저로서는 이번 싸움은 그 비장함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많이 놀랍고도 흥미롭습니다. 대선이 오히려 게릴라전인 비정규전에 가까웠고, 오히려 총선이 정규전의 원리에 따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인데, 이거이 대체 맞는 전략인가 모르겠습니다. 속도와 범위를 조금이라도 줄이면, 방어전의 성격을 띠면 몰살의 위험이 있을 텐데…
지난 대선은 국민네트워크가 정치분야에서 전선(戰線)을 만들어 치른 최초의 전면전이었습니다. 외형은 지휘부 방어전이었지만 사실은 공성전에 가까운 전투를 치렀던 특이한 전쟁이었습니다. 게다가 아군의 전투력이 분산되고 지휘체계 대부분이 자멸적으로 붕괴하면서 전투의 양태는 오히려 개인기에 의존하는 게릴라전 (비정규전)이었고, 의용군이 연결된 자발적 노드에서 각개로 수행되었습니다. 겨우 마지막 1개월 동안 조직에 의한 정규전을 치렀으니 실제로 비정규전을 통해 전선을 형성하고 단 한번의 정규전을 통해 마무리 지었던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이번 총선의 키워드는 광범위한 홍보(후방 지원)과 적은 인력으로 광범위한 지역을 두 번 이상의 회전률로 휩쓸고 들어가는, 그래서 지역별 이슈파이팅에서 이기고 브랜드를 선명하게 각인시켜야 하는 게임입니다. 지역과 돈을 쓸 수 없는 게임이고, 인물도 신인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너무도 명확한 게임인데… 다시 중앙이라… (바보아냐???)
어쨌든,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한국의 현 상황은 17세기 말의 영국을 방불케 하는 면이 있습니다.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런던에 모든 부와 정보가 집중되는 기형적인 도시화, 중산층의 급격한 증가와 지식 시민화, 의회권력과 왕권의 갈등, 그리고 전세계의 은을 독점하면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한 스페인-합스부르크 제국이라는 초강대국과 프랑스 등 대륙의 강대국에 비해 아직은 변방의 국가로서 수출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경제구조, 심지어 스코틀랜드와의 적대적 분쟁까지 어쩌면 그리도 비슷할까요.
우리 국민 네트워크가 만들어가는 미래가 바로 영국의 시대를 만들었던 그 조건을 모두 갖추어 가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이려나…
요한3장3절
2004/2/5(목)
21세기 초 한반도 혁명 보고서
[Episode 1: 혁명 전야]
그냥 현재를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지금 상황을 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 표현인가? 몇 개 축을 기술적으로 분석하면 당연하게 원하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답이 간단하지 않더군요. 논란의 여지가 많겠지만, 지금 상황에 가장 가까울 단어는 개혁 (Reformation) 보다는 차라리 ‘혁명(Revolution)’의 정의에 부합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상해보면 더욱 그런 느낌을 치워버리기 어렵습니다. 조금 위험하지요? 그래도 생각하는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군요.
