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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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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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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시리아·요르단을 살피고 왔다. 베이루트에 도착하니 전 수상 하리리의 국장기간, 애도의 물결이 온 도시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마침 그날이 장례식이 있던 날, 다음날 아침 시내에 나갔다. 폭탄테러 현장 가까이 서 보니 매우 강력한 폭탄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방 100m 이상의 거리인데도 빌딩들은 파손되고 창유리들도 박살이 났었다.
하리리 추모가 진행되는 사실상 장례식 연속인 날, 그의 무덤과 그의 참모와 비서들 8명의 무덤 가까이 가서 추모의 뜻을 표했다.
레바논은 이스라엘을 중심하여 시리아 요르단과 함께 운명적 관계에 있다. 아브라함의 꿈은 구체적으로 이들 4개 나라 모두를 이스라엘 국가 기반으로 삼는 데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세운다 하신 나라가 이집트 접경 네게브 사막에서 에돔, 모압, 암만의 터전 요르단과 시리아와 이라크 땅 일부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다투고 있는 그곳들이 모두 약속의 땅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꿈 성취는 아직도 먼 앞날에 있다. 셈족의 이상(理想)을 한 몸에 안고 끝끝내 이루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꿈은 끝끝내 메시아 예수를 불렀으나 유대인은 좌로 비껴가고 이슬람은 우로 떠났다. 저들이 기독교 좌우를 담당하여 전체인구 절반을 약간 웃도는 31억명 이들 모두를 셈족이라 하는데 저들의 생각이 세조각으로 나뉘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베이루트에서 들은 말이다. 어느 여자 청년이 했다는 말 `내전(內戰) 15년에 미치광이 되지 않을 자 있느냐, 나는 이미 미쳤다'고 했다는 것.
그럴 것이다. 경험자가 아니면 그 고통을 모른다. 또, 휴전 분위기를 유지하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긴장을 부르고 있다. 이슬람 전사들은 곳곳에서 세계를 편치 못하게 하고 있다. 마치 지금이 이슬람 혁명으로 구라파와 미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듯이 서두른다.
서두르지 마라.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 세상 모두를 통째로 주시지 않았다. 나누어 주셨다. 서로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너에서 계심을 깨닫기까지 인간은 예수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예수를 만나지 못하는 날까지 아브라함의 꿈은 꿈으로 떠돌수 밖에 없으리라.
`나의 너에서'라는 말 뜻을 알 수 있는가? 낯설다? 그러면 `나의 너에게서'는 어떤가? 그래도 아리송인가? 그럼, 나는 너를 통하여 오직 너의 삶 모두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면 뜻이 접근했을까?
그렇다. 인간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였을 때 신인(神人), 또는 영의 사람이라 하는데 또 다른 표현으로는 두 사람이 하나의 인격체로 드러날 수도 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어 임마누엘을 이루는데 사람과 사람이 하나를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다시 아브라함의 꿈을 말한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아버지, 이슬람의 아버지, 기독교의 아버지도 되는 데 그 자식들이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여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꼴을 보고 살아야 한다. 어허, 모진 게 인생이라더니 아브라함의 인내는 질기기도 하구나. 성도여 셈족의 이상, 또 아브의 꿈 따라 우리도 꿈의 성취 곧 주 예수의 영광을 쟁취할 때까지 인내로서 함께 가자. 〈無然〉
홈페이지: http://www.deulsoritimes.co.kr 2005/3/2(수)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38
하리리 추모가 진행되는 사실상 장례식 연속인 날, 그의 무덤과 그의 참모와 비서들 8명의 무덤 가까이 가서 추모의 뜻을 표했다.
레바논은 이스라엘을 중심하여 시리아 요르단과 함께 운명적 관계에 있다. 아브라함의 꿈은 구체적으로 이들 4개 나라 모두를 이스라엘 국가 기반으로 삼는 데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세운다 하신 나라가 이집트 접경 네게브 사막에서 에돔, 모압, 암만의 터전 요르단과 시리아와 이라크 땅 일부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다투고 있는 그곳들이 모두 약속의 땅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꿈 성취는 아직도 먼 앞날에 있다. 셈족의 이상(理想)을 한 몸에 안고 끝끝내 이루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꿈은 끝끝내 메시아 예수를 불렀으나 유대인은 좌로 비껴가고 이슬람은 우로 떠났다. 저들이 기독교 좌우를 담당하여 전체인구 절반을 약간 웃도는 31억명 이들 모두를 셈족이라 하는데 저들의 생각이 세조각으로 나뉘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베이루트에서 들은 말이다. 어느 여자 청년이 했다는 말 `내전(內戰) 15년에 미치광이 되지 않을 자 있느냐, 나는 이미 미쳤다'고 했다는 것.
그럴 것이다. 경험자가 아니면 그 고통을 모른다. 또, 휴전 분위기를 유지하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긴장을 부르고 있다. 이슬람 전사들은 곳곳에서 세계를 편치 못하게 하고 있다. 마치 지금이 이슬람 혁명으로 구라파와 미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듯이 서두른다.
서두르지 마라.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 세상 모두를 통째로 주시지 않았다. 나누어 주셨다. 서로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너에서 계심을 깨닫기까지 인간은 예수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예수를 만나지 못하는 날까지 아브라함의 꿈은 꿈으로 떠돌수 밖에 없으리라.
`나의 너에서'라는 말 뜻을 알 수 있는가? 낯설다? 그러면 `나의 너에게서'는 어떤가? 그래도 아리송인가? 그럼, 나는 너를 통하여 오직 너의 삶 모두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면 뜻이 접근했을까?
그렇다. 인간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였을 때 신인(神人), 또는 영의 사람이라 하는데 또 다른 표현으로는 두 사람이 하나의 인격체로 드러날 수도 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어 임마누엘을 이루는데 사람과 사람이 하나를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다시 아브라함의 꿈을 말한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아버지, 이슬람의 아버지, 기독교의 아버지도 되는 데 그 자식들이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여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꼴을 보고 살아야 한다. 어허, 모진 게 인생이라더니 아브라함의 인내는 질기기도 하구나. 성도여 셈족의 이상, 또 아브의 꿈 따라 우리도 꿈의 성취 곧 주 예수의 영광을 쟁취할 때까지 인내로서 함께 가자. 〈無然〉
홈페이지: http://www.deulsoritimes.co.kr 2005/3/2(수)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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