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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칼럼] 영성개념의 문제점과 성경적 경건의 길 2

영성묵상훈련 이승구............... 조회 수 3136 추천 수 0 2005.08.26 08: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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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승구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2. 우리가 드러내려고 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들에서 벗어나 우리가 “영성”이라는 용어를 가장 좋은 의미로 말할 때 우리가 의도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모든 토대에 대한 정지(整地)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기독교적인 영성”이며, 그런 의미의 영성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인가? 모든 교회들이 영성 문제로 관심이 높은 이 시점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묘사되어야 할 것인가?

바울 서신에 의하면, 성령님에 대해서 바르게 가르침을 받고 우리가 성령님 안에,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영원히 내주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에게 남은 한 가지 과제는 이제 계속해서 “성령님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일”이며(갈 5:16),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는 것”이다(갈 5:18). 그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엡 5:18)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성령님께 민감해서 그가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또한 성령님의 힘에 의존해서 따라가는 인격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적 의미의 영성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에 대해 말할 때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성경 구절을 다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들이 대부분 그것이 과연 어떤 실재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구절들이 인용되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생각하는 의미들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경우가 많이 있다.

2-1.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 것들을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비성경적인 방향으로 인도하지 아니하신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요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영성 운동가들은 실질적으로 성경의 가르침 밖으로 나아가거나 성경의 가르침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주변에 있는 분들이 결국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게 하는, 성경에 가르침에 무엇이 더 해 져야 온전한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인도할 때에 우리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적인 계시는 더 이상 계속 되지 않지만 사적인 계시는 계속된다는 식의 논의를 하는 것의 문제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생황에 대한 성경의 온전한 충족성(the sufficiency of the Scriptures)을 가르치시는 성령님의 사역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이들은 결코 비도덕적인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없다. 이 세상 사람들도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비도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들은 결코 성령님의 의해 가르침 받거나 성령님의 의해 인도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이들은 비인격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없다. 성령님은 결코 우리의 인격을 배제하고 우리를 황홀경 가운데서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잘 반영되도록 우리를 인격적으로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기 때문이다. 소위 영적 지도라는 것이 비인격적 관계가 된다면 그것은 진정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오늘 날에는 천주교의 영적 지도도 평등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 영적 지도보다는 영적인 우정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 사역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런 입장에서 틸더른 에드워즈는 이렇게 까지 말한다:

“영적 지도란 여러 가지 말과 도움과 격려로 그 사람 곁에 기꺼이 앉으려는 심정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성령이 생각과 마음을 열어 주시도록 그의 자각의 방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이런 변화는 좋은 것이다. 그것이 개혁파에서 예로부터 강조해 온 성경과 성령님을 중심으로 한 상호 사역(mutual ministry)으로 나타나도록 우리는 지속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성령님 안에서 모든 관계는 참으로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넷째로,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없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지 않거나 성경이 하나나 나라에 대해 가르치는 바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는 것이다.

2-2.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는 진정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이들,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적 영성으로 충만한 이들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성령님으로 행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에 대한 시금석을 우선 다음 네 가지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성령님의 힘으로 온전하고 구비된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된다.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잘 조화되어 나타나는 성령의 “한 열매”를 내는 삶이다(갈 5:22, 23). 이 구절이 문자적으로 잘 말해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성령의 열매는 단일한 열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150년 전에 맥체인(Robert Murray McCheyne)이 기도했다던 대로, “주님, 구원받은 죄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삶을 사는 이들에게서는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투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시기, 술취함, 방탕함, 또 그와 같은 것들”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갈 5:19-20). 하루아침에 다 되는 것은 아니라도 날마다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적인 품성이 온전히 드러나는 삶을 향해 참된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에 의존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2)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님을 좇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이며,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지에 유의하며 그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나간다.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이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 점에 있어서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잘못된 이해를 가져 왔었고, 바른 관찰을 하는 분들이 처음부터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을 나나내어 왔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은 (3)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교회의 사명을 유의하면서 교회가 참으로 교회답게 그 사명을 다해 나갈 수 있도록 “교회의 지체”[敎會我]로서의 모든 활동을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열심히 하여 나갈 것이다. 교회는 항상 성령님의 능력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성령님께서 제공하는 힘 가운데서 전진할 때라야만 유효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교회는 항상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이일을 감당하여 왔고, 또 항상 그리할 것이다.

그리고 (4) 그렇게 배우고 교회를 통해 드러내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따라 이 세상에서 적극적인 삶을 살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께 순종하며 성령님에 의지하는 자는 반(反)사회적으로 살거나,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이 물러나 살지 아니한다. 그는 수도원적인 영성을 지향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 세상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무대와 장소로 여기면서 적극적으로 살며, 급기야는 지금 여기서도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드러내려는 문화 변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성령의 사람에게는 성속을 지나치게 구별하는 이원론적인 삶의 모습이 있지 아니하며, 좁은 의미의 종교적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신 소명(vocation)에 따라 이 세상 속에서 주어진 일을 하며, 그 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며, 이 땅 가운데 그런 하나님이 원하시는 문화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게 된다. 이 세상의 흐름을 유의하면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신국적 관점으로 이 세상의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기독교적 노력을 힘쓰게 된다.