과연 지금 상황이 있는 것을 개선하고, 새롭게 제도와 규정을 바꾸어 보자는 작업인가. 뭔가 길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잡설 시리즈에서 노무현 시대의 현상은 패러다임의 변화로 해석해야 한다고 줄 곧 주장했었습니다. 그냥 주어진 틀에서 뭔가 개선하고 바꾸는 정도의 작업이 아니라 판 자체가 바뀌고 있는 거대 공정(工程)이라고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달성 수단이 개혁일 것 이라고 별 의심 없이 이야기해 왔습니다. 벌써부터 모순을 이야기한 셈이지요. (제가 좀 모자랍니다 ^^)
그러나 점점 막연했던 기운이 선명해지고 있고, 기대했던 개선보다는 팽팽하고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전선이 뚜렷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역시 개혁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확실히 개혁은 아닙니다. 제목이 뭔지는 몰라도 어떤 종류의 혁명이 맞습니다. 제 느낌이 맞다면 김대중씨 집권부터 점화되었고, 이제 터져가고 있는 진행 중 사건입니다. 그 변화량이 시간적으로 엄청나게 압축되어 있었는데도, 공간적으로 한반도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파괴력으로 광대하게 퍼져가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현상을 폭발이라고 하지요. 막연하지만 김대중 전대통령의 평양 방문부터 라고 그 기점을 추정해 보면, 이 폭발적인 변화는 겨우 3년차에 접어드는 셈입니다. 역사적으로 보통 이런 급격한 변화를 우리는 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너무도 많은 것이 바뀌고 있고, 6.29때도 살아 남았던 5.16 혁명 정권이 새로운 혁명에 의해 드디어 무너지는 와중인데도 저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혁명이 무엇일까요? 정의를 어찌 내리든 저는 역사의 명령(命)이 바뀐다(革)는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명령인가 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 명령을 내렸는가, 즉 누가 주인이었냐 라는 관점이지요. 표면에 나서있는 대리인, 브로커 따위가 아니라 당대의 철학과 가치, 그리고 힘을 공급했던 실질적인 권력이 무엇이었느냐를 기준으로 사건의 전후를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것이 신권이든, 군권이든, 부르주아든 프롤레타리아든 혹은 경영 기술자, 지식인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정치권력을 잡은 자들끼리의 노선 투쟁은 승자가 누가 되었든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정권교체라고 부릅니다. 중국의 왕조시절에는 성(姓)이 바뀌어야 정권교체가 되는 줄 알았고, 그래서 그들 말로 이를 혁명이라고 했지만 사실 정치 시스템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우리역사에서도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일제와 해방이라는 뒤집어지는 사건이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의 영예로운 의지로 만들어간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혁명 비스름한 것은 4.19였지만 그저 숭고한 정신만 살아남았던 반쪽짜리였습니다.
5.16은 혁명이 맞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없었던 시스템이 세워졌고, 새로운 정신이 만들어졌고, 그들이 제안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합작하여 통합된 시스템의 영도아래 지금도 한반도의 남쪽 ‘공간’과 전 세대에 걸쳐 의식을 절절하게 쩔여놓을 정도로 모든 ‘시간’을 지배해 온 혁명입니다. 선악 판단을 떠나서 말이죠. 그런데 박정희씨 저 세상 보내고 나서 새로운 세상이 왔나요?
바로 1212가 왔습니다. 누가 뭐래도 5.16의 덜 떨어진 다운 그레이드 버전이자 죽은 박정희가 주도한 친위 쿠데타가 맞습니다. 같은 시스템에서 똑 같은 넘들이 똑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니 정권교체라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공화당에서 민정당으로 바뀐 간판아래 모인 똑 같은 인간들, 이윽고 민정당에서 민자당으로, 신한국당으로 한나라당으로 하염없이 간판이 바뀌었지만 바뀐 것은 간판이었습니다. 그 정신과 그 시스템과 그 지배원리는 한번도 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김대중 정권에서조차 그들의 지배력을 깨뜨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직 우리시대는 5.16 Age가 맞습니다.
이제 사태가 명확하게 보입니다. 속 쓰리게도 최소한 그 위대한 5.16의 혁명 정신은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한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지금도 말이죠..
영악하게도 그들은 시스템을 개선하고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생태계 자체를 견고한 네트워크로 만들어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신에게 논리와 의식과 방어력을 제공해온 조중동, 생존 파이프라인인 돈줄을 제공해온 재벌 네트워크, 자신과 비슷한 자들만 선택하도록 설계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운전하는 관료집단, 그들에게 도전하는 규칙을 사전에 포맷하는 의회권력, 심지어 분단과 갈등에서 계산된 분노를 제공해온 북한까지 모두 5.16 시스템의 핵심 코드(Kernel)이자 운영체계라고 봐야 할 겁니다. 게다가 핵심 코드라고 할 경제가 성공적으로 동작하는 통에 한 세대가 넘는 기간동안 국민의 반 이상을 설득하는데 성공합니다.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국민이 알아서 움직여 갑니다.
