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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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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명이 봤다는 실미도를 뒤늦게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도 일어 날수 있구나 생각하니 일종의 허탈감과 분노가 마음속에서 일어났습니다. 하기야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보다도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겠습니까? 그걸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정말로 어리석고 어처구니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느낄수가 있습니다.
결국 유치하고 황당하기까지한 사고방식 때문에 꽃다운 젊은이들이 한번 밖에 없는 귀한 인생을 그렇게 마감하고 말았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미도 식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방식이 한국교회에도 팽배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상당수의 한국교회 속에 존재하는 실미도의 망령을 몇 가지만 짚어 보겠습니다.
목표달성 지향주의
실미도의 비극은 한마디로 결과만 좋다면 과정이야 어찌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그 시절 군사독재 정권의 논리 때문에 일어나 사건입니다. 김일성을 암살한다는 목표만 달성된다면 훈련생 몇쯤은 혹독한 훈련으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차마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지독한 훈련을 감행했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용납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실미도 곳곳에 흐르고 있습니다.
박정권 시절 한국은 경제가 부흥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제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꽃다운 대학생들이라도 감옥에 가두고 매질을 하고 고문을 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별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경제 부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인독재도 용납해야하며, 경제 부흥을 위해서는 메스컴도 통제를 받아야하기에 신문을 없애고,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경제 부흥이라는 미명아래 국민들의 손으로 뽑아 만든 국회까지도 해산했습니다.
경제 부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 안에도 교회만 부흥된다면 적당한 편법도 용납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있습니다. 남의 교인이라도 많이 끌어들여서 자기 교회만 부흥되면 된다는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개척해서 부흥한 어떤 교회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매일 기도회를 하고 매일 철야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해서 효과(?)를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흥되려면 매일 기도회를 하고 매일 철야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의 교인이 들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Y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70년대 초에 벌써 Y교회는 매일 철야기도를 함으로서 많은 교인들을 흡수했습니다. 이 교회가 그 당시 철야를 하지 않았더라면 또 기도원을 운영하지 않았더라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을 흡수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소위 뜬다는 교회들도 이렇게 해서 재미(?)를 봤습니다.
교회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전도해야지 왜 믿는 남의 교인을 전도(?)합니까? 어떤 목사는 개척 1년만에 천명을 끌어 모았다고 한참 선전을 해댔습니다. 솔직히 그게 불신자를 전도한겁니까? 다 남의 교인 끌어 온거지. 그렇게 교인을 끌어 모으고도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이게 올바른겁니까? 잘못된거 아닙니까? 이 외에도 한국교회에는 많은 편법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편법이라도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이런 사고 방식은 실미도 식의 사고방식입니다.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귀중한 재원들을 소모품으로 생각
정예부대로 훈련시킨 실미도 병사들은 한국 최고의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국이 변화되어 훈련병들이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게되자 처단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결국 그들은 섬에 있는 기간병들을 다 살해하고 버스를 탈취해서 난동을 부리게 되다가 끝내 자폭하고 맙니다.
지금 교회 내에서도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몇 년을 같이 동역을 하다가도 교회부흥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되는 전도사나 부 목사들은 가차없이 잘라 버립니다. 그들을 키우고 성장시켜주기 보다는 일회용 물건처럼 사용하다가 맘에 맞지 않으면 휴지처럼 내 팽개쳐 버립니다. 이런 풍조 속에서 전도사나 부목들은 몰래 교인들을 빼내 개척을 감행합니다. 원목은 부목을 못 믿고 부목은 원목을 못 믿고 그래서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 순환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교회의 현실입니다.
지금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 교회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년봉제를 비롯해서 실적제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1년을 지켜봐서 실적이 나쁘면 사표를 쓰고 나가게 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하면 짤라버리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적이란 전도를 말하는 것이고 전도란 현실적으로 남의 교인이라도 좋으니 많이 데리고 오는 겁니다.
