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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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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정직회복운동 (8) - 상실된 교육목표 회복
양심 없는 교육 五賊
최근 교육계가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특히 수학능력 시험이 끝난 후 핸드폰을 이용한 부정시험과 대리시험, 대학관리자까지 가세한 시험 답안지를 유출 등 존경받아야 하는 ‘교육’이라는 단어의 신뢰는 이미 떨어진지 오래다. 게다가 자녀의 사교육을 위해 학부모의 ‘아르바이트’는 유흥업으로까지 이르고 학교 선생님의 성상납파문까지 일고 있다.
일제시대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은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이완용이었다. 시인 김지하는 지난 1970년 「五賊」을 발표해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다섯 명의 도둑이라고 비유했다. 그런데 교육계 안에서도 이 오적이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어 교육을 바로잡기란 요원한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 ‘오적’의 정체는 무엇이며 더 이상 교육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第 一賊 ‘학교’
‘훈장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만큼 예로부터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은 어느 것도 따를 수 없었다. 그만큼 배우는 것이란 신성한 행위를 하는 것이었고 교육자란 의례 인격과 기품을 지닌 사람으로 인식됐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로 신학문이 들어오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제시대로 부터의 해방 이후 신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 된 학교에서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배워야 한다!”는 구호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교육은 애국적인 사명감으로 기둥의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6.25 이후 또는 근대화로 가는 과정에서도 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데는 이광수의 소설 「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학교의 역할은 단지 ‘지식’만 가르치는 곳은 아니었다. 농촌계몽이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학교는 ‘학벌’을 얻기 위한 필요조건도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7일 서울시 교육청은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3월 현재 서울시내 초등학교 4~6학년 전체 36만명 중 3.9%인 1만4421명이 한글 읽기나 쓰기, 덧셈, 뺄셈 등 기초학습이 부진한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이혼율 증가 등 가족 붕괴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누적된 학습 결손을 보충 받지 못하거나 IMF이후 사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선택교육이 아닌 ‘의무교육’이 됐지만 정부의 교육기관을 통해 한글을 비롯한 기초학습을 익히지 못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의 날’ 조례 등으로 빗어진 헤프닝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한국교원노동조합 등 3개 교원단체들이 벌인다는 ‘독도 특별수업’이다. 기존의 역사교과 시간에 심어주지 못한 ‘역사의식’을 이벤트 식으로 심어준다는 발상이 ‘교육’을 맡고 있는 단체에서 나온 것이다. 교육은 학교가 담당한다는 인식은 이미 떠나버린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생님에 대한 존경도 물건너가 버렸다.
지난해 유니세프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어른과 스승을 존경하는 정도를 조사 발표한 내용을 보면 동남아 17개국 중 우리나라가 꼴찌라고 보도 돼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참교육을 위해 교원단체가 생기기도 했지만 내신성적 조작을 위해 학부모의 성상납을 요구하는 행위에 대한 진상조사 요구에 ‘명예훼손’으로 대응하는 형편이다.
이러다보니 학교안에서 ‘인성’교육은 기대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학교 내 폭력조직인 ‘일진회’를 일망타진하겠다는 포부를 나타내고는 있지만 부도덕한 교사들과 오로지 ‘대학’을 목적으로 하는 학습 중심의 학교는 사회의 기둥이 되는 인재를 키워내는 반쪽의 역할밖에 못하고 있는 반면 폭력을 만들어내는 온상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第 二賊 ‘부모’
부모의 삐뚤어진 욕심이 교육을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다. 학벌 위주의 사회가 교육에 대한 욕심을 갖게 한다는 핑계를 대기도 하지만 가정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가정교육’ 부재는 심각한 지경이다. ‘돈’이면 모든지 다 된다는 학부모의 잘못된 교육관은 자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길러지는 인성교육은 외면한 채 학원으로 자녀들을 내몰고 있다. 성적제일주의 교육관이 자기중심적인 아이로 자라게 하면서 대인활동에서 얻어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오히려 잃게 만들고 있다.
부모는 임신을 하게 되면 태아를 위해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좋은 마음을 갖고 좋은 말을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태교를 위해 수학문제를 풀거나 영어학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는 없다. 물론 태아의 지능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찾아 태교를 하는 부모도 있지만 생활태도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뱃속에서부터의 교육은 그야말로 욕심 없고 단순하고 당연한 원칙을 따르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교육의 현장에서는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우리나라의 고위직에 오르기 원하고 상위계층을 차지하기 원하면서도 인성교육은 도외시한 채 지식교육에만 치중하고 있다. 학원과 고액과외를 위해 셋방을 살더라도 강남으로 학군을 옮기는 것 뿐만 아니라 성적을 위해서는 부모님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일방적인 부모애를 발휘하고 있다.
얼마 전 내신성적을 위해 학부모의 성상납이 이뤄졌다는 보도는 그래서 더욱더 충격을 던져줬다.
‘올바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의 역할은 외면된 채 학력 위주의 교육이 가지고 온 결과는 천륜을 저버리는 범죄로 나타난다.
