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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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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5(수)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지상의 마지막 말씀으로 ‘내가 목마르다, I am thirsty’하셨다. 물론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는 말씀을 곧 이어서 하시는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이는 목마르심을 이루는 것이다. 그 목마름이 인류 모두의 것으로 남아 있음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이루어짐이 아니라 과제(숙제)로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목마름은 ‘나의 것’이고 다 이루심은 ‘예수의 것’이다. 예수께서 이루었다 하신 말씀을 마치 자기가 행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에게는 목마름을 남긴 그것을 이루신 것이다.
목마름이어야 한다. 목마름이 생명이다. ‘…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하신 뜻을 알아들어야 한다. 얼마나 그 마음이 간절하였으면 서서 ‘외쳐 가라사대’일까. 예수 당시의 풍습에 의하면 선생님은 서서 가르치지도 않았다. 더구나 고함을 지르는 일 따위는 없었다. 긴급한 상황, 절박한 시간 외에는 서서 외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벌떡 일어서서, 그리고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 와서 마시라. 이 말씀의 분위기 또한 예수 자신의 목마름을 호소하는 것이다. 예수가 목마르신 것이다. 목마른 자들이 목마름을 모르고, 또 목마름을 호소하지 않으니 (엉뚱하게도) 예수가 목마르신 것이다. 예수는 목이 마르지 않는다. 그 분은 샘 근원이신데 왜 예수가 목이 마르시겠는가.
하지만 예수는 다시 사마리아 수가성(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신다. 목마르신 것이다. 아직도 마시면 다시 갈증, 끝내 갈증뿐인 야곱의 우물물에 매달려 있는 여인을 만나니 갑자기 목이 마르신 것이다.
여기서도 내가 목마르다, 목이 마르신 것이다. 예수는 늘 우시니 `울보'이시고 늘 목마르시니 `물보'라해야 할까. 겟세마네에서 우시고, 나사로 무덤가에서 우시고, 예루살렘 무너질 실패의 성벽을 바라보시고 우셨다. 골고다에서 죽어 가시며 목마르시고,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목마르시고, 사마리아 여인 앞에서 목이 마르시다.
그리고 예수는 오늘날, 21세기에 터를 잡고 무사안일에 취해 사시는 기독교를 바라보실 때 또 목이 마를 것이다. 예수의 물(목마름)을 원하지 않는 기독교의 꼴사나운 행투를 바라보실 때 그 목마름이 지나쳐서 목에 불이 붙으실 만큼이다.
기독교는 이미 예수를 배신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기독교가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하고, 예수가 대속의 죽음을 죽었으면 기독교 또한 대속의 죽음이심을 증거하는 죽음의 연속 속에서 자기 제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셨으니 기독교 또한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신 것도 기독교는 무시하고 묵살하지 않던가. 탐욕과 거짓으로 배를 채우고, 사단이 준 명예의 관을 쓰고, 이 땅의 착한 기독교를 모두 사단에게 바치는 자들이 교황이라는 이름의 아홉층 금관, 당회장이라는 이름의 홀을 흔들면서 예수의 골고다, 그 목마르심을 비웃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까. 〈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29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지상의 마지막 말씀으로 ‘내가 목마르다, I am thirsty’하셨다. 물론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는 말씀을 곧 이어서 하시는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이는 목마르심을 이루는 것이다. 그 목마름이 인류 모두의 것으로 남아 있음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이루어짐이 아니라 과제(숙제)로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목마름은 ‘나의 것’이고 다 이루심은 ‘예수의 것’이다. 예수께서 이루었다 하신 말씀을 마치 자기가 행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에게는 목마름을 남긴 그것을 이루신 것이다.
목마름이어야 한다. 목마름이 생명이다. ‘…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하신 뜻을 알아들어야 한다. 얼마나 그 마음이 간절하였으면 서서 ‘외쳐 가라사대’일까. 예수 당시의 풍습에 의하면 선생님은 서서 가르치지도 않았다. 더구나 고함을 지르는 일 따위는 없었다. 긴급한 상황, 절박한 시간 외에는 서서 외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벌떡 일어서서, 그리고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 와서 마시라. 이 말씀의 분위기 또한 예수 자신의 목마름을 호소하는 것이다. 예수가 목마르신 것이다. 목마른 자들이 목마름을 모르고, 또 목마름을 호소하지 않으니 (엉뚱하게도) 예수가 목마르신 것이다. 예수는 목이 마르지 않는다. 그 분은 샘 근원이신데 왜 예수가 목이 마르시겠는가.
하지만 예수는 다시 사마리아 수가성(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신다. 목마르신 것이다. 아직도 마시면 다시 갈증, 끝내 갈증뿐인 야곱의 우물물에 매달려 있는 여인을 만나니 갑자기 목이 마르신 것이다.
여기서도 내가 목마르다, 목이 마르신 것이다. 예수는 늘 우시니 `울보'이시고 늘 목마르시니 `물보'라해야 할까. 겟세마네에서 우시고, 나사로 무덤가에서 우시고, 예루살렘 무너질 실패의 성벽을 바라보시고 우셨다. 골고다에서 죽어 가시며 목마르시고,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목마르시고, 사마리아 여인 앞에서 목이 마르시다.
그리고 예수는 오늘날, 21세기에 터를 잡고 무사안일에 취해 사시는 기독교를 바라보실 때 또 목이 마를 것이다. 예수의 물(목마름)을 원하지 않는 기독교의 꼴사나운 행투를 바라보실 때 그 목마름이 지나쳐서 목에 불이 붙으실 만큼이다.
기독교는 이미 예수를 배신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기독교가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하고, 예수가 대속의 죽음을 죽었으면 기독교 또한 대속의 죽음이심을 증거하는 죽음의 연속 속에서 자기 제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셨으니 기독교 또한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신 것도 기독교는 무시하고 묵살하지 않던가. 탐욕과 거짓으로 배를 채우고, 사단이 준 명예의 관을 쓰고, 이 땅의 착한 기독교를 모두 사단에게 바치는 자들이 교황이라는 이름의 아홉층 금관, 당회장이라는 이름의 홀을 흔들면서 예수의 골고다, 그 목마르심을 비웃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까.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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