인천의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이 같은 교단의 큰 교회의 횡포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큰 교회 전도사가 자꾸 몇 명 되지도 않는 자기 교인들을 꼬인다(?)는 겁니다. 그 전도사는 왜 그러느냐? 자기가 할당 받은 사람수가 있다는 겁니다. 할당받은 사람들을 채우지 못하면(?) 그냥 짤리는 겁니다. 그러니 눈에 불을 켜고 남의 교인이라도 뺏아 가는 겁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냥 휴지 버리듯이 버립니다.
자기 교회 부흥(?)에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짤라버리는 이런 풍조는 분명히 실미도 망령의 잔재입니다.
피튀기는 살벌한 현장
밤에 밖에 나가보면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은 수많은 붉은 십자가들이 보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면 거룩하고 평화스러워 보여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십자가가 더 이상 평화로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이 붉은 십자가들을 보면서 문득 목표를 달성해서 자기들도 한번 출세해서 떵떵거리고 잘 살아보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피 튀기며 훈련하던 실미도 훈련병들 생각이 났습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수의 한국의 목회자들도 그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들은 생존을 위해서 교인 끌어 모으기 운동을 합니다. 교인을 끌어 모으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목회를 합니다. 실미도 훈련병들은 김일성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들이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진 훈련도 이를 악물고 이겨냈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도 죽을 각오로 매일 철야를 하고 기도회를 하고 심지어 40일 금식까지도 감행합니다. 교인을 끌어모으지 못하면 자기가 죽기 때문입니다. 실미도의 형편과 비슷합니다.
작은 교회 목사는 큰 교회 목사가 되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교인 색출 작전에 나섭니다. 큰 교회 목사는 더 큰 교회 목사가 되기 위해서 소위 한국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기 위해서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교인 끌어 모으기 작전을 감행합니다.
살벌합니다. 그야말로 피튀기는 실미도 현장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교회는 하나가 아닙니다. 오직 내 교회만 있을 뿐입니다. 오직 내 교회만 성장해야 합니다. 내 교회만 더 크게 지어야 합니다. 내 교회만 더 아름답게 지어야 합니다. 내 교회만 더 아름다운 기도원과 수양관을 세워야 합니다. 다른 교회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교회는 한몸이 아니라 서로 대치해서 싸우는 적군과도 같습니다. 함께 동역해야 할 형제가 아니라 싸워 이겨내야할 적군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전투 중에 있습니다. 내 교회가 세계 제일의 교회가 되는 그날까지 이 작전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옛날 함석헌 선생이 한국은 십자가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 말씀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골목마다 늘어선 십자가의 물결 속에 교회는 이미 자정 능력을 잃어 버렸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할 교회가 사회 속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사실 성장이라는 말보다는 교인 끌어 모으기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은 말 같습니다.) 남의 교인이라도 교묘한 방법으로 빼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훈련하는 실미도의 현장과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목회현장의 모습이 실미도를 연상케 한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요?
