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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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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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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스스로가 품위를 잃었던 날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 세상 어느 제국, 어느 종교와 철학이 예수를 감히 폄하 할 수 있으랴.
예수는 말이다, 그 인생 모두를 내던져 사람 사랑하였으며, 그가 또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을 하늘같은 품위로 살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그 뜻을 이루었다.
한 때, 이 민족(야만)들의 극성, 또 마음 아픈 시대는 십자군 때이기는 하지만 그때 역시 아라비아의 이슬람이 기독교 영토를 침탈해 오는 과정에서의 발단이었음을 역사는 알고 있다.
요즘 〈다빈치 코드〉라는 촌스러운 작품, 또 며칠 전에는 `최후의 만찬' 패러디… 광고 포스터를 냈다가 법원 판결로 `광고금지'된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 기독교가 크고 기댈만 하기에 응석처럼 매달리는 것 같으나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 패러디 화면을 보니까 장난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함께 된다. 상업주의가 만연했고, 음란과 방종이 극치를 향해 달리는 현대의 어두운 곳 사람들의 만용 또한 안쓰럽다 하면서도 저들을 한번쯤 꾸짖어 본다.
모처럼 기독교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쪽 글을 쓰지만 반성 또한 없지 않다. 금주가 교회 절기로 고난 주간이다. 이 주간의 행사에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데 하필이면 이때에 이따위 그림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분노를 느낀다. 그래서 너희가 과연 예수를 아느냐, 또 기독교 신자의 깊은 마음을 아느냐고 묻고 있다.
어느 곳에, 얼마 쯤의 사람들 가운데 저러면 안되는데… 하는 조바심을 일게 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으나 하나님이 없다 하면서 마치 내가 하나님이라는 방식으로 사는 이들이 기독교에게 할 말이 있겠는가.
그래도 역사의 앞날은 기독교가 연다. 요즘도 종교다원이라 하면서 동방의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실제로 기독교의 취약부분을 보완해 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기독교가 알고 있기로는 생각이 하늘에 닿아 있는 종교는 예수의 세계에 있다.
헬레니즘의 극성기에 그 바다에 함몰되지 않고 살아 남은 자들의 세계가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약하지가 않다. 그러나 고난절에 기독교에게도 한 번 묻고 싶다. 너희가 예수를 아느냐?
오늘의 고난절은 예수행위의 기념절이 아니고 신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몸짓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선택해야 하는 절기이다.
내게 예수의 부활이 현실화 되려거든 그 고난을 내가 체휼해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존엄을 보존하려거든 내 몸에 십자가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내 옆구리에 창이 박히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야 한다. 머리에 싸구려 명예의 관을 얹지 말고 예수가 <&06575>던 그 가시관을 얹어야 한다.
〈다빈치 코드〉 덕분에 망신, 최후의 만찬 패러디, 그리고 갖가지 욕설을 받으면서 오욕의 삶을 사는 크리스찬들은 먼저 예수의 십자가로 옷 입고, 그분이 서신 골고다같은 곳에 발가벗고 서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더 큰 망신을 당하기 전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달려가야 한다. 〈無然〉
홈페이지: http://www.deulsoritimes.co.kr 2005/3/16(수)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40
예수는 말이다, 그 인생 모두를 내던져 사람 사랑하였으며, 그가 또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을 하늘같은 품위로 살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그 뜻을 이루었다.
한 때, 이 민족(야만)들의 극성, 또 마음 아픈 시대는 십자군 때이기는 하지만 그때 역시 아라비아의 이슬람이 기독교 영토를 침탈해 오는 과정에서의 발단이었음을 역사는 알고 있다.
요즘 〈다빈치 코드〉라는 촌스러운 작품, 또 며칠 전에는 `최후의 만찬' 패러디… 광고 포스터를 냈다가 법원 판결로 `광고금지'된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 기독교가 크고 기댈만 하기에 응석처럼 매달리는 것 같으나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 패러디 화면을 보니까 장난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함께 된다. 상업주의가 만연했고, 음란과 방종이 극치를 향해 달리는 현대의 어두운 곳 사람들의 만용 또한 안쓰럽다 하면서도 저들을 한번쯤 꾸짖어 본다.
모처럼 기독교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쪽 글을 쓰지만 반성 또한 없지 않다. 금주가 교회 절기로 고난 주간이다. 이 주간의 행사에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데 하필이면 이때에 이따위 그림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분노를 느낀다. 그래서 너희가 과연 예수를 아느냐, 또 기독교 신자의 깊은 마음을 아느냐고 묻고 있다.
어느 곳에, 얼마 쯤의 사람들 가운데 저러면 안되는데… 하는 조바심을 일게 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으나 하나님이 없다 하면서 마치 내가 하나님이라는 방식으로 사는 이들이 기독교에게 할 말이 있겠는가.
그래도 역사의 앞날은 기독교가 연다. 요즘도 종교다원이라 하면서 동방의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실제로 기독교의 취약부분을 보완해 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기독교가 알고 있기로는 생각이 하늘에 닿아 있는 종교는 예수의 세계에 있다.
헬레니즘의 극성기에 그 바다에 함몰되지 않고 살아 남은 자들의 세계가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약하지가 않다. 그러나 고난절에 기독교에게도 한 번 묻고 싶다. 너희가 예수를 아느냐?
오늘의 고난절은 예수행위의 기념절이 아니고 신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몸짓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선택해야 하는 절기이다.
내게 예수의 부활이 현실화 되려거든 그 고난을 내가 체휼해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존엄을 보존하려거든 내 몸에 십자가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내 옆구리에 창이 박히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야 한다. 머리에 싸구려 명예의 관을 얹지 말고 예수가 <&06575>던 그 가시관을 얹어야 한다.
〈다빈치 코드〉 덕분에 망신, 최후의 만찬 패러디, 그리고 갖가지 욕설을 받으면서 오욕의 삶을 사는 크리스찬들은 먼저 예수의 십자가로 옷 입고, 그분이 서신 골고다같은 곳에 발가벗고 서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더 큰 망신을 당하기 전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달려가야 한다. 〈無然〉
홈페이지: http://www.deulsoritimes.co.kr 2005/3/16(수)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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