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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믿음을 추구하십시오

베드로후 이한규 목사............... 조회 수 885 추천 수 0 2014.12.22 02: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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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벧후3:14-17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 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51) 2014.9.15 

성숙한 믿음을 추구하십시오 (벧후3:14-17)

 

< 행위도 따라오게 하십시오 >

 지난 몇 달 간 구원파 유병언 사건으로 한국이 떠들썩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병언의 고졸 학력을 문제 삼습니다. 그러나 형편상 사회에 일찍 진출한 사람은 학력은 없어도 계속 배우고 익혀서 실력을 상당히 갖춘 경우도 많습니다. 영성과 지혜를 겸비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저술가로 뽑히는 토저(Tozer) 목사님의 정식 학력은 중졸이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기도와 배움으로 20세기 최대 기독교 저술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학력 자체가 아니라 ‘학력 위조’와 ‘학력 세탁’입니다. 교단 신학교를 나와 정식으로는 중졸과 고졸이면서 교회만 조금 크면 어느새 미국 신학교 박사 타이틀을 걸칩니다. 왜 그런 학력 세탁자가 교회를 잘 키울까요? 살다 보면 진실한 사람보다 잘 속이는 사람이 돈도 잘 벌고 성공도 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요새 물의를 일으키는 성공했다는 사람 중에 유난히 학력 위조자들과 학력 세탁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저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재정적인 필요 때문에 4군데 신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했습니다. 한 곳은 무인가 초교파 신학교였고, 두 곳은 무인가 장로교 신학교였고, 또 하나는 성결대학교였습니다. 그때 만 5년간 성경과목 위주로 총 24과목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밤잠을 줄이며 힘들게 했던 강의준비가 지금 성경 전체 강해설교 파일 완성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성결대학교에서는 ‘공회서간, 신약신학, 신학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때 무인가 신학생들은 학력은 부족했어도 신앙과 열정과 자부심은 컸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앞으로 목회할 때 이단 교주처럼 성공하기보다는 차라리 성공을 못해도 건전한 목회의 길을 고수하고 학력보다 실력이 더 중요하니까 배우기를 힘쓰라고 수시로 강조했습니다. 학력과 실력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사실 유병언의 문제는 고졸 학력이 문제가 아니라 신학 공부도 하지 않은 사람이 목사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신학교 다닌 사람만 목사 안수를 주라고 성경 어디에 쓰여 있느냐?” 상당히 성경을 앞세우는 말 같지만 그런 식으로 성경을 자기변호를 위해 이용할 때도 많습니다. 성경은 모든 삶의 지침을 구체적으로 다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기본 원리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기에 신학과 신학교가 필요한 것이고 전문적인 신학교육과 신학훈련을 받은 사람을 목사로 안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침례교단에서는 신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목사 안수를 주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그렇게 합니다. 상당한 신학공부는 학력 숭상의 산물이 아니라 양떼의 오도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그래서 신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면 일단 지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기본을 갖추지 않게 되면 편법을 선호하게 되고 본능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려고 잘못된 확신을 심어주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때 한국 교회가 구원파 사상에 의해 얼마나 많은 곤란을 겪었습니까? 구원파의 영향으로 기존 목사들은 율법적이고 윤리적인 설교자처럼 얼마나 매도되었습니까? 물론 구원과 거듭남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구원받은 후에 천국 갈 때까지의 삶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성경을 통해 인도하는 것을 ‘윤리적인 설교’란 딱지붙이기로 매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구약을 주신 것은 율법도 필요하고 성경적인 윤리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기독교 교리의 뼈대가 되는 2대 핵심문서인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도 전반부인 로마서 1-11장과 갈라디아서 1-4장은 교리 문제를 언급하지만 후반부인 로마서 12-16장과 갈라디아서 5-6장은 실천 문제를 언급합니다. 그만큼 성도의 살아가는 문제도 중요한 문제란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일부만 편식해서 보지 않고 전체를 균형 있게 보는 경우에는 목회자의 설교가 삶에 실제적인 도전을 주는 말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윤리적인 설교’란 딱지 붙이기로 매도하는 것은 성경적인 태도가 아닌 기존 교회 흠집 내기입니다.

 구원파 핵심멤버로 있다가 탈퇴한 한 목사의 말에 의하면 유병언은 윤리의식도 없고 십계명도 다 어겼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거짓말로 신도들을 속이고 신도들의 물질을 강탈했습니까? 숨겨놓은 여자와 재산도 하나씩 밝혀졌습니다. 또한 얼마나 많은 상징 조작을 했습니까? 평소에 자기가 죽으면 검소한 것처럼 “은행나무 밑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한 방송 사회자가 말했습니다. “은행나무가 참 가련하게 되었습니다.”

