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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예배

누가복음 빛의 사자............... 조회 수 1541 추천 수 0 2014.12.25 07: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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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2:1-11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성탄 예배

본문: 누가복음 2: 1- 11

찬송가 109장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1.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 드릴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2.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영광이 둘린 밤 천군 천사 나타나 기뻐 노래 불렀네 왕이 나셨도다 왕이 나셨도다

3.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동방의 박사들 별을 보고 찾아와 꿇어 경배 드렸네 왕이 나셨도다 왕이 나셨도다

4.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주 예수 나신 밤 그의 얼굴 광채가 세상 빛이 되셨네 왕이 나셨도다 왕이 나셨도다 아멘

주님을 영접하며 감사하는 기도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탄의 아침,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찬양합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왕궁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비천한 곳인 동물들이 거하는 곳, 곧 냄새 나는 곳, 먹이를 먹는 여물통이 아기 예수의 첫 잠자리였습니다. 이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자시고 우리가 입은 상처를 친히 가슴으로 안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영접하지 않는 인간의 무관심의 자리에 오셨습니다. 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할 수 없게 하려는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이셨습니다. 하오나 하나님의 낮아지심을, 우리는 하나님의 무력함이라 여겨 조롱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이제는 냄새나고, 불편하며, 거리끼는 곳에서도 주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은 우리 곁에 힘없고, 연약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두셨습니다. 아직도 독재 정권에 신음하며 살고 있는 저 북녘의 백성들을 두셨습니다.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낮고 천한 구유에 오신 하나님을 보게 하옵소서. 자비의 하나니, 이제 예수님만이 세상의 소망임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이제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교독문 119. 『성탄절(1)』 를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40:5)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리라 (미 5:2)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사 9:6~7상)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0~11)

어느 단체에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백화점, 명동, 설악산 등 다양한 장소가 나왔고 심지어 해외여행을 선택한 사람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망의 1위는 겨울이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스키장이었습니다. 하얀 눈이 깔려있는 스키장에서 가족과 연인과 함께 뜻깊은 성탄절을 맞이하고픈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고아원, 양로원 등의 사회시설을 찾아가겠다고 한 사람도 0.8% 있었습니다. 비록 적은 수이긴 하지만 이 0.8%의 훈훈한 사랑으로 따뜻함이 전해지는 올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현대인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잃어버린 채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세속 문화가 날로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날. 이 날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아픔 위에 생겨난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예수님은 이 땅에서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려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 오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권능을 가지셨으나 그 권능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쓰셨습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은 그를 『주』라 불렀으나 그는 그곳에서 홀로 섬기는 역할을 하셨습니다(요 13:2-17).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 죄로 인한 형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섬김과 희생적인 사랑!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본질과 근본정신을 여기서 찾아야 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은 바로 예수입니다. 그런데 주인 없는 크리스마스 잔치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치러왔습니다.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 성탄절인 줄도 모르고 한낱 한 겨울의 계절 잔치로 우리는 성탄절을 보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예수는 크리스마스 계절에 추방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이 확장될수록 예수는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손님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 잔치의 주인 자리에는 언제부터인가 싼타클로스가 예수 대신 앉아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싼타를 예수님보다 더 기다리고 더 사랑합니다. 그만큼 싼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제조하는 업자들만 신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케롤 속에서 흥행되는 상업주의의 열기는 세계화 흐름 속에서 더욱 뜨거워지는 듯합니다. 케롤의 달콤한 노랫소리는 크리스마스 세일을 부추기는 소비욕구를 자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세일의 물결에 밀려 예수는 이미 저 멀리 떠내려가 버린 듯합니다. 소비 예찬이 아기 예수 예찬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예수를 주인의 자리에서 쫓아내고 그 자리에 자본주의의 이윤을 모시고 있는 듯합니다.

내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보다 근원적으로 생각해보면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부활에 감동했던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창설한 뒤 그것을 제도화하여 굳게 지키려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예수는 무거운 교리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예수에게 제도화된 기독교가 입혀준 옷은 유신론(theism)에 근거한 무거운 교리의 옷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신 자유·진리의 주체인 예수에게 자유를 구속하는 온갖 유신론적 도그마의 옷을 입혀 온 셈이지요. 결국 오늘 크리스천들이 보고, 생각하고, 믿는 예수는 박제화된 형상으로서의 예수에 불과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특별히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저는 예수의 참 모습이 그리워지고 그 모습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예수 부재(不在)의 한 본보기를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 추종자들이 예배 때마다 뜻 없이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그 분의 부재를 아예 모르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전통적 신앙고백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 갈릴리의 예수의 그 감동적인 행적은 아예 증발되고 없습니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자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여기에 예수의 삶은 고스란히 빠져 있습니다. 처녀 몸에서 나신 후 바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는 예수 모습만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실종이 가장 오랫동안 세계 기독교신자들이 고백하는 신앙교리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으니, 성탄절에 자본주의 시장에 의해 추방된 예수를 안타까워한다는 것이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이 신앙고백은 예수를 더 높이기 위해 그의 탄생을 유신론적 입장에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여 예수를 탄생시켰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동정녀 탄생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몇 년전 『가이드포스트』지에 실린 글입니다. 윌리라는 소년이 크리스마스 연극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능이 조금 떨어져 4학년에 다녀야 할 나이에 2학년에 다니는 아이입니다. 키가 크고 마땅한 배역이 없어 여관집 주인역을 맡았습니다.