벌써 10년이 된 박한상 부모 살해 사건. 인간존중의 품성을 키울 수 있는 곳은 가정이고 부모지만 아들에게 사랑은커녕 관심도 없다고 생각한 박한상군은 유산을 노려 부모를 살해했다. 가정교육의 부재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낳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근본대책인 ‘가정’의 중요성은 사건이 날 때만 유행처럼 언급될 뿐 가정교육을 살리기 위한 진지한 고민은 지속되지 않고 있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눌러야 한다는 병리적인 피해의식,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배우지 못해 발생하는 유영철 살해 사건, 카드 빚으로 비롯된 끊이지 않는 존속 살해 사건, 청소년 성매매 사건 등은 정상적인 가정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건들이다.
第 三賊 ‘사교육’
공교육의 불신이 사교육 시장을 14조원대로 확대시킨 것은 새삼 들먹일 일이 아니다. 예전에야 사교육은 특성을 키우는 의미의 사교육이었지만 ‘출세’를 인생 최고의 목표로 만들면서 사교육만이 진정한 교육dls것 마냥 자리를 잡았다.
지난 15일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OECD 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교육분야인 교육비 비중면에서 1위를 차지했다.
GDP 대비 공교육비 비중은 4.8%로 17위에 그쳤지만 사교육비 비중은 3.4%로 1위를 차지했고 전체 교육비 비중도 8.2%에 달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고교 교사 대다수는 학생들의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보고는 흥미 있는 결과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중·고등학교 사회·경제과목을 담당하는 교사 2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지난 16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의 경제에 대한 이해도 및 지식수준’을 묻는 질문에 응답 교사의 86.7%가 ‘부족(61.9%)’ 또는 ‘매우 부족(24.8%)’이라고 답했다. 반면 ‘적절(11.1%)’ 또는 ‘충분(2.2%)’ ‘매우 충분(0.0%)’으로 응답한 교사들은 1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 스스로도 경제지식의 부족을 느끼고 있는데 전체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57.1%)이 대학에서 정규과정으로 배운 경제지식은 학생들 지도에 ‘부족하다(50.9%)’, ‘매우 부족하다(6.2%)’로 답해 ‘적절하다(23.4%)’ ‘충분하다(17.7%)’ ‘매우 충분하다(1.8%)’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결국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의 태생을 예고하고 있는 형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중요과목이라고 평가되는 국어와 영어, 수학 성적을 올리기 위해 사교육 시장을 떠돌고 있는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 보다 더 좋은 학벌과 교수능력이 뛰어난 학원을 찾아 돈을 아끼지 않는 상황이 됐다. 대학입시 원서를 쓰기 위한 상담 마저도 종합입시학원의 전문 상담원의 말을 더 믿는 형편이 돼 버렸다.
이 때문에 강남의 학부모는 자녀의 사교육비 충당을 위해 건전하지 않은 노래방 도우미까지 한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바로 사교육의 현주소인 것이다. 그런데 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과연 높아졌는가 하는 물음에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배운 것을 스스로 공부해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공부의 기본법칙도 지켜지지 않는 비효율적인 사교육 집중이 비대해진 사교육시장과 반비례해 생각하는 능력은 점점 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망국적인 사교육비 상승을 잡기 위해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지난해 2월17일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하고 대책의 하나로 EBS 수능방송과 인터넷 강의 등을 실시해 수능강의 시청 가구의 월 사교육비가 10만6천원 줄어드는 등 많은 성과가 나타났다고 자체 평가했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런 대책이 학교교육의 내실화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공교육의 부실화를 초래했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사교육비의 감소 이유로 ‘EBS 수능강의의 효과’를 들 수도 있지만 27.5%는 ‘경기 침체에 따른 가계소득 감소’를 들기도 했다.
第 四賊 ‘제도’
교육을 망친 또 다른 적은 바로 제도다. ‘교육’이라는 신성한 의미를 변질시킨 교육제도는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잦은 교체로 지조 있는 교육제도를 바랄 수 없는 환경이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은 총 47명.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교육정책과는 상관없이 인물이 바뀌었고 대학입학시험과 관련돼 난이도 실패 혹은 입시부정 의혹, 윤리·도덕적 검증 미비 등으로 교체돼 인사와 관련한 몸살을 앓아왔다. 그런지경이라 장기적이고 일관된 교육정책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비상계엄 때문에 최단명한 제 9대 윤택중 교육부장관을 제외한 제 41대 교육부장관은 자녀의 군면제 특혜의혹으로 25일로 임기를 마쳐야했다. 이와 별도로 2000년 이후 일곱 번의 교육부 수장이 바뀌었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으로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부총리를 겸하게됐지만 교육정책은 여전히 신뢰할 수 없는 정책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교육과 관련된 제도가 ‘교육’의 본질을 찾기 보다는 대학입시제도를 중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신념’없는 교육정책으로 학생들은 자주 바뀌는 입시제도에 끌려다니며 ‘성적’을 위한 공부에 치중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학문의 기초가 부족하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대학교육마저 기업체가 원하는 인재를 만들어야 하는 ‘직업 교육장’으로 인식이 바뀌면서 기초학문은 천대를 받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이공계 기피현상은 몇 년 동안 지속돼 왔고 유능한 인재는 결국 해외로 빠져나가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학교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땜질식 처방에만 그치고 있다. 최근 폭력이 판치는 학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내 놓은 고육지책(苦肉之策)은 학교폭력 신고를 많이 하는 학교와 학교장, 교사에게 표창 등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 이에 따라 각 학교는 신고율을 올리기에 안간힘을 쓸 것이고 기왕에 무너져버린 학생과 교사의 신뢰는 더욱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제도 속에 인간미는 없고 최대한 부작용을 줄이는 ‘입시’제도에만 집중하고 있는 현실이다.