정말 완벽한 체계입니다. 그 성공 경험이 너무 짜릿한 시스템이라서 아무도 손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고쳐서 개선하려고 하지요. 개혁은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개혁으로 인한 System Failure는 그들이 아니라 개혁이라는 바이러스를 포맷하게 되어있습니다. 윈도는 다시 뜨고, 그 밥에 그 나물, 그 식중독과 소화불량은 여전히 하드웨어와 네트워크 자체를 오염시킬 것 입니다.
제가 오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증거는 넘치도록 많지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을 장식용으로 달고 다니는지 도무지 믿지를 않습니다. 그들이 대를 이어 펼쳐놓은 천라지망(天羅地網)에 갇혀 애꿎은 전라도 사람이나 잡아 패고, 철 지난 빨갱이 사냥으로 깬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어도 이 땅의 ‘상식’들은 절대로 분노하지 않습니다. 같이 달려들어 즐겁게 패고 있지요. 차갑게 식은 어제가 아니라 따끈한 오늘 이야기 입니다. 친일부역에 자발적으로 우리 공동체를 모욕하고 죽음의 삯을 받고 팔아 넘긴 자들이 스스로가 민족 대화합을 외치고 있어도 옆집 개소리보다 더 불쾌하게 듣지 않습니다. 60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 대명천지에 일어나는 일들 입니다. 국민들 양심불량의 문제일까요? 그렇지요? 정말 문제가 그렇게 간단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역시 아직은 5.16 시대입니다.
그래서 작금의 민주당의 붕어대가리라고 밖에는 판단이 안 되는 행태에는 안타까움을 넘어 그 역사인식에 분노를 느낍니다. 그 어리석음에 연민을 느낍니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 최소한 정상은 아닌 상태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자폐성 치매이거나 중증 건망증이거나 조류독감에 걸려 죽는 새소리를 내고있거나 말이죠.
어쨌든 그들이 지배하는 한반도 네트워크, 그 끈적한 그물에 걸려 허우적이는 사람이 ‘아직도’ 일반 국민의 반이고, 높이 올라갈 수록 90%가 넘어 갈 겁니다. 저 자신도 자라면서 그 시스템에 길들여지고, 국민교육헌장에서 바른 생활까지 잘 짜여진 정신 교육을 받았습니다. 10년도 넘게 너무도 잘 받아서 불혹의 나이가 될 때까지 푸욱 쩔어 있었습니다. 별 의심 없이 살았고 세상만사야 어찌 돌아가든 허용된 범위 안에서 노는 것이 훨씬 편했었습니다. 반항해봐야 고달프고, 사실 진실이 더욱 거짓 같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 떠드는 놈은 간첩이거나 대남공작에 포섭된 수상한 사람이니 빨리 신고해야 착한 국민이 될 것 같았습니다. 진실이 유언비어고, 사실을 이야기하는 매체가 악성삐라와 구별이 안 가던 시절을 보냈답니다. 우리의 정신은 그렇게 만들어져 왔습니다. 우리의 몸은 그렇게 길들여져 왔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장담하지만, 40대 이상 우리 국민 대부분이 저와 비슷하게 변화 요구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을 겁니다. 더구나 실제로 법과 규칙을 굳세게 지키며 모범적(정상적)으로 살아온 ‘상식적’인 사람일수록, 이 시스템에 대한 충성도는 정비례하여 견고해집니다. 그들이 일구어온 대부분이 상식이고, 평범한 생활이고, 옳은 습관이고, 바른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부서지도록 열심히 일하고, 하지 말라는 일을 절대로 안 했던 착한 사람 들 입니다. 딸 아들 다칠까 봐 그들의 행진을 막아 왔던 사람들입니다. 5.16은 바로 그 사람들과 생사를 같이하도록 정교하게 기생하면서 성장한 시스템입니다. 죄악의 원천인 자신들은 피하고 빠져도 이 땅의 상식적인 사람이 나서서 온몸으로 개혁을 거부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얄궂고도 슬프게도 개혁세력이라고 스스로 완장을 찬 사람들이 그들을 ‘수구세력’ 이라고 싸잡아 부르고 있지요. 그들을 어떻게 치렵니까?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상식이 도전 받고 있다고 정말로 느낍니다. 먹물 들어간 미친 놈들이 떠드는 소리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아프게 재단 하는 그대들의 말씀 하나하나에서 극렬한 모욕감을 느끼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개혁은 떠들면 떠들수록 가장 상식적인 사람들을 소외시키게 되고, 그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항체를 생산하고 자신을 무장시킵니다. 국민은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빼놓고 다 개혁해야 한다고 믿지요. 그래서 개혁은 100% 실패합니다. 