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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방언2

치유영적전쟁 이재익............... 조회 수 3163 추천 수 0 2005.04.03 08: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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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충 자료

왜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우리 안에 살도록 보내셨을까? 그것은 성령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령님은 자신의 언어인 방언을 가져와서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오신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을 우리의 영 안에서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소명을 하나님의 완전한 시기와 온전하신 뜻에 맞추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하게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부름 받은 목적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계시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성령님은 우리의 소명을 잘 알고 계신다. 우리의 소명에 관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무지하다. 우리가 그분의 거대한 지혜와 모략의 저수지가 우리의 영 안에 거주하면서 방언 기도로 풀려놓게 되기만을 기다리며 계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단이 온 이유 세 가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죽이고, 훔쳐가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마귀의 전공이다. 사단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된다. 사단은 영리한 놈이기 때문이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판하는 날에 우리가 멸망 당할 수 있고 우리의 삶의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죽여 버릴 수 있다.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리라면 어떻게 신자가 두 세 시간 기도하는데 (방언으로) 보내는 시간을 희생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한다면 성령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것을 위해 방언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5년 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엄청난 영적으로 성장된 모습을 볼 것이다.

어떻게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걷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떤 목사님의 간증]
그때 그 기둥에 기대어 있는데 갑자기 예언의 말씀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심령으로 갈급하게 찾아오던 계시의 지식을 받았다. 이때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아들아 이런 기름부음이 갑자기 네게 임한 것이 아니란다. 기름부음이 네게 임한 것은 네가 너 자신의 충전을 위한 방언 기도의 영적 원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며 이 법칙은 믿음 위에 너를 건축하게 하는 것이다. 너는 네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언제든지 네가 원하면 네 스스로 의도적으로 자신을 강건하게 할 수 있는데 성령으로 기도함으로써 너는 너를 제어하는데 네 육체적 감각을 따라 걷는 것을 초월하도록 자신을 건축할 수 있으며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케 하여 살아있고 성령으로 충전되어 성령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한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마귀를 쫓아 내고 산을 움직이는 믿음으로 자라는데 중요한 열쇠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은사와 방언과의 관계
방언은 영적인 은사와 그 역사에 관한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영적 기초인 것이다.
고전 12:8 – 10 에는 은사들이 나온다.
엡 4:8에는 5중 직임들이 나온다.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는 이 다섯 가지 사역을 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 자격을 갖추게 한다.
고전 12:28에는 여덟 가지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온다. 여기에는 5중직임과 은사들을 다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 전도자와 목사 대신에 기적과 병 고치는 은사로 대치되어 있는 것을 본다. 이 성령의 은사들은 복음 전도자와 목사의 직분에 자격을 부여하고 능력을 입혀주는 우선적인 은사들이다. (5중 직임은 특히 이 두 성령의 은사로 무장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육체적 물질적인 면을 돕는 사역들이다. (돕는 것, 다스리는 것) 이들은 사업적인 경영 같은 일들을 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섬기는 사역자들을 후원하는 것을 말하면 또 이 은사는 교회나 사역에 필요한 조직적인 기술과 은사를(행정) 포함한다.
아홉 가지 은사들은 능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이 여덟 가지 사역에 자격을 부여한다.

