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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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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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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25 http://www.deulsoritimes.co.kr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영광의 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시고 제자들을 단단히 준비시키시던 중 도마가 예수께 묻는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길을 모르겠다고 한다. 디두모 지방 출신답게 의문(의심)이 많은 도마는 예수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아, 길을 모르다니? 여태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며 걸어온 길이 그 길이거늘 길을 모르다니? 함께 만나서 생활해온 지난 3년이 모두 길이거늘 길을 모른다 하니 도마의 어리석음 이전에 예수는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시는 예수는 또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오해로 주어진다는 것을 아셨을까.
내가 길이다. 이 길을 통해서만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고대사회의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그리고 하란을 경유하여 바벨론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왕의 대로'라 하는데 이 길은 황야와 사막을 개척하여 만든 길로써 들개나 황야의 늑대, 사자나 그밖의 짐승들, 뱀과 황충 등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더 무서운 것은 도적 떼들로부터 보호를 받는 길이었다.
예수가 길이라 하심 또한 이 험한 사막과 황야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예수의 길에서 진리를 만나고 생명이 된다 하시며, 그 길에서 주님은 우리와 만나시기를 원하신다. 주님이 걸으신 그 길에 우뚝 서는 신앙을 부탁하신 것이다.
도마를 달래놓고 있으니 빌립이 말문을 열고 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라 하신다. 귀가 둔한 자여 들을 귀 있어야 하는데 귀가 없구나. 주님은 어찌 빌립에게 하신 말씀 뿐이실까. 하나님 보여달라는 사람들, 예수 앞에서 하나님 얼굴을 보여달라는 소경들.
눈이 없으니 보여준들 알 수 있는가. 눈이 없다. 눈이 없으니 길을 아는가? 앞이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을 보여준들 아는가?
그러나 도마나 빌립은 참으로 정직하고 또 순진했다. 모르면서 아는 척, 꿈이나 꾸면서 세월을 허송하는 자들에 비하면 참으로 정직했다. 도마여, 내가 길이니 그럼 당신이 또한 길이 되어 예수를 만나시오. 거기서 우리 모두 길이 되고 그 얼굴 마주보면서 하나님 형용을 묻지 않아도 되는군요.
힘차게 쭉, 뻗어나가야 한다. 모르면 물으라. 길을 묻느냐? 그런데 어찌 길에서 길을 묻는가? 하나님 얼굴이 보고 싶다고, 그럼 내가 보여줄까. 나를 보는가. 그리고 나를 통해서 또 누구를 보고 싶은가?
방법이 없다. 길을 찾는다 하면서 앉아서 입으로 묻고 있으며, 예수에게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그건 질문이 아니라 억지이다.
오늘의 기독교 또한 길을 묻고 있으며, 하나님 얼굴 보여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그들은 배운바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길에서 길을 물으며 예수께 하나님 보여달라니 안타깝구나. 〈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89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영광의 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시고 제자들을 단단히 준비시키시던 중 도마가 예수께 묻는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길을 모르겠다고 한다. 디두모 지방 출신답게 의문(의심)이 많은 도마는 예수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아, 길을 모르다니? 여태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며 걸어온 길이 그 길이거늘 길을 모르다니? 함께 만나서 생활해온 지난 3년이 모두 길이거늘 길을 모른다 하니 도마의 어리석음 이전에 예수는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시는 예수는 또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오해로 주어진다는 것을 아셨을까.
내가 길이다. 이 길을 통해서만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고대사회의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그리고 하란을 경유하여 바벨론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왕의 대로'라 하는데 이 길은 황야와 사막을 개척하여 만든 길로써 들개나 황야의 늑대, 사자나 그밖의 짐승들, 뱀과 황충 등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더 무서운 것은 도적 떼들로부터 보호를 받는 길이었다.
예수가 길이라 하심 또한 이 험한 사막과 황야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예수의 길에서 진리를 만나고 생명이 된다 하시며, 그 길에서 주님은 우리와 만나시기를 원하신다. 주님이 걸으신 그 길에 우뚝 서는 신앙을 부탁하신 것이다.
도마를 달래놓고 있으니 빌립이 말문을 열고 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라 하신다. 귀가 둔한 자여 들을 귀 있어야 하는데 귀가 없구나. 주님은 어찌 빌립에게 하신 말씀 뿐이실까. 하나님 보여달라는 사람들, 예수 앞에서 하나님 얼굴을 보여달라는 소경들.
눈이 없으니 보여준들 알 수 있는가. 눈이 없다. 눈이 없으니 길을 아는가? 앞이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을 보여준들 아는가?
그러나 도마나 빌립은 참으로 정직하고 또 순진했다. 모르면서 아는 척, 꿈이나 꾸면서 세월을 허송하는 자들에 비하면 참으로 정직했다. 도마여, 내가 길이니 그럼 당신이 또한 길이 되어 예수를 만나시오. 거기서 우리 모두 길이 되고 그 얼굴 마주보면서 하나님 형용을 묻지 않아도 되는군요.
힘차게 쭉, 뻗어나가야 한다. 모르면 물으라. 길을 묻느냐? 그런데 어찌 길에서 길을 묻는가? 하나님 얼굴이 보고 싶다고, 그럼 내가 보여줄까. 나를 보는가. 그리고 나를 통해서 또 누구를 보고 싶은가?
방법이 없다. 길을 찾는다 하면서 앉아서 입으로 묻고 있으며, 예수에게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그건 질문이 아니라 억지이다.
오늘의 기독교 또한 길을 묻고 있으며, 하나님 얼굴 보여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그들은 배운바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길에서 길을 물으며 예수께 하나님 보여달라니 안타깝구나. 〈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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