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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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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http://www.deulsoritimes.co.kr
2004/11/24(수)
남들 다 하는데…
휴대폰 커닝으로 말썽을 일으킨 수능고사 학생들이, 그들 말대로 운수 사납게 걸려 들었다. 그들은 스스로가 너무 순진했다고 한다. 남들 다 하는 데…, 커닝이 이렇게 큰 죄인 줄을 몰랐다고 한다.
남들이 다 하는 일에 모처럼 뛰어들었다가 망신을 당하게 된 사람들이 어찌 너희들 뿐이더냐.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생이 집단으로 기기사용을 하여 커닝을 하고도 잘못인 줄 몰랐다면 공부 잘못한 것이다. 열살이면 정의가 무엇인 줄을 아는 나이다.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해서 사회불안을 일으켰는데, 학생이여, 지금은 자기 잘못을 깊이 반성해야 할거야.
남들 다 하는 데, 이 말을 곱씹어 보니 어린 학생들의 자책의 푸념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에 위기 신호와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정직하지 않은 일들을 행하면서 남들 다 하는데…, 라고 불만스러워하는 현실을 위기로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고백을 해 보자. 곳곳에 우뚝 서 있는 교회들이 사회인들의 가슴에 정직의 가치를 심어주고 있는가? 외형으로 예배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자리한 사람들이 정의로운 양심을 가다듬고 있는가?
양심이 무엇인가. 정의로운 양심은 또 무엇인가. 부질 없는 말의 꾸밈일뿐, 그 사람의 본질이 변화해야만 양심의 기준치가 된다. 예수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거듭남'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 점 타협점이 없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어미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한다. 그 이상이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집단으로, 그것도 휴대폰 조작을 통해서 집단 커닝을 한 행위를 범죄로 생각하지 못한 고 3학생을 둔 우리는 나라의 주요부분이 썩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남들 다 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는 행위이고 죄의식이 전혀 없다면 수능시험은 치뤄서 무엇을 하는가.
나라의 경제가 조금 어렵고, 국제환경 또는 북한문제가 꼬여 있다고 해도 우리의 고 3학생들 중 금년 수능 부정에 참여한 자들의 비뚤어진 양심이 더 큰 문제가 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전국적으로 5만개처 있다. 교회가 크다, 부자다, 라는 따위가 아니라 거기에 양심이 시퍼렇게 살아 꿈틀거리는 목사 또 성령으로 거듭난 가슴을 가진 목회자들이 어두운 날 밤의 보안등 처럼 밝은 빛을 발산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국의 국토 범위에 5만여 개처 교회당이 자리잡고 있다면 기독교 신자고 아니고를 막론하고 위안이 될만한 일일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어둑한 밤 길을 가는 데 중요 지점에 밝은 불빛 하나 있을 때를 말이다. 마찬가지다. 교회가 밤길에 등불이 되고, 어두운 사회환경에서 길잡이가 되어준다면 이 아니 유쾌한 일이겠는가.
남들 다 비뚤어진 양심으로 우리 사회에 어둠을 보탤지라도 그리 하지 않는 양심들이 일어나야 한다. 어린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부정직한 현상을 당연시 했다면 그들 자신 뿐 아니라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지성층, 또는 종교는 물론 정부 당국의 각성이 있어야 하겠다.〈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26
2004/11/24(수)
남들 다 하는데…
휴대폰 커닝으로 말썽을 일으킨 수능고사 학생들이, 그들 말대로 운수 사납게 걸려 들었다. 그들은 스스로가 너무 순진했다고 한다. 남들 다 하는 데…, 커닝이 이렇게 큰 죄인 줄을 몰랐다고 한다.
남들이 다 하는 일에 모처럼 뛰어들었다가 망신을 당하게 된 사람들이 어찌 너희들 뿐이더냐.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생이 집단으로 기기사용을 하여 커닝을 하고도 잘못인 줄 몰랐다면 공부 잘못한 것이다. 열살이면 정의가 무엇인 줄을 아는 나이다.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해서 사회불안을 일으켰는데, 학생이여, 지금은 자기 잘못을 깊이 반성해야 할거야.
남들 다 하는 데, 이 말을 곱씹어 보니 어린 학생들의 자책의 푸념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에 위기 신호와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정직하지 않은 일들을 행하면서 남들 다 하는데…, 라고 불만스러워하는 현실을 위기로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고백을 해 보자. 곳곳에 우뚝 서 있는 교회들이 사회인들의 가슴에 정직의 가치를 심어주고 있는가? 외형으로 예배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자리한 사람들이 정의로운 양심을 가다듬고 있는가?
양심이 무엇인가. 정의로운 양심은 또 무엇인가. 부질 없는 말의 꾸밈일뿐, 그 사람의 본질이 변화해야만 양심의 기준치가 된다. 예수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거듭남'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 점 타협점이 없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어미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한다. 그 이상이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집단으로, 그것도 휴대폰 조작을 통해서 집단 커닝을 한 행위를 범죄로 생각하지 못한 고 3학생을 둔 우리는 나라의 주요부분이 썩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남들 다 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는 행위이고 죄의식이 전혀 없다면 수능시험은 치뤄서 무엇을 하는가.
나라의 경제가 조금 어렵고, 국제환경 또는 북한문제가 꼬여 있다고 해도 우리의 고 3학생들 중 금년 수능 부정에 참여한 자들의 비뚤어진 양심이 더 큰 문제가 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전국적으로 5만개처 있다. 교회가 크다, 부자다, 라는 따위가 아니라 거기에 양심이 시퍼렇게 살아 꿈틀거리는 목사 또 성령으로 거듭난 가슴을 가진 목회자들이 어두운 날 밤의 보안등 처럼 밝은 빛을 발산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국의 국토 범위에 5만여 개처 교회당이 자리잡고 있다면 기독교 신자고 아니고를 막론하고 위안이 될만한 일일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어둑한 밤 길을 가는 데 중요 지점에 밝은 불빛 하나 있을 때를 말이다. 마찬가지다. 교회가 밤길에 등불이 되고, 어두운 사회환경에서 길잡이가 되어준다면 이 아니 유쾌한 일이겠는가.
남들 다 비뚤어진 양심으로 우리 사회에 어둠을 보탤지라도 그리 하지 않는 양심들이 일어나야 한다. 어린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부정직한 현상을 당연시 했다면 그들 자신 뿐 아니라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지성층, 또는 종교는 물론 정부 당국의 각성이 있어야 하겠다.〈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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