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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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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인생을 건져 올린 사람, 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 육신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 사명이 무엇인지를 일찍이 확인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죽음의 절차를 온 몸으로 경험했기에 죽음이 주는 공포에서 해방을 받았다.
그런 데 요즘 목회자들에게 듣는 말 가운데 허전하고 허탈한 말이 하나 있다. ‘요즘은 신자가 줄어든다’는 것, 그러나 이 말은 사단의 유혹이다. 지금도 날마다 새 신자를 길러내는 목회자들도 많이 있다. 이에 대하여 다수의 목회자들이 하는 말은 ‘그거야 대형교회들의 세몰이 현상이고, 신자가 불어난다 해도 수평이동일 뿐’ 이라는 것이다.
참 듣기에 거북한 변명이다. 목회자나 전도자들이 더는 싸울 의사가 없어졌다. 복음을 더 멀리 땅끝까지 전해야 할 터인데 찾아갈 곳이 없다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공황이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가 파탄이 났던 때처럼 슬프고 부끄러운 공황이다. 교회의 말로 하면 사단의 함정이다. 노력해 보라. 노력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받은 은혜를 헤아려 보라. 사단의 함정에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나올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목회자들의 경우 예수께서 경험한 십자가를 생각해 보라. 신자들이 힘이 부족한 것은 자기 십자가가 아닌 예수의 십자가를 빌려서 살아왔기에 그런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나의 십자가. 이 둘 중에 오늘은 나의 십자가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의 십자가가 필요하지만 구원의 사람이 되어 신자의 몫을 해내려 할 때는 ‘나의 십자가’가 있어야 한다. 자기 십자가가 없음은 십자가의 은혜를 체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몸으로 체감하지를 못해서이다. 온 몸으로 체감해야 십자가인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라. 십자가를 선택하기 위하여 자기를 반드시 내 던져야 한다. 우리는 골고다 길에서 쓰러지고 넘어지는 예수를 보았다. 그때 생각해 보았는가? 왜 예수가 쓰러지고 넘어졌을까? 힘이 모자라서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다. 예수 약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하나님이 저를 살리셨다지 않던가.
혼신의 힘을 다하라.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 신자가 늘어나지 않는다. 그럼 물어보자. 당신은 신자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는가? 또 성령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얼마나 기도했는가?
신자의 숫자에 따라 울고 웃는 목회자는 대개 수준이 낮다. 신자가 물이 흐르듯이 움직이게 하라. 가고 오게 하라. 갈 때 듬뿍 선물을 안겨 주고 (다시)올 때 가슴을 열어 환영하라. 신자가 가고 오는 길을 차단하니까 신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들이 가고 오는 것에 따라 울고 웃지 마라. 가게 하고 또 오게 하라. 그리고 오는 자에게 늘 새롭고 넉넉한 은혜를 나누어 줄 준비를 하라.
어떤 목회자들은 마치 자기교회를 떠나면 당장 저주를 받을 것처럼 공갈을 친다. 그것은 사기죄에 해당한다. 가고 오게 하라. 인생과 교회를 크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가고 오게 하면 목회자가 어떤 속박에서도 자유로워진다. 소유나 성공이라는 초라한 결과에 매달리지 마라. 대개 이 정도 수준의 목회자들에게는 신자들이 붙어 있으려 하지 않는다. 가르침이 유치하니까, 또 더는 배울 것이 없으니 신자들의 그들이 곁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 〈無然〉
들소리신문 2005/4/25(월)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44
그런 데 요즘 목회자들에게 듣는 말 가운데 허전하고 허탈한 말이 하나 있다. ‘요즘은 신자가 줄어든다’는 것, 그러나 이 말은 사단의 유혹이다. 지금도 날마다 새 신자를 길러내는 목회자들도 많이 있다. 이에 대하여 다수의 목회자들이 하는 말은 ‘그거야 대형교회들의 세몰이 현상이고, 신자가 불어난다 해도 수평이동일 뿐’ 이라는 것이다.
참 듣기에 거북한 변명이다. 목회자나 전도자들이 더는 싸울 의사가 없어졌다. 복음을 더 멀리 땅끝까지 전해야 할 터인데 찾아갈 곳이 없다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공황이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가 파탄이 났던 때처럼 슬프고 부끄러운 공황이다. 교회의 말로 하면 사단의 함정이다. 노력해 보라. 노력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받은 은혜를 헤아려 보라. 사단의 함정에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나올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목회자들의 경우 예수께서 경험한 십자가를 생각해 보라. 신자들이 힘이 부족한 것은 자기 십자가가 아닌 예수의 십자가를 빌려서 살아왔기에 그런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나의 십자가. 이 둘 중에 오늘은 나의 십자가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의 십자가가 필요하지만 구원의 사람이 되어 신자의 몫을 해내려 할 때는 ‘나의 십자가’가 있어야 한다. 자기 십자가가 없음은 십자가의 은혜를 체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몸으로 체감하지를 못해서이다. 온 몸으로 체감해야 십자가인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라. 십자가를 선택하기 위하여 자기를 반드시 내 던져야 한다. 우리는 골고다 길에서 쓰러지고 넘어지는 예수를 보았다. 그때 생각해 보았는가? 왜 예수가 쓰러지고 넘어졌을까? 힘이 모자라서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다. 예수 약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하나님이 저를 살리셨다지 않던가.
혼신의 힘을 다하라.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 신자가 늘어나지 않는다. 그럼 물어보자. 당신은 신자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는가? 또 성령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얼마나 기도했는가?
신자의 숫자에 따라 울고 웃는 목회자는 대개 수준이 낮다. 신자가 물이 흐르듯이 움직이게 하라. 가고 오게 하라. 갈 때 듬뿍 선물을 안겨 주고 (다시)올 때 가슴을 열어 환영하라. 신자가 가고 오는 길을 차단하니까 신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들이 가고 오는 것에 따라 울고 웃지 마라. 가게 하고 또 오게 하라. 그리고 오는 자에게 늘 새롭고 넉넉한 은혜를 나누어 줄 준비를 하라.
어떤 목회자들은 마치 자기교회를 떠나면 당장 저주를 받을 것처럼 공갈을 친다. 그것은 사기죄에 해당한다. 가고 오게 하라. 인생과 교회를 크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가고 오게 하면 목회자가 어떤 속박에서도 자유로워진다. 소유나 성공이라는 초라한 결과에 매달리지 마라. 대개 이 정도 수준의 목회자들에게는 신자들이 붙어 있으려 하지 않는다. 가르침이 유치하니까, 또 더는 배울 것이 없으니 신자들의 그들이 곁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 〈無然〉
들소리신문 2005/4/25(월)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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