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
2004.8.11 들소리신문
중국이 한국의 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연개소문과 싸워 눈 알 하나가 날라가버린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완패를 해서 도망가던 때를 잊었을까? 또 광개토대왕을 잊었을까? 지금 중국의 동북부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고구려의 유적을 눈이 없어서 보지를 못하는가?
중국이 왜, 저럴까? 그러나 오늘 중국이 저렇듯 오만하게 나오는 것은 고구려 시대 이후 한반도, 즉 고려조 중엽부터 약 1천여 년간 중국에게 어떤 모습을 보였던가를 반성해 보면 알 수 있다.
고려 말기, 아예 나라를 중국에게 바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어전회의에서 고려임금에게 말했던 신하가 있었지 않은가. 조선조, ‘삼전도 국치’라 했던 그때를 알지 않은가? 남한산성에 피신해 있던 임금이 삼전도(지금의 가락시장 부근)에 내려와서 청태조 누루아치의 아들 앞에서 삼배구고두, 즉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통을 마루에 쥐어박는 예절, 그러니까 절 한 번 하고 이마통을 땅바닥에 세 번 쥐어박고, 또 똑같은 방식으로 절을 하는 것이 항복하는 자의 굴복의 예였다.
폐일언하고, 고려 후기부터 조선조 5백년까지 8백여 년간 우리나라는 중국에게 항상 저자세였다. 형편이 괜찮을 때는 형님했고, 좀 나쁠때는 아버지, 더 나쁠때는 상전으로 받드는 종살이였지 않은가. 생각하면 서럽고 더러운 세월이었다. 좀 더 나라가 생각이 컸으면 조선 왕조가 일어날 때 삼봉 정도전 사상을 받들어 입헌 군주제에 가까울 정도의 파격이 있는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유럽은 르네상스 여세를 몰아 ‘왕권신수’를 버리고 민족 국가들을 세웠지 않은가?
조선조가 삼봉 정도전 때는 몰라도 일본이 후기 르네상스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여 임진왜란을 일으킬 무렵, 우리도 유럽의 군제와 군병기를 확보했으면 일본을 호령하고, 중국의 동북부 옛 고구려와 발해의 땅을 내놓으라고 다 늙어빠진 청나라에게 호통을 쳐서 위로는 블라디보스톡, 만주, 간도는 물론 옛 우리의 땅을 탈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리만 되었으면 오늘날 동북아의 최강자가 되어 일본과 중국을 충분히 제어하는 자존심 있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중국에서 멸시 당하고, 일본은 독도까지 내놓으라하지 않은가. 때를 놓치면 하는 수 없다. 이같은 이치로 오늘의 한국기독교를 보면 앞날이 예견된다. 현재 한국기독교는 원시요, 또 부족단위 시대이며, 조직이 마비된 오합지졸들이요, 탐욕은 돼지를 뺨칠 수준에 있다.
하나님이 앞으로도 무진장으로 한국교회를 도우시고 축복하실 것 꿈도 꾸지 마라. 오늘의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헌금을 타락한 부잣집 자식처럼 써대고 있으며, 신자가 많다 해도 기드온이 모방한 잡병 3만 2천명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솜씨로 3백을 선택하셨다. 마찬가지다. 오늘의 1천만 한국 신자 결정적인 자리에서 170분의 1만 선택이 된다면 5만 8천 8백여 명뿐이다.
한국기독교가 기드온식 계산법으로 하면 5만 8천 8백여 명밖에 쓰임 받지 못한다는데 이 책임을 대한민국의 목사들이 져야 한다. 깨달음이 없는 교회, 역사를 외면한 교회는 오늘의 중국 앞에서 한국 꼴이 되는 날이 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13
중국이 한국의 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연개소문과 싸워 눈 알 하나가 날라가버린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완패를 해서 도망가던 때를 잊었을까? 또 광개토대왕을 잊었을까? 지금 중국의 동북부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고구려의 유적을 눈이 없어서 보지를 못하는가?
중국이 왜, 저럴까? 그러나 오늘 중국이 저렇듯 오만하게 나오는 것은 고구려 시대 이후 한반도, 즉 고려조 중엽부터 약 1천여 년간 중국에게 어떤 모습을 보였던가를 반성해 보면 알 수 있다.
고려 말기, 아예 나라를 중국에게 바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어전회의에서 고려임금에게 말했던 신하가 있었지 않은가. 조선조, ‘삼전도 국치’라 했던 그때를 알지 않은가? 남한산성에 피신해 있던 임금이 삼전도(지금의 가락시장 부근)에 내려와서 청태조 누루아치의 아들 앞에서 삼배구고두, 즉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통을 마루에 쥐어박는 예절, 그러니까 절 한 번 하고 이마통을 땅바닥에 세 번 쥐어박고, 또 똑같은 방식으로 절을 하는 것이 항복하는 자의 굴복의 예였다.
폐일언하고, 고려 후기부터 조선조 5백년까지 8백여 년간 우리나라는 중국에게 항상 저자세였다. 형편이 괜찮을 때는 형님했고, 좀 나쁠때는 아버지, 더 나쁠때는 상전으로 받드는 종살이였지 않은가. 생각하면 서럽고 더러운 세월이었다. 좀 더 나라가 생각이 컸으면 조선 왕조가 일어날 때 삼봉 정도전 사상을 받들어 입헌 군주제에 가까울 정도의 파격이 있는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유럽은 르네상스 여세를 몰아 ‘왕권신수’를 버리고 민족 국가들을 세웠지 않은가?
조선조가 삼봉 정도전 때는 몰라도 일본이 후기 르네상스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여 임진왜란을 일으킬 무렵, 우리도 유럽의 군제와 군병기를 확보했으면 일본을 호령하고, 중국의 동북부 옛 고구려와 발해의 땅을 내놓으라고 다 늙어빠진 청나라에게 호통을 쳐서 위로는 블라디보스톡, 만주, 간도는 물론 옛 우리의 땅을 탈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리만 되었으면 오늘날 동북아의 최강자가 되어 일본과 중국을 충분히 제어하는 자존심 있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중국에서 멸시 당하고, 일본은 독도까지 내놓으라하지 않은가. 때를 놓치면 하는 수 없다. 이같은 이치로 오늘의 한국기독교를 보면 앞날이 예견된다. 현재 한국기독교는 원시요, 또 부족단위 시대이며, 조직이 마비된 오합지졸들이요, 탐욕은 돼지를 뺨칠 수준에 있다.
하나님이 앞으로도 무진장으로 한국교회를 도우시고 축복하실 것 꿈도 꾸지 마라. 오늘의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헌금을 타락한 부잣집 자식처럼 써대고 있으며, 신자가 많다 해도 기드온이 모방한 잡병 3만 2천명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솜씨로 3백을 선택하셨다. 마찬가지다. 오늘의 1천만 한국 신자 결정적인 자리에서 170분의 1만 선택이 된다면 5만 8천 8백여 명뿐이다.
한국기독교가 기드온식 계산법으로 하면 5만 8천 8백여 명밖에 쓰임 받지 못한다는데 이 책임을 대한민국의 목사들이 져야 한다. 깨달음이 없는 교회, 역사를 외면한 교회는 오늘의 중국 앞에서 한국 꼴이 되는 날이 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13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