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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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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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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eulsoritimes.co.kr
내가 나의 길을 길을 가로 막을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내 갈 길에 걸림돌이 자기자신이라면, 그것이 또 간발의 차로 달리는데 골인지점 몇 초 전에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내가 낙오 되어 버린다면 어찌하는가.
출애굽 히브리가 홍해 건너, 시나이 훈련을 받으며 천신만고 끝에 요단 골짜기 가까이 왔을 때 에돔이 그 길을 막고, 모압과 암몬이 장애물이 되었는데 그 사실을 기독교는 알고 있는가.
그리고 에돔이 누구의 후손이며 모압과 압몬은 또 누구의 후손인지도 아는가? 그들은 바로 에서와 롯의 자손들이다. 에서는 약속의 아들이요 선택의 아들인 이삭의 맏아들이요 롯은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조카가 아닌가.
믿음의 달리기 경주장에 우리의 갈 길을 막는 자가 나의 골육이요 또 나 자신임을 깨달으라. 그리고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칠 때엔 반성하면서 자기를 살피라.
자기 살핌에 익숙해 있어야 한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 내시겠다 하시는데 반성이 없고서야 어떻게 나의 소중한 인생을 경영하겠는가.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들이 신앙의 본질, 곧 근원을 향해 접근해 가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다. 보라. 지금 천명, 만명, 십만명 모인다고 큰소리치는 교회들 그리고 수백억원 들여 지었다는 예배당들, 그것들이 얼마쯤 견디는가 두고 보라.
동로마 제국의 교회가 수만개처 였는데 지금 몇 개 남아있는지 아는가. 오늘의 터키가 동로마의 심장부인데 거기에 가보라. 거기에서 교회를 발견할 수 있으며 신자를 만날 수 있는가를. 또 `하기와 소피아'를 지어 놓고 유스티아누스는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소이다' 했다는데 소피아 예배당이 오늘의 그곳에서 과연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살펴보라.
자, 어떤가? 자기 살핌에 혼신의 힘을 다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어느 누구, 설사 하나님의 독생자라 해도 특별히 사랑하는 분이 아니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자기를 미워하기까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검증하라. 말씀의 저울에 아침 저녁마다 자기 인격을 매달아 보라. 넉넉한가, 아주 넉넉해야 한다. 모자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저 사막과 광야에서 진리 수업을 받았던 우리들의 선인들은 이런 경험담을 말하고 있다. 광야 깊은 들녘에서는 뙤약볕 내려 쪼이는 하루를 견디자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하루에 물이 10리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 세상이 모두 광야 아니던가. 황충과 독사들이 내 목숨 노리고, 독벌레들이 내 바지 가랑이 속을 파고들고 눈과 코와 귀 닥치는 대로 달겨들어 내 목숨을 노리는 광야, 거기에서는 기본적으로 하루 생활에 물이 10리터, 활동을 격렬하게 할 경우는 20리터, 30리터가 필요하지 않을까?
바로 그 물은 성령(요7:37∼39)이라고 주 예수 말씀하지 않으시던가. 사람들아, 믿음의 사람들아, 믿음의 갈 길에 자기가 자기 자신의 덫이 되지 않으려거든 말씀의 법칙을 따라 자기관리에 철저하라.
〈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77
내가 나의 길을 길을 가로 막을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내 갈 길에 걸림돌이 자기자신이라면, 그것이 또 간발의 차로 달리는데 골인지점 몇 초 전에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내가 낙오 되어 버린다면 어찌하는가.
출애굽 히브리가 홍해 건너, 시나이 훈련을 받으며 천신만고 끝에 요단 골짜기 가까이 왔을 때 에돔이 그 길을 막고, 모압과 암몬이 장애물이 되었는데 그 사실을 기독교는 알고 있는가.
그리고 에돔이 누구의 후손이며 모압과 압몬은 또 누구의 후손인지도 아는가? 그들은 바로 에서와 롯의 자손들이다. 에서는 약속의 아들이요 선택의 아들인 이삭의 맏아들이요 롯은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조카가 아닌가.
믿음의 달리기 경주장에 우리의 갈 길을 막는 자가 나의 골육이요 또 나 자신임을 깨달으라. 그리고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칠 때엔 반성하면서 자기를 살피라.
자기 살핌에 익숙해 있어야 한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 내시겠다 하시는데 반성이 없고서야 어떻게 나의 소중한 인생을 경영하겠는가.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들이 신앙의 본질, 곧 근원을 향해 접근해 가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다. 보라. 지금 천명, 만명, 십만명 모인다고 큰소리치는 교회들 그리고 수백억원 들여 지었다는 예배당들, 그것들이 얼마쯤 견디는가 두고 보라.
동로마 제국의 교회가 수만개처 였는데 지금 몇 개 남아있는지 아는가. 오늘의 터키가 동로마의 심장부인데 거기에 가보라. 거기에서 교회를 발견할 수 있으며 신자를 만날 수 있는가를. 또 `하기와 소피아'를 지어 놓고 유스티아누스는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소이다' 했다는데 소피아 예배당이 오늘의 그곳에서 과연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살펴보라.
자, 어떤가? 자기 살핌에 혼신의 힘을 다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어느 누구, 설사 하나님의 독생자라 해도 특별히 사랑하는 분이 아니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자기를 미워하기까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검증하라. 말씀의 저울에 아침 저녁마다 자기 인격을 매달아 보라. 넉넉한가, 아주 넉넉해야 한다. 모자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저 사막과 광야에서 진리 수업을 받았던 우리들의 선인들은 이런 경험담을 말하고 있다. 광야 깊은 들녘에서는 뙤약볕 내려 쪼이는 하루를 견디자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하루에 물이 10리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 세상이 모두 광야 아니던가. 황충과 독사들이 내 목숨 노리고, 독벌레들이 내 바지 가랑이 속을 파고들고 눈과 코와 귀 닥치는 대로 달겨들어 내 목숨을 노리는 광야, 거기에서는 기본적으로 하루 생활에 물이 10리터, 활동을 격렬하게 할 경우는 20리터, 30리터가 필요하지 않을까?
바로 그 물은 성령(요7:37∼39)이라고 주 예수 말씀하지 않으시던가. 사람들아, 믿음의 사람들아, 믿음의 갈 길에 자기가 자기 자신의 덫이 되지 않으려거든 말씀의 법칙을 따라 자기관리에 철저하라.
〈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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