第 五賊 ‘교회’
이런 교육부재 속에서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교회 안에서 조차 교육의 본질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하나님 말씀의 절대성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신앙양심을 가르치는 교회가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이 사회가 이렇게 썩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은 어제 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교회 교육조차 성적을 중심으로 진행 돼 고3을 위한 특별 기도회는 이제 특별한 것이 되지 않았다. 모든 학생들이 다 중요한 것은 당연한데 유독 고3을 위해, 그것도 특별히 우리 교회의 학생들만 좋은 대학에 들어가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성도들의 잘못된 교육관에 편승해 올바른 신앙인으로 교육하기 보다는 제대로 된 교인이라면 공부도 잘해야 한다는 잘못된 이분법적 논리로 세상의 교육관과 함께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10년 전 논란을 일으켰던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은 교회에서 반주를 하는 여학생이었다. 또한 한 주일학교 교사는 주일학교 회장까지 했던 학생이 예수님에 대한 확신 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교회에서는 세상의 문화에 교회만 유아독존(唯我獨尊)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댄다. 그래서 시험기간이 되면 설교는 짧게, 교회에서 시행하는 학원식 학습은 길게 하는 변칙을 허용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교회에서 기독교세계관 보다는 오히려 세상에서 잘나가기 위해,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하나님을 믿으라는 주객이 전도되는 교육을 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인수가 아무리 많이 늘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만 얻고 봉사는 하지 않는 이기적인 교인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한국미래를준비하는모임(이하 한미준)은 한국갤럽에 의회 ‘크리스천의 교회활동과 신앙생활 분석’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 1998년 보다 이혼(35.9% → 49.5%), 인공유산(36.0% → 36.9%), 음주(54.0% → 65.0%), 혼전 성관계(29.55 → 37.0%), 혼외 성관계(8.7% → 9.9%), 뇌물 제공(15.4% → 16.3%) 등의 항목에서 관대해진 모습을 보였다. 이런 결과는 그동안 교회에서 조차도 성경적인 세계관을 토대로 한 윤리의식에 중점을 두지 않아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보다는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도록 오히려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고 있다(고전8:12).
溫故知新, 역사와 교훈을 가르쳐라
현재 우리나라에는 교육단체가 너무 많이 산재해 있다. 이 모습은 교육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팽배한지 보여주는 단면에 불과하다. 참교육을 외치며 만들어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참교육학부모회,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등 교육관련 유관단체와 시민단체의 수는 교육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때 마다 하나 씩 하나 씩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교육공동체 모임을 만들고 있고 간디학교나 하자센터 같은 제도권 밖에서 새로운 교육모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안교육이 현재 처해 있는 한국 교육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육에 대한 기본을 다시 찾지 않고서는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원칙이나, 동기부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미온적인 학습 매니지먼트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학교’ ‘부모’ ‘사교육’ ‘제도’ ‘교회’ 이 오적이 미래의 희망인 교육의 근간을 훔치는 재주 겨루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한국의 교육 뿌리까지 흔들려 망국에 이르게 된다. 금과 은, 그리고 권력에 둘리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오적의 도둑질은 계속 되는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교육에 대해서만은 이 온고지신을 되살려야 한다.
옛것을 지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선조들의 교훈으로 그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있다.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을 살펴보자. 당시의 교육 특징 역시 ‘환경’을 중시했다. 선생의 학벌이나 지식 보다는 무엇보다 후덕하고 건실한 성품을 가진 사람을 스승으로 뽑아 덕을 함양할 수 있는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예를 중요하게 여겨 덕성교육과 심신을 단련한 후에 지식 교육에 집중하는 학습 방식을 택했다. 주자가 독서법을 언급하면서 ‘마음을 깨끗하게 쓸고 닦은 후에 책을 읽어라’고 한 것도 덕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 덕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와 맥을 같이 한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갈 5:22-23)을 키울 때만이 덕이 쌓이고 사람이 쌓은 지식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을 위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다.
출애굽 당시 가르쳐야 할 역사와 교훈을 가르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했던 이스라엘은 분열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를 비롯한 백성들의 타락까지 가져왔다. 창세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지키는 것, 혹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오적을 살려두었다는 핑계를 댔다면 다시 한 번 양심에 귀를 기울여 믿음과 착한 것(딤전1:19), 즉 하나님의 마음을 찾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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