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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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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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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정직회복 운동] 2005.05.25
[연중기획] 정직회복운동 (11) - 주인을 아는것
참 主人을 알아야 義人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찍이 역사상 혼란과 수난의 위기라는 경동 속에서 몸부림쳐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걸머지고 기도의 등불을 밝혀야 된다. 백주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 조국의 위기를 막아낼 인물을 찾는다"고 외쳤던 헬라의 철인 디오게네스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우리도 지금 이러한 시점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와 스보임의 네 도시가 하늘에서 떨어진 유황불에 의해서 망했다. 수백만 명이 살았을 이 도시들에서 의인 10명이 없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당시에 근대화의 요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돈과 최고급 향수와 상품이 가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물질문명을 누렸던 소돔과 고모라.
하지만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인간 타락의 죄악상이 날개 쳤던 곳이며,
의인의 말이나 바른 말은 씨가 먹히지 않았던 사회이다. 이웃이 굶어죽든 상관없이 나와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그래서 그 죄악이 악취가 나서 하늘에 사무쳤다고 한다. 결국 화려하기 짝이 없고 인파가 넘친 이곳에는 의인 10명이 없어 멸절됐다.
예를 들어 천만이 넘는 서울시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 10명이 없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 아니겠는가? 나만, 내 가족만, 내 회사만, 내 당만 살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에게 나라와 민족이란 안중에 있을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 우리 자신에게 '당신은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의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 물음에 정확하게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참 주인 되신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의인만이 가능하다.
우리 삶에 주인이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찾는 의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그것은 바로 참 주인을 아는 사람이다. 주인 없는 집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도덕적으로, 사상적으로, 종교적으로 공허할 수 밖에 없다. 공허하다는 것은 첫째, 무의미하고 둘째, 무가치하고 셋째, 생명이 없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주인다운 책임과 도리를 다하지 못해 나라를 잃어버리거나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일제 35년간 우리 국민은 참 주인 노릇을 못해 국토와 주권, 재산과 자유, 권리와 말, 글과 이름, 민족정신을 일본인에게 빼앗기고 역사의 노예로 전락했었다. 어찌 보면 한국역사의 가장 비참하고 부끄러운 곤욕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 주변을 살펴보아도 주인노릇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주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권세와 능력, 재력이 있어 겉은 화려하고 거룩해 보이지만 껍데기 쭉정이만 있을 뿐이다. 내용이 없다. 속에 생명이 없으니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가지고 주인인양 모든 것을 휘어잡으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참 주인을 알지 못하는 교만과 거짓에서 출발한 것이다.
내용 없는 껍데기가 주인 노릇을 하려고 보니 없는 자들과 소외된 자들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경향이 많다. 자신을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존재라고 탄식하는 인생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주인을 잘 만나지 못해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쓸모를 잘 모르게 되는 것이다.
참 주인을 만나야 한다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곧 의인이 되려면 주인다운 참 주인이요, 사실상의 주인을 알아야 한다. 내 인생, 내 가족, 내 직장, 내 나라의 참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한다면 참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각자 자리에서 주인노릇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참 주인을 만나야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존재라고 탄식했던 우리 인생이 참으로 소중한 일들에 귀하게 쓰임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참 주인이란 누구인가? 주인(主人)에 대해 사전에서는 ①대상이나 물건 따위를 소유한 사람 ②집안이나 단체 따위를 책임감을 가지고 이끌어 가는 사람 ③'남편'을 간접적으로 이르는 말 ④손님을 맞아 상대하는 사람 ⑤고용 관계에서 고용하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곧 ▲소유주 ▲책임자 또는 리더 ▲가장 ▲고용주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또 주인이라는 말에서 주에 해당하는 한자인 '主'는 주요하거나 기본이 되는 것, 일차적인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명사형으로 근본, 주인, 임자, 임금 등을 나타낸다. 종교적으로는 만백성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하늘의 주인인 천주(天主) 또는 구원자를 가리키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자,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어떤 이는 '주인' 또는 '임금'을 나타내는 주(主)라는 한자의 기원을 '나무 걸침대 위에 등잔불이 타는 모습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곧 등잔불이 방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데서 주인이란 뜻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주(主)라는 한자는 임금 왕(王)에 점 주()를 붙인 것이다. 여기서 점 주()는 촛불의 움직임을 형상화 한 것으로 생명, 살아 있음, 움직임을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주(主)는 영원히 살아계신 임금으로, 왕 중 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인(主人)은 곧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인으로, 삼위일체 되신 영이신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렇듯 우리 인생 전체를 맡길 만한 참 주인은 바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인류역사와 각자 개인의 참 주인이 될 수 있다. 창조주를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창조주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主)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주권을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새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 낡은 방법과 악한 생각을 다 내어 쫓을 수 있다.
