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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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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86
홈페이지: http://www.deulsoritimes.co.kr 2004.2.4
어느날 예루살렘 뜰에서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를 놓고 제자들이 예수께 질문을 했다. 저가 소경이 된 것이 자기 죄 때문인가, 아니면 그 부모의 죄인가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질문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으나 예수님은 그 부모의 죄도 그렇다고 그 자신의 죄도 아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고자 하신다고 하셨다. 제자들의 각박한 질문, 야박한 질문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한 사람 소경, 그것도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이면 그의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 경우이겠는가. 우리의 장애가 형벌이라면 날 때부터의 소경은 자기 죄가 아닌데 소경 되었으니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누구의 죄냐고 묻는 것은 제자들의 마음이 매우 인색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물을 대할 때 너그러운 마음이면 모두가 너그럽게 보이는 법이다. 일흔 번의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을 배우면서 성장한 예수의 제자들이 소경된 죄의 원인을 먼저 추궁한다면 되겠는가.
오늘의 교회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안에서의 분쟁, 목회자들이 일반법정에 서서 망신스러운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 짝이 없다.
좀 더 큰 이야기를 한다면 기독교 사람들은 남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특히 타종교에 대해서 왜 그리 관심이 많은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자기 종교도 다 모르면서 어떻게 그들이 남의 종교를 평가하는가.
타종교들이 종교이면 기독교는 종교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종교 만들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 기독교가 종교 되어버린 것은 초대교회 이후의 자기 부족에서 되어진 결과이다.
특히 콘스탄틴 시대에 이르러 기독교는 로마가 주는 떡을 분별없이 받아 먹다가 세상의 종교들과 다를 바 없는 종교에 자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저 소경의 죄가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 것이 곧 종교의 자세이다. 저에게서 하나님의 하실 일을 찾는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사 사람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시려는 모습이시다.
새 세기에 이르렀으니 기독교는 하루속히 종교 아님을 선포하고 종교인들 흉내를 내지 말고 이 땅의 사람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예수가 아담, 곧 제 2의 아담이라면 예수는 새로 출발하는 인류의 처음이시다. 기독교는 그러므로 예수에게서 예수를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유대교나 이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은 기독교가 예수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의 증좌이다.
기독교가 유대교를 비난할 때, 이슬람을 배척할 때, 그때의 기독교는 특별히 수준이 낮았던 시대였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다시 한 번 예수의 가르침에 비추어 유대교와 이슬람에게 예(禮)를 다할 것이며, 그밖의 종교들과도 말씨름 그만하고 그들을 긍휼히 대하면서 예수의 모습 가까이로 다가가려는 열심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시대를 속이고, 인간을 속이고, 나면서부터 소경인 자를 비웃는 야만과 오만에서 벗어나서 예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기독교 시대를 크게 불러야 한다.
〈無然〉
홈페이지: http://www.deulsoritimes.co.kr 2004.2.4
어느날 예루살렘 뜰에서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를 놓고 제자들이 예수께 질문을 했다. 저가 소경이 된 것이 자기 죄 때문인가, 아니면 그 부모의 죄인가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질문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으나 예수님은 그 부모의 죄도 그렇다고 그 자신의 죄도 아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고자 하신다고 하셨다. 제자들의 각박한 질문, 야박한 질문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한 사람 소경, 그것도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이면 그의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 경우이겠는가. 우리의 장애가 형벌이라면 날 때부터의 소경은 자기 죄가 아닌데 소경 되었으니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누구의 죄냐고 묻는 것은 제자들의 마음이 매우 인색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물을 대할 때 너그러운 마음이면 모두가 너그럽게 보이는 법이다. 일흔 번의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을 배우면서 성장한 예수의 제자들이 소경된 죄의 원인을 먼저 추궁한다면 되겠는가.
오늘의 교회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안에서의 분쟁, 목회자들이 일반법정에 서서 망신스러운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 짝이 없다.
좀 더 큰 이야기를 한다면 기독교 사람들은 남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특히 타종교에 대해서 왜 그리 관심이 많은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자기 종교도 다 모르면서 어떻게 그들이 남의 종교를 평가하는가.
타종교들이 종교이면 기독교는 종교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종교 만들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 기독교가 종교 되어버린 것은 초대교회 이후의 자기 부족에서 되어진 결과이다.
특히 콘스탄틴 시대에 이르러 기독교는 로마가 주는 떡을 분별없이 받아 먹다가 세상의 종교들과 다를 바 없는 종교에 자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저 소경의 죄가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 것이 곧 종교의 자세이다. 저에게서 하나님의 하실 일을 찾는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사 사람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시려는 모습이시다.
새 세기에 이르렀으니 기독교는 하루속히 종교 아님을 선포하고 종교인들 흉내를 내지 말고 이 땅의 사람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예수가 아담, 곧 제 2의 아담이라면 예수는 새로 출발하는 인류의 처음이시다. 기독교는 그러므로 예수에게서 예수를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유대교나 이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은 기독교가 예수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의 증좌이다.
기독교가 유대교를 비난할 때, 이슬람을 배척할 때, 그때의 기독교는 특별히 수준이 낮았던 시대였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다시 한 번 예수의 가르침에 비추어 유대교와 이슬람에게 예(禮)를 다할 것이며, 그밖의 종교들과도 말씨름 그만하고 그들을 긍휼히 대하면서 예수의 모습 가까이로 다가가려는 열심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시대를 속이고, 인간을 속이고, 나면서부터 소경인 자를 비웃는 야만과 오만에서 벗어나서 예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기독교 시대를 크게 불러야 한다.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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