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한국 교회에는 놀라운 필사 영성의 모범을 이루는 연로하신 여종이
한 분 계신다. 바로 경북 안동시에 소재한 안동교회내 ‘동은(東隱)의
집’에 은거하며 20여년간 성경 필사에 전념하고 계신 최의숙(89) 권사이다.
이곳의 이름은 최의숙 권사의 평생 반려자인 안동교회 김광현(92) 원로목사의
호 ‘동은’에서 따왔다. 30세의 젊은 나이에 부임한 김 목사가 70세로
은퇴하신 1982년 이후 부부는 22년 동안 교회에서 배려해준 누옥에 은거하면서
성경 필사와 암송,수도에 전념해왔다. 은퇴와 함께 교회를 떠나려 했지만
후임 김기수 목사와 성도들이 한사코 만류,무려 62년째 이 교회에 살고
계신다. 중세의 수도사 토마스 아 켐피스가 22세 때 수도원에 들어가서
70여년동안 성경을 필사하며 수도한 일을 연상케 한다.
최의숙 권사께서 ‘성경 필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성경 암송’이
계기가 됐다. 은퇴 이후의 허전함을 극복하고 영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 권사는 성경 암송과 기도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런데 성경 암송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암송한 성구를 자꾸만 잊어버리자 기도하며
고심하던 중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았다. “성경 필사와 함께 암송을
하거라.”
그렇게 시작한 성경 필사가 20여년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개혁한글 성경’을 필사하다가 기도 중에 영어와 일본어 성경도 쓰자는
내적 도전이 와서 3개국어로 필사하기 시작했다. 최 권사가 일제시대에
일본 세이와여자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일본어 성경 필사는 한글보다 쉽고 시간도 훨씬 적게 든다고
한다.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것은 영어성경 필사였으나 포기하지
않고 간구하였더니 지금은 영어필사체가 더 미려하다.
시작 단계에 역경이 없을 수 없다. 필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돼 여호수아서
12장 7절 이하와 13장,15장 20절 이하 등에 왕 이름과 유다 자손의 지파가
얻은 기업(지명)이 단조롭게 계속될 때는 너무 힘들어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네가 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격려해 주셔서 새 힘을
얻었다고 한다. 이 고백을 들으면 성경 필사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최 권사는 성경을 필사하다가 은혜로운 부분은 암송하고 성령이 감동하시는
부분에서는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처럼
춤을 추기도 한다. 주석가 장 칼뱅도 성경을 주해하다가 감동되는 부분에는
붓을 놓고 무릎 꿇어 기도하지 않았던가!
한창 젊은 성도라 하더라도 일생에 한번 쓰기도 쉽지 않는데 아흔을
목전에 둔 할머니가 지금까지 개역한글성경 3차례,영어성경(흠정역)
3차례,일본어성경을 3차례나 필사했다. 그것도 할머니의 필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려하다. 첫번째 3개국 필사본은 목회자가 된 큰아들(현
서울 벧엘장로교회 김서년 목사)에게 물려주면서 ‘철저히 말씀대로
목회하라’고 가르쳤다. 두번째 3개국 필사본은 기업에 종사하는 둘째아들(김준년
집사)에게 역시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연로한 몸으로 강행군을 한 나머지 지쳐서 그만 쓰리라 마음 먹었는데
이 사실을 안 안동교회 성도들이 항의(?)를 했단다. “육신으로 낳은
자식만 자식이냐”면서 교회에서 영적으로 낳으신 자식들을 위해 한
벌씩 써주십사고 간청했다. 교회 도서관에 길이 보존하면서 대대로 교육에
쓰겠다는 요청이었다.
최 권사가 “하나님,도저히 더는 못쓰겠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하고
탄식하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쓴다!”고 위로해 주셨다. 다시
붓을 들어 세번째로 3개국어 필사를 마쳤다. 세번째 필사본을 교회 도서실에
기증하던 날 온 교회 성도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세번째 3개 국어 필사가 끝나자 서울 명성교회 부목사인 셋째아들(김무년
목사)이 또 가만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네번째 3개국 필사에 들어가
지금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모르긴 해도 기네스 북에 오를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이 필사영성훈련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한 여종을 특별한 도구로 사랑하시는 것이다.
필사를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최 권사에게 언어의 능력과 총명을 주셔서
영어 일어 한국어로 성경을 유창하고 정확하게 암송케 하셨다. 그 수준
또한 깊어서 주제별 관련 성구 중심에서 발전,이제는 구속사에 있어서
중요한 성경을 장 단위〔章句〕로,그것도 3개 국어로 정확하게 암송할
정도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우리 시대의
‘영적 사건’인 것이다.
성경 필사와 암송을 통한 고결한 영성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여수도사’가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과 희망이다. 요즘 한국 교회 성도
사이에 성경 필사 붐이 일고 있는 이때 필사 작업이 고결한 영성운동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김성영(성결대학교 총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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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4.03.14, 16:06
http://www.kmib.co.kr/html/kmview/2004/0314/0919348737231111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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