우리 인생 전체를 맡길 만한
참 주인은 바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만잉
인류역사와 각자 개인의 참 주인이 될 수 있다.
창조주를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창조주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主)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주권을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새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
낡은 방법과 악한 생각을 다 내어 쫒을 수 있다.
이것이 정직과 성실을 기초로 하는
의인의 삶을 사는 첫걸음이다.
예수를 주인으로 모신 에녹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셨던 사람 중에 에녹이 있다. 에녹을 통해 주인으로 모시는 삶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에녹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는 내용이다. 에녹에 대해서 성경은 창세기 5장 21-24절, 히브리서 11장 5-6절, 유다서 1장 14-15절에서 에녹의 삶과 믿음, 종말예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 주인 되신 하나님을 어떻게 모시고 살았을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동행이란 일치(一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음의 다섯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①하나님의 마음과 같다. ②하나님의 말씀이 늘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 ③하나님의 뜻을 놓치지 않았다. ④하나님과 같이 걸었다. ⑤하나님과 끝까지 함께 했다. 곧 동행은 창조주 되신 하나님과 서로 떨어지지않고 끝까지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늘 끝을 보는 삶
에녹은 늘 끝을 보고 살았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산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에녹의 믿음과 삶은 흐트러짐이 없이 성실과 정직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에녹을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녹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데려가신 것이다.
주인을 기쁘게 하는 삶
'에녹'이란 신임한다, 시작한다, 가르친다는 뜻을 가진다. 먼저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의 신임을 받았다. 둘째, 에녹으로 인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해줬다. 셋째,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영생한다는 사실을 에녹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에녹은 늘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면서, 끝을 보는 삶을 살았다. 이것이 동행이다. 곧 천지만물과 역사의 주인 되신 창조주만을 바라보고, 그의 뜻만을 생각하면서 늘 종말을 보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동행의 삶이 죽음을 초월하는 삶을 살게 했다. 한마디로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만을 모시고 살았을 때, 죽음이란 우리와 상관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고 요한복음 8장 51절에 말씀하셨던 것이다(고전15:51).
늘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의 믿음은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의 '임마누엘'로 연결되고 있다(마1:23). 이 임마누엘은 하나님을 멀리했던 인류 역사를 구원의 역사를 바꾸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직접 뛰어드신 사건을 보여준 것이다.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 에녹의 동행의 신앙이 오늘날 인류 역사에 구원자가 오게 되는 길로 연결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과 그 말씀을 모시고 끝을 보는 삶을 살 때에 우리는 제대로 된 주인노릇, 의인노릇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긴 의인들의 삶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로울 때는 애국자인척 하지만, 해로울 때는 나라도 민족도 동창도 친구도 아랑곳없이 헌신짝 버리듯 한다. 하지만 주인을 섬기는 의로운 사람들은 자기 조국을 끝까지 사랑했다는 것을 성경과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광야의 아버지이며,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였던 모세는 자기 동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는 일신의 영화와 안일을 포기하고 고난에 동참했다(히11:24-32).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으신다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간구했던 사람이다(출32:32).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 받은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 할지라도 자신의 골육친척과 민족이 구원받기를 간구했다(롬9:1-2).
우리 민족의 애국지사인 이상재 선생이 있다. 일본 총독부가 유명한 학자들과 정치인들을 다 동원시켜서 이상재 선생의 민족정신과 중심사상을 꺽어보려고 했으나 안됐다. 일본의 고등계형사가 수천 금을 가지고 와서 시골로 내려가 농장을 경영하며 남은 여생을 평안히 살라고 했을 때, 이 선생은 가지고 온 것을 팽개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긴 말이 "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의인은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민족의 자유와 평화와 생존을 위하여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이다. 낮밤새벽을 가리지 않고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가족과 나라를 불행하게 만드는 엉터리 같은 사상과 이념과 잘못된 마음가짐으로 이 나라 앞날을 흐리게 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의인은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는 양심으로 민족과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만이 진정 민족과 국가를 위한 기둥이라 할 수 있겠다. 의인이 없는 민족의 역사는 암담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나라와 민족은 망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구인광고인 동시에 경고의 말씀이다. 지금 우리는 이 말씀에 응답자가 되어, 참 주인 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령한 의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이 민족을 살리는 참된 길이다.
Key point
1. 지금 세상은 참 주인을 알지 못하는 거짓과 교만으로 가득하다.
2. 주인(主人)이란 한자는 영원히 살아계신 임금으로, 왕 중 왕 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의미한다.