기초가 되는 각종 방언
방언이 왜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는가? 방언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성령의 은사들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은사가 역사하기 쉽다. 그러므로 방언은 마치 건물의 기초와 같이 중요한 것이다. 기초가 약하면 건물은 오래 가지 못하거나 태풍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한 방언은 영적 은사가 시작되는 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부르심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자질을 갖추는 일을 하시며 우리를 구비시키는 은사들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도록 하신다 이것이 마귀가 방언을 두려워하는 이유요 못하게 하는 이유이다.
마귀는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적게 하면 할수록 더 좋아한다.
마귀의 전략
1. 방언을 없애는 것
2. 방언을 없애는데 실패하면 두 번째 전략으로 방언에 대해 극단적인 단계로 들어가게 해서 예배에 질서가 없고 통제가 불가능하게 만들어 방언에 대해 꺼려하게 만드는 것이다.
왜 마귀가 이렇게 방언을 겁내며 이 은사에 관계되어서만 이렇게 혼란을 조성하는 것일까? 고전 14장은 바울이 이 은사에 관해 혼란과 잘못을 바로 잡는데 전체를 할애하고 있다. 방언은 영적인 것들에 대해 이해를 증진시키고 친밀한 관계 안에서 예수님을 앎으로 우리의 영적인 갈망을 풀어주는 것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의 유익
방언은 인격적인 결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며 항상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고전 14:4 우리를 세워준다고 말하고 있다.)
유 20절에서는 방언을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를 건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방언을 하는데 신간을 보내는 것은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 요인이 된다.

방언에 대한 오해 구절
고전 12:30절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을 하는 자이겠느냐?”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방언은 개인 기도를 위한 방언이 아니라 통변이 동반되는 방언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모두가 이 방언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바울의 계시의 근원
예수님을 제외하고 모세 이후로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계시를 받은 사람이 바울이다. 이 계시는 바울이 단지 사도였기 때문이 아니였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계시를 받을 수 있었을까?
고전 2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계시 지식과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즉 육신적인 것과 시기와 분쟁에서 벗어나는 길의 근원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고전 2:7-8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10-11절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이 비밀은 자신을 성령님께 드리는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12절을 보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님은 모든 시대의 가장 큰 비밀을 풀어 가르쳐 주시기 위해 천국에서 여기까지 오셨다. 구약의 성도들은 겨우 얼핏 보았을 뿐이다. (벧전 2:9-12)

방언과 계시 지식의 연결고리
그 당시에 성령 충만 받은 다른 사람들과 바울이 했던 것과 무엇이 가장 달랐을까?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바울을 더 구비시켰고 더 많은 계시 지식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은 무엇일까?
고전 14:18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의 시대에 어떤 사람보다도 바울은 더 많은 계시 지식 가운데서 사역하였다는 것과 고린도 교회의 어떤 성령 충만 받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방언 기도를 하였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바울은 전도를 위해 수 많은 도시를 통과하며 여행을 하면서 그는 수 많은 시간을 그리스도의 비밀을 교통하면서(방언) 보낸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계시를 가르쳐 주셨고 마침내 바울은 초대교회의 전체적인 기초를 총괄하기에 이른 것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과 계시 지식을 연결하는 영적 고리는 “비밀” 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데 있다.
바을은 고전 2-14장 사이에서 이 단어를 세 번 언급하고 있다.
첫째) 고전 2:7절에서
두 번째) 고전 4:1절에서
세 번째) 고전 14:2절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 비밀은 하나님의 비밀로서 바울은 신약 성경 단어 주해 사전에서 이렇게 정의 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 자연적인 이해의 범위 밖에 있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알려지는 것으로 오직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알려진다.”
요 16:13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님은 우리와 예수님 사이의 중재자이며 그분은 오직 그분이 들은 것만을 말하신다. 진리의 영으로서 그의 사명은 예수님으로부터 진리를 받아서 이 그리스도의 비밀들을 그가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우리에게로 초자연적인 언어를 통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가 방언으로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의 비밀들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 비밀들을 우리에게 영으로 알려 주시는 것이다. (골 1:27)