< 신앙성숙에 필요한 것 >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도 넘쳐야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넘쳐야 합니다. 운전할 때 바로 앞차만 보면 위험합니다. 옆과 뒤까지 동시에 보고 멀리까지 봐야 안전운행이 가능합니다. 그처럼 신앙이 낮은 차원에 머물러 있으면 앞이 잘 안보여 불안합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이제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이 넘칩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해지면 일이 터져도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사랑이 있겠지! 이제 간증거리 하나 만들자!”고 하며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잘 배우고 잘 자라서 신앙의 거인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도 축복이지만 영적인 거인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큰 축복입니다. 사람은 20대부터 점차 노쇠해지만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면 70세에도 생체 나이는 40대처럼 건강하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 없이 게으르게 살면 기억력이 쇠퇴하지만 계속 배우면 기억력은 크게 감퇴하지 않고 종합적인 사고 능력은 더 좋아집니다.

 영국 총리를 지냈던 존 메이저는 영국 런던 남부의 빈민촌에서 곡마단원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을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배움에 정진해서 26세에 구의원이 되고 36세에 국회의원이 되고 대처 수상 때 재무부 장관이 되었다가 나이 50세인 1990년에 영국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인기가 좋을 때 “사람이 있으라고 할 때 떠나는 것이 좋다. 이제부터 가정을 돌보겠다.”란 말을 남기고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보통은 나이가 들면 희망도 작아집니다. 그러나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살면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희망이 커지고 현재보다 미래가 더 좋아집니다. 지금 밑바닥에 있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끊임없이 배우면 미래는 그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배우고 자라고 가다듬고 일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그렇게 잘 배움으로 자신을 계속 성숙시켜야 합니다. 신앙성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1. 거룩함

 베드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삶을 통해 평강을 누리며 살라고 도전합니다(14절). 성도는 주님의 신부로서 자기 단장에 힘써서 믿음과 구원과 은혜를 앞세우되 정결한 행동도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고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그녀의 정결한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복된 존재가 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주님 앞에 정결한 모습으로 드려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정결하게 됩니까? 디모데전서 4장 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여짐이니라.”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면 평강도 넘치게 됩니다. 잠언 28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신호위반을 하면 경찰차만 봐도 가슴이 떨리지만 신호위반을 안 했으면 경찰차를 봐도 편안합니다. 깨끗하게 살면 담대해지지만 깨끗하게 살지 않으면 불안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집니다.

 불안감을 ‘감정을 통해 들려오는 깨끗함을 도전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고 정결한 삶을 추구하고 평안을 찾으십시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베드로는 감옥에서 죽기 전 날에도 평안하게 잠을 잘 잤습니다. 인간의 생사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리고자 하시면 살고 죽이고자 하시면 죽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이 최선의 상황을 허락하셨다고 믿고 어떤 충격적인 일을 만나도 평안을 잃지 마십시오.