철없는 그대 개혁세력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한나라 네트워크를 다양한 단면으로 잘라본 실체입니다. 짧게는 45년, 길게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는 100년 왕조의 견고한 지배 네트워크로 보입니다. 건강한 노드(Node)가 오염된 링크(Link)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 사악한 지배 허브(hub)에 연결되어 서로 도와야 살아 남는 일체가 되어서 한반도를 덮어버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2004년 현재의 상황은 뭔가 냄새가 다릅니다. 5.16이 진짜로 무너질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경쟁 네트워크가 등장했고, 정치적인 세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네트워크는 완전하게 작동 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혁명의 요건을 갖춘 최초의 세력입니다. 대선에서 그 위력을 보았기 때문에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떨고있습니다. 타협의 여지도 없고,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됩니다.
이 새로운 네트워크의 무서움은 곧바로 5.16 시스템의 연료를 말려버리기도 했지만 그 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진정한 무서움은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정치를 서비스로 인식하면서 스스로 깨어났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네트워크가 한일은 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클라이언트에서 호스트로 나가는 짜릿한 외도 경험을 제공한 것 뿐입니다. 이 작은 한 걸음이 결국 한나라 네트워크의 노드이기를 거부하고 링크를 끊어버리는 효과로 나타나면서 엄청난 사단이 벌어진 것입니다. 무려 국민의 반수 가까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조중동이 진짜로 긴장하고 있습니다. 영악한 그들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전처럼 차기를 막연하게 기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이미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 사태가 의미하는 신호를 개혁세력보다 확실히 먼저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적이지만 조선일보의 책사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존경을 보냅니다. 참으로 탄복할만한 대가리요…
왜 그토록 오버질 한다는 욕을 들어먹으면서 악쓰고 광분하고 있었을까. 왜 그토록 예민했을까. 과연 단순한 적개심 하나로 대통령을 무력화 시키고자 했을까. 과연, 그들은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과연! 대선이후 파죽으로 무너졌어야 할 네트워크가 강력하게 복구되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전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두개의 네트워크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혁명 전쟁이 임박했습니다.
음.. 원래는 두 이질적인 네트워크간 모의 전쟁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이만큼은 더 써야 할 것 같아서 여기서 끊을 랍니다. 글 가는대로 쓰다가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다음에 쓰지요. 뭐…
국민들이 많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야 기본이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많이 어렵습니다. 많이 아프게 느껴지더군요. 돈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처지에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상대적인 깨끗함을 이야기 하기엔 참으로 꺼려지고, 변호하기 어렵습니다.
측근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사돈의 경우는 정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사기는 아니었다고 해도, 그 펀딩 방법과 시점과 행위자체는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엄벌에 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가 국민앞에 나와 재발방지 및 상세한 친인척 관리대책을 내 놓아야 합니다. 대통령의 비호를 암묵적으로 사용한 아주 나쁜 죄질이기 때문입니다.