아!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 속에는 실미도의 잔재가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누구도 책임을지지 않는 신학생 문제
군사독재 정권은 꽃다운 젊은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모집했습니다. 김일성만 사살하면 너희들은 영웅이 되는거다.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거다. 그렇게 젊은이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혹독한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정세가 변화되었다고 이들을 모두 사살할 것을 명령합니다. 감언이설로 모집해놓고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의 인생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한국의 신학교 문제도 이와 유사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1년에 정규신학대학과 군소 신학교와 무인가 신학교에서 약 5천-8천명이 졸업을 합니다. 더 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들은 풍운의 푸른 꿈을 안고 신학교 문을 두드립니다. 왜 이렇게 신학교로 몰려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겸손히 평신도로 섬기기 보다는 폼나게 목사로서 많은 사람의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도 조금은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섬기는 자가 되고 낮은 자가 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엉뚱한데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를 나온다고 해도 앞길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차고 넘치는게 신학생입니다. 아무데도 갈데가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세습체제로 들어갔습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자기가 개척한 교회는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이 흔한일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없으면 사위에게라도 물려줍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기존의 교회로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한국교회는 대물림하여 잘먹고 잘살자고 교회를 물려주는 세습체제가 돌림병처럼 널리 번져있습니다. 그래서 단 하나의 방법이 바로 개척을 하는 겁니다. 수많은 신학생들이 무차별적으로 개척을 하니 교회가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교회가 무차별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교회가 어지럽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심한 것은 신학교 당국입니다. 학생들을 모집해서 돈 받아먹고 청춘의 아까운 시간까지 헌납하게 했으면서도 나중에는 나 몰라라 합니다. 누구도 이 젊은 거룩한 백수들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수급을 생각해서 모집을 해야지 실제 교회에서 필요한 인원보다 몇 배 더 많이 모집을 합니다. 신학교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이게 문젭니다. 신학교 당국을 위해서 애매한 젊은이들을 희생시켜 놓고 나중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현실에 맞지 않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학생을 모집해 놓고 나 몰라라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 모습이 실미도 훈련병들을 모집하고 발뺌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지금도 교회신문에 보면 신학생 모집 광고를 엄청나게 많이 합니다. 대책 없는 모집 제발 그만해야 합니다. 제발 정신들 좀 차리십시오. 주님 앞에서 심판 받을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교인들도 제발 신학교 그만 가야 합니다. 꼭 가야할 사람들 정말로 주님처럼 낮아져서 종으로 섬김의 삶을 살겠다는 사람만 가야합니다. 그리고 신학교도 꼭 정규 4년제 대학을 정식으로 다녀야 합니다. 왜 엉터리 신학교로가서 얼렁뚱땅 목사가 되려고 합니까? 엉터리 신학교 비정규 신학교에 가려는 생각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4년제 정식 대학을 나오지도 않고 어떻게 지도자가 되겠다고 합니까? 이것 자체가 벌써 악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목사 되는 길만이 주의 일이 아닙니다. 사회 각층에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야 합니다.
한국 교회 속에 있는 실미도의 망령은 사라져야 합니다. 빨리 청산 되야 합니다.
교회가 어지럽지만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다 잘되겠지요. 우리 모두 한국교회를 위해서 노리치의 쥴리안의 기도를 드려 봅시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결국 유치하고 황당하기까지한 사고방식 때문에 꽃다운 젊은이들이 한번 밖에 없는 귀한 인생을 그렇게 마감하고 말았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미도 식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방식이 한국교회에도 팽배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상당수의 한국교회 속에 존재하는 실미도의 망령을 몇 가지만 짚어 보겠습니다.
목표달성 지향주의
실미도의 비극은 한마디로 결과만 좋다면 과정이야 어찌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그 시절 군사독재 정권의 논리 때문에 일어나 사건입니다. 김일성을 암살한다는 목표만 달성된다면 훈련생 몇쯤은 혹독한 훈련으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차마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지독한 훈련을 감행했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용납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실미도 곳곳에 흐르고 있습니다.
박정권 시절 한국은 경제가 부흥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제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꽃다운 대학생들이라도 감옥에 가두고 매질을 하고 고문을 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별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경제 부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인독재도 용납해야하며, 경제 부흥을 위해서는 메스컴도 통제를 받아야하기에 신문을 없애고,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경제 부흥이라는 미명아래 국민들의 손으로 뽑아 만든 국회까지도 해산했습니다.
경제 부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 안에도 교회만 부흥된다면 적당한 편법도 용납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있습니다. 남의 교인이라도 많이 끌어들여서 자기 교회만 부흥되면 된다는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개척해서 부흥한 어떤 교회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매일 기도회를 하고 매일 철야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해서 효과(?)를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흥되려면 매일 기도회를 하고 매일 철야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의 교인이 들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Y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70년대 초에 벌써 Y교회는 매일 철야기도를 함으로서 많은 교인들을 흡수했습니다. 이 교회가 그 당시 철야를 하지 않았더라면 또 기도원을 운영하지 않았더라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을 흡수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소위 뜬다는 교회들도 이렇게 해서 재미(?)를 봤습니다.
