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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는 돈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사회역사경제 오덕호............... 조회 수 3233 추천 수 0 2005.05.02 21: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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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오 덕 호 (호남신학대학교 교수 / 신약학) -

시작하는 말

구약성서가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만 믿고 섬기라는 것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서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 섬기는 것을 엄격하게 금한다. 그런데 신약성서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교훈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다만 신약성서가 금하는 다른 신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위협하던 바알이나 아세라 같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신 섬기지 말라는 말씀처럼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 신약성서에서 섬기지 말라고 금하는 다른 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재물"(맘몬)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신약성서의 다른 부분들도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함으로써 물질이 우상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엡 5:5; 골 3:5).

왜 예수께서는 당대인들에게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은 하지 않고 재물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당대인들에게 가장 심각한 우상이 재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한국사람인 우리들에게 가장 심각한 우상은 무엇일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돈이 가장 힘이 있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에는 경제위기를 겪으며 경제회복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재물은 우리에게도 가장 힘있고 무서운 우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을 실행하는 중요한 도구도 재물이다. 요한일서 3장 17절은 이렇게 말한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이 모든 것을 볼 때 신자들이 재물에 대해 바른 자세를 가지고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신약성서가 가르쳐주는 돈의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서 돈은 재물이 되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돈"이란 말과 "재물"이란 말은 혼용될 것이다. 우리는 먼저 신약성서가 말하는 돈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을 살펴본 후, 돈에 대한 적절한 자세와 사용 방법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돈의 긍정적인 모습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므로 그 자체는 악하지 않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받아서 잘 사용하면 된다(딤전 4:4). 물론 재물도 그 자체는 악하지 않다. 그래서 신약성서에는 돈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돈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맡겨주신 것이다. 달란트 비유(마 25:14-30)와 므나 비유(눅 19:11-27)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물론 재물 외에 시간이나 재능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지만 재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임에 틀림없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셨다는 것은 맡은 사람에게 축복이 된다. 예를 들어 하나님으로부터 재능과 건강을 부여받은 것은 축복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맡은 것도 축복이다. 많은 돈을 맡아도 그것은 결코 화나 저주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축복이다. 단지 돈 때문에 시험에 들어 신앙생활에 방해를 받을 때 화가 되는 것이다.

돈은 사랑 실행의 도구가 된다.

우리의 올바른 신앙생활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데, 사랑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며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어야 한다(요일 3:17-18; 약 2:15-16).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행하며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겠는가? 그 사랑 행위의 중요한 도구가 돈인 것이다. 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도 쓰인다. 직접적으로 드리는 헌금은 물론이고 예배나 교회의 모임에 드는 경비도 하나님 사랑을 위해 쓰이는 돈이다(막 12:41-44; 눅 8:1-3 참조).

또한 돈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이웃 사랑을 위해서이다. 이웃 사랑을 가르쳐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물질로 도움으로써 재물이 이웃 사랑에 유용하게 쓰임을 분명히 보여준다(눅 10:29-37). 누가복음 16장 9절도 세상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함으로써 돈으로 이웃을 돕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재물이 이웃 사랑의 중요한 도구로 쓰이는 예는 예루살렘의 초대교회가 보여준 유무상통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행 2:42-47; 4:32-35). 그리고 구제에 대한 많은 교훈들도 돈이 이웃 사랑의 도구임을 반증한다(눅 12:33; 18:22).

돈의 부정적인 모습

재물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재물을 신뢰하거나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재물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데 방해가 되어 신앙생활에 시험거리가 된다. 이것이 재물의 부정적인 모습이다.

돈은 시험거리가 된다

돈이 시험거리가 된다는 것은 신약성서 여러 곳에 나온다. 누가복음 12장 13-15절을 보면 한 사람이 자기 유산을 나눠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예수께 청하나 예수께서는 거절하신다. 그것은 그 요청이 재물에 대한 탐심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재물이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는 시험거리임을 보여준다. 탕자의 비유(눅 15:11-32)에서도 가정 불화의 원인이 작은아들의 물질적인 탐욕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 16:19-31)는 재물로 이웃을 돕지 못하고 자기만을 위해 쓰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16:25). 이렇게 재물은 사람이 영생을 얻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재물이 영생의 길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예수께서 영생의 길을 찾아온 부자에게 모든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를 좇으라고 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막 10:17-22).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에서도 돈이 심각한 시험거리로 나타난다. 성령의 역사 속에 이루어진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4장까지 외부 박해는 있어도 내부적으로는 별 문제 없이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5장에서 처음으로 내부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돈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 판 값의 일부를 헌금하면서 전부를 헌금하는 체 하였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심각한 문제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부를 낸 것으로 보이고 싶으면서도 일부만 낸 것은 역시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 헌금문제가 해결된 후 다시 교회는 부흥되었다. 그러나 6장에 들어가서 또 다시 내부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도 재물과 관련된 것이었다. 헬라파 과부가 구제에 빠지므로 헬라파 사람들이 불평을 한 것이다. 비록 이것이 고의로 생긴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재물 분배 문제가 교회의 불화를 야기한 것이다. 이것도 돈이 얼마나 민감한 시험거리인지를 잘 보여준다.

디모데전서 6장 9절도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에 든다고 한다. 돈이 시험거리가 되어 신앙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자라지 못하는 것을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데서도 명백하다(마 13:22). 이 모든 것을 볼 때 돈은 신앙생활에 심각한 시험거리가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돈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돈을 의지한다. 그리고 돈을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지 못한다. 이것은 결국 올바른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선교하러 보내실 때 돈을 비롯한 여유 분의 물질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막 6:8). 또한 부자에게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예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이나(막 10:17-22)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른 것을 복음서들이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마 19:27; 막 10:28; 눅 5:1-11; 14:33; 18:28 등).