벤처를 경영해본 입장에서 분노마저 느낍니다. 액면가로 펀딩하기 조차 어려운 이 시절에 그 사돈이 어떤 사업모델,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발행주식이 어느 정도 물량인지 모르지만 그 정도의 자금이 들어오려면 최소 액면가의 몇 10배는 받았을 겁니다. 그만한 수익성을 보았다는 이야기겠지요. 그 함의가 무섭습니다. 심리적 사기에 가깝습니다. 만약 사기가 아니라면 정말 대통령을 팔아서 사업을 일으키겠다고 했을 테니 역시 배임을 유도하는 사업모델에 가깝습니다. 엄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변명의 여지는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빨리! 민정수석을 경질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희생양이 아니라, 알아서 나가도 처벌 받아 마땅할 직무유기에 가깝습니다. 하루하루 피 말리면서 은행권과 벤처캐피탈을 쫒아다니는 선량한 기업가들 눈에 피눈물이 고이게 하는 행위를 어찌 용서 받을 수 있을까…
에이.. 이래저래 꿀꿀한 밤입니다.
[Episode 2 : 망전(網戰),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책략]
거대 네트워크간 혁명 전쟁이 임박해있습니다. 아니 교전 중이라고 봐야 맞을 겁니다. Top down으로 온 나라를 내리 덮었던 한나라 네트워크와 Bottom up으로 그들의 지배 구조를 걷으면서 올라가는 국민 네트워크의 격돌입니다. 화려한 과거와 전통의 영속을 꿈꾸는 정파(正派)와 불확실하지만 진보하는 미래와 쉼 없는 변화를 꿈꾸는 사파(邪派)의 대결입니다. 두 개의 네트워크는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 다르고, 시간을 다스리는 주기가 다릅니다. 힘이 무게와 가속도로 만들어진다면(F=ma), 전자(前者)는 무게를 키우고 공간을 메우고 집중하는 전략에서 힘을 얻고, 후자(後者)는 가속도를 높이고 공간을 늘리는 전략에서 그 힘을 얻습니다. 권력도 힘인데 그 힘의 원리라고 별 다르겠습니까?
저는 이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상 최초의 네트워크 형태의 새로운 전쟁이자, 본격적인 정규전이라고 보고있습니다. 막강한 효율과 집중력을 특징으로 하는 피라미드 조직과 게릴라전 자체를 정규전의 형태로 채용한 네트워크 조직의 비(非) 군사적 격돌이라고 보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 군사적이라고 해도 평화적인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서로의 운명이 달려있는 치열함으로 따지면 전쟁보다 훨씬 위력적으로 낡은 시스템을 흔들고 적합하지 않은 선수들을 격리시키게 될 겁니다. 과거의 혁명은 그 반대자를 살육하거나 사형으로 격리하지만, 새로운 혁명은 코어 시스템에의 접속을 차단하는 젊잖은 형태가 될 것이라고 하면 옳은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정치적 결과는 같습니다.
전쟁 자체도 형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는 물리적 공간에서 총칼 물리력으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모두가 피하고 싶은 죄악이라고 다들 학습이 된 상태입니다. 비기기는 고사하고 승전 이후에도 잘 된다는 보장이 없는 무식한 파괴전이라서 요즘은 전쟁을 벌이는 쪽에서도 손익 채산이 맞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 높아진 민도 환경에서는 그 시도조차 비웃기는 이미 촌스러운 과거의 패션이 되어버렸지요. 그래서 정치경제학의 합리성은 대부분의 전쟁과 혁명들을 돈과 위험이 적은 논리적 시공으로 그 전장을 이동시켜왔습니다. 졸지에 혁명도 장기판 말처럼 상징과 아이콘을 가지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대리 전쟁을 벌이는 셈인데, 그래도 크게 이긴 자가 국가 자원을 오로지할 수 있는 규칙을 장악하는 권리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여간 치열하지 않지요.