문 앞에 턱 버티고 섰다가 마리아와 요셉이 오면 『방 없어요』하고 들어가 버리는 역입니다. 한 달이나 연습한 끝에 성탄절이 되어 공연을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왔습니다. 『주인님, 방 하나만 빌려 주세요.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아무데서도 안 받아 줍니다. 부탁합니다.』 윌리는 퉁명스럽게 『빈 방 없어요, 딴 데나 가 봐요!』하고 맡은 역을 잘 소화해 냈습니다.

연극을 지도했던 선생님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안으로 퇴장해야 할 윌리가 처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요셉과 마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각본에도 없는 대사를 갑자기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요셉님, 마리아님, 가지 마세요. 사실은 우리 안방이 비어 있어요. 그 방을 쓰시란 말이에요!』

순간, 관객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처럼 뜻깊은 성탄연극은 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안방을 그리스도께 내어 드립시다. 내 가장 소중한 마음의 방을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말구유에 오심은 무능해서가 아니고 천해서가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온유하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능력입니다. 생명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오늘 이 성탄일에 주님을 마음 가득히 영접하시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탄생하신다는 기쁜 소식이 제사장이나 혹은 권력있는 유대총독에게 먼저 전하여지지 않고 구태여 목자에게 전해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예수님의 탄생소식이 전달될 때에 목자들은 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양 틈에서 양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목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양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진실로 우리의 참 목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죄를 짓고 불의하여 저주를 받아 마귀에게 찢기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무 죄도 없고 흠도 없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강림이 목자들에게 전해진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때로부터 영원토록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되』(요10:2-4) 여기서 보면 예수님이 통째로 양무리를 불러 인도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억하시고 부르시며 그 처지에 따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목자가 양을 치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라고 하였습니다. 목자가 양과 함께 있거나 인도하며 다녀도 소용없습니다. 반드시 양을 치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탄의 소식이 목자에게 먼저 전해진 이유가 있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예수 성탄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선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다는 것과, 둘째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불러 그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 즉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리라는 것이고, 셋째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는 천사들의 캐럴 내용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가져온 역사의 선물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으로 바꾸어진 역사 속에서 그의 선물을 받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탄은 인간의 역사를 옛 것과 새 것으로 구별하는 분수령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변화된 역사 속에서 옛사람은 벗어버리고 성탄의 역사적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여 죄와 구별된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찬송가 115장 『기쁘다 구주 오셨네』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아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 찬양 하여라

2. 구세주 탄생했으니 다 찬양하여라 이 세상의 만물들아 다 화답하여라 다 화답하여라 다 화답 화답 하여라

3. 온 세상 죄를 사하러 주 예수 오셨네 죄와 슬픔 몰아내고 다 구원하시네 다 구원하시네 다 구원 구원 하시네

4. 은혜와 진리 되신 주 다 주관하시니 만국 백성 구주 앞에 다 경배하여라 다 경배하여라 다 경배 경배하여라 아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탄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의 탄생을 해마다 반복되는 축제로만 여긴다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들을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시켜 주실 구세주로 이 땅에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되신 하나님은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몸소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과 평안을 허락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 대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동안 우리들의 생활을 돌이켜 봅시다. 우리는 외식함이 없이 그리스도를 대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우리의 욕심과 생각에 이끌려 마음대로 살아보겠다는 잘못된 신앙을 가졌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고 바른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크리스마스를 찾아야 합니다. 카드나 선물교환을 하고 불우이웃을 돕고, 밤을 지새우며 노래하고 좋은 음식으로 즐기던 것을 그치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크리스마스의 본질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아 우리 신앙을 반성하고 주님을 향한 마음자세를 어떻게 가질 것인지 삶의 태도를 결단해 봅시다.

우리 다 같이 예수님의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분에게 『기쁜 성탄절입니다』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스스로는 매우 나약한 존재입니다. 놀라운 업적도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런 목적도 없는 허무한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본문의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합시다. 아울러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에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그 빛을 비추는 아름다운 인생을 꿈꾸시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낮아지셔서 구유에서 태어나신 주님! 온 세상 죄를 사하러 예수님이 오셨음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며 이 기쁜 소식을 땅끝까지 전하기를 원합니다. 온 세상 만민이 하루속히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의 죄와 슬픔 몰아내고 만백성을 다 구원하시기를 원합니다. 성탄절을 계기로 어려운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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