3. 동행의 삶은 천지만물과 역사의 주인 되신 창조주만을 바라보고, 그의 뜻만을 생각하면서 늘 종말을 보는 의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4. 의인은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민족의 자유와 평화와 생존을 위하여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이다
[연중기획] 정직회복운동 (11) - 주인을 아는것
참 主人을 알아야 義人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찍이 역사상 혼란과 수난의 위기라는 경동 속에서 몸부림쳐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걸머지고 기도의 등불을 밝혀야 된다. 백주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 조국의 위기를 막아낼 인물을 찾는다"고 외쳤던 헬라의 철인 디오게네스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우리도 지금 이러한 시점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와 스보임의 네 도시가 하늘에서 떨어진 유황불에 의해서 망했다. 수백만 명이 살았을 이 도시들에서 의인 10명이 없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당시에 근대화의 요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돈과 최고급 향수와 상품이 가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물질문명을 누렸던 소돔과 고모라.
하지만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인간 타락의 죄악상이 날개 쳤던 곳이며,
의인의 말이나 바른 말은 씨가 먹히지 않았던 사회이다. 이웃이 굶어죽든 상관없이 나와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그래서 그 죄악이 악취가 나서 하늘에 사무쳤다고 한다. 결국 화려하기 짝이 없고 인파가 넘친 이곳에는 의인 10명이 없어 멸절됐다.
예를 들어 천만이 넘는 서울시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 10명이 없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 아니겠는가? 나만, 내 가족만, 내 회사만, 내 당만 살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에게 나라와 민족이란 안중에 있을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 우리 자신에게 '당신은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의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 물음에 정확하게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참 주인 되신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의인만이 가능하다.
우리 삶에 주인이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찾는 의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그것은 바로 참 주인을 아는 사람이다. 주인 없는 집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도덕적으로, 사상적으로, 종교적으로 공허할 수 밖에 없다. 공허하다는 것은 첫째, 무의미하고 둘째, 무가치하고 셋째, 생명이 없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주인다운 책임과 도리를 다하지 못해 나라를 잃어버리거나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일제 35년간 우리 국민은 참 주인 노릇을 못해 국토와 주권, 재산과 자유, 권리와 말, 글과 이름, 민족정신을 일본인에게 빼앗기고 역사의 노예로 전락했었다. 어찌 보면 한국역사의 가장 비참하고 부끄러운 곤욕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 주변을 살펴보아도 주인노릇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주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권세와 능력, 재력이 있어 겉은 화려하고 거룩해 보이지만 껍데기 쭉정이만 있을 뿐이다. 내용이 없다. 속에 생명이 없으니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가지고 주인인양 모든 것을 휘어잡으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참 주인을 알지 못하는 교만과 거짓에서 출발한 것이다.
내용 없는 껍데기가 주인 노릇을 하려고 보니 없는 자들과 소외된 자들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경향이 많다. 자신을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존재라고 탄식하는 인생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주인을 잘 만나지 못해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쓸모를 잘 모르게 되는 것이다.
참 주인을 만나야 한다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곧 의인이 되려면 주인다운 참 주인이요, 사실상의 주인을 알아야 한다. 내 인생, 내 가족, 내 직장, 내 나라의 참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한다면 참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각자 자리에서 주인노릇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참 주인을 만나야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존재라고 탄식했던 우리 인생이 참으로 소중한 일들에 귀하게 쓰임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참 주인이란 누구인가? 주인(主人)에 대해 사전에서는 ①대상이나 물건 따위를 소유한 사람 ②집안이나 단체 따위를 책임감을 가지고 이끌어 가는 사람 ③'남편'을 간접적으로 이르는 말 ④손님을 맞아 상대하는 사람 ⑤고용 관계에서 고용하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곧 ▲소유주 ▲책임자 또는 리더 ▲가장 ▲고용주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또 주인이라는 말에서 주에 해당하는 한자인 '主'는 주요하거나 기본이 되는 것, 일차적인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명사형으로 근본, 주인, 임자, 임금 등을 나타낸다. 종교적으로는 만백성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하늘의 주인인 천주(天主) 또는 구원자를 가리키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자,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어떤 이는 '주인' 또는 '임금'을 나타내는 주(主)라는 한자의 기원을 '나무 걸침대 위에 등잔불이 타는 모습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곧 등잔불이 방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데서 주인이란 뜻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주(主)라는 한자는 임금 왕(王)에 점 주()를 붙인 것이다. 여기서 점 주()는 촛불의 움직임을 형상화 한 것으로 생명, 살아 있음, 움직임을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주(主)는 영원히 살아계신 임금으로, 왕 중 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인(主人)은 곧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인으로, 삼위일체 되신 영이신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렇듯 우리 인생 전체를 맡길 만한 참 주인은 바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인류역사와 각자 개인의 참 주인이 될 수 있다. 창조주를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창조주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主)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주권을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새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 낡은 방법과 악한 생각을 다 내어 쫓을 수 있다.