그래서 전쟁과 게임은 실제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스포츠와 정치가 같은 점은 정말 게임에 목숨을 걸 정도로 진지하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스포츠가 사소한 승부에 목숨까지 걸지만 정치게임은 각자 대표하는 가치의 실현에 목숨을 건다는 차이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21세기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전쟁은 그 규모가 가장 거대하고, 의미가 사뭇 위대하다고까지 보여지는 바가 있습니다. 즉, 과거의 혁명과는 완전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투쟁이자, 성공한다면 21세기 정치 패러다임의 기술적 원형을 보여주는 명예혁명이 아닐까 하는 정도까지 생각합니다. 21세기를 지배할 새로운 정치학은 앞으로 일어날 한국의 정치패턴을 연구해야 하거나, 한국어를 원전으로 인용되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이 조중동이 보증하고, 자타가 공인한다고 주장하는 정치후진국이자 파멸적으로 오염된 부패 쓰레기통이라는 부끄러운 나라에서 말이죠. 피고름을 짜내는 현장에서 불결하다고 수술을 막아야 한다고 악다구니하는 이 도통 빌어먹을 사이비 주술사들도 그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멀티미디어 버전으로 말이죠.
제가 보기에는 이 선택이 성공한다면 의회의 원리와 행정의 원리마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할 정도로 아주 새로운 원리들의 등장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정치 시스템을 설계하는 자들이 땀 흘려 대답해야 할 질문이 무섭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 지독하게 빨라진 나라에서 느려터진 배치(Batch=일괄처리)형 일 처리 방식이 가당한 이야기인가. 민간보다 지식, 경험, 리더십에서 모두에서 열등한 국회의원이라는 대리인 제도는 역시 한참 열등한 행정 관료들과 함께 어떤 시스템으로 재편해야 하는가. 또한 이 에이전트들이 국민의 ‘무엇’을 ‘어떻게’ 대표해야 할지도 중요했지만 ‘언제’가 더욱,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해졌다는 환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더구나 On-line 시대를 넘어 모바일 컴퓨팅 시대, 더 나아가 새로운 정치 공간이라고 할 유비쿼터스(Ubiquitous) 환경이 지구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 지고 있는 이 진정한 마법의 대륙에서 국민의 뜻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서비스 체제가 과연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가설을 세워보면 이 시스템의 붕괴는 가부(可否)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시간의 문제라고 까지 보여집니다. 물론 이 시점에 노무현씨를 새로운 시대의 혁명적 표식으로 삼았던 이 땅의 위대한 국민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으면 섭섭하고 불쾌하겠지요.
어쨌든, 민(民)이 어디에 있거나, 혹은 누구와 관계없이 이해가 일치한다면 동지를 순식간에 모을 수 있는 환경에서 그 처리를 누구에게 위탁할 것이며, 언제까지 기다려 줄 수 있을까. 과연 이 물리적 구획으로 나누는 선거구 획정이 민(民)이 실제로 움직이는 논리적인 구획과 이해가 충돌할 경우 어떤 규칙으로 해결할 것인가. 등등 광대한 사이버공간과 물리공간이 정치적으로 통합되어가는 폭발적인 서비스 확대의 와중에서 우리의 정치인들은 ‘상시화’ 된 혁명, 계속 혁명, 혹은 혁신의 일상화라는 생소한 환경에 직면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시스템에서 미래의 정치원리가 되어야 할 비슷한 형태를 찾는다면 아마도 프로구단의 운영 원리가 될 겁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는 개인과 법인이 견딜 만한 인내력의 한계와 행정 서비스의 속도가 열린 공간에서 직접 싸워야 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에 가깝습니다. 서비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영토를 떠나거나 갈아엎게 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은 범 국가적 지식 인프라가 먼저 깔리고, 지식이 그 인프라를 타고 흐르는 국가간 경쟁과 맞물려 결코 정치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제 건방진 해석으로는, 죽은 마르크스가 기분 나쁘겠지만 그의 혁명에 대한 통찰은 아주 일부만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하부구조의 변혁은 체제의 혈관 네트워크(자본)에 의해서가 아니라, 뉴런(Neuron)네트워크(정보)가 더욱 상부구조를 바꾸는 원천에 가깝습니다. 