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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吾 동화] 우와―!

이현주동화 최용우............... 조회 수 570 추천 수 0 2014.12.03 22:21:06
.........

우와―!

 

노마가 여의도 광장을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게 보입니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가까이 가니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웬 노인이 땅바닥에 쓰러져 온몸을 버둥거리며 떨고 있는 거예요. 두 눈을 꼭 감고 입술 끝에는 게거품이 묻어 있습니다.

말쑥한 차림을 한 뚱보 아저씨가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며 혀를 차네요.

“쯧쯧, 불쌍한 늙은이!”

머리를 요란하게 볶은 아주머니가 껌을 씹으며,

“경찰을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뚱보 아저씨가 등을 돌려 국회의사당 쪽을 바라보며 돌멩이를 던지듯이 말합니다.

“그냥 둬요. 저러다가 발작이 멈추면 툭툭 털고 일어날 테니까. 지랄병이라는 게 본디 그렇거든.”

어느새 노인은 몸 떨기를 그치고 잠을 자듯이 편하게 누워 있습니다.

노마는 집에 계신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할아버지가 저렇게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면?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둘러서서 뭐라고 떠들며 구경만 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아픈 건 관두고 얼마나 슬프고 창피하고 외로울까? 노마는 그냥 바라만 보고 서있을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 여기 이렇게 누워 계시면 어떡해요? 일어나셔요.”

노인 머리를 괴고 일으켜 앉히려 하지만, 노인의 몸은 무슨 바윗돌이나 된 듯, 꼼짝도 않는군요.

딱딱 소리를 내며 껌을 씹던 아주머니가 노마에게 말합니다.

“얘, 너네 할아버지냐? 그러고 있지 말고 얼른 아빠한테 연락해.”

노랑 모자를 쓴 여학생이 휴대폰으로 119를 부릅니다.

“119지요? 여기 여의도 광장인데요, 할아버지가 쓰러져 있어요. 어디 아프신가 봐요. 예, 여기서 국회의사당이 마주 보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119가 온대요?”

“예, 온대요.”

“음, 잘 됐군. 쯧쯧, 저런 병이 있으면서 왜 혼자 집을 나서는 거야? 문제야, 문제! 늙은이들이 너무 오래 살아서!”

뚱보 아저씨가 먼저 떠나고 아주머니도 노랑 모자 대학생도 가버리고, 둘러 서있던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자리를 뜹니다.

이제 노마와 할아버지, 둘만 남았네요.

그런데 웬일인지 한참을 기다려도 119 대원 모습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노인이 감았던 눈을 뜨고서 노마를 올려다보는군요. 국회의사당 쪽으로 돌아서며 돌멩이 던지듯 던진 뚱보 아저씨 말이 맞나봅니다. 잠자듯 누워있던 노인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더냐 싶게, 툭툭 옷을 털며 일어나 앉았거든요.

“할아버지, 괜찮아요?”

노인이 입술 끝에 묻어있는 거품을 손등으로 닦으며 말합니다.

“그래, 괜찮다.”

“일어설 수 있어요?”

“그래, 일어설 수 있다.”

할아버지가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섭니다.

“봐라, 멀쩡하잖니?”

“119 아저씨들이 올 텐데요.”

“그래? 누가 119를 불렀니?”

“예, 노랑 모자 대학생 누나가 불렀어요.”

“그럼, 여기서 기다려야지.”

할아버지가 벚나무 아래 나무 걸상에 앉으며 노마에게 말합니다.

“너도 그만 가거라. 할아버지 혼자 있어도 돼.”

하지만 노마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노인을 혼자 있게 두고 떠날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고요? 글쎄요, 그건 노마도 잘 모를 겁니다, 아마.

“할아버지, 뭐 좀 물어봐도 돼요?”

“그러렴.”

“할아버지 아파요?”

“그래, 아프다.”

“어디가요?”

노인이 당신 머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여기.”

그러고는 머리를 가리키던 손으로 이번엔 당신 가슴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여기도 아파.”

“왜요?”

노인이 당신 머리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그동안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 그래서 여기가 아픈 거야.”

노마가 노인 가슴을 가리키며 묻습니다.

“그럼, 여기는 왜 아파요?”

“너무 오랫동안 무시를 당했거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한테 너무 오래 무시당해서 그래서 속이 상했던 거야. 너도 무시당하면 속상하지? 그래서 여기가 이렇게 아프구나.”

“아프면 약을 먹어야지요.”

“그러잖아도 먹고 있어.”

“……”

노마는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노인이 말을 계속합니다.

“착한 노마야, 넌 이 할아버지처럼 아프지 마라.”

“……?”

“그러려면 지금부터 약을 먹고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아요?”

노인이 한 손으로 당신 머리를 가리키며

“될 수 있는 대로 여기는 비우고…”

나머지 손으로 당신 가슴을 가리킵니다.

“여기는 채우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노인이 손을 들어 국회의사당 쪽을 가리키면서 큰소리로 말합니다.

“야아! 저길 좀 봐라!”

노인이 가리키는 곳, 거기 국회의사당 둥근 지붕 위로 이제 막 지는 해가 반쯤 걸려 있는 것이 보이네요.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아아, 저 붉은 놀!”

노마도 입이 벌어지더니 닫히지를 않는 거예요.

“우와―!”

둘이서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붉은 해가 푸른 지붕 너머로 자취를 감추는군요. 진짜 금방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 나이 많은 노인과 꼬마 아이는 나란히 걸상에 앉아 이글거리는 숯불 같은 저녁 하늘을 계속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이윽고 노인이 노마 어깨에 손을 얹고 속삭입니다.

“이게 요즘 내가 먹는 약이야. 너도 이제부터 자주 이 약을 먹으렴. 그러면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하고 여기가 아프지 않을 게다.”

“지는 해를 바라보기만 하면 돼요?”

“그래. 그러면 돼. 고맙게도 하루에 한 번은 꼭 해가 지니까, 하루에 한 번은 약을 먹을 수 있어.”

“비 오는 날에는 지는 해를 볼 수 없잖아요?”

“비 오는 날에는 나뭇가지 위로 내리는 빗방울을 보면 돼.”

“……?”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노마에게 말합니다.

“저기 119 아저씨들이 오나보다. 착한 노마야, 고맙다. 아무쪼록 잊지 마라.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약을 먹어야 해. 그래서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는 비우고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는 채우는 거야. 그러면 너는 별 같은 사람이 될 게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 같은 사람……”

저쪽에서 오는 119 아저씨들을 향해 노인이 비틀비틀 걸어갑니다.

그제야 노마는 할아버지가 자기를 “착한 노마야!”라고 부른 게 생각납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아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요, 어떻게 저 노인이 처음 보는 자기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월간<풍경소리>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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