교회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전도해야지 왜 믿는 남의 교인을 전도(?)합니까? 어떤 목사는 개척 1년만에 천명을 끌어 모았다고 한참 선전을 해댔습니다. 솔직히 그게 불신자를 전도한겁니까? 다 남의 교인 끌어 온거지. 그렇게 교인을 끌어 모으고도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이게 올바른겁니까? 잘못된거 아닙니까? 이 외에도 한국교회에는 많은 편법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편법이라도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이런 사고 방식은 실미도 식의 사고방식입니다.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귀중한 재원들을 소모품으로 생각
정예부대로 훈련시킨 실미도 병사들은 한국 최고의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국이 변화되어 훈련병들이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게되자 처단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결국 그들은 섬에 있는 기간병들을 다 살해하고 버스를 탈취해서 난동을 부리게 되다가 끝내 자폭하고 맙니다.
지금 교회 내에서도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몇 년을 같이 동역을 하다가도 교회부흥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되는 전도사나 부 목사들은 가차없이 잘라 버립니다. 그들을 키우고 성장시켜주기 보다는 일회용 물건처럼 사용하다가 맘에 맞지 않으면 휴지처럼 내 팽개쳐 버립니다. 이런 풍조 속에서 전도사나 부목들은 몰래 교인들을 빼내 개척을 감행합니다. 원목은 부목을 못 믿고 부목은 원목을 못 믿고 그래서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 순환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교회의 현실입니다.
지금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 교회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년봉제를 비롯해서 실적제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1년을 지켜봐서 실적이 나쁘면 사표를 쓰고 나가게 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하면 짤라버리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적이란 전도를 말하는 것이고 전도란 현실적으로 남의 교인이라도 좋으니 많이 데리고 오는 겁니다.
인천의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이 같은 교단의 큰 교회의 횡포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큰 교회 전도사가 자꾸 몇 명 되지도 않는 자기 교인들을 꼬인다(?)는 겁니다. 그 전도사는 왜 그러느냐? 자기가 할당 받은 사람수가 있다는 겁니다. 할당받은 사람들을 채우지 못하면(?) 그냥 짤리는 겁니다. 그러니 눈에 불을 켜고 남의 교인이라도 뺏아 가는 겁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냥 휴지 버리듯이 버립니다.
자기 교회 부흥(?)에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짤라버리는 이런 풍조는 분명히 실미도 망령의 잔재입니다.
피튀기는 살벌한 현장
밤에 밖에 나가보면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은 수많은 붉은 십자가들이 보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면 거룩하고 평화스러워 보여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십자가가 더 이상 평화로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이 붉은 십자가들을 보면서 문득 목표를 달성해서 자기들도 한번 출세해서 떵떵거리고 잘 살아보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피 튀기며 훈련하던 실미도 훈련병들 생각이 났습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수의 한국의 목회자들도 그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들은 생존을 위해서 교인 끌어 모으기 운동을 합니다. 교인을 끌어 모으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목회를 합니다. 실미도 훈련병들은 김일성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들이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진 훈련도 이를 악물고 이겨냈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도 죽을 각오로 매일 철야를 하고 기도회를 하고 심지어 40일 금식까지도 감행합니다. 교인을 끌어모으지 못하면 자기가 죽기 때문입니다. 실미도의 형편과 비슷합니다.
작은 교회 목사는 큰 교회 목사가 되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교인 색출 작전에 나섭니다. 큰 교회 목사는 더 큰 교회 목사가 되기 위해서 소위 한국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기 위해서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교인 끌어 모으기 작전을 감행합니다.