2. 오래 참음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는 주의 재림이 늦어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주의 오래 참으심 때문인데 그 원리를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그렇게 썼다고 했습니다. 즉 주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으로 결국 구원을 얻게 됨을 믿고 주님처럼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날, 한 여 집사님이 시어머니 문제로 고민하다 인내에 한계를 느끼고 목사님을 찾아 하소연했습니다. “목사님! 이래도 참아야 합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 답은 뻔합니다. 즉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 답입니다. 문제는 그 뻔한 답의 실천이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실천이 힘들 때 실천하면 더욱 큰 축복이 주어집니다. 성도의 눈물과 땀과 정성은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힘들어도 믿음을 지킴으로 복된 날을 준비하십시오. 성숙은 물론 거의 모든 축복은 인내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3. 겸손함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이 구절에서 ‘그 모든 편지’는 ‘사도 바울이 쓴 모든 편지’를 뜻합니다. 이 구절은 베드로가 베드로후서를 쓸 당시에도 사도 바울의 글이 이미 구약성경에 버금가는 성경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사도 바울이 한 종말과 재림에 관한 말씀 중에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더러 있는데 무식한 자들과 믿음이 굳세지 못한 자들이 그 말씀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즉 성경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동안 한국교회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억지로 교묘하게 뜯어 맞추는 것을 “성경을 잘 쪼갠다.”고 하면서 영성이 깊은 표식처럼 여겼지만 이해되지 않는 말씀 앞에서는 목회자라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것이 진짜 영성이 깊은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3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성경을 보면 가끔 사람의 머리로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 부분은 그냥 지나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말씀을 억지로 풀겠다고 하다가 이단에 빠지고 멸망에 빠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부분까지만 알려고 하십시오. 성경의 어떤 부분을 잘 모른다고 해서 구원을 잃거나 상급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르게 하신 부분은 모른 채 놔두고 알게 하신 부분만이라도 잘 붙잡고 최선을 다해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얼마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 말씀은 이해되어서 믿기보다는 먼저 믿어서 이해될 때가 많습니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대로 뇌두고 이해되는 말씀만 붙잡고 순종하며 살면 됩니다. 성숙한 신앙을 가지려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정말로 많다는 것을 이해하는 겸손함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4. 분별력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전체에 대해 요약하면서 성경을 억지로 풀려는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되면 믿음이 굳센 것 같은 사람도 실족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늘 주의하라고 했습니다(17절). 신앙생활을 할 때 이단에 한번 빠지면 바른 신앙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처럼 한 번의 미혹이 무서운 것이기에 이단 공동체에는 호기심으로라도 한 발자국도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그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교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기 행위를 합리화하려고 이단을 변호하게 되면서 결국 영적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면 그 한 번의 사고로 꼽추가 되고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비행기 사고는 한 번의 사고로 대부분 죽습니다. 그처럼 영적인 한 번의 사고도 무서운 것입니다. 신앙이 어렸을 때 잘못된 말을 한번 듣거나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을 한번 만나면 영적인 꼽추처럼 신앙은 자라지 않고 시련과 고난만 계속됩니다. 지금도 악한 사탄은 곳곳에 덫 하나를 놓고 기다리는데 그 한 번의 미혹을 주의해야 합니다.

 요새 치유사역을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특히 “나았습니다!”라고 선포했는데 낫지 않으면 그런 거짓말을 가벼운 문제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거짓말을 해도 몰려가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았습니다! 아니면 말고. 안 나으면 당신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지!”라고 하면서 본인은 빠져나갈 구멍은 다 만들어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컬으면서 버젓이 치유사역자로 행세하는 것입니다.

 금년 총회에서 성찬식 때 주 설교자는 25분 설교를 했는데 치유기도를 맡은 한 목사는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장장 50분을 치유기도를 한다고 상식 이하의 행동을 했습니다. 또한 마이크 시스템을 성령을 부르는 통로인 것처럼 귀청이 떨어지도록 마이크 소리로 사람을 흥분시키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실명한 한 사모님을 보고 “예수 이름으로 나았습니다!”라고 분명히 선포했는데 그 뒤 국제전화로 몇 번이나 확인해보았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그렇게 망령되어 일컬어질 대상입니까?

 주어진 시간 외의 지나친 시간 독점은 자아도취증의 제일 현상입니다. 어떤 부흥사는 5시간 연속해서 원고 없이 설교합니다. 평신도 때는 “와! 어떻게 저렇게 은혜로운 말씀을 5시간이나 계속할까? 성령의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이런 소리들도 들려왔습니다. “아무리 은혜가 된다고 그렇게 오래 설교하면 됩니까? 혼자 도취에 빠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마다 이렇게 시각 차이가 크구나.” 그러나 지금은 설교를 지나치게 오래 하는 것을 자기도취라고 냉소한 사람의 말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평신도 때 어떤 동료 교사는 대표기도를 10분 이상 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우러러 보였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기도를 잘할까?” 그런데 주변 사람들 표정은 대부분 안 좋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많이 하면서 점점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시간 독점을 성령에 사로잡힌 표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취에 사로잡힌 표식으로 보는구나!” 그러다 보니까 총회에 가서도 늘 듣는 편입니다. 최고의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입니다. 혼자만의 영성은 가장 성령에 반대되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단을 분별합니까? 처음에는 분별이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실체가 드러납니다. 문제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이미 영혼과 가정과 물질을 상당히 털린 후라는 것입니다. 결국 처음부터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어떻게 처음부터 분별을 잘합니까? 초신자의 경우는 스스로 분별하기 힘드니까 좋은 교회와 좋은 목자를 만나는 것이 거의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미혹될 때는 대개 특별한 축복, 치유, 은사, 선택을 약속할 때 미혹되는 경우가 많기에 너무 특별한 것에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 성숙한 믿음을 추구하십시오 >

 왜 사람들이 헛된 예언이나 헛된 종말신앙에 빠집니까? 특별한 축복과 선택과 기적과 구원을 얻겠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혼자 살길을 찾으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왜 세월호 참사가 생겼습니까? 선장과 선원이 혼자 살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기복주의란 혼자 살길 찾고 복 받겠다는 태도입니다. 결국 그것은 가장 복을 못 받는 길입니다. 실제로 헛된 종말신앙과 무속신앙에 빠져 영혼이 망가지고 재산을 날리고 가정이 무너진 경우가 한둘이 아닙니다.