성령님은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즉 ‘이와 같이’라는 단어는 ‘이런 방법’으로 란 말로 쓸 수 있는데 이것이(기도를 통하여)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 즉 우리의 약점을 돕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연약함”이란 우리의 육신 때문에 우리에게 부여된 제한으로 말미암아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함을 언급하는 말이다. 성령님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는 무능력한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보냄을 받은 것이다.
예 1) 어떤 저주스러운 질병이 정상적인 삶을 못하게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질병을 우리의 몸에서 제거할 수 없고 이 질병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연약함이다.
예 2) 가난이 엄습해 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없게 한다고 하자.
이 가난이 우리의 앞으로의 발전을 멈추게 하고 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이것이 연약함이다.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가? 화를 내는 것인가? 믿음이 없는 것인가? 사람들에 대해 사랑
이 없는 것인가? 무엇이든지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행실을 죽이시는지를 보여 주실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세우실 수 있는 언어 전체를 가지고 오신다. 우리는 방언으로 한 문장만 기도해도 강건함을 입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방언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방언으로 중보기도를 해 주시며 그리스도께서 무엇인지 그 비밀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들이 이루어지게 하시며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도우시는데 방언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하라
“성령님, 나를 성령님께 내어드리오니 나를 주장해 주세요. 내 혼이 최근에 나를 방해하는 투쟁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하루 동안 성령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예) 우리가 2-3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한다면 성령께서 우리로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이루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산과 돌을 잡아서 없애 주실 것이다. 그래서 롬 8:28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풀어 놓는 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롬 8:37-38에서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피조물이나 현재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이나 우리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많이 기도함으로써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권세를 성령님께 양도하는 법을 배우라
우리가 성령께 양도하기만 한다면 그분은 우리 속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의 씨앗을 심어 놓으시고 그것이 싹이 나고 자라게 하여 마침내 깊이 뿌리를 내려 하나님의 목적과 축복의 나무가 되게 할 것이다. 그분은 순간순간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계속해서 이루어 갈 것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더 많이 기도할수록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포함하고 있는 씨앗에 더 물을 많이 주어 자라게 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계속해서 성령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의 지시는 우리의 삶에서 더욱 간해져서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된다.
마귀는 우리가 이런 진리를 알고 달리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 한다. 마귀가 기도를 얼마나 두려워 하는지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이루기 위해 태어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 한가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기도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도록 성령께 허락하는 일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따라 살기 위해 성령님의 능력을 풀어 놓아야 하는지, 어떻게 풀어놓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지 아는가?
마지막 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말을 듣고 우리에게 예비된 상을 받기 위해서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것과 그 계획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나는 기도할 시간이 없는데요’ 라고 할 것이다.
예) ‘나는 직장인으로서 성공하면서 살아야 할 나의 삶이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많이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처지에 처한 것은 우리가 바로 그런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소명이 있다. 그 소명은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로 하라고 하신 것을 찾아서 이루는 일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성공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이다. 아직 기회가 있다. 왜냐하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게으른 육신으로 ‘잘 하였도다’ 라고 우리에게 말하게 하지 말라 그것은 불행한 삶의 모습인 것이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채널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로 스스로 영 안에 있게 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성령님과 직접 접촉하도록 우리의 영에게 통로를 열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방언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과 의사소통 하는 채널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성령으로 기도를 많이 하면 할 수록 그 채널과 더 익숙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이 의사소통 하는 네 가지 방법
첫 번째) 내적 증거를 통해
성령 안에서 평안은 우리로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준다. 평안의 흐름이 파괴될 때 우리가 잘 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거나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계시를 통해
우리의 영에 자신의 뜻을 전달하므로서 의사소통을 하신다.

세 번째)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영에 무언가를 마치 귀에 들리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누군가가 우리 바로 곁에서 말하는 것처럼 분명하게 들린다.