어떤 의미애서 이것은 성령님을 순종하며 인도하심을 받아 가는 것의 이 세상에서 나타나는 궁극적 열매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최종적 열매는 하나남 나라의 극치에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 생황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온전히 살지 않는 오늘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얼마나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여 가지 않는 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들이 어떤 이가 과연 성령님 안에 살면서 성령님께 순종하는 지를 잘 드러내어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강조하며 말한다면, 성령님께서 이루시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나타나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를 드러내는 교회의 지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 그리하여 구체적인 일상의 영역과 사회 생활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가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성령님께 순종하는 이들은 아니다. 아무리 성령님께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성령의 능력을 강조한다고 해도 이와 같이 온전한 성령적 인격성의 드러남과 하나님 나라 중심의 태도가 나타나지 않으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라고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이런 시금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시금석을 가지고서 신중하게 판단한다면 우리는 이단의 가르침을 따라 갈 수 없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이단적 방향을 향해 나아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상당히 많은 이단 종파가 성령님을 강조하고 나오는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이적과 기사를 용인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명확히 이야기 할 때는 “현재의 ‘표적들과 기사들’에는 신적인 것들보다 인간적인 측면이 더 많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며, “우리는 환상이 자연적 원인의 결과일 가능성도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유의해서 우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이몬 챤 자신이 동방 정교회의 Evagrius의 말을 변용하여 잘 말한 바와 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분별하는 사람이고 분별하는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만약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대규모로 영적인 분별력을 갖추게 된다면, 대부분의 텔레비전 전도자들(Tele-evangelist)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과연 어떤 상태에 있는 지를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2-3.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가는 모습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항상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우리의 구체적 일상생활에서 과연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될까? 먼저 추상적으로 원리만을 언급한다면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은 (1) 하나님의 말씀의 객관적 의미와 (2)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주관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여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 말씀의 객관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여 그것에 따라 구체적인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교제에 의해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가게 된다.

3. 그런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모습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와 같이 성령님께 철저히 의존해 가는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는데 과연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가? 과연 영성 수련이나 영성 훈련과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일까? 성경은 그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일정한 방법을 지시해 준 일이 없다. 그런 것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해서 체계화한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말하는 것은 약간의 유익은 될 수 있으나, 문제는 (1) 그런 방법의 제시가 일종의 새로운 율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고, 또한 (2) 한 사람에게는 경건인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사실 오늘 날 유행하는 영성 수련의 방법을 실질적으로 그런 새로운 율법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복음주의 기독교에 다시 새로운 율법을 도입하는 것이 될 것이므로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 된다.

성경은 오히려 어떤 영적 수준에 이르렀든지 그 수준에서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여 가는 매우 자연스러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전통적인 성경적 경건의 길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에 근거해서 전통적으로 성령님께 순종하는 일을 돕기 위한 것으로 (1) 교회 공동체에 회원으로 그 교회에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잘 공부하는 것과 (2) 하나님의 말씀을 눈에 보이는 형식으로 내려주시는 성례에 바르게 참여 하는 것과 (3) 그런 것에 근거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돕기 위해 (4) 성도들의 성령님 안에서의 교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네 번째 방법은 이는 성경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방안의 하나이며 그것을 위한 좋은 배경 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성경에 근거해서 개혁 교회가 참된 영적 성장의 길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들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로, 교회 공동체의 회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공부하여 나가고 그 말씀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진전해 가는 일에 힘써야 한다. 교회의 성장은 공동체에서 공적으로 선포되는 말씀의 성장으로 판단될 수 있다. 복음의 바른 선포가 있는 곳이 교회이므로, 교회 안에서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전체에 대한 균현적인 가르침이 주어져야만 한다. 그럴 때에 기독교회 안의 성도들이 영적으로 바르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적으로 말씀을 배운 이들은 또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도 성경을 공부하는 일에 열심을 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이들은 이상한 가르침에 좌우되지 않는 일종의 영적 분별력을 보이게 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교회의 회원들로서 교회의 성례에 바르게 참여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은 성례를 형식적인 것으로 보는 생각들이 너무 만연하고 있다고 생각될 수 있다. 참으로 성령님께 순종하는 이는 주님께 순종해서 자신들이 믿은바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에로 나아가는 일에 열심이게 되고 그를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음에 대한 표(sign)로써 또한 그 일에 대한 인침(seal)으로써의 세례에 은혜를 중시하게 되며, 자신들의 자녀들에 대한 유아 세례에 대해서도 이런 의미에서 심각한 참여를 하게 되며, 그런 일이 교회에서 행해 질 때 그 일의 교회적 의미를 높이 사면서 함께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는 일에 힘써 나갈 것이다. 누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회원이 되는 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게 되는 상황은 우리가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는데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세례 받은 이들은 교회에서 성찬을 같이 나누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성찬을 통해서 주께서 은혜 언약에 속해 있음을 표하시고 그 일을 인쳐 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들리는 말씀과 눈에 보이는 말씀을 사용해서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므로 함께 성장해 가야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이런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것이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하는 기도이므로 말씀에 어긋나는 것을 구하거나 하나님의 뜻은 제쳐 놓고 자신의 주장만을 하여 나가는 형태의 기도를 피하여 가게될 것이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 가는 기도가 된다. 또한 참된 기도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들을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성령님에 따른 온전한 인격을 드러내게 되도록 한다.

따라서 정신없는 기도 행위 등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가장 온전한 인격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도와 기도회가 중요하다. 동반정교회의 Evagrius의 말을 원용하여 말한다면, “당신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님께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은 진실로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진실로 기도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에 근거해서 성도들이 깊이 있는 성령님 안에서의 교제에 힘써야 한다. 이는 성령님 안에서의 교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어 교회 안에 연약한 지체들을 세워주는 방식으로의 성장을 이루게 할 것이다.

이승구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크리스천투데이 2005-08-01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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