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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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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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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eulsoritimes.co.kr 2004.6.9
지난 주간, 창사 27주년 기념 세미나에 내걸었던 제목이다. 우리는 두 발제자의 제안에 만족감을 표시했고 참석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자부하면서도 아쉬움을 얼마간 느꼈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 또 상황, 더 나아가서 요즘 한국교회 분위기 등등을 감안할 때 자족하는 선에서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여기서 `후렴'처럼 다시 한 번 한국교회, 역사를 책임질 자신 있느냐고 묻는 것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해서이다.
한국교회는 신앙인구 겨우 몇십만명이었을 때 3·1운동을 주도했다든지 일제 강점기 민중을 이끌었던 날들의 향수 때문에 오늘의 교회 수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시대상황과 국민정서상의 문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19세기와 서양의 19세기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문명의 우수성과 기독교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한국신자의 우수성으로 비취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사회는 문명의 보편성과 인간이성의 향상으로 휴머니즘의 고양을 이루게 된다.
다시 말하면 크리스차니즘(Christianism)과 휴머니즘(humanism)의 차이점이 모호해지면서 사태가 험악해 졌다고 본다.
요즘 기독교 사람들 `가정치유', `효(孝)운동', `동네마당청소' 등을 마치 기독교 고유의 운동인양 신문에 선전을 하면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볼 때 저들 마음이 심히 공허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치유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십자가를 부끄러워 하는 일, 기피하는 일,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일, 기적주의에 매달리는 일, 사단에게 절 하는 일, 실속없는 명예를 챙기면서 단체 하나 만들어 총재단 수십명, 회장단 수십명의 속보이는 행위들이란 사단의 방식으로 만드는 명예임을 알아야 한다. 또 자격 없는 학위는 그것이 곧 가짜요 위조와 같음을 모르는 학력의 열등감.
뿐인가? 남의 교회 신자 빼앗아오기, 남의 교구 침범하기, 교구 파괴하기. 또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정직해야 할 사람들이 게으르고 공부 안해서 남의 설교 베끼기, 거짓 목소리로 동정 구하기 등 아주 추악한 현실을 우리는 개탄한다.
기독교가 우리 사회의 교사가 되고 민족의 사표가 되려면 매우 투명한 양심, `호리라도 남기지 않고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지키고, 윤리적 우수성, 용기, 자기희생, 그리고 세계를 보는 안목으로 민족의 진로를 마련하여 `국가백년대계'를 짜내서 공론화 하고 기독교의 제안 또는 대안이 정부나 UN기구보다 앞서는 등 철학적 기초까지 튼튼한 기독교가 되어야만 민족을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확실히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기독교와 휴머니즘의 관계와 한계를 모르는 무지에서 번지기 시작한 악성 종양과 같은 시련이 시작된지 벌써 오래다.
이러한 현실에서 기독교는 먼저 거짓과 대결하여 한판 승부를 낼 수 있는가를 타진해 보고 사단의 계략에서 탈출하여 본연의 자세를 가다듬어여 한다. 또 하나, 반드시 예수가 선택한 승부수에서만 활로를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05
지난 주간, 창사 27주년 기념 세미나에 내걸었던 제목이다. 우리는 두 발제자의 제안에 만족감을 표시했고 참석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자부하면서도 아쉬움을 얼마간 느꼈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 또 상황, 더 나아가서 요즘 한국교회 분위기 등등을 감안할 때 자족하는 선에서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여기서 `후렴'처럼 다시 한 번 한국교회, 역사를 책임질 자신 있느냐고 묻는 것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해서이다.
한국교회는 신앙인구 겨우 몇십만명이었을 때 3·1운동을 주도했다든지 일제 강점기 민중을 이끌었던 날들의 향수 때문에 오늘의 교회 수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시대상황과 국민정서상의 문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19세기와 서양의 19세기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문명의 우수성과 기독교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한국신자의 우수성으로 비취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사회는 문명의 보편성과 인간이성의 향상으로 휴머니즘의 고양을 이루게 된다.
다시 말하면 크리스차니즘(Christianism)과 휴머니즘(humanism)의 차이점이 모호해지면서 사태가 험악해 졌다고 본다.
요즘 기독교 사람들 `가정치유', `효(孝)운동', `동네마당청소' 등을 마치 기독교 고유의 운동인양 신문에 선전을 하면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볼 때 저들 마음이 심히 공허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치유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십자가를 부끄러워 하는 일, 기피하는 일,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일, 기적주의에 매달리는 일, 사단에게 절 하는 일, 실속없는 명예를 챙기면서 단체 하나 만들어 총재단 수십명, 회장단 수십명의 속보이는 행위들이란 사단의 방식으로 만드는 명예임을 알아야 한다. 또 자격 없는 학위는 그것이 곧 가짜요 위조와 같음을 모르는 학력의 열등감.
뿐인가? 남의 교회 신자 빼앗아오기, 남의 교구 침범하기, 교구 파괴하기. 또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정직해야 할 사람들이 게으르고 공부 안해서 남의 설교 베끼기, 거짓 목소리로 동정 구하기 등 아주 추악한 현실을 우리는 개탄한다.
기독교가 우리 사회의 교사가 되고 민족의 사표가 되려면 매우 투명한 양심, `호리라도 남기지 않고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지키고, 윤리적 우수성, 용기, 자기희생, 그리고 세계를 보는 안목으로 민족의 진로를 마련하여 `국가백년대계'를 짜내서 공론화 하고 기독교의 제안 또는 대안이 정부나 UN기구보다 앞서는 등 철학적 기초까지 튼튼한 기독교가 되어야만 민족을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확실히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기독교와 휴머니즘의 관계와 한계를 모르는 무지에서 번지기 시작한 악성 종양과 같은 시련이 시작된지 벌써 오래다.
이러한 현실에서 기독교는 먼저 거짓과 대결하여 한판 승부를 낼 수 있는가를 타진해 보고 사단의 계략에서 탈출하여 본연의 자세를 가다듬어여 한다. 또 하나, 반드시 예수가 선택한 승부수에서만 활로를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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