네 번째) 환상을 통해서다

세우는 과정
우리의 영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고전 14:4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세움”이란 단어는 거대하고 대단한 빌딩을 의미하는 ‘건축물’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영 안에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할 수 있는 집을 짓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로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하나님의 작업을 세우는 것이다.
기름부음이 어떤 사람을 통해 나타나기 전에 그런 기름부음이 나타날 수 있는 ‘세우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한다.
세움의 과정은 영적으로 충전 받아 강력한 기름부음으로 남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그 이상의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이 세움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참고 :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동안 우리가 말하는 것을 알아 듣지 못한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즉시 하나님과 신적인 의사소통에 들어가고 마귀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며 어떤 방해도 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방언기도를 증오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며 불안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 ) 어떤 한 사람의 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숨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병원으로 달려 가면서 그는 “내 누이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 그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라고 반복해서 고백했다. 그러나 그가 그런 고백을 할 때마다 무엇인가가 그의 감정을 너무나 크게 흔들어서 그의 전신을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난 후에 그녀가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 일로 그는 정신이 산란했다.
그런데 갑자기 영 분별의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셨다. 눈이 열리자 두 귀신을 볼 수 있었는데 한 귀신은 그의 왼쪽 어깨에 다른 귀신은 그의 오른쪽 어깨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가 “그녀가 죽지 않고 살 것이다”라고 그가 고백할 때마다 한 귀신이 그의 귀에 대고 다른 쪽에 있는 귀신에게 “그녀는 죽을 것이다! 그녀는 죽을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때 주님께서 그의 영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고백을 계속하거라.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라” 그래서 그는 한 번 더 고백을 한 후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두 귀신 중 한 귀신이 그 사람의 머리 뒤통수 쪽으로 다른 편의 귀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이 무어라고 하는 것 같아?”
다른 귀신이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는데 그런데 너도 나같이 그의 말이 불을 지피는 것 같으냐?”
“그럼” 다른 귀신이 대답했다. “우리가 그를 떠나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리고 귀신들은 그를 떠났다. 그 누이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방언은 우리의 가장 거룩한 믿음 위에 스스로를 세우는 것이다.
유다서 20-21절
롬 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우리가 말씀을 듣고 또 들어도 우리의 삶에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그 말씀이 우리의 영에 심겨지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생산하는 믿음을 풀어 놓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온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으나 대부분의 교회에서 사도행전의 역사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왜 그럴까?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모르는 무언가 빠져있는 요소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으로 기도함으로써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워야 한다고 유다가 말하고 있는 이유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계시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인내하면서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설령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데 필요한 믿음을 우리의 심령 안에 풀어 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믿음을 위해 싸우기
본물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마귀를 짓밟고 산을 움직이는 믿음을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그 방법은?
초대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몰래 교회에 침투해 들어가 믿음을 도둑질해 갔습니다. 즉 죽은 종교에 의해 저들의 믿음이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이 경건치 못한 자들을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로 비유했고 이 비유는 파도는 바다로부터 일어나서 잠깐 동안 거품을 내고(영광을 나타내고)바다로 사라진다.
이들을 또 “유리하는 별”에 비교했다. 이 말은 우리의 밤 하늘에 눈에 번쩍 뜨이는 찬란한 빛을 내다가 금방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런 별을 보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떠돌아다니는 별들도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진리의 밝은 빛으로 나타났다가 그들을 위해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린다.
또 “물 없는 구름”과 비교했다. 물은 성령의 모형을 의미한다. 가뭄 때 물 없는 구름은 비를 뿌릴 듯이 보이면서 지평선에 떠오른다. 머리 위로 지나가면서 그럴듯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필요한 비를 오도록 하는 데는 물이 없기 때문에 이런 구름은 아무런 힘이 없다. 이 물 없는 구름은 초대 교회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도둑질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이론을 사용해 믿음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도둑질 해 가는 것이다. 물 있는 구름은 설령 충만한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걷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믿음을 성령의 능력 안에서 걷을 수 있는가? 즉 우리 안에 성령님으로 능력으로 역사하시도록 풀어 들일 수 있는가?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써 이다.
우리는 감각의 지배를 받으며(보고 듣고 느끼는 삶) 육신이 지배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다. 성령의 사람들은 이 영역을 넘어 초자연적인 영역 안에서 걷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세우고 감각의 지배를 받는 삶 위에 우리 자신을 세울 수 있는가? 성령으로 기도함으로써 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유다서 19-20절에 묘사한 것처럼 분쟁과 감각을 만족시키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사랑으로 건너가게 하는 다리와 같다.