자율신경계가 장악한 혈관을 건드려봐야 시스템이 꼬이기만 하는 할 뿐이지요. 심장과 순환계를 의지로 통제한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지네가 그 많은 다리를 의지로 통제하면서 전진하려면 지쳐서 단 몇 분도 살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건드려야 할 것은 대뇌 신경계와 온몸에 몇 수십 조(兆)단위로 펼쳐져 있는 감각 뉴런(Sensor)과 이 뉴런의 신호를 해석하고 처리하는 연합 뉴런(Processing), 그리고 근육을 타고 행동을 전달하는 운동 뉴런(Action)들이 내 의지로 움직이도록 장악하는 일입니다. 이 모든 신경 노드가 연결되고, 스스로 알아서 처리되고, 그래서 자발적인 행동을 만들어내면 그 시스템은 장악된 겁니다. 내 맘에 가깝게 움직인다는 이야기지요. 정치적 혁명 역시 국민이라는 뉴런을 통해 상황을 감지하고 연결하고 동작하는 일련의 정보 시스템을 움직일 수 없다면 군사적 승리 이외에 혁명이라는 의미자체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자본의 자유는 경제혁명을 몰고 가지만, 정보의 자유는 정치혁명을 몰아갑니다. 이 자본과 정보가 합해지면 권력이라는 우아한 통일을 만들어냅니다. 못 할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고, 그래서 모든 것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 진행중인 대~한민국의 혁명은 이 뉴런 시스템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바꾸는 최초의 전쟁입니다. 2004년 현재 이 시스템의 버전은 제가 5.16 시스템이라고 명명했습니다만, 무식한 군인이 병영관리에 쓰던 것을 대충 설계하여 민간에 적용한 운영체계입니다. 그 원리는 중앙에 거대한 사령부를 두고 사단장, 연대장에서 소대장까지 내려가면서 명령과 통제로 움직이는 버전입니다.
이 시스템의 초기에는 이 작업을 도스나 윈도와 같은 운영체제(OS)가 나라의 모든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인 입출력을 장악하고, 계산을 독점하고, 계산 결과의 유통을 독점합니다. 체제 안의 모든 자원 사용의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내부 네트워크를 장악하지만 시스템이 처리해야 할 정보량이 커지거나 어디 하나가 취약하면 병목에 걸려서 거의 돌아가지 않습니다. 민간은 그나마 좀 낫지만, 정부와 정치구조는 거의 감격시대에다 야인시대 아사리판이라고 보면 맞지요.
이제 이 시스템을 이제는 국민들이 만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하고자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새로운 원리는 느슨한 네트워크에 의한 분산 컴퓨팅임에 틀림없습니다. 병목을 해결하고 자원의 집중을 견제하면서 연결된 노드 하나 하나의 자발적인 참여가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만드는 아주 새로운 원리의 정치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코드체계도 다르고 아래로만 흐르던 통신방식이 이제는 천지사방으로 흐르니 프로토콜 자체가 달라서 이 나라안에 행복한자가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참으로 고통스럽지요. 시스템의 고통이자 이를 해체하는 사람의 고통입니다. 목이 터져라 불러도 듣는 자가 없다는 깜깜함입니다. 시스템을 지키는 자는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해체하려는 자는 너무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장악한 시스템 안에서 국민들의 반란이 밑으로부터 일어나고 있습니다. 드디어 진정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동안 5.16 시스템이 보기에 하찮은 바이러스 형태라서 많이도 포맷 당했지만, 이 허약해 보이는 국민 각자가 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개인화된 매체가 평범한 개인을 느슨하게 연결하더니, 시스템이 독점했던, 막대한 돈을 타고 흐르던 귀한 정보를 무료로 증여하고 무한정 공유하는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윽고 헌신적인 핵심 Hub들이 자발적으로 생겨났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도 그 위대한 정치적 함의를 인식한 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5.16시스템이 이 느슨한 네트워크가 보낸 대리인을 극심하게 흔들기 시작하면서 이 유사 생명체는 급격하게 팽팽해지고 놀랍도록 빠르게 스스로를 진화시키게 됩니다. 