이런 내용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가르치신 것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마 6:24; 눅 16:13). 재물은 하나님 대신 섬기고 싶을 정도의 신뢰감과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재물을 믿고 섬기게 되면 돈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돈은 신앙생활에 큰 방해가 되는 것이다.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돈이 많은 것을 해준다고 생각하여 돈을 의지하면 돈을 사랑하게 된다. 돈을 사랑하면 돈을 위해 다른 것을 버리게 된다. 이웃도 버리고 심지어 하나님도 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돈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한다. 히브리서 13장 5절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며, 디모데후서 3장 2절은 말세에 사람들이 돈을 사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는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딤전 3:3). 그리고 바울도 자신이 올바른 교회 지도자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않았다고 한다(행 20:33).

이와 같이 재물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니지만 재물을 사랑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심각한 방해가 된다. 신자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지 재물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재물을 버릴 수 있어야 하며 재물을 위해 하나님과 이웃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그러면 이렇게 그 자체로서는 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축복이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도구이면서도 시험거리가 되기 쉬운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이제 돈에 대한 바른 자세와 바른 관리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자.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돈 때문에 생기는 심각한 문제는 두 가지이다. 돈을 신뢰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에 대해 바른 자세를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돈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돈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해주거나 늘려주지 못한다(눅 12:15). 더욱이 영생으로는 결코 인도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돈을 우리의 계획대로 소유할 수도 없다(눅 12:21).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우리 삶이 유지되며 가치 있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신다. 더욱이 하나님만이 우리의 재물도 주관하신다(약 4:13-15).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우리가 돈을 소유할 수도 없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돈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돈이 아무리 유용해도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위해 사용해야 할 도구이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 이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돈을 사용해야 한다면 하나님 뜻을 어기며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 뜻을 따르기 위해 필요하다면 돈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에베소의 마술하는 자들이 복음을 듣고 은 오만이나 되는 값어치의 마술책들을 불사른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행 19:19).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를 좇으라고 하신 것도 이것을 보여준다(눅 14:33). 그리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위해 돈을 사용하지 돈을 벌기 위해 이웃을 착취하거나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돈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위해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우리 소유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에 맞게 잘 사용하라고 맡겨주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달란트 비유(마 25:14-30)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눅 16:1-8)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돈이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도록 맡겨진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정당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돈을 벌어야 한다.

돈에 대한 바른 자세는 돈을 의지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으로 보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돈을 사랑 실행의 도구로 사용하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먼저 최선을 다해 돈을 벌어야 한다. 농산물의 소출도 늘리고 산업제품이나 서비스의 생산도 늘려야 한다. 이것이 돈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이다. 신약성서에서 게으르지 말고 성실히 일하라는 가르침들이 이것을 보여준다(마 25:14-30; 눅 19: 11-27; 롬 12:11; 히 6:9-12). 이것이 신자들의 사명이므로 신자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최대한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삭개오 이야기와 므나 비유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누가복음 19장을 보면 먼저 삭개오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므나 비유가 나온다. 그런데 삭개오 이야기에서는 삭개오가 회개한 후에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한다. 이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므나 비유에서 많이 번 종이 만일 악한 방법으로 벌었다면(일종의 토색이다) 네 배로 갚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그 종은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은 것이 된다. 이와 같이 돈을 벌 때는 반드시 옳은 방법으로 벌어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돈을 써야 한다.

정당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돈을 벌어도 그것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큰 낭패를 본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부자는 정당한 방법으로 많은 소출을 얻었으나 그것을 오직 자기만을 위해 쓰므로 어리석은 자로 불린다(눅 12:16-21).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나사로를 돕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재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눅 16:25).

이렇게 많이 벌어서 어려운 이웃을 많이 도와야 한다는 것은 달란트 비유(마 25:14-30)와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31-46)가 잘 보여준다. 달란트 비유의 교훈대로 많이 생산한 사람도 어려운 이웃을 돕지 못하면 양과 염소 비유의 왼쪽 사람과 같게 되어 지옥으로 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는 서로 보완해준다. 많이 생산하는 것은 많이 돕기 위해서이고 많이 돕기 위해서는 많이 생산해야 한다. 신자들은 많이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돈을 많이 벌어서 자신이 사치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뜻도 있다. 자기 재물로 사치하게 사는 것은 이웃 사랑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며 이런 삶은 구원에서 거리가 먼 삶이다(눅 16:25; 약 5:1-3).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웃을 위해 재물을 쓸 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권력이나 돈이 있는 사람에게 돈을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는 돈은 무익하다고 가르쳐주신다(눅 14:12-14). 오직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만이 참된 이웃 사랑이다(마 25:31-46).

맺는 말

돈은 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축복이다. 그러나 돈은 사람에게 아주 유용하여 사람들이 쉽게 의지하거나 사랑하게 된다. 돈을 의지하거나 사랑하게 되면 사람은 시험에 들게 되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그리하여 축복인 돈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시험거리도 되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돈은 가장 무서운 우상으로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에 대해 바른 자세를 가지고 돈을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돈에 대한 바른 자세는 돈을 의지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물론 돈까지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자세로 살며 돈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으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할 도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돈을 바르게 관리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자세가 있다. 하나는 올바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버는 것이다. 이것은 최선의 생산을 포함한다.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생산해야 하고, 생산 중에 환경을 해치지 말아야 하며, 합법적인 방법으로 재화를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것으로 어려운 이웃을 최대한 돕는 것이다. 자기가 번 돈으로 자신만을 위해 사치하게 사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삶이 아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어려운 이웃의 유익을 위해 이웃 사랑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재물을 사용할 때 어려운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또한 복음이 더 널리 전파되어 많은 사람이 영육간에 구원을 받게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구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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