우리 인생 전체를 맡길 만한
참 주인은 바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만잉
인류역사와 각자 개인의 참 주인이 될 수 있다.
창조주를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창조주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主)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주권을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새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
낡은 방법과 악한 생각을 다 내어 쫒을 수 있다.
이것이 정직과 성실을 기초로 하는
의인의 삶을 사는 첫걸음이다.
예수를 주인으로 모신 에녹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셨던 사람 중에 에녹이 있다. 에녹을 통해 주인으로 모시는 삶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에녹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는 내용이다. 에녹에 대해서 성경은 창세기 5장 21-24절, 히브리서 11장 5-6절, 유다서 1장 14-15절에서 에녹의 삶과 믿음, 종말예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 주인 되신 하나님을 어떻게 모시고 살았을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동행이란 일치(一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음의 다섯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①하나님의 마음과 같다. ②하나님의 말씀이 늘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 ③하나님의 뜻을 놓치지 않았다. ④하나님과 같이 걸었다. ⑤하나님과 끝까지 함께 했다. 곧 동행은 창조주 되신 하나님과 서로 떨어지지않고 끝까지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늘 끝을 보는 삶
에녹은 늘 끝을 보고 살았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산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에녹의 믿음과 삶은 흐트러짐이 없이 성실과 정직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에녹을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녹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데려가신 것이다.
주인을 기쁘게 하는 삶
'에녹'이란 신임한다, 시작한다, 가르친다는 뜻을 가진다. 먼저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의 신임을 받았다. 둘째, 에녹으로 인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해줬다. 셋째,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영생한다는 사실을 에녹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에녹은 늘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면서, 끝을 보는 삶을 살았다. 이것이 동행이다. 곧 천지만물과 역사의 주인 되신 창조주만을 바라보고, 그의 뜻만을 생각하면서 늘 종말을 보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동행의 삶이 죽음을 초월하는 삶을 살게 했다. 한마디로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만을 모시고 살았을 때, 죽음이란 우리와 상관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고 요한복음 8장 51절에 말씀하셨던 것이다(고전15:51).
늘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의 믿음은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의 '임마누엘'로 연결되고 있다(마1:23). 이 임마누엘은 하나님을 멀리했던 인류 역사를 구원의 역사를 바꾸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직접 뛰어드신 사건을 보여준 것이다.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 에녹의 동행의 신앙이 오늘날 인류 역사에 구원자가 오게 되는 길로 연결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과 그 말씀을 모시고 끝을 보는 삶을 살 때에 우리는 제대로 된 주인노릇, 의인노릇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긴 의인들의 삶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로울 때는 애국자인척 하지만, 해로울 때는 나라도 민족도 동창도 친구도 아랑곳없이 헌신짝 버리듯 한다. 하지만 주인을 섬기는 의로운 사람들은 자기 조국을 끝까지 사랑했다는 것을 성경과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광야의 아버지이며,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였던 모세는 자기 동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는 일신의 영화와 안일을 포기하고 고난에 동참했다(히11:24-32).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으신다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간구했던 사람이다(출32:32).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 받은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 할지라도 자신의 골육친척과 민족이 구원받기를 간구했다(롬9:1-2).
우리 민족의 애국지사인 이상재 선생이 있다. 일본 총독부가 유명한 학자들과 정치인들을 다 동원시켜서 이상재 선생의 민족정신과 중심사상을 꺽어보려고 했으나 안됐다. 일본의 고등계형사가 수천 금을 가지고 와서 시골로 내려가 농장을 경영하며 남은 여생을 평안히 살라고 했을 때, 이 선생은 가지고 온 것을 팽개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긴 말이 "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의인은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민족의 자유와 평화와 생존을 위하여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이다. 낮밤새벽을 가리지 않고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가족과 나라를 불행하게 만드는 엉터리 같은 사상과 이념과 잘못된 마음가짐으로 이 나라 앞날을 흐리게 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의인은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는 양심으로 민족과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만이 진정 민족과 국가를 위한 기둥이라 할 수 있겠다. 의인이 없는 민족의 역사는 암담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나라와 민족은 망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구인광고인 동시에 경고의 말씀이다. 지금 우리는 이 말씀에 응답자가 되어, 참 주인 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령한 의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이 민족을 살리는 참된 길이다.
Key point
1. 지금 세상은 참 주인을 알지 못하는 거짓과 교만으로 가득하다.
2. 주인(主人)이란 한자는 영원히 살아계신 임금으로, 왕 중 왕 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의미한다.
3. 동행의 삶은 천지만물과 역사의 주인 되신 창조주만을 바라보고, 그의 뜻만을 생각하면서 늘 종말을 보는 의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4. 의인은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민족의 자유와 평화와 생존을 위하여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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