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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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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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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없다' 또 `예수는 신화다'하는 내용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런 내용들 중에는 역설도 있기는 하지만 무지에서 오는 실수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를 신화로 처리하겠는가. 당신 자신도 신화로 승격할 수 있겠네. 하나님이신 사람, 사람이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와서 충분히 가르쳐 주신 지 긴 시간 2천여 년인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바르게 증거하지 못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단한다. 예수가 사시던 그 시대에 크게는 영지주의(Gnosticism)가 철학적 전성기를 이루었었다. 그들은 성경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울과 요한 사도의 가슴팍으로 기어 들어왔으며 현란한 수사법에 능한 바울은 말(글)이 너무 장황하다 해서 혹시 그들이 바울을 영지주의의 중간시조라고 했을까.
아무튼 영지주의는 성경에도 뛰어 들었다. 바로 그 부분을 두고 신화 운운 하는 것 같으나 신화와 실화를 구분할 줄 알아야 대화가 되는 것이다. 예수를 만나면 그분의 어느 모습에 신화가 차지하고 있는가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그럼 그를 만나라. 그를 만나면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안에 나 또한 네 안에'라 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내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라 하실 것이다.
예수 안에 불편함이 없이 뛰어 들어 사는 자만이 예수가 신화인지 실화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 하시는 말씀을 따라 그의 방식대로 인생의 자유를 노래해 보라. 그대는 그때 예수가 누구인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알게 되면 쉽사리 자기가 누구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겠지만.
예수는 신화라고, 신화도 분별할 줄 모르는 자들은 미신 속에 빠진 자들이라고 나를 놀려댈지라도 이를 분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필요하다. 많아야 한다. 많을수록 좋다. 인류의 삶을 보라. 전향적으로 이끌어 가자면 예수 만한 인물들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 같은 예수는 안 된다. 예수를 판단하는 인간이기 전, 그보다 먼저 거듭남을 부탁하는 예수의 요구에 동의함이 순서일 것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하시는 말씀에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할까? 예수를 뛰어 넘어야… 하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눈을 부릅뜨던데 그 정도의 눈 부라림에 놀랄 내가 아니다. 그래 뛰어 넘어야지. 예수가 내게 불편하지 않을 만큼은 되어야지. 내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예수는 내게 자유로운 삶의 에너지요 교훈이요 교사이며 동무이시다. 결코 불편하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잘 아니 답답함 또한 있을 수 없지.
빚진 죄인이라 했다. 빚진 것이 있으면 불편해. 예수가 내게 벌거벗은 알몸이듯이 나 또한 거짓없는 모습으로 나선다면 예수는 언제나 당당한 나의 현실에 있지.
(無然)
홈페이지: http://deulsoritimes.co.kr 2003.7.9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64
모두를 신화로 처리하겠는가. 당신 자신도 신화로 승격할 수 있겠네. 하나님이신 사람, 사람이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와서 충분히 가르쳐 주신 지 긴 시간 2천여 년인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바르게 증거하지 못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단한다. 예수가 사시던 그 시대에 크게는 영지주의(Gnosticism)가 철학적 전성기를 이루었었다. 그들은 성경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울과 요한 사도의 가슴팍으로 기어 들어왔으며 현란한 수사법에 능한 바울은 말(글)이 너무 장황하다 해서 혹시 그들이 바울을 영지주의의 중간시조라고 했을까.
아무튼 영지주의는 성경에도 뛰어 들었다. 바로 그 부분을 두고 신화 운운 하는 것 같으나 신화와 실화를 구분할 줄 알아야 대화가 되는 것이다. 예수를 만나면 그분의 어느 모습에 신화가 차지하고 있는가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그럼 그를 만나라. 그를 만나면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안에 나 또한 네 안에'라 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내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라 하실 것이다.
예수 안에 불편함이 없이 뛰어 들어 사는 자만이 예수가 신화인지 실화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 하시는 말씀을 따라 그의 방식대로 인생의 자유를 노래해 보라. 그대는 그때 예수가 누구인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알게 되면 쉽사리 자기가 누구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겠지만.
예수는 신화라고, 신화도 분별할 줄 모르는 자들은 미신 속에 빠진 자들이라고 나를 놀려댈지라도 이를 분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필요하다. 많아야 한다. 많을수록 좋다. 인류의 삶을 보라. 전향적으로 이끌어 가자면 예수 만한 인물들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 같은 예수는 안 된다. 예수를 판단하는 인간이기 전, 그보다 먼저 거듭남을 부탁하는 예수의 요구에 동의함이 순서일 것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하시는 말씀에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할까? 예수를 뛰어 넘어야… 하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눈을 부릅뜨던데 그 정도의 눈 부라림에 놀랄 내가 아니다. 그래 뛰어 넘어야지. 예수가 내게 불편하지 않을 만큼은 되어야지. 내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예수는 내게 자유로운 삶의 에너지요 교훈이요 교사이며 동무이시다. 결코 불편하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잘 아니 답답함 또한 있을 수 없지.
빚진 죄인이라 했다. 빚진 것이 있으면 불편해. 예수가 내게 벌거벗은 알몸이듯이 나 또한 거짓없는 모습으로 나선다면 예수는 언제나 당당한 나의 현실에 있지.
(無然)
홈페이지: http://deulsoritimes.co.kr 2003.7.9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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