몇 개월 지나기도 전에 감각계, 연합계, 운동계의 뉴런이 완성되고, 대뇌라고 해야 할 거대한 병렬처리 연산능력과 막대한 지식 DB마저 확보합니다. 네트워크 자체가 지능을 가지게 되면서 드디어 시스템 자체와 대결할 정도로 성장합니다. 워낙 강한 열정과 에너지가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터져가고 있기 때문에 파죽의 기세로 한반도 네트워크 전체를 출렁이게 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허접 쓰레기 같은 구태 지식인들을 논리로 도륙해가면서, 국민이 위임한 권력 한 자락으로 세상에 사기치고 국민을 훈계했던 낯두꺼운 인간들을 망신시켜가면서, 노드에 연결된 모든 깨인 자들에게 스스로 깨우친 지식을 아낌없이 학습시켜가면서,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을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의 혁명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게 불과 2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앞으로 어찌 진화하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 무서운 힘을 느낀 자와 아둔한 자가 이미 갈리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이 스스로 만들고 있는 이 장엄한 공포를 저들에게 느끼게 하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지요. 다시금 우리의 네트워크가 팽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글이 또 길어졌군요. 1/3도 못 쓴 것 같은데… 주절주절 떠들다 보니 또 민폐를 끼쳤습니다.
저로서는 이번 싸움은 그 비장함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많이 놀랍고도 흥미롭습니다. 대선이 오히려 게릴라전인 비정규전에 가까웠고, 오히려 총선이 정규전의 원리에 따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인데, 이거이 대체 맞는 전략인가 모르겠습니다. 속도와 범위를 조금이라도 줄이면, 방어전의 성격을 띠면 몰살의 위험이 있을 텐데…
지난 대선은 국민네트워크가 정치분야에서 전선(戰線)을 만들어 치른 최초의 전면전이었습니다. 외형은 지휘부 방어전이었지만 사실은 공성전에 가까운 전투를 치렀던 특이한 전쟁이었습니다. 게다가 아군의 전투력이 분산되고 지휘체계 대부분이 자멸적으로 붕괴하면서 전투의 양태는 오히려 개인기에 의존하는 게릴라전 (비정규전)이었고, 의용군이 연결된 자발적 노드에서 각개로 수행되었습니다. 겨우 마지막 1개월 동안 조직에 의한 정규전을 치렀으니 실제로 비정규전을 통해 전선을 형성하고 단 한번의 정규전을 통해 마무리 지었던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이번 총선의 키워드는 광범위한 홍보(후방 지원)과 적은 인력으로 광범위한 지역을 두 번 이상의 회전률로 휩쓸고 들어가는, 그래서 지역별 이슈파이팅에서 이기고 브랜드를 선명하게 각인시켜야 하는 게임입니다. 지역과 돈을 쓸 수 없는 게임이고, 인물도 신인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너무도 명확한 게임인데… 다시 중앙이라… (바보아냐???)
어쨌든,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한국의 현 상황은 17세기 말의 영국을 방불케 하는 면이 있습니다.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런던에 모든 부와 정보가 집중되는 기형적인 도시화, 중산층의 급격한 증가와 지식 시민화, 의회권력과 왕권의 갈등, 그리고 전세계의 은을 독점하면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한 스페인-합스부르크 제국이라는 초강대국과 프랑스 등 대륙의 강대국에 비해 아직은 변방의 국가로서 수출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경제구조, 심지어 스코틀랜드와의 적대적 분쟁까지 어쩌면 그리도 비슷할까요.
우리 국민 네트워크가 만들어가는 미래가 바로 영국의 시대를 만들었던 그 조건을 모두 갖추어 가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이려나…
요한3장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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