살벌합니다. 그야말로 피튀기는 실미도 현장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교회는 하나가 아닙니다. 오직 내 교회만 있을 뿐입니다. 오직 내 교회만 성장해야 합니다. 내 교회만 더 크게 지어야 합니다. 내 교회만 더 아름답게 지어야 합니다. 내 교회만 더 아름다운 기도원과 수양관을 세워야 합니다. 다른 교회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교회는 한몸이 아니라 서로 대치해서 싸우는 적군과도 같습니다. 함께 동역해야 할 형제가 아니라 싸워 이겨내야할 적군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전투 중에 있습니다. 내 교회가 세계 제일의 교회가 되는 그날까지 이 작전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옛날 함석헌 선생이 한국은 십자가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 말씀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골목마다 늘어선 십자가의 물결 속에 교회는 이미 자정 능력을 잃어 버렸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할 교회가 사회 속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사실 성장이라는 말보다는 교인 끌어 모으기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은 말 같습니다.) 남의 교인이라도 교묘한 방법으로 빼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훈련하는 실미도의 현장과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목회현장의 모습이 실미도를 연상케 한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요?
아!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 속에는 실미도의 잔재가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누구도 책임을지지 않는 신학생 문제
군사독재 정권은 꽃다운 젊은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모집했습니다. 김일성만 사살하면 너희들은 영웅이 되는거다.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거다. 그렇게 젊은이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혹독한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정세가 변화되었다고 이들을 모두 사살할 것을 명령합니다. 감언이설로 모집해놓고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의 인생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한국의 신학교 문제도 이와 유사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1년에 정규신학대학과 군소 신학교와 무인가 신학교에서 약 5천-8천명이 졸업을 합니다. 더 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들은 풍운의 푸른 꿈을 안고 신학교 문을 두드립니다. 왜 이렇게 신학교로 몰려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겸손히 평신도로 섬기기 보다는 폼나게 목사로서 많은 사람의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도 조금은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섬기는 자가 되고 낮은 자가 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엉뚱한데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를 나온다고 해도 앞길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차고 넘치는게 신학생입니다. 아무데도 갈데가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세습체제로 들어갔습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자기가 개척한 교회는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이 흔한일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없으면 사위에게라도 물려줍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기존의 교회로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한국교회는 대물림하여 잘먹고 잘살자고 교회를 물려주는 세습체제가 돌림병처럼 널리 번져있습니다. 그래서 단 하나의 방법이 바로 개척을 하는 겁니다. 수많은 신학생들이 무차별적으로 개척을 하니 교회가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교회가 무차별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교회가 어지럽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심한 것은 신학교 당국입니다. 학생들을 모집해서 돈 받아먹고 청춘의 아까운 시간까지 헌납하게 했으면서도 나중에는 나 몰라라 합니다. 누구도 이 젊은 거룩한 백수들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수급을 생각해서 모집을 해야지 실제 교회에서 필요한 인원보다 몇 배 더 많이 모집을 합니다. 신학교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이게 문젭니다. 신학교 당국을 위해서 애매한 젊은이들을 희생시켜 놓고 나중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현실에 맞지 않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학생을 모집해 놓고 나 몰라라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 모습이 실미도 훈련병들을 모집하고 발뺌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지금도 교회신문에 보면 신학생 모집 광고를 엄청나게 많이 합니다. 대책 없는 모집 제발 그만해야 합니다. 제발 정신들 좀 차리십시오. 주님 앞에서 심판 받을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교인들도 제발 신학교 그만 가야 합니다. 꼭 가야할 사람들 정말로 주님처럼 낮아져서 종으로 섬김의 삶을 살겠다는 사람만 가야합니다. 그리고 신학교도 꼭 정규 4년제 대학을 정식으로 다녀야 합니다. 왜 엉터리 신학교로가서 얼렁뚱땅 목사가 되려고 합니까? 엉터리 신학교 비정규 신학교에 가려는 생각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4년제 정식 대학을 나오지도 않고 어떻게 지도자가 되겠다고 합니까? 이것 자체가 벌써 악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목사 되는 길만이 주의 일이 아닙니다. 사회 각층에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야 합니다.
한국 교회 속에 있는 실미도의 망령은 사라져야 합니다. 빨리 청산 되야 합니다.
교회가 어지럽지만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다 잘되겠지요. 우리 모두 한국교회를 위해서 노리치의 쥴리안의 기도를 드려 봅시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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