능력이 올 때까지 기도하라!
막 11:23-24을 보면 산을 향해 말을 할 때 지금 우리의 삶과 산을 움직이는 믿음의 삶 사이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한 가지 그 능력이 올 때까지 우리가 기도할 수 있겠는가 이다. 즉 우리의 사업에, 우리의 사역에, 우리의 설교에, 능력이 나타날 때까지 이다. 그 열쇠는 무엇인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왜 우리가 세움을 받는가?
고전 14:4절과 유다서 19절을 통해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세움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왜 우리가 세움을 받으며? 우리가 세시간 혹은 네 시간 셩령 안에서 기도할 때 왜 그것이 우리를 세우게 되는지?
방언은 우리를 세워주고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자격을 갖추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기도실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그들 생애에 대한, 또는 어떤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대신하려는데 시간을 대부분 보내고 있다. 예언이 교회의 덕을 세우고 방언이 개인의 덕을 세우게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뜻--)계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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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목회독서교육 성찬식에 대하여 이복술 2005-05-12 5489
718 목회독서교육 예배에 필요없는 예배실의 물품들 이복술 2005-05-12 3434
717 목회독서교육 예배당의 구조와 강단 사용법 이복술 2005-05-12 3748
716 목회독서교육 예배형태의 변천 이복술 2005-05-12 3220
715 경포호수가에서 네 손가락의 기적 피러한 2005-05-08 2957
714 수필칼럼사설 세습목회보다 더 슬픈 일 puco 2005-05-06 3617
713 경포호수가에서 인생 디자인 피러한 2005-05-03 3137
712 인기감동기타 예수님의 리더십 57가지 비밀 이상일 2005-05-02 3228
711 영성묵상훈련 구원받은 영혼에 관한 195 가지 사실 다람지 2005-05-02 3002
710 사회역사경제 신약성서는 돈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오덕호 2005-05-02 3233
709 경포호수가에서 가슴은 타 들어가고 피러한 2005-04-26 3085
708 수필칼럼사설 `회개'라는 어휘마저 죽여버릴 것인가? 無然 2005-04-24 2958
707 수필칼럼사설 내게 넘치는 감격 無然 2005-04-24 3094
706 수필칼럼사설 나의 부활이 예수 부활 無然 2005-04-24 3193
705 수필칼럼사설 세상아, 너희가 예수를 아느냐? 無然 2005-04-24 3007
704 수필칼럼사설 하나님의 영토는 어디까지냐? 無然 2005-04-24 2712
703 수필칼럼사설 셈족의 理想, 아브라함의 꿈 無然 2005-04-24 3406
702 수필칼럼사설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라 無然 2005-04-24 3048
701 영성묵상훈련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 굳뉴스 2005-04-22 4549
700 경포호수가에서 자기 혁신은 여기서부터 피러한 2005-04-19 2708
699 경포호수가에서 제 멋대로 부는 바람 피러한 2005-04-12 2905
698 영성묵상훈련 탕자 강지국 2005-04-11 3437
697 정치건강취미 젊게 사는 비법 78가지 임호준기자 2005-04-08 3375
696 영성묵상훈련 23가지 영적 분별법 릭 조이너 2005-04-08 4406
695 경포호수가에서 가장 우울한 조짐 피러한 2005-04-04 2639
694 치유영적전쟁 귀신아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마라. 이재익 2005-04-03 3074
693 치유영적전쟁 성령세례를 어떻게 나누는가? 이재익 2005-04-03 3275
» 치유영적전쟁 방언2 이재익 2005-04-03 3163
691 치유영적전쟁 방언1 이재익 2005-04-03 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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