 헛된 기복신앙에 빠지지 않으려면 돈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합니다. 돈은 잘 사용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되지만 잘못 사용되면 영혼을 파멸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돈 때문에 사람도 죽이고 심지어는 부모도 죽입니다. 돈은 사탄이 사람을 파멸시킬 때 사용하는 가장 성능이 좋은 무기로서 돈을 흔들며 본성을 자극하면 멀쩡한 사람도 마귀의 종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처럼 돈 때문에 망한 사람도 많고 “돈! 돈!” 하다가 돈 사람도 많습니다.

 교회에서 미혹자들이 사람들을 미혹할 때도 그들의 최종 목적은 돈에 있습니다. 즉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안수해서 병을 낫게 해준다는 거짓 치유자들의 최종목적도 대개 돈에 있었습니다. 결국 미혹되지 않으려면 특별한 기적과 축복과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감사와 평안을 잃지 않고 만족하고 사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이 누리는 기막힌 은혜입니다. 행복은 많이 가진 자의 손에 있기보다는 감사하며 일하는 자의 손에 있습니다. 부자가 일반인보다 한 가지 더 알고 있는 체험적인 진리는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진리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잘살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재물에 집착해서 피도 눈물도 나눔도 없이 “돈! 돈!” 하며 살면 안 됩니다.

 20세기 말에 미국에 짐 베이커란 유명한 TV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설교할 때 TV 앞에서 한꺼번에 수천 명이 구원받았고 수천 명이 치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그가 어디에 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은혜 받은 사람이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미국 각처에서 헌금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 숨어있었던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돈은 벌수록 욕심이 나고 쌓을수록 애착이 가는 것입니다.

 짐 베이커도 처음에는 헌금을 잘 썼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욕심이 생기니까 자기 통장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돈이 많아지니까 나중에는 자기 개집에 에어컨까지 달아주었습니다. 그가 나중에 재판정에 섰을 때 재판관이 판결문을 읽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짐 베이커! 당신은 돈이 일만 악의 뿌리란 성경 말씀을 무시하고 살았소.”

 미혹되지 않으려면 이상하다는 곳에 가지 마십시오. 요새 인터넷을 보면 상당한 정보를 알 수 있기에 어디로 가려면 거기에 대해 미리 잘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인터넷이나 책을 보고 오히려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될 때도 많기에 ‘편협한 독서’보다 ‘폭넓은 독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분별력을 일깨워줄 바른 리더를 만나는 것입니다. 바른 리더를 만나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처음에 이단 교주를 만나면 그런 사람은 맨날 이단 주변만 맴돌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 이민 가서 “처음 공항에 나온 사람이 누구냐?”가 의외로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미국에 이민 갈 때 공항에 마중 나온 친구가 도박중독자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뉴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친구와 함께 처음 간 곳이 뉴저지의 도박 도시인 애틀랜틱 시티였습니다. 결국 그도 도박으로 패가망신 했습니다.

 처음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을 잘못 만나 인생 망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처음에 사람을 잘못 만나서 많은 것을 잃었어도 도중에 다시 좋은 사람과 좋은 교회를 만나 얼마든지 회복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욱 성숙한 믿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숙한 믿음을 준비하면 고난훈련은 현저히 줄어들고 앞날에는 좋은 열매가 많이 맺히게 될 것입니다. 항상 성숙한 믿음을 통해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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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5 마태복음 아기 예수께 경배 마2:1-12  강승호 목사  2014-12-24 1436
11454 창세기 하나님의 의도를 따르자(송구영신예배) 창35:1-7  최장환 목사  2014-12-24 1927
11453 에배소서 내 생애 최고의 선물 엡2:8  한태완 목사  2014-12-24 1865
11452 역대상 주님의 은혜(성탄절) 대상1:1-34  최장환 목사  2014-12-23 1310
11451 시편 고정관념에서 나오라 시46:1-11  최장환 목사  2014-12-23 609
11450 시편 최후의 승자 시34:1-22  최장환 목사  2014-12-23 544
11449 야고보서 당장 시작하십시오. 약1:25  한태완 목사  2014-12-23 796
11448 요한복음 참(진짜) 그리스도인은 요13:34-35  한태완 목사  2014-12-22 1073
11447 마태복음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은사와 힘 마25:14-30  한태완 목사  2014-12-22 1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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